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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53권
12. 보살장회
12.11. 반야바라밀다품 ④
[도의 선교]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도의 선교[道善巧]를 닦나니,
도의 선교에는 또 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이니, 이것을 두 가지라 하느니라.
[사마타의 도]
사리자야, 어떤 것을 사마타의 도라 하는가?
사리자야, 모든 보살의 마음이 고요하고 깊고도 지극히 고요하고 가장 뛰어나게 고요하며, 산란함이 없고 모든 감관이 담박하여 들뜸이 없으며, 모든 조급함과 혼침을 여의고 편안하고 고요하여 은밀하게 보호하고 모든 아첨을 여의며,
조복하고 따르면서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저 시끄러움을 여의고 멀리 여의는 행[遠離行]을 좋아하며,
몸은 티끌에 물듦이 없고 마음은 미혹되어 요란함이 없으며,
고요한 문[寂靜門]에서 생각하고 뜻을 지으며,
모든 나쁜 욕심을 여의고 희망하는 것이 없고 모든 큰 욕심[大欲]을 멀리하며 기뻐하고 만족할 줄 아느니라.
그리고 바른 생활[正命]이 깨끗하고 바른 행이 원만하며 위의(威儀)를 은밀히 보호하여 때를 알고 분수를 알며,
기르기 쉽고 만족하기 쉽도록 그의 분량을 잘 알며 항상 즐거이 생각하여 간택하고 뽐냄도 없고 기죽음도 없으며,
비루한 말이나 추악한 말을 해도 참고 견디며 상응하는 문[相應門]에서 마음을 내어 편히 머무르고 조용한 방에 있기를 좋아하며,
정려(靜慮) 갈래에 대하여 뜻을 품고 생각을 반연하며
큰사랑[大慈]을 일으키고 대비(大悲)를 끌어내며, 대희(大喜)에 편히 머무르고 대사(大捨)를 닦아 익히며,
첫째 정려[初靜慮]로부터 여덟 가지 선정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증득하여 들어가는 것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것을 성취하면 이와 같은 것을 사마타의 도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또 한량없는 모든 사마타의 자량(資糧)이 되는 바른 행이 있는데
모든 보살들이 이런 자량의 방편에 나아가 들어가는 이와 같은 것을 사마타의 도라 하느니라.
[비발사나의 도]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비발사나(毘鉢舍那)의 도라 하는가?
모든 보살이 묘한 지혜의 갈림에서 거룩한 도를 닦아 익히고 모든 법 가운데 이와 같은 작용이 없음[無作]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또 나도 없고 유정도 없고 목숨도 없고 보특가라도 없음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모든 온(蘊) 가운데 법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모든 계(界) 가운데 법계(法界)임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모든 처(處)에서는 공의 마을[空聚落]임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또 모든 눈[眼]에서는 환히 비춤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연기(緣起)에서는 서로 어기지 않음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모든 견해의 갈림[見趣]에서는 멀리 여읨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모든 인과(因果)에서는 업보(業報)를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며,
얻어야 할 과보에서는 증득함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고
들어가야 할 바른 성품에서는 나아가 들어감을 관찰하는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비발사나라 함은
모든 법 가운데서 이치에 맞는 견해[如理見]를 일으키고
모든 법 가운데서 진실한 소견을 일으키며,
모든 법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일으키고
모든 법 가운데서 공하다는 견해를 일으키며,
모든 법 가운데서 모양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고
모든 법 가운데서 소원이 없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비발사나라 함은 인(因)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요
인이 없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며,
나고 없어지고 머무는 인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요
얻을 인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 하면 보살은 이것에 대하여 전혀 관찰할 것이 없는데도 또 관찰하며 보지 않으면서도 보고 보면서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이렇게 관찰하면
사실대로의 관찰이라 하고 진실한 견해라 하며 또한 비발사나를 증득하는 선교방편이라고도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관찰 가운데서 비록 이러한 관찰과 견해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저는 하는 일이 없는 데에 떨어지지도 않고 또한 선근의 가행(加行)을 멀리 여의지도 않나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것을 성취하면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비발사나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 사마타와 비발사나의 도법선교(道法善巧)를 닦고 익히느니라.
[오직 하나로 나아가는 도의 선교]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도(道)의 모양은 이렇지만,
내가 만일 보살의 도를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오직 하나[一]로 나아가는 도의 선교가 있을 뿐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이 그것인가?
유독 한 무리[一衆]의 모습일 뿐이어서 같이 하는 이도 없고 돕는 벗도 빌리지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 위하여 스스로 섭수하고 정진하는 세력으로 깨끗하게 이해하려 하면서 견고한 갑옷을 입는 것이니,
왜냐 하면 이 보살은 다른 이로 말미암아 깨치지도 않고 다른 것을 반연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건립하고 자기의 힘으로 이와 같은 견고한 갑옷을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갑옷을 모든 중생들은 입지 못했지만 나만 유독 이와 같은 갑옷을 입게 되었다.
모든 성현으로서 새로 뜻을 일으켜 아직 바른 지위에 머무르지 못한 모든 보살들은 아직도 입지 못했지만 나만 이제 홀로 입게 되었다’고 하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이렇게 갖추고 있거늘 어찌 보시가 자재(自在)하여 나를 건지겠느냐? 내가 마땅히 자재하여 저 보시를 건져주리라.
이와 같아서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 및 반야 등이 어찌 자재하여 나를 건지겠느냐? 내가 마땅히 자재하여 먼저 그들을 건져주리라’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어찌 바라밀다(波羅蜜多)가 나를 일으키게 하겠느냐?
내가 마땅히 바라밀다를 일으키리라.
(이렇게 널리 말하면서) 모든 선근이 모두 나로 인하여 일어나게 할 것이요 선근이 나를 일으키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법에서 돕는 벗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건립하며
‘나 하나일 뿐, 같이할 이가 없다’고 하면,
장차 견고하고 뛰어난 금강자리[金剛座]에 앉아 스스로의 힘으로써 악마 군사를 꺾어 누를 것이요 한 찰나와 상응하는 묘한 지혜로써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게 되리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등의 알려고 하는 방편을 일으켜 반드시 관찰하면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하나[一]에 나아가는 도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고자 하여 이와 같은 하나에 나아가는 도의 선교를 닦고 익히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이와 같은 등이 도의 선교의 모양이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도법의 선교를 닦고 익히느니라.
[연기의 선교]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연기의 선교[緣起善巧]인가?
사리자야, 모든 보살들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연기를 수행하며 은밀하고 고요한 방에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세간은 순전히 큰 고통 덩어리인데 어디서부터 쌓여 일어나는 것일까?’라고 한 뒤에 곧
‘이와 같은 고통 덩어리는 이치대로 뜻을 짓지 않는 것[不如理作意]이 쌓이기 때문에 무명(無明)이 쌓여 일어나고 무명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지어감[行]이 쌓여 일어나며, 모든 지어감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의식[識]이 쌓여 일어나고, 모든 의식이 쌓이기 때문에 이름과 물질[名色]이 쌓여 일어난다.
이름과 물질이 쌓이기 때문에 여섯 감관[六處]이 쌓여 일어나고, 여섯 감관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접촉[觸]이 쌓여 일어나며, 모든 접촉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느낌[受]이 쌓여 일어나고, 모든 느낌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욕망[愛]이 쌓여 일어나며, 모든 욕망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취함[取]이 쌓여 일어나고, 모든 취함이 쌓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有]가 쌓여 일어나며, 모든 존재가 쌓이기 때문에 생겨남[生]이 쌓여 일어나고, 생겨남이 쌓여 일어나기 때문에 늙어 죽고 근심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함 등 모든 것이 다 쌓여 일어난다’고 함을 스스로 분명하게 아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또 생각하기를
‘마치 저 모든 법이 비록 또 쌓여 일어난다 하더라도 조작이 없고 작용이 없고 주재(主宰)가 없는 것처럼
이러한 모든 법은 모두가 선(善)이 인(因)이 되고 움직이지 않음[不動]이 인이 되고 열반이 인이 되므로 저 모든 법은 연(緣)으로부터 생기며 주재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
또 모든 중생들은 하근(下根)이 인(因)이 되고 중근(中根)이 인이 되고 상근(上根)이 인이 되고 모든 업(業)이 인이 되어 인과(因果)로 유전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모든 취할 것이 있는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쌓여 일어나나니,
보살이 온갖 것을 모두 이렇게 분명히 알면
그것을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무엇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 모든 법이 소멸하는 것일까?’라고 한 뒤에 곧
‘이치대로 뜻을 짓지 않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무명이 소멸하고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모든 지어감이 소멸하며 모든 지어감이 소멸하기 때문에 나아가서 순수하게 큰 고통 덩어리가 소멸하게 된다’ 함을 스스로 분명하게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법의 지혜를 분명히 알면 이것을 곧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또 생각하기를
‘인(因)은 바른 법을 의지하고 모든 연(緣)을 의지하고 화합을 의지하며 모든 선(善)을 닦게 된다.
이 법에서 만일 모든 인(因)이 모든 연(緣)과 화합하고 의지한다면 곧 이 법들은 나를 의지하지도 않고 유정을 의지하지도 않고 목숨을 의지하지도 않고 보특가라를 의지하지도 않을 것이니, 이야말로 저 법은 헤아릴 수가 없구나’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보살들이 만일 이와 같이 이치대로 관찰한다면
이것을 곧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모든 불법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모든 불법은 모두가 보리(菩提)의 모양이 연(緣)이 되어 생기는 모양임을 고찰하고 모든 연기(緣起)는 모두가 다하여 없어지는 모양이라 함을 관찰하면서도 모든 중생들을 보며 상대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고요히 사라짐[寂滅]에 나아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니,
이것도 연기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연기의 선교를 닦고 익히는 것이니라.
[모든 법의 선교]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모든 법의 선교[一切法善巧]인가?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모든 법에서 모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두루 포섭하나니,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등의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에 대하여 마땅히 선교를 닦아야 하느니라.
[유위의 선교와 무위의 선교]
사리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유위의 선교인가?
오묘하고 착한 몸의 행[身行]과 오묘하고 착한 말의 행[語行]과 오묘하고 착한 뜻의 행[意行]이니, 이것을 유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무위의 선교라 하는가?
곧 이와 같이 묘하고 착한 몸과 말과 뜻의 행을 마지막 무위의 보리에 회향하고 무위 보리의 묘한 관[妙觀]에 회향하며 또 살벌야[薩伐若]에 회향하는 것이니,
이것을 무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유위의 선교라 함은
곧 다섯 가지 도피안(到彼岸)을 쌓고 모으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 및 선정의 바라밀다이니,
이것을 유위라 하느니라.
만일 반야바라밀다의 무위의 지혜를 말미암아서라면 곧 다섯 가지 도피안을 싫어하거나 헐뜯을 수가 없으며,
이와 같은 묘한 지혜는 또 도피안의 자량(資糧)인 착한 법을 쌓아 모으고 무루(無漏)의 최상의 보리를 믿고 이해하며 그리고 일체지지(一切智智)에 회향하는 것이니,
이것을 곧 무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유위의 선교라 함은
장애가 없는 광명으로써 모든 중생을 비추고 네 가지 거두어 주는 법[攝法]으로써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나니, 이것을 유위라 하느니라.
만일 모든 법에서 나가 없고 유정이 없고 취함도 없고 고집함도 없음을 관찰하며 네 가지 거두어 주는 법의 방편선교로써 무위의 평등한 깨달음[等覺]을 좋아하고 믿고 받으며 그리고 일체지지에 회향하면
이것을 무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유위의 선교라 함은
끊지 않고 나고 죽으면서 결박(結縛)이 상속되게 하고 또 영원히 끊고 나고 죽으며 번뇌가 상속하게 하며 보리를 맡아 지니며 결박이 상속하되 일부분의 결박은 다시는 현행(現行)하지 않나니,
이것을 유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만일 또 공하고 모양이 없고 소원이 없음을 닦아 익히고 모든 법의 바른 지혜와 현관(現觀)의 선교와 최상의 보리가 다른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으며 무위의 법에서 또다시 증득하려 하면
이것을 곧 무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유위의 선교라 함은 모든 보살이 비록 3계(界)를 행한다 하더라도 저 3계의 번뇌에 물들지 않나니, 이와 같은 것을 유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비록 3계에서 벗어나는 법을 두루 통달한다 하더라도 벗어나는 세계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것을 곧 무위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의 모든 법의 선교[一切法善巧]를 바로 일체지지(一切智智)라 하지만,
만일 모든 보살이 일체지지에 원만하게 증득하여 들어가면 곧 어느 때나 지혜가 선교하나니,
곧 이것을 모든 법의 선교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모든 법의 선교를 닦고 익히는 것이니,
이와 같이 사리자야, 만일 보살장(菩薩藏)에 의지하여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보살마하살이라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지혜에 의지하여 분별하고 교묘하게 통달하여 이와 같은 열 가지 선교를 닦고 익히는 것이니라.
[보살의 묘한 지혜]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묘한 지혜[妙慧]라 하고
어떤 것이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到彼岸義]인가?
사리자야, 말한 바 지혜란 모든 착한 법을 환히 잘 아는 것이니라.
이렇게 나타나 보이는 지혜[現見慧]는 모든 법을 따르면서 통달하기 때문이요,
진실하게 헤아리는 지혜[眞量慧]는 모든 법을 사실대로 통달하기 때문이며,
이 통달하는 지혜[通達慧]는 모든 견해의 갈림에 얽매이는 모든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이요,
이 소원을 여의는 지혜[離願慧]는 영원히 모든 욕구와 소원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이 편안하고 기쁜 지혜[安悅慧]는 영원히 모든 뜨거운 번뇌를 쉬게 하기 때문이요,
이 기뻐하는 지혜[歡喜智]는 반연하는 법의 기쁨과 즐거움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의지하여 나아가는 지혜[依趣智]는 모든 이치에서 지혜가 모두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요,
이 건립하는 지혜[建立慧]는 모든 각품(覺品)의 법을 건립하기 때문이며,
이 모양을 증득하는 지혜[證相慧]는 그 닦는 법[乘]에 따라 과위를 증득하기 때문이요,
이 모양을 환히 아는 지혜[了相慧]는 이 지혜의 성품을 환히 비추어 알기 때문이니라.
이 제도하는 지혜[濟度慧]는 모든 폭류(瀑流)를 구제하기 때문이요,
저 나아가 들어가는 지혜[趣入慧]는 바른 성품의 생멸이 없는 법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저 채찍질하듯 독려하는 지혜[策勵慧]는 모든 착한 법을 떨쳐 일으키기 때문이요,
이 깨끗한 지혜[淸淨慧]는 먼저의 수면(隨眠)과 번뇌의 흐림을 여의기 때문이며,
이 가장 뛰어난 지혜[最勝慧]는 모든 법의 정수리에 오르기 때문이요,
이 미묘한 지혜[微妙慧]는 스스로의 지혜로써 법을 따라 깨닫기 때문이니라.
이 행을 여의는 지혜[離行慧]는 다시는 3계(界)의 법에 물듦이 없기 때문이요,
이 섭수하는 지혜[攝受慧]는 모든 선현이 섭수할 바이기 때문이며,
이 소원을 끊은 지혜[斷願慧]는 모든 모양의 분별을 제거하여 없애기 때문이요,
이 방일함을 버리는 지혜는[捨逸慧] 모든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이 방편의 지혜[方便慧]는 모든 유가사[瑜伽師)의 지위에 머무르는 것이 성취되기 때문이니라.
이 일으켜 나아가는 지혜[發趣慧]는 장차 온갖 거룩한 지혜의 길에 머무르기 때문이요,
이 광명을 비추는 지혜[照明慧]는 모든 무명의 폭류[無明瀑流]에 가려 어두운 거품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며,
이 광명을 베푸는 지혜[施明慧]는 모든 것을 열어 인도함이 마치 눈과 같기 때문이요,
이 샘이 없는 지혜[無漏慧]는 지혜의 눈이 삿되고 편벽된 길을 뛰어넘기 때문이며,
이 뛰어난 이치의 지혜[勝義慧]는 이와 같이 크고 거룩한 지혜를 환히 비추어 주기 때문이니라.
이 분별이 없는 지혜[無別慧]는 잘 조복하고 따르기 때문이요, 이 광명의 지혜[光明慧]는 모든 지혜의 문이기 때문이며, 저 그지없는 지혜[無盡慧]는 모든 것을 두루 따라다니면서 비추기 때문이요, 이 사라짐이 없는 지혜[無滅慧]는 항상 널리 보기 때문이며, 이 해탈도의 지혜[解脫道慧]는 영원히 취하고 잡는 모든 속박을 끊기 때문이요, 이 처소를 여의지 않는 지혜[不離處慧]는 모든 번뇌장(煩惱障)의 법과는 같이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지혜의 모양은 내가 지금 간략하게 설명하였지만,
보살마하살에게는 또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지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사리자야, 이와 같은 것은 모든 중생이 지닌 모든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에게도 그만큼 많은 지혜의 업과 행이 있는 줄 알 것이며,
이와 같은 것은 나아가 모든 중생이 지닌 모든 알려고 하는 의욕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에게도 그만큼 많은 슬기롭게 관찰하는 지혜가 있는 줄 알 것이니라.
이와 같은 것은 모든 중생이 지닌 모든 번뇌의 문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에게도 그만큼 많은 광대한 지혜의 문이 있는 줄 알아야 할 것이요,
이와 같은 것은 나아가 모든 성문(聲聞)과 독각(獨覺)과 그리고 정등각(正等覺)께서 지닌 두루한 지혜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에게도 그만큼 많은 지혜로 행해야 할 곳이 있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은 모든 지혜를 모든 보살마하살이 모두 부지런히 힘써 닦고 배우나니, 이것을 보살의 묘한 지혜라 하느니라.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
또 사리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到彼岸義]라 하는가?
사리자야, 이와 같은 것은 알아야 할 모든 묘하고 착한 법에 이르기까지 저 언덕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인 줄 알아야 할지니라.
또 사리자야, 위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은 모든 지혜에 대한 글 구절은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요,
또 모든 보살이 수행하는 차별되고 원만한 이치는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원만한 이치는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요,
모든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법에서 집착함이 없는 이치는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지니라.
또 한량없이 나고 죽는 큰 허물을 잘 깨달아 아는 이치는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요,
모든 법을 깨치지 못한 이에게 잘 깨쳐서 알리는 이치는 모두가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그지없는 보배의 광을 잘 열어 보이는 이치는 바로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요,
장애가 없는 해탈의 원만한 이치는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지니라.
또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의 평등한 이치는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요,
가장 탁월하게 결택(決擇)한 선교의 이치는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모든 중생 세계를 두루 다니는 이치는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요,
무생법인(無生法忍)의 원만한 이치는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지니라.
또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地]의 마침내 원만한 이치가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불국토를 깨끗하게 닦고 다스리는 이치를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 하며,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는 이치를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 하고,
도량에 나아가 보리좌(菩提座)에 앉는 이치를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 하며,
마침내 모든 악마의 군사를 꺾어 조복시키는 이치를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 하고,
모든 불법이 모두 원만해지는 이치를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 하며,
보살장의 차별된 법문에 바르게 머무르는 이치를 곧 저 언덕에 이르는 이치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이와 같은 큰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바르게 닦아 배우고 나면
나는 ‘이들이야말로 모든 바라밀다에서 구경(究竟)을 얻었다’고 말하느니라.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
또 사리자야, 만일 대승(大乘)에 머무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이면 모두가 이 큰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은근하게 청구하여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이치를 통달하여 널리 다른 이들에게 연설하면서 분별하고 드러내 보이리니,
왜냐 하면 사리자야, 만일 어떤 이가 이 보살장의 경전을 은근하고 정중하게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분별하고 해설하면
이 사람은 반드시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모든 미묘하고 공교로운 업(業)을 마지막까지 통달하는 것이요,
둘째는 태어나 있는 곳이면 항상 높은 종족이 되고 그 당시의 세상에서 영화와 명망을 누리는 것이며,
셋째는 살고 있는 곳에서 큰 위엄이 있고 세력이 자재한 것이요,
넷째는 무릇 말을 하면 모두가 다 복종하고 신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태어났을 적마다 큰 부호가 되는 것이니라.
여섯째는 태어날 적마다 항상 하늘과 인간들이 더욱 사랑하고 공경하게 되는 것이요,
일곱째는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항상 전륜왕(轉輪王)이 되어서 크게 자재함을 얻는 것이며,
여덟째는 하늘에 나게 되면 항상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되는 것이요,
아홉째는 만일 색계(色界)에 나면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되는 것이며,
열째는 태어날 때마다 언제나 큰 보리의 마음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 경전을 받아 지니면 곧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획득하게 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거나 은근하고 정중하게 듣고 읽고 외우고 이치를 알며,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널리 연설하고 열어 보이면
이 사람은 또 이와 같은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지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니가란타(尼伽蘭陀)의 삿된 이론과는 뒤섞이지 않으며,
둘째는 나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셋째는 유정이라는 견해가 없으며, 넷
째는 목숨이라는 견해가 없으며,
다섯째는 보특가라라는 견해가 없으며,
여섯째는 단견(斷見)을 일으키지 않으며,
일곱째는 상견(常見)을 일으키지 않으며,
여덟째는 모든 세간 일에 보살피려는 뜻이 없으며,
아홉째는 항상 훌륭한 마음을 일으켜 출가(出家)하기를 좋아하며,
열째는 만일 경전을 들으면 속히 받아 지녀서 그 깊은 이치를 깨쳐 아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획득하게 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면서 은근하고 정중하게 듣고 읽고 외우고 그 이치를 알며,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널리 분별하여 연설하면
이 사람은 또 이와 같은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지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바른 생각[正念]을 성취하고,
둘째는 바른 깨달음[正見]을 성취하며,
셋째는 바른 갈래[正趣]를 성취하고,
넷째는 뜻이 용감해짐을 성취하며,
다섯째는 바른 지혜를 성취하고,
여섯째는 재난이 없음을 갖추게 되며,
일곱째는 전생의 일을 기억하게 되고,
여덟째는 성품에 탐욕이 얇아져서 세차고 날카로운 탐욕의 번뇌에 시달리지 않으며,
아홉째는 성품에 성냄이 얇아져서 세차고 날카로운 성냄이 없으므로 무거운 성냄의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열째는 성품에 어리석음이 얇아져서 세차고 날카로운 어리석음이 없으므로 무거운 어리석음의 번뇌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획득하게 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면서 은근하고 정중하게 듣고 읽고 외우고 이치를 알며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널리 분별하여 연설하면
이 사람은 또 이와 같은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할지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근기가 빨라지는 지혜를 성취하고,
둘째는 말이 민첩해지는 지혜를 성취하며,
셋째는 맹렬하고 날카로운 지혜를 성취하고,
넷째는 날쌔고 빠른 지혜를 성취하며,
다섯째는 광대하고 넓은 지혜를 성취하고,
여섯째는 심히 깊은 지혜를 성취하며,
일곱째는 환히 통달하는 지혜를 성취하고,
여덟째는 집착함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며,
아홉째는 언제나 눈앞에서 일체 여래를 뵙고 뵈온 뒤에는 맑고 아름다운 게송으로써 칭찬을 받으며,
열째는 여래께 이치대로 잘 청해 묻고 또 이치대로 의심난 곳을 잘 해석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획득하게 된다고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면서 읽고 외우고 이치를 알며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널리 분별하여 연설하면
이 사람은 또 이와 같은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할지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항상 모든 착하지 않은 벗을 멀리 여의기 좋아하고,
둘째는 항상 모든 선지식(善知識)을 친근하기 좋아하며,
셋째는 모든 악마의 모든 속박을 느슨하게 하고,
넷째는 모든 악마의 모든 군진(軍陣)을 꺾어 없애며,
다섯째는 모든 번뇌를 잘 꾸짖고 싫어하며,
여섯째는 모든 행에 대하여 마음에서는 항상 버리고 없애며,
일곱째는 온갖 나쁜 세계[惡趣]로 향하는 길을 어기고 배반하며,
여덟째는 모든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을 향하며,
아홉째는 생사(生死)를 뛰어넘는 모든 깨끗한 길을 잘 설명하며,
열째는 모든 보살로서 행할 궤칙을 교묘하게 따라 배우고 또 모든 부처님의 신칙을 잘 받들어 행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열 가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이라 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와 같은 큰 보살장의 미묘한 법문을 은근하고 정중하게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이치를 연구하여 명료하게 통달하며, 또 다른 이들에게 널리 연설하고 열어 보이면
이 사람은 곧 위와 같은 공덕의 칭찬과 이익을 획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지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총명한 이들은 지혜가 끝이 없어
법과 이치를 묘하게 통달하고
뛰어난 글과 말씨 잘 갖추나니
이와 같은 큰 경전을 지니는 까닭이다.
언제나 풍요한 법보의 광[法寶藏]을 얻어
항상 기뻐하며 법 보시[法施]를 행하고
가장 뛰어난 기쁨을 내나니
이와 같은 큰 경전을 지니는 까닭이다.
많은 중생으로서 설법을 듣는 이면
이 광대하고 뛰어난 공덕을 증득[證]하나니
나는 어떻게 이런 법을 말해야
이 경전 지닌 이의 얻는 바와 같을까?
이렇게 가장 뛰어난 지혜를 획득하면
바른 법을 끝내 파괴함이 없으며
기억으로 미묘한 지혜가 발생하여
최상의 지혜에 의지할 곳을 말한다.
부지런히 좋은 말과 바른 법구(法句) 구하면
가장 훌륭한 많은 성인의 칭찬 받으며
항상 듣고 뛰어난 행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은 큰 경전을 지닌 까닭이다.
지혜로운 이는 듣고 깊은 이치 지니면서
모든 문구에 허망한 집착 없고
항상 이치를 따라 관찰하며 비추므로
묘한 지혜 자라나서 그 끝이 한량없다.
끝없는 묘한 지혜 끝없는 이치와
제일의(第一義)와 생각하기 어려운 이치들을 잘 알아
시방을 두루 다니며 널리 칭찬하나니
경전들의 탁월한 이익은 그 끝이 없다.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극히 엷어져서
첫째가는 마음의 깨끗함을 획득함은
이와 같은 큰 경전을 들었기 때문이니
공덕과 탁월한 이익은 그 끝이 없다.
비록 훌륭한 재물 얻어 방일함이 없더라도
재물과 이치 중에 어느 것이 더 견고한가를 헤아리다가
세간 재물의 허망함을 깊이 통달하고
그리워함이 없이 집을 떠나게 된다.
조용한 곳으로 나가 숲 속에 있으면서
저 흐리멍텅함[沈]을 항상 멀리 여의고
청정한 법 들으며 싫증냄이 없으며
선정의 바른 교리[敎]에 인색함이 없다.
의심난 것 세간의 길잡이께 청해 묻고
들은 뒤엔 남에게 널리 해석하며
이 때문에 미묘한 지혜 더 자라나서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에서 끝내 물러남이 없다.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위하여 이 경전을 부지런히 힘써 닦아 배우고 보살의 행을 행하게 되므로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에서 방편으로 바른 법의 요점[法要]을 닦고 배운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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