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가난한 사랑 하나로 여기까지 온걸 보면
그 손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서로가 서로西路 일때 까지 능히 갈 수 있겠네
함께 간다는 건 끝없이 스미는 일
지청구 받아주며 오순 도순 흘러가며
먼 산의 고요를 담아 함께 발을 닦는 일
나래시조 21년 겨울호
끝없이 스미어 가는 길
잔잔한 물결로 다가오는 시를 만난다. 좀 더 바싹 다가서니 나지막이 속삭이는 화자의 혼잣말이 또렷이 들려온다. 첫 수 초장에 이어 중장에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이 반복되고 있는데 시인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그 손' 또한 신뢰하는 듯 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동력은 '가난한 사랑 하나'이다. 가난하지만 부족함이 없었던 바로 그 사랑의 힘으로 하마터면 놓을 수도 있었는데 결국은 '그 손 놓지 않고'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종장에서 확신을 가지며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는다.
여기까지 왔으니 '능히 갈 수 있겠네' 하며 자신 있게 피력한 거기는 어디인가, 바로 '서로가 서로 西路 일 때까지 '이다. 이는 장소가 아닌 시간의 개념이다. '서로'는 짝을 이루거나 관계를 맺은 상대를 일컫는 명사이며 그 상대를 대할 때의 부사로도 쓰인다. 한편 한자로 풀이하면 서쪽으로 가는 길이란 뜻도 있다. 해가 서쪽으로 지듯이 인생의 황혼기를 비유하기도 하는 데 '서로 西路 일 때까지' 는 부부사이라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즉, 백년해로를 말하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가난한 사랑'의 일과를 소개하고 있다. 맨 먼저 거론되는 것이 '끝없이 스미는 일'이다. 스미어 서로서로 서로가 되는 길, 다시 말하자면 둘이면서 하나로 가는 길이다. 그러는 사이 '지청구 받아주며' '함께 발을 닦는일'이 .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제목에서 밝혔듯이 이 모든 일이 강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화자가 강가에 집을 짓고 삶을 영위하는 수도 있겠지만 강가를 찾아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걸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세상은 가없는 커다란 강이고 우리는 그 물결따라 흐르거나 강가에서 잠시 쉬어가는 생인 것이다. (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