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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히 사모하며 (내불삼성영사집 來佛三聖永思集) 28
제20장. 뜨거운 눈물 펑펑 흘리며 성승聖僧을 그리워하네 (漫灑熱淚憶聖僧)
왕덕생王德生
제가 처음 노화상을 뵌 것은 2012년 초봄에 의오염불당에서였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본래 머리가 워낙 단순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그대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노화상께서는 저를 보자마자 꾸짖으시길, “자네는 입을 잘 단속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게나!”(你管好你的嘴, 不要亂說話!)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 노화상의 은혜에 한없이 감사하였습니다! 노화상께서는 진실로 저를 마치 자신의 친자식처럼 여기고 대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저의 허물을 보시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 허물을 지적해주셨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는 노화상과 함께 있을 때에는 제 자신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으며, 늘 어르신의 곁에서 장난치고 까불었으며, 또 늘 성가시게 계속해서 어르신에게 여쭙길, “어르신께서는 아미타 부처님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미타 부처님께서 어르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노화상께서 그때마다 말씀하시길, “부처님께서 말하지 말라고 했네!”(老佛爺不讓說呀!) 지금 생각해보면, 노화상께서는 일찍이 저에게 무슨 현묘한 말씀을 거의 하신 적이 없으시며, 그저 늘 저에게 염불하라고만 하셨으며, 언제나 저에게 성실하게 열심히 염불해야 한다고 하셨을 뿐입니다.
2012년 가을, 의오염불당에서 노화상께서 저희들에게 말씀하시길, “남양 사람들은 복의 과보가 있는데, 이는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네.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또한 모두가 선근이 있으며, 그것은 선근이 없으면 염불할 수 없기 때문이야.”(南陽人有福報, 因爲學佛人多. 學佛人也都有善根, 因爲沒有善根念不了佛) 또 이어서 어르신께서는 우리를 위해 《법화경》중의 “한 번 나무불하고 부르면, 모두가 이미 불도를 이룬다.”(一聲南無佛,皆已成佛道)고 한 공안을 강설해주셨습니다. 염불에 대해 강설하실 때, 노화상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다 도의 미묘함에 계합되지 않은 것이 없으셨습니다. 노화상께서 말씀하시길,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고 두 번 부르면 되지 라고 생각하지 말게나. 일심불란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부르지 않았으면 염불했다고 할 수 없네.”(不要以爲念一句兩句就行了, 不念到一心不亂不算念佛.) 저는 이 말씀을 듣고는 바로 노화상께 “일심불란一心不亂”이 도대체 어떤 경계인지 여쭈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겨우 말을 절반 밖에 하지 않았는데, 노화상께서 제 말을 중간에서 끊으시고는 웃으시면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일심불란’을 어떻게 자네에게 말해 주겠나?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一心不亂咋給你說呀? 沒啥兒說!) 저는 그 말씀을 들은 후 마음속으로 강렬한 감동을 받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사람들과 함께 저의 이 감동을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감격하여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의사를 표시하자마자, 노화상께서 당장에 저를 나무라시길, “손으로 가리키고 발로 그리지 말거라!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말하지 말거라!”(你不要指手劃腳的! 用嘴說, 手別說!) 저는 그 순간 바로 이는 모두가 제 자신의 오만한 습기가 겉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때문에 노화상의 자비하신 질정叱正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
유거사가 노화상께 여쭙길, “어르신께서는 혹 무슨 큰 병을 앓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노화상께서 대답하시길, “내 이 온 몸에 부스럼이 났었는데, 지금은 그 자국이 없어져서 찾을 수 없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오른 팔을 들어서 저희에게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길, “봐라. 여기에 부스럼이 난 자국이 전부 솜털만큼도 없어졌다.” 유거사가 여쭙길, “그 부스럼은 어떻게 나으신 것입니까?” 노화상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나도 보지 못했어. 오로지 ‘아미타불’만을 염불하였을 뿐인데, 저절로 나았네.”
유거사가 또 노화상께 여쭙길, “사람들이 어르신께 염불할 때 나타난 어떤 경계가 있었는지 여쭈어 보고 싶어 합니다.” 그 말에 노화상께서 대답하시길, “자네에게 말해줄 만한 어떤 경계가 있겠는가?” 곁에 있던 오거사가 참지 못하고서 말참견을 하며 말하길, “저희들에게 말씀해주세요!” 그러자 노화상께서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씀하시길, “때가 되지 않았어! 지금은 말할 수가 없어.” 오거사는 여전히 호기심에 가득 차서 또 다시 한 마디 여쭙길, “그럼 극락세계를 보셨습니까?” 노화상께서 말씀하시길, “자네가 무엇을 보았고, 또한 부처님께서 자네에게 무어라 말씀해주셨을지라도 말해서는 안 돼! 천기를 누설하면 천둥이 치는 죄를 범하게 돼! 자네가 만약 누군가를 보고서 전부 말하면, 다음에는 그는 영원히 자네에게 말해주지 않을 걸세. 자네가 만약 출가하였다면, 계단戒壇에서 마땅히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지를 그는 모두 자네에게 말해줄 게야. 출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출가할 수 있고, 출가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노재공老齋公이 되어서, 열심히 ‘아미타불’을 불러 어느 때 일심불란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부처님께서 자네에게 조금 알려주실 것이네. 말하지 말거라! 자네가 만약 수행을 다 마치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엔 모두 생각이 있어 자네를 지켜보고 자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게 돼! ― 열심히 염불하거라!”
제 기억 속에서 노화상은 늘 항상 중생의 뜻을 따르셨으며, 일찍이 한 번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를 들면, 유거사가 매번 노화상께 어떤 활동에 참가하시도록 마련해놓으면, 노화상은 한 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으시고, 자신을 생각하신 적이 없으시고, 오로지 중생을 기쁘게 할 생각만을 하셨습니다. 매번 밖에 나가 방생하거나 혹은 어떤 활동에 참가하거나 그때마다 언제나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러한 활동에서 노화상을 뵙게 된 사람들이 노화상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하면 한 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으시며, 그 사람 옆에 가까이 가서 그에게 보조를 맞추어주셨으며, 사진을 찍는 내내 웃는 얼굴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간혹 질서 없이 어지럽게 소란을 피우면 몇 시간이 걸리는데, 이는 비록 젊은 사람이라 해도 참고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한 번은 제가 어르신을 모시고 염불당에 갔었을 때입니다. 노화상께서 차에서 내리실 때 몹시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시길, “내가 자네 차를 축축하게 해놓았어.” 저는 노화상께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여쭙자, 대답하시길, “바지에 오줌을 쌌네. …… ” 저는 당시에 너무나 송구스러워 눈물이 났으며, 노화상께서는 이처럼 어디에서나 남을 위해 배려하셨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것을 아시고, 소변이 마려운 것을 꾹 참아 남들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오히려 진정으로 마음을 써서 백 세가 넘으신 노인의 속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노화상은 남을 번거롭게 하거나 폐를 끼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노화상께서 남양에 오시기만 하면, 저는 노화상께 말씀드리길, “무슨 일이 있으시면 그들에게 언제든지 저를 부르라고 하세요. 부르시기만 하면 제가 당장 가겠습니다. 어디든 밖에 나가 바람 쐬고 싶으신 곳이 있으면 제가 어르신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노화상은 한 번도 놀러 밖에 나가신 적이 없으십니다. 서협현西峽縣에 가서 염주를 사서 사람들과 법연을 맺으려고 하실 때에도 어르신은 미리 며칠 전에 저에게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으셨으며, 제가 바쁘지 않다는 말을 분명하게 들어야 그때서야 비로소 저에게 어르신께서 가려고 하는 날짜를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어르신을 사원까지 모셔다 드리면, 그때마다 언제나 반드시 저에게 고구마와 땅콩 등 특산물을 주어 가지고 가게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때마다 저는 늘 좋아하면서 어르신께서 주시는 것들을 고분고분하게 받았습니다.
일상생활 중에서 저의 뇌리 속에 가장 깊이 남아있는 인상은 노화상을 여러 번 목욕시켜드린 일입니다. 처음은 의오염불당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은 환경조건이 한계가 있어서 편안하게 목욕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노화상께서 다시 씻고 싶어 하시어 제가 저의 집에 오셔서 씻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한 번은 저희 집에 계실 때, 저는 노화상을 목욕시켜 드렸고, 유거사가 밥을 지었으며, 제 아내는 출근하였으므로 집안에는 저희 세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노화상을 위해 산 속옷을 유거사가 제 차 안에 그냥 놓고서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어르신을 다 씻겨 드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히려고 할 때 차에 그냥 두고 내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어르신께 말씀드리길, “우선 잠깐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내려가서 옷을 가지고 와서 옷을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한 후 서둘러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그 결과 조심하지 않아 그만 목욕실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문이 잠긴 후 저는 즉시 반사적으로 열쇠를 갖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으며, 만약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선 내려가 차안의 옷을 가지고 올라왔으며, 마음속으로 “유거사를 부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유거사(유거사는 여자입니다)가 혹시나 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 노화상이 계신 목욕실 문을 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목욕실 앞에 서서 이러한 초조한 마음으로 목욕실 문의 손잡이를 비틀어 돌렸는데, 그 순간 문이 “딸칵” 하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너무 감동하여 마음속으로 이는 틀림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불보살님께서 저에게 “단지 네 마음이 진실하고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면, 불보살님은 반드시 너에게 가피를 주어 문을 열도록 도와주신다!”라고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말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행한다.”(迷人口說, 智者心行)(《육조단경》)고 하였습니다. 노화상의 수행공부는 입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몸으로 실천하여 배우기를 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스스로 체득하여 알게 하셨습니다. 노화상께서 세상에 머물러 계실 때, 그 어르신으로부터 더욱 많은 것들을 배우지 못한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매일 꾸준히 염불을 하고 있으며, 정공노법사께서 강설하신 《대경해연의大經解演義》를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또 매일 제 자신을 점검하고 있으며, 제 자신의 작고 작은 것 하나하나도 모두 다 현공노화상에게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자신이 장래에 정토에 왕생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신심이 충만해 있습니다! 아미타불!
(인연생거사)
나무아미타불! 이 글은 말학이 왕덕생거사와 인터뷰한 동영상에 의거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중간 중간에 왕거사는 몇 번이나 슬퍼서 흐느껴 우느라 목이 메었으며, …… 그의 바르고 곧은 인품, 꾸밈없는 솔직한 말, 따뜻한 마음은 말학을 매우 감동시켰습니다.
왕거사는 실제로 아주 세세하고 작은 부분까지 현공을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현공의 법체法體가 수항壽缸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가 직접 어르신의 몸을 씻겨드렸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말학은 오히려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며, 제 자신이 왕거사만 못함을 탄식합니다! “일분의 정성과 공경은 일분의 이익을 얻는다.”(一分誠敬, 得一分利益)고 하였습니다. 현공은 생전에 남의 잘못과 허물을 비평하거나 지적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왕거사는 현공과 처음 대면하자마자 어르신의 직설적인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이는 틀림없이 어르신께서 왕거사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과 공경에 감동해서일 것입니다.
《순자․권학》편에서 말하길, “묻는 사람이 없는데 가서 남을 가르치는 것을 ‘성급함’이라 말하고, 한 번 물었는데 두 번 대답하는 것을 ‘말이 많은 것’이라 말한다. ‘성급함’도 잘못된 것이고, ‘말이 많은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군자는 물음에 대답할 때 마치 메아리처럼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으며, 딱 알맞게 한다.”(沒有人啟問就去教導別人叫做急躁; 問一而答二那叫嘮叨. 浮躁是錯誤的; 嘮叨也是錯誤的. 君子答問應像回聲一般不多不少、恰到好處.)고 하였습니다. 불법은 사도師道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단지 와서 배운다는 말만 들었을 뿐, 가서 가르쳐준다는 말은 아직까지 듣지 못하였습니다.”(只聞來學, 未聞往教) 불보살님은 비록 동체대비同體大悲하시고, 무연대비無緣大慈하실지라도, 만약 법을 청하는 중생이 없으면, 불보살님 또한 “묻는 사람이 없는데 스스로 법을 설하실”(無問自說) 리가 없습니다.
현공께서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실 때 저희들 범부는 얼굴을 마주하고도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법을 청하는 사람도 매우 드물었습니다. 지금 말학이 많은 이들에게 노화상의 인상에 대해 여쭈어보면, “지혜” 이 두 글자를 언급하는 이들이 의외로 거의 없습니다. 말학이 짐작하기에, 사람들은 비록 정공사부상인께서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현공을 찬탄하신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아마도 현공을 “지혜”라는 이 두 글자로 표현한다면 틀림없이 의혹을 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뜻밖에도 《무량수경기신론無量壽經起信論》에서, “문수보살의 지혜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는 보현보살의 행문에 들어가기가 어렵다.”(不度文殊智海, 難入普賢行門)고 한 말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현공께서 만약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지혜가 없으셨다면, 행지行持가 어떻게 이렇게 원만하실 수 있겠습니까? ― 저는 지금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글속에 수록되어 있는 누군가 묻는 말에 현공께서 대답해주신 말씀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현공 생전에 찍어놓은 동영상이 있으며,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분명한 근거가 있으며, 절대로 거짓된 말이 없습니다! 의혹을 품은 사람은 속히 의혹을 끊기를 오로지 바랄 뿐이며, 비방하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바로 참회하는 마음을 일으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옛날 성황묘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대련이 하나 있습니다.
단지 도를 욕하고 승려를 때릴 뿐이라면 그렇고 그렇지만, 만약 성인을 헐뜯고 현인을 비방한다면 그래서야 되겠는가! (只是罵個道打個僧,就這般這般,若毀聖謗賢,那還了得!)
입으로 고기를 먹고 입으로 술을 마실 뿐이라면 그렇고 그렇지만, 만약 나쁘고 독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不過吃口肉喝口酒,便如此如此,倘壞心毒膽,怎麼樣兒?)
2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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