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암울했던 과거의 한 모습 덩어리의 글씨>
그의 이름은 렌이었다.
아름다운 자태를 여전히 성숙하게 자아내는 렌은 말이 적었다.
그의 사무실에서도, 복도에서도,
그는 꼭 필요한 말만 남겼다.
짧지만 정확하고 정밀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긴 침묵.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말했다.
“우와~, 괜히 저 자리에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야.”
그는 조직의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아무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자리.
최고대학 최고학과 최고자격증 출신이라는 이력은
그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문장이었고,
동시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방패였다.
렌은 그 말도, 자신의 아름다움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인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말없음이
권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아름다워도 말이 많아지면
불필요한 것이 드러난다.
억양, 습관, 태도와 비천함이.
그리고 아주 사소한 단어 선택까지.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은 말속에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드러낸다는 것을.
지난 어린 시절에
배고픈 채로 홀로 잠들든 그곳.
흙바닥 넝마촌의 천막으로 꾸민 초라한 작은 방,
겨울이면 냉기에 손끝이 얼던 기억,
해어진 옷 채로 나무 침대 위에서 자고
군용 식기로 밥을 먹던 기억들.
늘 불안하고 부족했던 모든 것들.
렌은 말만 하면 누구나 알만한 번잡한 도시의 한 곳에서
구두닦이 소년으로 오랜 시절을 보냈다.
자릿세를 먼저 벌고 푼돈을 바라보고
일하고 일하면서 독학으로 올라온
최고의 대학 명문 강의실에서 집중과 확신으로 듣고 또 들었다.
엄청난 최고의 수재들 틈 속에서 그는 크게 두 가지를 배웠다.
사랑과 존경도 중요하지만
먼저 세상이 요구하는 지식,
그리고 자신을 그 세계에 맞게
조용히 수정하는 법.
이제 밤이 되면
렌은 홀로 있는 그의 넓은 방안에서도
불을 다 끄지 못했다.
꼭 하나는 밝혀 놓았다.
그 고요한 공간은 때로
너무 많은 것을 되돌려주었다.
과거의 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감정들,
그리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그때 그 자신의 일부들.
“나는 괜찮다.”
그는 낮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확신이라기보다
균형을 잡기 위한 반복이었다.
그의 도도함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너질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한 스스로의 생존이었다.
말을 줄이고,
표정을 지우고,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 모든 것은
그가 지나온 세계와
지금 서 있는 세계가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사투의 장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완성된 권위로 보였지만,
혼자일 때의 렌은
여전히 두 세계의 경계인이었다.
어느 날, 대학후배가 야근 때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선배님도 혹여나 나처럼 힘들었던 시절은 없으셨습니까?”
너처럼? 렌은 그 본능적인 비수에 잠시 침묵했다.
최고의 학부를 나왔지만
그는 텅 빈 공허를 지니고 있었다.
대학시절 모든 활동을 마다하고 자격증만을 계속 노렸다.
4년 차에 그는 드디어 만인이 인정하는 그토록 바라던 라이선스를 다 가졌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마저도 거부하고 싶은 비소를 울리는 불청객이 다가왔다.
사무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떨면서 아무도 몰래 흔들렸다.
그는 천천히 후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별로 그런 기억이 없다.”
그 말은 사실이기도 아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어울리는 유일한 답이었다.
렌은 오늘도 묵언의 침묵으로 일한다.
말을 아낀 채, 흔들림 없이.
지금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올라온 그 길이
여전히 자신의 발밑에서
작게 동요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앉아만 있어도 너무나 아름답고 성숙한 미의 렌의 모습이었다.
그 시절에 렌은 무척 건강했다.
하루 종일 양지바른 곳에 앉아 구두를 닦고 또 닦아 매우 건강했다.
사수를 잘 만나 정확하게 배웠다.
손재주가 좋아 빨리 일을 마치고 사수까지 도왔다.
사수는 사무실을 돌아 구두를 모아 오고
받은 돈을 팁까지 합쳐 자릿세를 빼곤 정확하게 나누어 주었다.
폭언을 피하고 사기를 치지 않는 사수를 만나 너무나 행복했다.
남루하지만 몰래 모은 돈이 충분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영화
<레들 대령> 앞에서는 그는 한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단지 더 이상은 나올 수 없는 하나의 고래일 뿐이었다.
하나 그는 그만의 위대함이 있었다.
돈에 여유가 있었다.
바빠서 학점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달려가는 장학금을 마다하고 평일 오후엔 구두를 닦았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자라던 그 번잡한 자리에 나가
삯돈을 벌어 등록금을 내고 옷도 사 입었다.
손님이 적은 저녁과 토요일과 일요일엔 책과 사투를 벌었다.
이제는 모두 다 사라진 그 자리를
홀로 다가가 서 있을 뿐이다.
동기도 없고 동창도 없었던
지난 한 소년의 그 자리를 보고 있었다.
그 자리는 빌딩 속에서의
내내 양지바른 곳이었다.
신의 사랑이 빛으로 종일 내리쬐는
땅바닥조의 낮은 곳이었다.
이제는 어느 구두수선공이 도장과 열쇠수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혹시 예전의 구두친구인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이 될 번한 그 자리에 모르는 분이 와 있었다.
밝은 노란색 요구르트 아줌마가 행인들에게
친절한 미소로 요구르트를 팔고 있었다.
입사할 적에 나이 든 부유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자 오너가 말했다.
“우리가 바라던 자격증을 세 개나 다 가지고 있네요.”
“기다리고 기다린 전천후 자격사입니다.”
“이곳은 거부들의 돈을 불리야 하는 패밀리 오피스입니다.”
“많이 배우고 이곳에 오래 근무하면 회계사님도 거부가 될 수 있습니다.”
“거부가 되고 후에 이곳을 나가시면 됩니다.”
자격사의 수습을 다 마치고 학사장교로 군에 갔다.
국방부의 추천으로 국방부의 예산을 보고 배웠다.
이래서 돈이 보이는구나.
전역 후에 그 누구의 추천도 없이 지원하여 이곳에 왔다.
오너는 또 말했다.
“비서가 딸린 방을 줍니다. 잔잔한 일은 숙달된 비서가 도와줍니다.”
“준비된 분이 아니 계시면 영어를 잘하는 남자로 부탁하고자 합니다.”
“… 이유라도~?”
“해외출장 시 동행하고자 합니다.”
“다 여자이고, 영어는 달인입니다. 혹시 가게 되면 여자인 경우 두 분을 모셔 가세요.”
이젠 그도 점점 거부가 되고 있었다.
무엇을 더 생각하는지 그는 여전히 홀로 산다.
그의 소박한 거실에 가서도 잠이 들기 전에
오늘을 복기하고 내일을 예견한다.
오너의 번창을 위하여, 자기에게 돈을 맡긴 거부들의 돈을 위하여
토사구팽이 기다리고 있어도
전쟁터를 바라보고 세계의 돈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돈줄을 바라보면
인류라는 새로운 복지의 터전이 보인다.
자유의 이름으로 대영제국의 사략선처럼
온 세계를 목숨을 걸고 계약을 달고 누빈다.
유대인도 보이고 중국인도 보이고 인도인도 보인다.
사모펀드로 무장한 국제적 사기꾼도 보이고 성경을 든 전도사도 보인다.
뉴욕도 런던도 홍콩도 싱가포르도 보인다.
가난한 나라에서 자유의 독재를 꿈꾼다.
모스크바로 가는 하늘에서 시베리아 동토를 여름에 본 적이 있다.
그곳에도 숲이 있었고 차는 달리고 있었다.
가도 가도 그 길이 연이어진다.
저곳에도 아름다운 소녀가 살 것이다.
긴 역사에 그 순간을 위하여 그녀가 왔을 것이다.
돈과 자유로 무장하여 그녀를 맞이해야만 아무런 탈이 없을 것이다.
사기만 당하지 않아도 그 누구라도 끝까지 부자가 될 것이다.
렌의 바람은 홀로 돈을 벌어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없이 홀로 살다가 갈 것이다.
오로지 주식에만 투자하여 그 돈을 그대로 두고 갈 것이다.
적멸의 길에서 어둠의 빛마저 버리고자 한다.
어느 한 시간, 겨울 속의 천막의 냉기에서
소년 렌이 나무침대에 군용매트를 깔고 군용담요를 덮고 자고 있다.
군용으로? 그때도 이미 빈틈없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소녀처럼 무척 아름다웠다.
검정을 위하여 책을 보다가 배고픈 채로 홀로 깊이 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