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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반화 오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옳은 줄 았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내가 잘못 알고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이성과 감성이 있다. 그래서 참과 거짓을 쉽게 구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과 감성 때문에 사람은 평생 동안 자기가 가진 이성과 감성의 틀 안에 같혀서 살아간다.
틀에 같힌 이성과 감성은 그 틀이 생활에서 또다른 오해와 실수를 지속하게 한다.
"성급한 일반화 오류"
컴 사전을 검색하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몇 가지 사례나 경험만을 가지고 그 전체 또는 전체의 속성을 섣불리 단정 짓거나 판단하는 데서 생기는 오류'라고 말한다.
쉬운 이해를 위해 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병원에 가보면 병원을 찾는 사람은 거의 모두 환자다. 그런데 이것을 본 사람이 '모든 국민은 환자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이것이 "성급한 일반 오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주위에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마음에 느끼는 것이 참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특히 정치가 그런 것 같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내가 참이고 상대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거 결과를 보면 전라도는 왼쪽(또는 오른쪽)에 90%가 몰리고, 경상도는 오른쪽(또는 왼쪽)에 80%가 몰린다. 그러면서 입빨이 센 사람은 상대 편을 "좌빨(좌파 빨갱이)" 또는 "골통(수구골통)"이라고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왼쪽(오른쪽) 90%가 오른쪽(왼쪽) 80% 지역에 태어났으면, 또 오른쪽(왼쪽) 80%가 왼쪽(오른쪽) 90% 지역에 태어났으면 자기도 그 지역 정서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를 좌빨과 골통으로 몰아부친다. 선거철만 되면 편가르기로 갈라져서 자기 쪽이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한다. 단순히 생각이 다른 정도, 또 생각이 다르지만 서로가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아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린다. 그래서 서로 강한 주장으로 감정을 돋구다가 상대도 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아니면 멱살잡이, 죽기살기로 다툰다.
대구는 시장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이 각자 의견을 내고 있다. 출마 예상자들도 나름대로 준비 중이다. 벌써 5,000 여명이 모인 곳도 있다. 힘을 가진 자라고 보고 그에게 눈도장이라도 받기 위해 바쁜 공직자가 이사 오는 현장까지 달려간 사람들도 상당수다. 힘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은 그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사람을 세우는 운을 띄우고 있다. 물론 어느 선거이든 선택은 자유이고, 시장 출마도 자유다. 그렇게 해야 그것이 정치적 자유다. 결정은 유권자가 하는 것이며, 그것이 순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소수, 지역, 정파)의 생각이 모두(사회, 국민, 구성원 전체)의 생각이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들어있지 않을까? 90%나 80%로 치우친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약점을 말한다.
이런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종교인, 지식인들이 오히려 오류에 깊이 빠지고, 이를 조장하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다.
"다수가 가진 일반화의 오류"
앞서 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소수를 다수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한 사회나 집단에서 소수가 가진 오해이므로 "소수의 일반화 오류'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오랜 기간, 또 절대 다수가 모두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게 참이라고 보았는데 알고 보면 그것이 아닌 것이 있다. 이것은 사회 다수가 오랜 기간 참이라고 여겼지만, 틀린 것이므로 "다수의 일반화 오류"라고 이름을 붙여보자. 이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참과 오류가 이미 과학으로 밝혀진 두 가지와 앞으로 과학이 밝혀 내거나 과학이 인정해야 할 한 가지, 이렇게 세 가지를 예로 들어본다.
(1) 감기의 원인을 모를 때는 절대다수가 "감기는 추위 때문에 온다"라고 믿었다. 영어로 "감기에 걸리다"는 "catch cold"라고 한다. 우리 속담에 "여름 감기는 마당에 있는 개도 안걸린다"는 말도 있다. 이것은 감기가 추위 때문에 온다고 믿는 다수의 믿음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여 감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인플루엔자나 바이러스)이 일으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므로 감기는 추위 때문이라는 믿음은 "다수의 일반화 오류"이었다.
(2) 하늘의 해가 움직여서 하루가 결정된다고 믿었던 천동설 시대는 천동설이 절대다수의 진리이었다. 지동설이 사실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지동설 주창자들이 화형을 당하거나 가택 연금을 당해야 했었다. 그러므로 지동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천동설이 "다수의 일반화 오류"이었다.
(3) 그런데 아직도 완전한 거짓 현상을 참이라고 믿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필자는 이 말을 하고 싶다. 바로 토지를 팔고 사는 상품(재화와 서비스, 富, wealth)으로 믿는 토지상품설이다. 토지는 상품을 생산하는 물질이지, 자신은 상품이 아니며, 상품이 되는 성질이 없다.
토지가 생산한 토지임료만 사람이 가치로 쓸 수가 있고 팔고 사는 상품이다.
그래서 사람이 토지를 팔고 사는 순간 그 지불한 가격은 1원도 가치물이나 수익으로 실현하는 성질이 없다. 그냥 팔고 사고 하면서 생산 없고 소비(실현) 없는 제로섬게임(생산없는 구매력 상승과 실물의 수평이전)으로 값을 키워 그 비율만큼 물가만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상품이라고 믿고 있고, 지불한 가격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치나 부로 실현이 되는 것으로 오해(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토지에 대한 "다수의 일반화 오류"이다. 인간이 사회과학에서 저지른 가장 크고 길고 심한 실수 같다. 지대론을 펴든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땅값과 지대(임료)를 구별하지는 못하는 미숙함에서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는 있었다.
사람은 토지와 영구가격에 대한 과학적 현상을 식별하지 못하여 지금도 오류를 계속하고 있고, 이 가격이 끼치는 사회적 피해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영구가격에 대한 과학적 현상을 모르기 때문에 시장을 '수요공급의 현상'으로만 보아서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도 큰 실수를 하게된다. 세계 대공황을 가져온 주식 폭락 3일 전에 "앞으로 주식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라는 시장 전망을 내었다. 이것은 전문가의 전망이 아니라 무당의 점괘보다 더 못한 궤변이다.
지금도 서울은 집이 남아돌아 미분양 상태가 될 줄은 (거의 전부가) 모르고, 더 많은 집을 자꾸 지으려고만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아파트 전세나 매매가격이 왜 2배나 급등을 했는지 원인을 모르고 있다. 지난 5년간의 정책 실수가 아니고 부동산시장 역사 50년간 한결같이 반복하는 실수이고, 앞으로도 계속할 실수다.
지난 5년간은 집을 못 사서 나라가 들썩거렸지만, 앞으로는 집이 팔리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 이게 부동산시장, 50년 역사의 한 단면이다.
성경이 보여주는 "다수의 일반화 오류"
성경은 사람이 가지는 일반화의 오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성경은 내용 전체가 다수의 생각은 거의 모두 "일반화의 오류"이고, 소수의 생각이 참이라고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몇 가지를 추려서 골자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노아의 홍수 이전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자기들의 삶의 방식이 옳다고 믿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이 오류를 벗어난 사람은 노아 1인과 그 가족 7명뿐이었다.
② 족장시대에 3대 족장들은 믿음은 좋지만 닥쳐올 흉년을 예측하지 못하며, 풍년에 흉년을 대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흉년이 들면 기업을 버리고 유랑한다. 야곱과 그의 아들 12 형제들은 요셉 한 사람만 토지와 경제를 알았고,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기근에서 죽음 직전 구원을 받는다.
③ 홍해를 건넌 광야교회 백성들은 희생이 두렵고 싫어서 약속의 땅을 거부했다. 그 비율은 지도자가 12 대 2, 남여 성인 전체로는 120만 대 2라고 할만큼 절대적이었다. 절대다수가 가진 일반화의 오류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 진입 과제는 백성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일반화의 오류로 거부해 버린 실수다.
④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여호수아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여호와만 따르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절대다수가 좌우로 치우친다. 종교든, 정치든, 경제든, 케케묵은 이념이든, 모두가 모든 것에 그렇게 치우친다. 그렇게 치우친 것을 선이고, 참이라고 오해하고 우긴다.
⑤ 사사시대에 절대다수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다. 룻과 보아스만이 바알법을 따르지 않고, 성경 희년법을 따른다. 룻과 보아스 외에도 희년법 순종자가 더 있겠지만, 토지는 생업의 필수재이므로 거래 자체가 소수에 불과할 것이며, 따라서 희년법 순종자도 소수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⑥ 왕조시대에 왕과 백성들은 거의 모두가 바알신과 바알법을 따르고 여호와의 희년법을 버리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이러한 일반화 오류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은 선지자들인데 이들은 전체에 비하면 극수수에 불과하다.
⑦ 신약에서 절대다수는 구세주를 몰라보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다. 아기 예수가 오는 것도 몰랐고, 공생애를 통한 구세주의 가르침은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다. 차원 높은 화요일 성전강론과 감람산강론은 의미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곡해한다.
빌라도 앞에 선 유월절 민중들의 절대다수는 구세주를 십자가에 매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약속의 땅을 둔 광야교회의 오류와 비슷한 절대다수에 의한 일반화의 오류이었다.
⑧ 초대교회가 보여준 물질의 유무상통은 오늘날 다수 교회가 모르거나, 전하지 않거나, 지키려고 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오순절 교회는 유무상통 경제에 대한 마음만이라도 있어야만, 7월 절기는 토지를 속량하여 생산조직을 정비하고, 온전한 시장경제와 경제자유를 회복한 후 초막절 천국 잔치를 맞을 수가 있다.
⑨ 바울 선교로 세워진 믿음 교회는 절대다수가 사람의 영혼과 교회 안만 보고 있고, 교회 밖의 땅과 기업, 경제생활과 토지나라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들이 교회 밖에서 해야할 생활 지침을 전해준 공동서신은 잘 모르며, 야고보가 말하는 생활경제를 지푸라기 복음으로 여긴다. 구원은 믿음이지 행위가 아니며, 종교는 교리나 마음(영혼)이지 육과 물질은 아니라면서...
⑩ 미래에도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는 책망과 경고의 대상으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미래에 도래할 나라에서 선택을 받게되는 14만4,000명은 실제수일가? 상징수일까? 무당 패거리 같은 신천지 집단이 충성 경쟁을 시켜놓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속이고 속는 구원자의 숫자인가? 이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면 한 나라의 통치에 필요한 지도자의 숫자가 아닐까? 아니면 상징수와 실제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신비한 하늘나라의 구원 숫자일 수도 있다. 이것이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을 풀어주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교회(제사법)가 아닌 시장, 곧 생활 현장(경제규례)에서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레위기 25장 23절 말씀에 대한 실무적 순종과 고백, 포도원은 주인에게 貰를 내는 자에게 돌아간다는 천국 비유(마 20:1, 21:34)에 대해서는 지금도 절대다수가 일반 오류에 깊이 빠져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⑩번의 시대가 가까워지거나 그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진위가 판명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성급한(소수의) 일반화의 오류"와 "다수의 일반화의 오류"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돼지고기를 먹지말라는 레위기 음식법은 구약시대 유대교와 신약시대인 지금도 세일파 같은 이단들이 지키고 있다. 그러나 같은 책에서 토지의 시한부 거래와 영구거래를 구분하여 거래 방식을 가르쳐 준 레위기 희년법은 지키려는 사람 하나 없다. 희년법은 경제 실무이므로 사람은 도로에서 교통 신호등를 지키듯이 지켜야 할 생활 규례이었다. 그럼에도 지키지도 않고 눈여겨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버린 희년법은 언제이고, 그 실체와 진가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너나 없이 부끄러운 장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광야교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가기만 하면 길은 열리게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우리는 마음만 바꾸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지상 천국을 현실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제안에 대해 즉각 거부 반응을 보인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나약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지상 천국은 구세주가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밥상을 차려주면 숟가락만 들고 참여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한 미래에 대해 사람이 하고 있는 "일반화의 오류"일 것이다.
다수가 가진 토지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한 글은 30년, 20년, 10년간 10명, 50명, 100명, 200명에게 알려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것마저 "일반화의 오류"는 끈질기고 강하다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성경 희년법의 회복은 군주사회를 민주사회로 바꾸는 것보다 더 큰 변혁일 것이므로 입을 다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괴롭다. 내가 왜 이렇게 사서 생고생을 하는가 싶다. 모두가 공감대를 가진 글을 쓰면, 쓰는 마음이 편하고 읽는 마음 즐거운데,,.
경상도 살면 경상도 정서로 일반화 하고, 전라도 살면 전라도 정서를 따를 때 그게 편하게 사는 방법인데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생각과 행동, 집단의 정서, 그리고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조, 그 시대를 쥐락펴락하는 강한 힘까지도 거의 대부분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일반 오류에 속할 것으로 보인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모두 그러하다. 오류는 모르면 그 오류를 계속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