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2016.7.11자 10면(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왜 일본이 우리나라를 삼키려고 공작을 해오던 당시에만,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면서 이유로 대었던 '미개'했으므로 '개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는 '개화'라는 용어를 사용할까요?
이 말을 교과서에서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널리 퍼뜨려주시기 바랍니다!
<보낸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19〉
일제 냄새나는 ‘개화’라는 용어는 바꿔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우리 교과서에서는 일본을 등에 업고 개혁을 추진한 세력들을 ‘개화파’라는 이름의‘선구자’로 위장시켜 그들의 사진까지 교과서에 게재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할 때 “너희들은 미개하여 우리가 보호해주어야 한다”면서 ‘을사보호조약’이라 이름 붙이고 외교권 박탈의 빌미로 내세웠던 ‘미개’와 연결되는 말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실제로 교과서에서도 1970년대 경까지 을사보호조약이라고 가르치다가 지금은 ‘보호’라는 단어를 빼고 ‘을사조약’이라고 한다. 이때 ‘개화’라는 단어도 함께 없어져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스스로 ‘미개’함을 인정하는 일제 영향의 용어는 빨리 바꿔야 한다.
‘개화’가 일본의 내정간섭과 연결됨을 인정하는 교육부
교육부의 지침에서는 ‘개화’의 의미를 개혁과 신문물 수용, 개항 등과 연결시키고, 중ㆍ고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는 “개항 후 추진된 개화 정책…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척사와 개화 등 여러 대응방식에 대해 이해…위정척사 운동은 이후 의병 운동 및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었음을 유의하여, 개화정책과 더불어 균형 있게 서술한다.…갑오개혁은 개항 이후 개화ㆍ개혁정책의 연장선에서 주체적으로 추진되었으나 일본의 내정 간섭을 받았다는 점에도 유의한다”고 하여 척사–의병–독립운동으로 연결시키고, 개항–개화 정책–갑신정변-갑오개혁–일본의 내정 간섭으로 연결시키면서도 균형 있게 기술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편찬한 『초등학교 사회 5-2』에서는 “개항 후 조선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사신을 보내 근대 문물을 배워 오게 하였다. 그러나 개화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입장이 여전히 대립하여 임오군란과 갑신정변과 같은 충돌이 일어났다.”고 하여 개화를 근대화의 개념으로 기술하면서, “개화파들은 일본의 힘을 빌려…‘청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사회 제도를 고치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는 등 개혁을 서둘렀다.”고 하여 일본의 힘을 빌어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개화’라고 기술하고 있다.
청의 내정간섭 비난하며 일본세력 이용은 미화
비상교육 판 『중학교 역사(하)』에서는 ‘청의 내정 간섭이 심해지자, 개화파는 개화의 방법과 방향을 둘러싸고 온건 개화파의 급진 개화파로 나누어졌다’ ‘대한제국의 근대화 정책’ 등 ‘개화’라는 말의 의미를 주로 근대화 쪽으로 기술하면서 일본의 도움을 받아 ‘청의 내정 간섭에 대항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고교 한국사』에서는 ‘서양문물의 도입을 찬성하는 세력(개화파)과 반대하는 세력(위정척사파)’이라 하여 개화=서양문물 도입의 개념으로 서술한다. 일제 때 일본인 지휘아래 집필된 『조선왕조실록』 고종 32년 조에서도 “새롭게 개화(開化)해나가는 것은 사실 백성들을 위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하여 ‘새로운 문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개화라고 한 것과 맥이 통한다. 그러면서 151쪽에는 일본을 등에 업고 일어난 갑신정변에 대해 상술하고 그 주역들의 사진까지 게재하며 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고자 했다는 것만 강조하고,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자 노력했다는 기술이 없어, 균형 있게 기술하라는 교육부 지침을 어기면서 일본의 의도를 숨기는 위장 논리다.
일본의 간섭이 많았던 시기에만 ‘개화’ 등장
‘개화’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지혜가 열려 새로운 사상, 문물, 제도 따위를 가지게 됨’, ‘인지가 열려 나아가 사회의 사상, 풍속 따위가 좋은 방향으로 흐름’ 등 지혜나 인지가 열리지 못한 미개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일본의 영향이 심했던 시기에만 개방, 근대화 개혁, 서구화 대신 ‘개화’를 쓰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같은 시기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 서술에서는 ‘개항’이라 하고 우리나라 정책에만 ‘개화 정책’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개항기의 건축물, 양복, 서양음식, 근대교육, 무역 등 경제ㆍ사회적 변화에는 개화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시기적으로 일본의 간섭이 강하던 1880~1890년을 전후해서만 ‘개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 이전이나 이후의 이와 비슷한 정책에 ‘개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후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했고, 1910년에 우리의 국권을 침탈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개화’라는 용어에는 일본의 입김이 크게 작용되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일본이 말한 ‘우리가 미개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만약 이런 개화파가 청나라 간섭을 몰아낸다는 핑계로 일본 헌병들을 동원하여 우리 대신들을 죽인 갑신정변이 성공적으로 이어졌다면 우리 국권 침탈이 훨씬 더 빨리 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오싹해진다.
그런데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인 초등학교 사회 5-2 62쪽에서 그런 급진개화파들을 ‘선구자’로 둔갑시켜 사진까지 게재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도, 시기적으로 그 이전, 이후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용어라면 문제가 없다. 일본과의 관계가 전혀 없다면 넘어갈 수 있다. 왜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려던 그 시기, 우리나라에만 그 용어가 쓰여야 하는지를 교육부에서 철저히 점검하여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일본 군인들을 이용해 우리 대신들을 죽였던 우정국 현재 모습

서양에 파견된 최초의 외교사절단 보빙사
<보도 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