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뿔고래
-알데아누에바 델 까미노
연명지
칼릴지 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를 생각하다 결혼 대신 길을 넣어본다.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길은 각자 고독하다.
스위스 조각가 자코메티의 광장을 가로지르는 남자처럼, 깎아내고 깎아내 선처럼 보이는 남자가 광장을 역동적으로 가로질러 걷는 모습을 떠올리며 새벽에 길을 나선다. 무거운 다리를 달래가며 우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가볍게 떨쳐버릴 수 없는 상처들이 달그락거리며 자꾸 머뭇거리게 한다. 길은 깨진 상처를 싸매주려고 긴 팔을 들고 있다.
백고래들 사이에서 혼자인 외뿔고래와 비숫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어쩌면 우리 삶도 낯선 흰고래 무리 속 외뿔고래가 아닐까. 외롭지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외뿔고래가 휘적휘적 걸어간다. 오늘도 길은 순례자들을 유심히 살피고 따뜻하게 마음을 내준다. 길과 나와의 관계가 시작 되었듯이, 사랑이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세상의 외뿔고래들도 회전문을 잘 통과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