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7년 1월
'52인 시집' 게재, 신동엽의 대표적인 시)
*신동엽의 시에서는
반제국주의와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가 응집되어
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
이육사의 '절정'에
닿아 있는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다.
김수영은 이 작품에 ‘사상이 죽음을 통해 생명을 획득하는 기술이
여기 있다’고 하며
소월의 민요조와 육사의 절규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껍데기`와 `알맹이`는 신동엽의 중요한 시적 전략의 하나이다.
작품 전체가 `껍데기`와 `알맹이`의 대칭
구조로 되어 있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현상과 본질로 파악할 수
있다.
문명. 전쟁. 폭력의
현상이 껍데기(쇠붙이)라면
자연. 평화. 생명의 본질이 알맹이(젖가슴) 이다.
(김영철, 한국 현대시의 좌표,
건국대학교출판부, 2000)
*신동엽(申東曄,1930. 8.
18 충남 부여~1969. 4. 7 서울
)
1948년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머물면서 차츰 한국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4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
1950년 6·25 때 '국민방위군사건'으로 수용되어
낙향하던 중 간디스토마와
폐디스토마에 감염.
1953년 대학 졸업 후 충청남도
주산농업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며,
1959년 조선일보에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석림'이라는
필명으로 입선.
1961년 명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해
운명할 때까지 재직.
1961년 '자유문학'
2월호에
시인정신론 발표
1963년 시집 '아사녀'
발표
1966년 국립극장에서
시극〈그 입술에 파인
그늘> 공연.
1967년 서사시 '금강' 발표
1969년 40세, 간암으로 별세.
* 동엽의 시를 1969년 열 아홉 나이에 처음 읽었다.
촌놈이 서울로 유학가서 서울 남산도서관에서 읽었던 시다.
시를 읽으며, 그 겨울은 해를 안은 듯 가슴이 열렸는데
이제 다시 같은 시를 대하니 가슴을 여미게 된다.
나이 먹은 게 부끄럽기 때문일까,
/ 금수산 촌놈으로 되돌아 온 (東)
첫댓글 고맙습니다 조용히 음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