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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죄의식과 성찰의 거울의식
1
윤동주의 시를 관류하는 정서적 특성은 죄의식(罪意識)이다. 주로 부끄러움이라는 말로 표현된 그의 죄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인가.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상황과 성찰적 인식에서 온 것일 터다. 참담한 민족의 운명 앞에서 시 쓰는 일로 저항하며 독립의지를 실천하였던 윤동주는 자기 세대의 직접적 책임이 아니었지만 역사적 수난사의 교훈을 수없이 망각하고, 임진왜란 이후 다시 왜족(倭族)으로부터 침략당한 선대의 과오에 대해, 슬픈 왕조의 후예로서 계통적 죄의식을 가진 것이다.
하얗게 눈이 덮이었고
전신주가 잉잉 울어
하나님 말씀이 들려온다.
무슨 계시일까.
빨리
봄이 오면
罪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解産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윤동주
「또 태초의 아침」 전문
기독교 집안의 윤동주는 인간의 원죄의식까지를 응용하여 역사적 소명의 시로 형상화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금기(禁忌)의 위반과 부끄러움의 자각, 그리고 노역과 산고(産苦)의 상황을 형상하며,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라고 마무리한다. 죄를 지은 벌로 받게 된 해산의 고통이든 밭갈이의 노역이든, 아니면 그 모든 일의 주관(主管)이든, 안락한 무노동의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하였으니, 아담과 하와 이래의 인간은 매양 땀 흘릴 일밖에 더 있겠는가. 타민족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 자의 좌절과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희망의 미래를 예비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죄의식은 자아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만이 느낄 수 있는 정조(情調)다. 인간은 언제부터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 점에 대해 좀더 자세히 표현한 시편을 인용해 본다.
낙원에서 쫓겨나서
험난한 땅을 갈며 살게 될 줄
이미 아신 하나님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 빼어
그 자리는 살로 채우고
그 갈빗대로 배필 하와를 빚어
아담에게 주셨으니
아담이 말하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형상은 둘이되 합하여 한 몸이라” 하니
벗었으되 부끄럽지 않고
서로 그리워하며 끝없이 탐하며
의지하여 서로 도와 살아가게 하시니
―임성숙
「아담과 하와」 중에서
「창세기」 2장의 스토리를 시로 구현한 임성숙의 「아담과 하와」가 말하여 주듯, 애초에 인간은 “벗었으되 부끄럽지” 않은 존재였다. 벗었으되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 화평의 에덴동산에서는 ‘반성’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이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 수 없음이여
참 알 길 없음이여
아담 하와에게 선악과나무를 주시고는
왜 그 과실만은
따 먹지 말라 하셨는지
금단의 열매이기에
유달리 딴 실과나무의 열매보다
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그것만은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지.
선악과의 맛이 과연 어떠했을까.
선악을 분별하면 왜 죽는 것일까.
아담과 하와
선악과를 따 먹은 즉시 어인 일일까.
눈이 밝아져
서로 벗은 것이 부끄럽고
하나님이 무섭고 두려워서
무화과 잎사귀로 몸을 가리고
기껏 무화과나무 그늘에 숨은 것이
죄의식인가.
―임성숙
「선악과」 중에서
“낙원에서 쫓겨나서/험난한 땅을 갈며 살게 될 줄/이미 아신 하나님”(「아담과 하와」)은 에덴에서 가장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선악의 과실나무 열매를 따먹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 금기의 함정은 아담과 하와의 위반을 유도하여 기어코 선악을 분별하는 반성적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금기령을 위반하고 감미로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아담과 하와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벗은 것이 부끄럽고”,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라는 현실을 인지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죄의식은 인간이 자아를 인식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화나 문학작품에서 이 같은 내면적 인식의 반성적 기제로 나타나는 것이 거울 이미지다. 나는 이미 부끄러움을 인식하는 인간의 원초적 ‘거울의식’의 기제에 대하여 「부끄러움의 자각과 거울의식」이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부끄러움’을 테마로 한 서울시인협회 앤솔로지 3호 서평에서였다.
부끄러움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이 부끄러움을 인지하게 된 구체적 기제는 ‘거울[거울의식]’ 때문이다. 희랍신화에서 소년 나르시스는 잔잔한 호수의 수면에 투영된 자신의 미모에 매료되어 투신 水死수사한다. 고인 물은 ‘거울’의 원천적 기제이다. 李箱이상의 ‘거울’(「거울」), 윤동주의 ‘우물’(「자화상」), 김춘수의 ‘바다(「처용단장」)’ 등은 모두 ‘거울’의 원형적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거울’이라는 기제를 통해 미모뿐만 아니라, 추한 것도 보아내며 ‘부끄러움’을 인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거울의식’이 없었다면 인간도 부끄러움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조명제,
「부끄러움의 자각과 거울의식」,
『시see』, 2016. 11월호
윤동주의 시를 논하면서, 나르시스의 신화를 끌어오되 ‘관음증적 엿보기’(마광수)로 해석한 것은 지나친 비약이거나 오독(誤讀)이다. 인간은 거울의식의 반성적 회로를 통해 선악과 진위와 미추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도덕적 가치, 죄의식의 자각은 그 바탕 위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2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의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自畵像」 전문
윤동주의 「자화상」이 보여주는 거울의식의 기제는 ‘우물’로 표현되어 있다. ‘거울’ 이미지의 원초적 사물이 ‘물[水面]’인 만큼, 연못, 호수, 물웅덩이, 우물, 바다, 두멍물 등은 그 대표적 이미지들이다. 이상(李箱)이 작품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의심하며 분열된 자아를 들여다본 ‘거울’, 서정주의 시에서 보이는 “지붕도 앗세 작파해 버려 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한국적 똥오줌 항아리의 똥물을 명경(明鏡)으로 삼아 쇠뿔 염발질을 하고 있는 상가수[소리꾼]의 똥물거울 이야기(「上歌手의 소리」, 『질마재 神話』),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꽃밭의 독백」)의 ‘물낯바닥’[水面] 들여다보기의 장면은 흥미롭고 전형적인 거울 이미지 및 거울의식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처용단장」 시리즈로 신풍(新風)을 일으킨 김춘수의 경우 ‘바다’의 물비늘을 통해 해체된 시적 화자[처용의 심리 상태]의 반성적 이미지를 드러낸 것이다. 해수면이 조용하여 온전한 형태로 비칠 때의 모습이 아니라, 물결이 일어 그 이미지가 해체된 상태의 모습, 곧 외간 남자에게 부인을 잃어버린 처용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표현한 까닭에 극단적 난해시로 지목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윤동주는 「자화상」에서 ‘우물’을 성찰의 기제로 삼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화자가 찾아가서 들여다보는 우물은 물 길어먹기 편한 마을 가운데에 있지 않고,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곳에 위치해 있다. 우물은 마을 형성의 일차적 환경 조건이 된다. 그렇다고 보면, 논가의 외딴 우물은 비상용이거나 농수용일 가능성이 높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의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서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시적 진술로 볼 때, 화자가 지극한 외로움의 갈등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들여다보는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이 우물에 비치는 풍경은 동시적(同時的) 현상의 것들이 아니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까지는 동시적 현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는 밤의 현상이 아닌 낮의 현상이다. 앞의 “구름이 흐르고”를 낮의 현상에 포함시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을’은 계절적 현상을 말하는 언어로, 먼저 열거한 사물들과 동렬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가을’ 하나로 다른 계절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우물에는 낮과 밤, 여러 계절의 현상이 겹쳐져 있다고 봐야 한다. 화자의 우물 들여다보기는 한 번의 경험이 아니라 밤과 낮, 봄과 가을 등 여러 시간대와 계절의 경험이 집합, 누적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물’이 현상적 이미지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내면 들여다보기의 반성적 기제로 쓰인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윤동주가 제일 선호하는 하늘과 달(*별은 달에 함유된다)과 바람과 가을 등 예나 지금이나 무심한 자연이 투영된 배경에는 이 시편의 핵심 이미지인 ‘한 사나이’의 행위와 심리적 번민이 전개된다. 화자는 우물에 비친 ‘한 사나이’가 미워져서 돌아가고,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져 도로 가서 우물을 들여다본다.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는데, 다시 그가 미워져서 돌아간다. 이번에도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진다. 우물에 비친 사나이가 시적 화자의 투영된 모습임을 짐작 못하는 이는 없으리라. 이 반복되는 행위의 심리적 갈등은 ‘우물’ 이미지를 기제로 한 자아의 내면적 성찰을 말하는 것이다.
윤동주는 ‘한 사나이’라는 반영(反映)된 화자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미움과 가엾음과 그리움의 복합적 심리현상, 번민, 그리고 부끄러움의 죄의식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끝 연의 “추억처럼 한 사나이가” 있다는 진술은, 추억은 그립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질곡의 식민지 시대에 행동하는 양심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쓸쓸한 가을 풍경 같은 액자 속의 사나이, 곧 ‘자화상’의 뼈아픈 현실에 대한 성찰을 말해 주는 것이다.
3
내 작은 가슴은 도무지
하나님의 크신 가슴을 헤아릴 수 없음이여
선악과를 따 먹고
눈이 밝아진 아담의 후예, 우리는
―임성숙
「선악과」중에서
죄의식을 통해 밝아진 눈은 인간 상호간의 최상의 거울이다. 인간만이 거울 이미지를 통해 반성할 줄 안다. 인간 이외의 어떤 동물도 반성할 줄을 모른다. 짐승들의 시선은 외부로만 향해 있다. 그 시선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천적을 피하기 위한 경계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먹이 사냥을 위한 탐색의 시선이다. 짐승들은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 내면을 들여다볼 줄을 모른다. 거기에 반성과 성찰이 개재할 틈이 없다. 짐승에게는 언어가 없고,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철학에서 인간을 반성적 존재라고 강조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다음 기회에 상론하겠지만, 인간만이 시선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 돌려 자신을 대상화하여 들여다본다. 대상에 대한 인지능력, 즉 대상에 대한 의식을 자신의 내부로 돌려 내가 무엇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를 의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실존이다. 그런 존재는, 神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밖에 없다. 요컨대, 인간은 언어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의식의 거울인 언어를 가지고 불우한 시대의 시를 쓴 윤동주는 성찰을 통한 부끄러움의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 자학적 정조(情調)를 드러냄으로써 일제에 항거하고, 불의에 도전하였다. 거듭 말하거니와 목청 높은 구호나 직접적 참여가 아니라, 스스로 파괴의 징후가 되고 작두날 위에 선 시정신의 준엄한 기준이 됨으로써 일제의 그릇된 지배논리와 폭압적 통치에 저항한 것이다. 일제의 칼날에 굴하지 않고 그가 거울 이미지의 기제를 통한 성찰의 언어로 역사 변혁의 의지를 지켜 나간 것은 민족적 독립운동의 또 다른 한 형식으로 평가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서시」)라는 결의에 찬 의지는 시 쓰기와 독립운동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신념에 찬 그의 시정신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Ⅱ. 윤동주는
왜 저항시인인가
1
윤동주 하면 으레 서정시인(순수 서정시인),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닌다. 이러한 규정들은 서로 레벨이 다른 것이니 모두 옳은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서정시인’과 ‘저항시인’이라는 말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일제 강점하의 시인으로서 윤동주는 일제에 대한 항거나 적극적 비판을 보인 언어의 시를 쓰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어 왔다. 하긴 윤동주의 성찰적 언어는 번민과 자학의 서정적 미학에 충실할 뿐 저항의 언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조선어와 조선민족 말살정책으로 강압해 왔던 일제하에서 직접적 저항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설령 그러한 조짐의 표현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제의 검열에 걸려 폐기되거나 삭제되었다. 그런 가운데 윤동주를 서정시인이라고 하는 데에는 순수서정의 시를 쓴 시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서정시’는 유형상 ‘서사시’ ‘극시’ 등과 층위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다시 세분하여 주정시(主情詩), 주지시(主知詩), 주의시(主意詩)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한 명망 있는 비평가의 “서정시 나부랭이”라는 표현은, 그걸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진 셈이 된다. 요는 시를 갈래짓다 보면 시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주지적 서정시나 서정적 주지시 같은 식의 말이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터다. 의식 있고 성찰의 지성적 감성을 가진 윤동주의 시를 선명하게 규정지어 줄 용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윤동주의 시세계를 저항과 항거의 격전장으로 파악한 주장과, 좌절당한 젊은 지성인의 유희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주장(홍희표, 「윤동주의 ‘서시’」, 『한국현대시 작품론』, 문장사, 1981, 290쪽)으로 양분한 것 외에, 순수 서정시로 보는 견해까지 실제로는 더 폭넓게 잡아볼 필요가 있다. 근년 들어 인터넷에 오른 ‘순수시인 윤동주 열풍’이라는 글들의 정황만 보더라도 윤동주는 저항시인과 순수 서정시인이라는, 어떻게 보면 상충하는 평가가 동시에 내려져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순수시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에서 유래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광복기의 순수문학 논쟁으로부터 1960년대의 참여문학 논쟁의 격앙된 상황 속에서 현저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시문학에 있어서는 순수시와 참여시라는 양분된 시대 속에서 전개된 논쟁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순수시와 민중시 및 노동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논쟁으로 확산, 전개되어 왔다. 순수시와 참여시를 비롯한 문학의 장르적 용어는 때로 여간 모호하고 헷갈리게 하는 것이 아니며,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이를테면 마치 순수시와 참여시가 반대 개념의 용어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어휘적으로 따져 보면, ‘순수/비순수’ ‘참여/비참여’ 식의 용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경우 ‘비순수=참여’ ‘비참여=순수’로 규정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학의 순수와 참여 논쟁 속에서 문학의 사회 참여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순수시는 사회적 비판기능이나 저항의 논리가 없는 것처럼 호도하고, 참여시만 비판적이고 저항적이라는 편협하고 도식적인 논쟁을 일삼아 온 것이다. 그런 반면 순수문학론자들은 현실 관여의 직설적이고 선동적인 시는 하루에도 열 편은 족히 쓰겠다며 상대편을 비하해 왔다. 극단의 이념에 사로잡힌 분단민족으로서 겪고 있는 이 같은 한국적 문학의 순수와 참여 논쟁에 대하여 『한국문학의 위상』의 저자인 비평가 김현은 날카로운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문학 내적인 것이 그것을 선택한 인간의 의사와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나, 인간의 의사가 형태를 얻지 않아도 제대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환상은 그러나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극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것은 대상의 어느 한 측면의 과장을 그 속성으로 삼고 있다. 문학을 위한 문학은 문학의 주체자를, 인간을 위한 문학은 문학의 自足性자족성을 각각 捨象사상하고 있다. 그 두 이론은 그러나 순수·참여 논쟁이라는 한국 문학의 해묵은 가짜 문제의 이론적 전거를 이룬다. 어휘 자체의 개념 규정도 뚜렷하게 하지 못한 채 되풀이된 그 논쟁은 한국 문학인들을 상투화된 과장으로 몰고 가, 사고를 유형화시키고, 문학인의 내적 창조성을 당위성으로 찍어 누르게 된다. (『한국문학의 위상』, 22~23쪽)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쪽과 문학의 사회적 효율성을 놓고 격돌하는, 이 지나친 논쟁은 결과적으로 문학을 인간과 문학 자체로부터 소외시키는 가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문학은 그러나 문학만을 위한 문학도 아니며, 인간만을 위한 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는 무지와의 싸움을, 의미론적인 차원에서는 인간의 꿈이 갖고 있는 불가능과의 싸움을 뜻한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인간만이 반성할 줄 아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
극단의 환상에 사로잡힌 한국문학의 순수 참여 논쟁은 문학인들의 문학에 대한 인식의 오류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도 역사적 산물이며 사회적 현상의 하나다. 적어도 세상에 몸담고 있는 한 작가는 사회적이다. 문학은 사회현실의 한 반영이며 시대의식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나 예술이 정치적 사회현실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성 옹호라는 소박한 사고의 순수문학론의 논리도 문제지만, ‘작가들은 이제 정치가나 경제가들처럼, 그리고 혁명가들처럼 현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그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문학의 현실 참여론은 자칫 문학의 특성적 본질을 왜곡할 위험성이 크다. 문학의 현실 참여론자들이 주장하는 그 같은 작가의 역할은 사회 비평가나 사회 운동가, 비판적 언론이 더 잘할 수 있다. 정치가나 혁명가들처럼 사회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을 굳이 문학에서 찾을 필요가 없으며, 그래도 참여적 선동 구호에 문학이 효율적이라는 신념으로 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위선일 뿐만 아니라, 문학에 대한 모독이다.
사회 참여의 상황이나 목적은 여러 경우가 있을 수 있겠는데, ‘본령정계(本領正系)’(김동리)에 기초한 것이든, 정의를 향한 것이든 문인이라고 해서 사회 참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학을 하는)한 시민으로서 독재에 항거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이 아니고서도 할 수 있는 문학 외적 활동으로서 문학의 본령은 아니다. 문학은 그 속성상 그렇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이거나 선동적인 것이 아니며, 현실 원칙에서 볼 때 실로 한심한 영혼의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986년도에 평론집을 낼 때, 책의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한 끝에 『한심한 영혼아』(민음사 刊)라고 정했다는, 문학비평집의 제목으로서는 어이없고 한심한 듯이 여겨지는 이 책의 저자 이남호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책의 제목은 오래 망설이다가 결국 <한심한 영혼아>라고 정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한심한 영혼아, 너는 굶주렸지만 포도주를 마시고 고기와 빵을 먹는 대신에 하얀 종이를 꺼내서 ‘포도주, 고기, 빵’이라 써 넣고는 그 종이를 먹는구나”라고 말한 바 있다. 삶의 바람이 문학의 나무를 흔들 때마다, 허황된 문학관들이 설쳐댈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던 구절이다. 모든 인간행위가 그러하듯이 문학 역시 욕망 충족의 한 방식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참 한심한 방식이다. 가령 사람들이 타는 목마름을 위하여 맑은 물을 찾아 헤맬 때, 시인은 목청을 가다듬고 타는 목마름을 노래할 뿐이다. 노래를 위해 자신의 갈증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한다. <중략> 그러니 문학을 지향하는 자, 어찌 한심한 영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한심함 때문에 문학은 타는 목마름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줄 수 있다. 스스로의 목마름을 제물로 바쳐 가문 세상을 위한 기우제를 올리는 것과 같다. <중략> 글 쓰는 자는 스스로 한심한 영혼을 선택한 자이니, 그 한심(寒心)함을 스스로 사랑할 뿐이다. 차가운 가슴이 세계의 따뜻함을 위한 거름이 되기까지, 문학을 턱없이 위대하게 생각하는 사람, 문학을 현실적 힘의 도구로 혹은 재물과 명예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심한 영혼들의 축제에 초대받지 못하며, 세계의 따뜻함을 위한 거름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좀 길게 인용한 것은 문학의 속성과 문학 작가의 본령 및 위상을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이처럼 자기 파괴적 한심한 영혼의 행사인 것이다. “문학은 저항한다는 구호에 의해서, 명백한 고발에 의해서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우상 숭배적 사고의 파괴를 강조한 김현은 이렇게 주장한다.
힘 있는 문학은 그 우상을 파괴하여 그것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높은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압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리면 파괴 그 자체가 됨으로써, 문학은 우상을 파괴한다. 金廷漢이나 申東曄의 저 목청 높은 구투의 형태 보존적 노력보다, 崔仁勳이나 李淸俊, 金洙暎이나 黃東奎· 鄭玄宗의 형태 파괴적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이것은, 이남호의 글에서도 보았듯이, 문학의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속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문학은 참여적이어야 한다”는 유종호 교수의 말은 옳다. 그러나 그 말을 참여문학 옹호의 견해인 양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예술은 예술을 초월한 목적에 봉사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예술이 그러한 목적을 의식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예술은 여러 가지 가치론에 따르면 그런 목적을 고려에 넣지 않음으로써 그 기능을 훨씬 잘 완수하는 것”이라는 T. S. 엘리엇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이어령 교수가 지적했듯 문학은 정치의 시녀가 아니며, 고은 시인이 말했듯 문학은 정치보다 큰 것이다.
3
아무짝에도 써먹지 못하는 것(문학)을 무엇하려고 하느냐는 어머니의 꾸지람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문학은 왜 되풀이 문제가 되는가」라는 비평을 쓴 김현은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는 것”이라는 대답으로 본론을 펼쳐 나갔다. 이런 말의 진의를 알아듣지 못하는 측에서는 순수문학이라 하면 음풍영월의 현실도피니 기피자의 문학이니, 아니면 자기 보신책의 타락한 문학이니 하며 맹공을 퍼붓기 일쑤다. 순수측이든 비순수측이든 ‘순수문학’이나 ‘순수시’라는 말의 개념을 소박한 단순논리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 까닭에 일찍이 김동리도 어느 논쟁 가운데 자신이 말하는 순수문학을 말라르메나 발레리의 순수문학 개념과 같은 것으로 오인하지 말라며 ‘순수문학’을 둘러싼 개념적 성격의 오해에 대해 경계한 바 있다.
독일의 경우, ‘순수시’의 연장선상에서 고트프리 벤(Gottfried Benn, 1886~1956) 같은 시인에 의해 1931년 이후 ‘절대시’라는 용어가 생겨난다. 그는 「시의 제문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절대시의 개념을 경험세계의 현실과는 상반된 상징으로 소개한다. 그리하여 절대시는 1960년에는 상당히 확산된 양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절대시가 현실과 무관한 순수예술이라는 견해에 대해, 절대시가 지닌 변화 작용, 인식체험과 비극적 체험 등을 들어 절대시는 현실과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순수절대시의 범주에서 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던 것”이다.(유향자, <Gottfried Benn의 절대시 연구>, 이화여대 석사논문, 1988). 절대시가 순수시의 한 경향으로 현실과 절연된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작의(作意)와 모티브적 주제의식이 현실이나 사회와 절연된 것은 아니다. G. 벤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의 전직인 의사로서의 면밀한 관점에서 생태해부학적인 시세계를 구축하며 현실과 문명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의 절대적 위상을 생각하면 절대시의 가치를 확장하여 그 용어의 개성을 ‘순수시’ 대신에 적용해 볼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개념 규정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시의 성격적 갈래에 대해서 난감할 때 나는 ‘시의 시’를 떠올린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주역(周易)』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각종 경서(經書)와 현대철학, 물리학 등에도 두루 정통한 안수환 시인은 근년 들어 「시인과 침묵」 「맨드라미는 사라졌다-시와 『莊子』의 인지구조」 「만물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시와 『周易』의 인지구조」 등 심오한 시론을 연속 발표(계간 『예술가』)하고 있다.
시는 시인이 쓰는 게 아니라 거꾸로 시가 시인을 쓰는 거야. 시의 주체는 시인이 아니라 대자연인 셈이거든. 시인이 잘나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대자연이 쓰고 있는 시를 정숙한 자세로 받아쓰는 것이야. 시인이 건방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만물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예술가』, 2016년 가을호, 165쪽
안수환은 침묵이 시를 쓰고, 시가 시인을 쓴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 말귀를 또 알아듣지 못하고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느냐며, 허황된 말장난을 집어치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시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는 것을 민중주의자들을 위하여 좀더 손에 닿게 말해 본다면, 그때 그 ‘시가’의 ‘시(시정신)’가 민중으로 하여금 혁명을 하게 하는 원인[원인 작용]이며, ‘시를’의 ‘시’는 그 전달의 구실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시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성급한 사람들은 ‘시가’의 범주를 알지 못하고 ‘시를’의 ‘시’에 종속되어 있기 십상이다. 시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는 무엇에 분노하고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흔히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 그러니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에 대해 저항하고, 불의와 기만과 독선과 위선에 항의해야 함이 마땅할 터다. 그럴 경우, ‘자유’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지부터가 문제된다.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뜻하는 것으로 동시에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실존주의는 말하고 있다. 자유가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해괴한 논리를 강제하고, 최근 한 국회의원의 소행에서도 보았듯이 표현의 자유마저 추악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실존적 개인주의가 극단적 이기주의로 흐를 것을 염려한 사르트르는 자유의 책임에 대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까지를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유의 개념에는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가 밑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의 문제도 그렇다. 어휘의 개념 그대로의 개념이나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념의 우상을 정의로 여기고 고집한다면 애초부터 정의는 성립될 수도, 존립할 가치도 없다. 이른바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이념에 맞지 않는 권력체제에 대해서는 사납게 공격을 하면서도, 자신들과 이념을 같이 하는 권력집단의 비리와 불의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 모양을 하고 있는 위선을 우리는 여실히 보아 왔다. 세상에는 저항시를 쓰고도 저항시인이 되지 못할 수도 있고, 저항시를 쓰지 않고도 저항시인이 될 수도 있다. 시로는 저항시를 쓰고, 행동은 딴판으로 이를테면 친일을 했다거나 정권의 불의에 눈 감고 어용적 행위를 한 경우라면 그를 저항시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 만은 작가는 언어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인간적 책임까지도 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4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부분
이제 窓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思想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윤동주
「돌아와 보는 밤」 후반부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든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윤동주
「흰 그림자」 중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0여 편의 대표적 작품을 비롯해서 윤동주의 시에는 저항의 언어, 비판의 언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렇다고 그가 격렬히 일제에 참여하여 저항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저항시를 쓰지 않고도 저항시인이 되는 까닭은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의 시를 통해 볼 때, 윤동주는 가혹한 일제에 항거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참회하는, 아도르노의 표현처럼 자기 자신이 파괴가 됨으로써 일제에 맞서고 항거한 것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상황 속에서, 앞에서 누누이 언급해 온 시적 속성의 원리를 그 젊은 나이에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김수영은 1960년 10월 30일에 쓴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혁명(革命)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라고 자기 파괴적 징후를 보여준 바 있다.
나는 비록 양력이지만, 지난 섣달 그믐밤에 시 한 편을 써 청탁받은 모 문학지로 보내었다.
이 적막한 그믐밤 창문을 밀고
설한풍에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는
나의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일생을
寒氣한기 속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매화,
나는 쓴다. 어둠 속에서 다시 붓을 잡고
매화의 칼날에 시를 쓴다. 피로 쓴다. 나의 시는 지금
뒤집어 놓은 작두날 위를 무당처럼
맨발로 걷는다. 위태로운 작두날의 좌우는
천 길 핏빛 낭떠러지,
병사(兵士)의 빛나는 총검 끝에 나비가 앉듯
내 시의 작두날 위에도 매화가 피어날까?
꽃 같은 중용(中庸)의 새 한 마리 칼을 물고
이 그믐밤 어둠의 눈보라 속을 날아간다.
―조명제
「섣달 그믐밤에 매화를 생각하다」
후반부
나는 내가 생각하는 시정신의 중용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썼다. 그 이름이 순수든 절대든 참여든 그 부질없는 용어에서 벗어난 참된 시란 무엇인가. 무당(시인의 원조는 무당이다)이 맨발로 작두날 위를 춤추듯 걷는 그것, 감히 권력이, 폭력 이데올로기가, 위선이 범접할 수 없는 상태, 좌도 우도 아닌 날카롭고 위태로운 작두날 위에 선 무서운 균형, 그러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정신의 기준, 그것이 절대순수시가 지니게 되는 저항의 논리다. 비평가 김주연은 “문학의 본질은 영원한 반체제이며 혁명이지만, 그러나 그 성공을 믿지 않는 슬픈 모반자”이며, 문학작품을 창출하는 개인은 “아무리 완벽한 자아로 고립된다 하더라도 필경은 그 스스로 사회현실을 온몸으로 부인·비판하는 하나의 증거물 노릇”을 하게 되는, 한 시대의 대표자로서의 개인인 것이라고 하였다.(「비극적 세계관과 새로운 생명」, 『현대문학』, 1993년 6월호, 163~167쪽)
일제는, 찍어 눌러서 깔아뭉개 버릴 반항아도 아니고, 아첨하며 기어드는 얍삽한 녀석도 아니고, 엄혹한 강압에도 자신을 작두날 위에 세우고 성찰하는 청년 윤동주 같은 인물이 가장 다루기 힘들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그를 결국 일제는 독립운동자로 낙인찍어 차디찬 감옥에 처넣어, 결국 옥사시켰던 것이다.
서울시인협회와 월간 『시 see』가 ‘윤동주 탄생 100년’을 선포하던 날(2월 11일), 이숭원 교수는 「순결한 영혼의 불꽃」이라는 윤동주 주제의 강연에서, “이 타락한 시대에 혼란스러운 시대에 순전한 정신을 지켰으니 이것도 일종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나가고 태극기를 들고 나가고 그런 거 안 해도 순결한 마음을 지키면 저항이다. 윤동주는 그런 저항을 한 것이다.”(월간 『시 see』, 2017년 2월호, 65쪽/ 민윤기 정리)라고 하였다. 윤동주 시대에는 순결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저항이라는 견해는 지금까지 펼쳐 온 이 글의 논지와 일치한다.
5
사르트르가 생각한 ‘패배함으로써 승리를 확보하는 일’은 시의 원형질적인 운명이다. 첨예한 인간정신을 대변하는 시정신은 현실의 부정을 통해 이상적 세계를 그려 보여주는 것으로, ‘무용(無用)의 용(用)’의 세계와도 통한다. 장자의 비유에서처럼, 당장 우리가 서 있는 데 필요한 땅의 넓이가 두 발바닥만한 것이라고 해서 그 주변을 천 길 낭떠러지로 파내어 버린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니 쓸모없는 것이 더 쓸모 있는 것이 된다. 즉, 시는 당장은 무력해 보이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인간과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를 거부하고, 현실을 부정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역으로 삶다운 삶을 꿈꾸게 하는 영속적인 힘을 지니는 것이다.
한 못된 시대의 붕괴나 몰락은 문학의 저항적 사회참여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권력, 특히 독재 권력이 갖는 자체의 모순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 예사이다. 즉, 거대한 힘을 가진 권력의 구조나 사회구조의 종언은 문학의 직접적인 참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간접적 관여, 곧 우회적 방법을 특질로 하는 문학적 진폭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은 그것의 간접성에 의지한다. 이따금 문학의 사회 관여에 대해 사태의 뒷북만 치는 정치의 시녀라는 비난이 따르는 것도 바로 이 문학의 ‘한심한’ 간접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조급성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거대한 상처의 기록인 문학은 혁명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조짐에 관여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은 당대 현실에 대한 공동의 고통과 함께 그 것을 문제 삼으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징후가 됨으로써 사회 변혁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의 이같은 간접성이 문학의 영속적 영향력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며, 그것의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성질인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는 그 아까운 젊은 나이에, 불의로 조선을 강점한 일제의 칼날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침묵의 시로, 자학과 참회의 방법적 시정신으로 항거한 것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 시인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문예운동』 2017년 겨울호에서 전재)
조명제:
시인, 평론가.
월간 『시문학』 시 천료, 계간 『예술계』 문학비평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제1회 일지창작지원금 공모 당선. 제17회 중앙문학상 수상.
시집 『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 문학비평집 『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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