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산 태안사(桐裡山泰安寺) /동리산문(桐裡山門)
- 전남 곡성군 죽곡면
裏 속 리/ 인터넷 자료에 한자 표기가 이렇게 되어 있다.
裡 속 리/ 태안사 일주문에 표기된 한자.
흐린 날 늦게 찾은 산사, 자세히 볼 기회는 아니였다.
더 날이 어둡기 전에 봐야 하기에 서둘렀다.
방문 전 태안사에 대하여 검색하여 공부하지 못했다.
가을날, 인연이 만들어 진다면 '조태일시문학기념관'에서 걸어 들어와야겠다.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사찰과 봉두산(鳳頭山)을 만나면 좋겠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1(742), 신승(神僧) 3인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3인의 신승, 이름은 알 수 없고 창건 당시는 대안사(大安寺)라 칭했다.
광자대사가 중창, 동리산파의 개산조인 혜철국사가 이 절에 머물렀다.
이후 태안사는 선종인 동리산문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조선시대 효령대군(태종의 차자, 세종의 형)의 원당(願堂)이 되어 조정의 지원을 받는다.
일주문
주차장에 있는 사찰 안내판. 여느 사찰과는 다른 형식을 하고 있다.
화장실이지만 운치가 있다.
능파각(凌波閣)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능파는 아름다운 여인이 잔물결 이는 물 위를 걷는 모습을 의미한다.
작은 계곡 위에 지어진 정자.
능파각을 지나면 숲길이지만 그 길이 길지 않다.
<일주문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수리 중이다. 단청을 새로 하는 모양이다. 일주문은 성속(聖俗)의 구분이다.
일주문 뒤편에 봉황문(鳳凰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봉두산, 봉두는 봉황의 머리이고 봉황은 오동나무에 앉아 오동나무 씨만 먹는다고.
그런 연유 때문에 봉황문이라고 했을까? 절과 봉황, 동화사에도 봉황문이 있다.
공사 중인 일주문을 통과하지 못 하고 옆으로 도니 예쁜 연못이 보인다.
탑까지 들어가 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일주문 뒤편 부도밭이 있다.
광자대사탑 /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 / 보물 제275호
탑신이 훼손되어 탑이 분리되어 있다. 좌측에 탑신, 우측에 귀부와 이수.
광자대사(廣慈大師)는 신라 경문왕4년(864)에 출생, 고려 혜종2년(945) 입적.
자는 법신(法身), 법명은 윤다(允多)로 태안사의 3세조(三世祖)이다.
보제루(普濟樓)인 만세루(萬歲樓)이다.
대웅전
삼존불
개산조사 혜철국사 영정, 대웅전 안에 있다.
3세조 광자대사 영정
적묵당
해회당
범종각
삼성각
예쁘다. 꽃 때문인가?
약사전
배알문(拜謁問)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 보물 제273호
적인선사탑비
혜철국사(惠哲國師)
원성왕1(785) ~ 경문왕1(861), 속성은 박씨. 시호(諡號)는 적인(寂忍)
자는 체공(體空), 호는 혜철(慧徹), 법명은 혜철(惠哲), 동리화상(桐裡和尙)이라 불렸다.
영주 부석사에서 화엄종을 공부하였다.
당나라 유학, 남종선(南宗禪) 계통의 지장선사의 문하에서 수선.
<경덕전등록> 제9권의 기록에 따르면
지장선사의 법통을 4명이 받았는데 그 중 3명이 신라의 승려였다고 한다.
도의(道義)선사, 홍직(洪直)선사, 혜(慧)선사이며 혜선사가 혜철이다.
선종(禪宗), 교종(敎宗) 등 언어가 가진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선종의 종류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知山門), 홍척(洪陟)의 실상산문(實相山門), 혜철(惠哲)의 동리산문(桐裏山門), 도윤(道允)의 사자산문(獅子山門), 낭혜(朗慧)의 성주산문(聖住山門), 범일(梵日)의 사굴산문(闍崛山門), 지증(智證)의 희양산문(曦陽山門), 현욱(玄昱)의 봉림산문(鳳林山門), 이엄(利嚴)의 수미산문(須彌山門)을 말한다.
선종은 석가가 영산(靈山)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았다는 데서 기원하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기 때문에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전한 뒤 혜능(慧能)·신수(神秀) 등에 의해 선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크게 대두되었다.(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이곳 암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성기암. 태안사에서 150m 올라와야 된다.
성공전(聖供殿)이란 이름이 생소하다.
성기암에서 본 봉두산 정상. 봉화의 머리부분. 태안사는 봉황이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흐린 날에 7시가 넘었다. 태안사 전체를 주마간산격으로 보고 간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태안사엔 승무를 출 때 사용하는 청동 바라, 대바라(보물 제956호)가 있다.
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천순명동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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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충혼탑...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절 입구에 있다.
시인의 부친은 태안사의 대처승이었다. 여기 기념관 있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조태일이란 시인의 이름이 입에 맴돌았다.
아, 이런 분이었구나. 독재와 군부정권에 저항하였던 분이다.
1980년대 말이나 초에 나는 저항 시인의 시집을 제법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분의 시집이 없다.
기념관 밖 마당에 전시된 시화를 봤다.
이렇게 절절히 잘 쓰여진 시, 그 시인의 시집이 없다니.....
조태일 시인도 5.18유공자,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이 분의 시비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