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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중보기도(창18:1-21)
* 아브라함이 세 나그네를 대접함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언약을 하심 * 하나님께서 소돔에 대한 심판 계획을 알리심
(1) 아브라함이 세 나그네를 대접함.
① 아브라함의 길손 대접. ㆍ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때는 오정 즈음이었다. ㆍ세 사람의 나그네가 아브라함 앞에 나타났으며, 아브라함은 생면부지의 길손을 영접해 들여서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 ㆍ그들은 아브라함 부부에게 기한이 되면 아들이 있으리라는 기쁜 소식을 남기고 떠난다. 이 약속은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인데, 이제 그 성취가 임박해진 것이다.
② 하나님의 시험. ㆍ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간성이 좀 더 온전하게 되기를 기다리셨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방문하셨으며, 아브라함은 극진한 친절로 대접함으로써 하나님을 감동시키셨음에 틀림없다. ㆍ이러한 시험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주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가 아니라 주리고 목마른 행인으로, 헐벗고 병든 나그네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가 어떻게 대접하는가 시험하신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니라”(마25:45)고 말씀하신다.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언약을 하심 “아브람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18:18)
ㆍ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기 위해 함께 나갔으며, 그때 여호와께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시면서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17)고 말문을 여셨다. ㆍ하나님은 옛날에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셨던 축복의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다시 한 번 보증의 말씀을 주셨다. ㆍ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언약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히셨다. 그것은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것을 이루려 함이니라”(19)는 말씀이었다. ㆍ이처럼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무조건적이 아니라 조건적인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구원은 무조건적이지만, 구원 후의 축복은 조건적인 요소가 충족되어야 된다.
(3) 하나님께서 소돔에 대한 심판 계획을 알리심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18:20-21) ㆍ나그네 세 명의 일행 중 두 천사가 아브라함과 작별인사를 하고 소돔을 향해 떠났으며, 한 분은 남았다. 남은 분은 놀랍게도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ㆍ하나님이 누구신가?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해 놓고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8:27)라고 고백했다. 이렇게 크신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셔서 미천한 아브라함 앞에 서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그 같은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ㆍ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여호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소돔에 대한 심판의 소식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속 편히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소돔에는 사랑하는 조카 롯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ㆍ여호와께서도 아브라함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자 기다려 주셨다(창18:22). 하나님은 의로운 신자의 요구사항을 듣기를 기뻐하신다.
2. 중보기도 내용.(창18:23-33)
▲ 첫 번째 탄원(23-26)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려나이까(23) 그 성중에 의인 50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24)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할 것이 아니니이까(25) 여호와께서 사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50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26)”
▲ 두 번째 탄원(27-28)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27)의인 중에 5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5인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45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28)”
▲ 세 번째 탄원(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4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40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29)”
▲ 네 번째 탄원(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3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30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30)”
▲ 다섯 번째 탄원(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거기서 2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20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31)”
▲ 여섯 번째 탄원(32-33)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10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10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32)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33)”
(1) 하나님의 속성을 배려하며 드리는 기도이다.
① 조심스러운 기도. ㆍ아브라함은 막무가내로 자기의 소원을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았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한 성(城)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다면 거기에는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ㆍ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는’ 식으로 기도했다. 기도는 무조건 부르짖는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고 사려 깊게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될 것이다.
② 아브람이 초점을 맞춘 하나님의 속성. ㆍ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질문식의 기도를 드렸다. ㆍ그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으며, 그러하시지 않다면 의인(義人)들과 직ㆍ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는 성 안의 사람들을 용서하실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ㆍ아브라함이 처음에 제시한 의인의 숫자는 50명이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소돔성 안에 조카 롯과 그 식구들을 포함하여 최소한 50명 정도의 의인은 있으리라고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2) 인내의 기도이다.
① 반복하여 요청함. ㆍ아브라함은 여섯 번씩이나 반복하여 질문하면서 하나님께 집요하게 매달렸다. ㆍ중보기도는 성가시게 강청할수록 아름다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ㆍ그것은 한두 번 기도해 보다가 기도를 그치고 “아마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신앙이거나 영적인 게으름일 수 있다 ㆍ중보기도는,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하다가 안 되면 울고 발버둥 치며 떼를 쓰다 마침내 지쳐서 기진맥진하여 잠드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다. ㆍ모세는 자기 백성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지워달라고 끈질기게 강청했다.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 ㆍ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고 소원했다. ㆍ존 낙스는 자기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지 않는다면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지속적으로 강청했다. ㆍ이들은 모두 자기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목숨 걸고 기도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기도인가! 인내의 중보기도야 말로 하늘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이다.
② 인내의 반대. ㆍ인내의 반대는 낙심과 포기이다. ㆍ기도하다가 낙망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일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실패하여 낙망하면 기도함으로 회복될 희망이나 있지만, 기도하다가 낙망하면 다른 방도가 없기에 무서운 일이다. ㆍ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눅18:1)을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목전에 두고서 낙망해 버리는 안타까운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ㆍ성경은 우리가 기도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기도의 양과 강도는 우리의 필요와 책임과 소명의 정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ㆍ어렸을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바둑을 제패한 조치훈은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좌우명으로 유명하다. 제한시간 8시간을 모두 써가며 한 수 한 수에 혼을 불어넣으면서 바둑을 두는 그의 모습은 마치 목숨을 걸고 진검으로 승부를 내는 검객과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기도한다“는 좌우명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3) 겸손의 기도이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27)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30)
① ‘티끌과 같은’ ‘말씀하게 하옵소서’
ㆍ하나님 앞에서 겸손이란, 자신이 지극히 작은 존재이며, 나아가서 하나님께 구할 자격도 없고 응답 받을 자격도 없는 죄인임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ㆍ성경의 위인들은 한 결 같이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했다. “나는 벌레요”(시22: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욥25:6)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고전15:8) “상(床) 아래 개들”(마7:28) 등. ㆍ사실이 그렇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은 인간의 이 같은 자기 인식을 소중하게 여기신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주께서 나를 붙드심이라”(시3:5)
②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신다.
a. 낮은 곳에 계시는 주님. ㆍ하나님은 내려오시는 분이시다. 성자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오셨으며 종의 신분으로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하나님의 길은 낮아지는 길이다.(빌2:6-8) ㆍ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던 그분은 조그맣고 연약한 아이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애굽의 피난민으로, 순종적인 청소년으로, 또한 평범한 어른으로, 세례자 요한의 참회하는 제자로, 몇몇 소박한 어부들의 추종하던 갈릴리의 전도자로, 죄인들과 더불어 먹고 낯선 자들과 함께 대화했던 사람으로, 소외당한 자로, 죄인으로, 권력에 대해 무기력한 자로, 거창함에 대해 왜소한 자로, 성공에 대해 실패한 자로, 강력에 대해 연약한 자로, 영광에 대해 욕된 자로 사셨다. 나사렛 예수의 전 생애는 상향성(上向性)을 거부하는 일생이었다. ㆍ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막강한 권력을 드러내 보이기를 원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력의 영향력을 함께 나누고 그 분과 더불어 권좌에 앉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들의 야망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낮아지는 길로 향하셨다. ㆍ그 분은 자신이 고난 받아야 함을 선언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20:22)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6)고 반문하셨다. ㆍ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제자들에게도 요구하셨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마10:24)
b.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c. 탕자의 비유. ㆍ예수님은 ‘탕자의 비유’의 말씀에서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를 우리에게 제시하셨다. ㆍ탕자는 한때 그는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눅15:12)라며 당당하게 아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재산을 챙겨 집을 나갔었다. ㆍ그러나 그는 변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19)고 결심했으며, 실제로 아버지를 만나자 그는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21)라고 고백했다. ㆍ아버지는 아들의 돌아옴과 함께 그의 변화를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었다. 아버지 앞에 고개 숙인 아들의 품꾼의식! 탕자는 이제야 아버지의 진정한 아들이 된 것이다.
d. 수로보니게 여인. ㆍ예수님은 딸의 병 고침을 위해 엎드려 간청하는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고 짐짓 냉정한 반응을 보이셨다. ㆍ그 순간 그녀는 어떠한 믿음을 보였는가?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8)라고 대답했다. 곧, 자기는 ‘개’와 같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고백했던 것이다. ㆍ예수님은 이 말에 감동하셨으며, 곧 바로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29)는 응답을 주셨다.
(4)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기도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33)
①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에서 기도를 그쳤다. ㆍ어떤 사람은 렘5:1의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고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ㆍ하나는 왜 아브라함이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더 끈기 있게 기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소돔성의 운명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② 과연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내려가야 했던가?
a. 이 같은 주장은 억측이다. ㆍ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대로 안 되면 하나님께서 손해 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거나 하나님께 명령하듯 기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의 소산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옳게 여기는 교만한 생각이다. ㆍ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구하지 않더라도 우리 이상으로 소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끈질기지 못했기 때문에 소돔이 멸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
b. 아브라함은 최선의 기도를 드렸다. ㆍ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교훈은 아브라함은 끈질긴 질문을 통해 하나님께 자기의 의도를 충분히 다 표현했고,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중심을 이미 다 받으셨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충분히 기도했다고 생각되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나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고집스러운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ㆍ그러므로 이제 아브라함은 계속 자기의 요구사항을 구하기보다는 자기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지혜로운 믿음의 태도이다. 그리고 평소의 자기 생활로 돌아가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를 지켜본 후에 다시 기도하면 될 것이다. ㆍ우리는 기도할 때 결코 하나님을 납득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칼빈은 “자기의 생각을 단념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는 그만큼 하나님을 반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③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 ㆍ예수님은 피와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신 후에 모든 일의 결정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셨다. ㆍ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말씀하신 후에는 일어나셨다. ㆍ그리고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26:46)고 말씀하셨다.
④ 모세의 비스가산의 기도. ㆍ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하나님께 구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3:26)는 말씀이 주어지자 더 이상 자기 소원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았다. ㆍ그는 자기의 사명이 ‘거기까지’임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신34:5)
⑤ 바울의 자신의 질병을 위한 기도. ㆍ바울은 자기 육체의 가시 제거를 위해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응답이 그에게 주어지자 그는 기꺼이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겼다. ㆍ“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8-9)
⑥ ‘끈질긴 간구’와 ‘하나님께 맡김’의 경계선. ㆍ대체로 우리는 주기도문 가운데 처음의 세 간구, 곧 하나님의 이름ㆍ하나님의 나라ㆍ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는 끈질긴 기도를 드려야 하며 기도의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ㆍ다른 한편 우리는 자신의 신상문제라든가 세상(또는 사회)의 제반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기도하되 어느 시점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이 성경의 위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이다. ㆍ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기도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 반드시 열납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구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구한 것을 얻을지, 못 얻을지를 알지 못하면서 막연하게 해서는 안 된다. ㆍ우리는 기도할 때 구한 것을 얻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5) 중보기도이다.
① 중보기도의 중요성
a. 예수께서 중보기도의 삶을 사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다. ㆍ예수님은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시기 직전 베드로를 향하여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22:31-32)라고 말씀하셨다. ㆍ이 밖에도 예수님께서 지상생애 기간에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였노라”고 말씀하신 사례는 많다. 예컨대 멸시받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눈길을 보내신 주님의 시선,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를 쳐다보시던 주님의 슬픈 눈빛, 재산포기에 도전해 볼 용기가 없어 주님을 따르기를 포기했던 부자 청년을 향하신 주님의 안타까운 시선, 멸망의 날이 다가 옴을 알지 못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던 주님의 눈물, 그리고 소경ㆍ귀머거리ㆍ벙어리ㆍ귀신들린 사람ㆍ각종 병자들ㆍ죽은 사람에게 손을 대시고 치료하신 손길 등은 모두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였노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대변한다. 요17장은 예수님의 중보기도의 모범이다.
ㆍ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하고 계신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b.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롬8:26)
c. 선지자들과사도들도 중보기도에 힘썼다. ㆍ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 안 하는 것을 죄로 인식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12:23) ㆍ신약성경의 바울 사도의 기도도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d.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정하신 명령이다.
e.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수단이다.
f. 중보기도는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는 확고한 믿음의 고백이다.
g. 중보기도는 세상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킨다.
중보기도는, 우리가 차를 운전할 때 차에 엔진의 추진력을 전달하기 위해 기어를 맞물리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시킨다.
h. 중보기도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증거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가득한 사랑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i.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j. 중보기도는 자신에게 영적 유익을 준다. 중보기도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 속에 들어가는 것은 때로 그 타인의 고통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영혼의 상태와 삶을 검색해 보도록 이끈다.
② 중보기도의 자세.
a. 중보기도는 들음에서 시작된다. ㆍ중보기도는 상대방의 진정한 필요와 아픔을 들을 수 있는 호의적인 귀와 마음을 가짐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상대방이 입으로 말한 것 말고도 그의 마음이나 몸의 언어까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ㆍ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를 잘 들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만남의 공간이 되셨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품을 수 있는 너그러운 내면세계를 가질 수 있다면, 하나님과 나의 친구들이 그곳에서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ㆍ진정 상대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물론이려니와 그를 자신과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하며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있을까?
b. 중보 기도자는 자신과 상대방을 동일시한다. ㆍ우리는 다른 사람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그가 느끼는 대로 같이 느끼고, 그가 생각하는 대로 같이 생각하며, 그가 보는 대로 같이 보고, 그가 삶을 이해하는 방식대로 동일하게 이해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성육신의 정신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간 존재의 피부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가 사는 방식대로 똑같이 삶을 경험하셨던 것을 의미한다. ㆍ네 명의 친구가 한 중풍병자를 치유 받게 하려고 지붕을 뚫고 그를 예수님 앞에 내리운 사건은 중보적인 사랑의 좋은 본보기이다. ㆍ에스라는 타락한 백성을 위해 기도할 때 백성들의 범죄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울면서 기도했다. ㆍ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기도했으며,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ㆍ예수님도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시며 우셨다. 타인을 위해 흘리신 주님의 많은 눈물의 기도는 중보기도의 멘토이다. 눈물은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의 정도에 비례한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3)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5:7)
c. 중보기도는 타인에 대해 우리 마음에 새겨진 것들을 주님께 열어 보이는 것이다. ㆍ중보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내 심령의 골에 새기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여, 여기 내 마음에 새겨진 것들을 보소서” 하고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중보기도는 평소의 우리의 모든 삶의 파편들의 모임일 수밖에 없다. ㆍ그러므로 좋은 중보기도는 즉흥적이 아닌 평소의 끊임없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요구한다.
d. 중보기도는 기도자의 순결을 요구한다. ㆍ중보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정제된 의식’으로 삶을 영위할 것을 요구한다. ㆍ중재자가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어떤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순결이 먼저 필요하다. 막힌 통로는 쓸모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그런 통로는 모든 것을 오염시키며 불쾌하게 넘쳐흐르게 하는 원인이다. ㆍ우리는 결코 인간적인 동정이나 일시적인 감정으로, 또는 칭찬이나 자기 과시를 위한 마음을 가지고는 고통 받고 병들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람들과 한 몸이 될 수 없으며, 그들의 짐을 질 수도 없다. 그런 태도는 오래지 않아 쇠퇴하여 사라져 버린다. ㆍ오직 ‘예수 사랑’의 마음에서 드리는 순수한 기도만이 우리로 하여금 고통 받는 자들과 한 몸 의식을 갖게 하고, 그 의식을 더욱더 깊게 하여 그들 없이는 살 수 없고 그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전까지는 아무런 평화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까지 우리를 심화시킨다.
e. 중보기도는 기도자의 희생적 삶을 요구한다. ㆍ중보적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나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타인의 고통 속에 뛰어들어 그들의 삶에 동참하는 것을 요구한다. ㆍ참된 중재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를 본 받아 기도와 호소, 그리고 자기희생으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ㆍ모세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라고 기도했으며,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고 소원했다.
f. 중보기도는 노동이다. ㆍ중보기도는 집중과 끈기와 성실이 요청된다. ㆍ예루살렘 교회의 장로이며,주님의 육신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낙타 무릎으로 유명하다.
g. 중보기도는 영적 싸움이다. ㆍ세상사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작용이 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영적 싸움일 수밖에 없다. ㆍ성경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사탄과 악한 영들, 곧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영들에 대한 것임을 환기시킨다.
h. 중보기도는 합심해서 기도할수록 축적된 힘을 발휘한다. ㆍ여러 명의 신자가 합심해서 지정된 사람이나 지정된 목적을 위해 기도할 때 특별한 영적 영향력이 작용한다. ㆍ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도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쓴 결과이다.
i. 중보기도는 매번 다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ㆍ예수님도 예루살렘의 멸망 문제를 놓고 눈물을 흘리셨으나 결국 망하고 말았다. ㆍ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놓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으나 결국 망하고 말았다. ㆍ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중보기도도 꼭 우리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중보기도를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완성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j.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의대상이신 하나님이시다.
3. 하나님의 조치와 응답.(창19:28-29)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들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8-29)
(1) 소돔의 멸망과 롯의 가정 구출. ㆍ아브라함의 기도가 비록 소돔성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변경시킬 수는 없었으나, 사랑하는 조카인 롯과 그 딸들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끌어낼 수는 있었다. ㆍ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다.
(2) 의인의 가치. ㆍ아브라함의 기도의 내용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깨우쳐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수를 세고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의 가치를 한 성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 크게 보신다는 것과, 그리고 한 성의 흥망성쇠가 의인의 유무(有無)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ㆍ실로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한 사람의 의인만 발견되어도 그 성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실 때에도 심판의 기준은 의인의 수였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의를 행하여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4. 우리의 기도.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을 알았다. 그곳에는 조카 롯과 그 가족이 살고 있었다.) (1)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드린다. 나의 중보기도를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대상을 우선순위별로 정리해 본다.
(2) 진정한 중보기도를 드린다. 상대방의 필요와 아픔을 들음으로, 나와 상대방을 동일시함으로, 순결한 마음으로, 희생적 삶을 각오함으로, 집중과 끈기로, 영적 싸움임을 의식함으로, 합심함으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기도의대상이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중보기도한다.
(3)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서 질문식 기도를 드린다.
(4) 인내의 기도를 드린다.
(5) 티끌, 벌레, 구더기,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개 등 겸손의 마음을 가진다.
(6) 기도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맡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