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좀 해봐
계몽주의 사상가 중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이마누엘 칸트(1724~1804)를 꼽는다. 칸트는 집에서도 생활계획표를 짜 놓고 철저하게 시간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낮에는 강의 준비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후 1시가 되면 친구들을 초대해 식사하고 3시가 되면 산책을 했다. 이웃들은 칸트가 지팡이를 손에 든 채 보리수 나무 길을 지날 때면 정확히 오후 3시 반임을 알았다고 한다.
성당의 시계보다 더 규칙적으로 일상의 업무를 수행하며 살았다는 칸트. 그 처럼은 못할망정 선진 국민들의 준법정신과 약속 지키기, 예약문화를 우리도 배워야겠다. 그래야 서로 편하고 보다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병원 갈 때는 당연하고, 이발소나 미용실에 갈 때도 꼭 예약 하고 간다고 한다.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회 전 총무한테 전화가 왔다. “6월 야유회 모임을 앞두고 혼자 추진하느라 고생이 많지! 참가 인원수에 너무 연연하지 마. 그냥 내버려 두었다, 오는 친구끼리나 하면 돼.”
올해로 총무를 맡은 지 3년이 된다. 모임 때마다 문자로 전화로, 수없이 독촉해야 30명 정도 모인다. ‘누가 느려터진 충청도라 안 할까 봐 그러는지’ 참석할 거면서도 미리 참석한다는 말들을 끝까지 안 한다. 이번 행사는 버스를 대절해 대천지역으로 가려고 추진 중이다. 날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지만 확실히 간다고 문자 온 사람은 10여명에 불과하다. 대천항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는데 몇 명이나 예약해야 할지. 점심 식사는 또 몇 명이나 예약해야 할지. 기념품은 몇 개나 준비해야 할지. 예산을 수반한 사항이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매일 휴대폰을 붙잡고 나 혼자 애를 태우고 있다. 오늘도 식구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전화 요금은 받고 하는 거야! 이건 무슨 콜센타도 아니고 뭘 그리 나오라고 사정사정해...” 오늘도 한마디 듣고 밖으로 나왔다. 재작년 봄, 아내한테 초등학교 동창 총무가 됐다고 하니 그걸 왜 맡았느냐며 은근 화를 냈다. “고등학교 반창회, 퇴직자친목회 총무까지 하면서 또 맡았어? 자기! 가만 보면 엄청나게 감투 좋아해” 하며 비꼬았다. 적임자가 없어서 할수없이 맡았다고 했지만 싫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충남 당진 신평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51년이 지났다. 작년에는 50주년 행사로 생존해 계신 은사님 두 분을 모시고 회고의 말씀도 듣고 조그만 기념품도 드렸다. 10여년 만에 담임 선생님을 다시 뵈었다. “지금 마음 같으면 잘해 주었을 텐데 60년대 엔 너무나 어렵고 가진 게 없던 시절이라, 너희들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벌써 세상을 떠난 25명의 친구에게 ‘우리만 살아남아 이렇게 기쁜 날 맞아 미안하다’고 묵념도 올렸다.
오랜 세월에 흔적인가? 한쪽 모서리가 삭아서 너불너불한 빛바랜 졸업앨범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기와지붕 목조교실, 조개탄 연기 솔솔 나던 양철 굴뚝, 사이다만 먹어도 즐겁던 소풍, 개선문. 용진문 가을 운동회 모습에 다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마지막으로 가사도 아련한 교가를 합창하며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 2개월 전부터 문자 보내고 전화도 했다. 40명은 오겠지 하고 예약했는데 35명만 참석해 5명분의 식대를 변상해야만 했다. 올해엔 또 몇명분을 예약해야 할지 벌써 걱정한다.
“친구들아! 제발 속 좀 그만 썩이고 나 좀 도와줘. 이제는 나잇값을 하고 살아야지. 이러고도 어른이랍시고 아들. 손자에게 훈계하며 살 수 있겠어. 여유 있으면 찬조도 조금 해주고, 친구들과의 예전 나쁜 감정 일랑 다 잊고 좋은 것만 보고 살자. 남 흉일랑. 절대 보지 말고 칭찬이나 자주하며 그리 살자. 모임 연락가면 답장 꼭 해주고....” 우리나라처럼 학연, 지연을 많이 따지며 사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동창회, 향우회는 어디를 가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성황이다.
특히 남자들은 초등부터 대학까지 동창회에 다니는 게 제일 큰일이다. 한 달에 몇건씩 쫓아다니다 보면 시간도 많이 뺏기고 지출도 만만치 않지만 좋은 점도 많다. 친상이라도 당하면 열 일 제쳐 두고 전국에서 모여들어 상부상조의 미덕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워주고 발인식까지 함께하고 나면 정말 고향 친구들이 고마워진다. 어제는 멀리 광주에 사는 죽마고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미안한데 이번에 바빠서 못 가겠어. 몇 명이나 오려나, 영광 모시떡이나 택배로 보내 줄게” 한다.
너무 힘들게 그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친구 성격에 이번에도 선행을 베풀 것 같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장맛비처럼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무척이나 고맙고 힘이 났다. ‘친구야 너는 빈손으로 와도 좋아.’ 초등 친구들은 만나면 제일 편하긴 한데 매너들은 빵점이다. 우리가 직장 다닐 때는 모임 연락만 오면, 바로 전화해서 수고한다며 참석 여부를 알려주고 살았다. 그런데 고향 초등 친구들은 연락해도 대부분 가타부타 말이 없다. 행사 때마다 몇 번씩 당부하건만 그날 지나면 그만이다.
정말 문제가 많은 당진 사람들이다. 어릴 적 고향 친구들이니까. 말 안 해도 대충 다 알겠지, 이렇게 생각하나 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번에 행사를 마치고 나니 어떤 친구는 뷔페식당을 누가 정했냐며 비싸기만 하고 맛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평일에 날 잡아서 하면 직장 못 간다고 불평, 주말에 하면 예식장 못 간다고 불평, 시골 친구들은 버스를 보내줘야 오겠다는 등 참 말이 많다. 그중에 매번 잘 떠드는 친구가 한명 있어 내가 작심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나 올 연말이면 끌나니까. 다음엔 네가 총무 해라. 내가 꼭 너를 추천할게” 했더니 “누가 총무한데” 하며 쟀싸게 도망갔다.
첫댓글 ㅎㅎㅎ 제목이 참 좋네요.
총무님 하느라 고생 많으시죠. 어디서든 총무하는 분들은 성격 좋고 평판이 좋더라구요~^^*
강 선생님 부족한 글이지만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6.4일날 뵙겠습니다.
ㅎㅎ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초등 친구분들은 대체 왜 그러신대요??? 그 말 많은 분 꼭 시키셔요~ 전 해당사항이 전혀 없어서..^^;
국장님 답장이 늦었어요.
나름대로 애로 사항이 많으실 거예요.
늘 마음만이라도 성원 하겠습니다.
이 국장님!
이번 제 입회업무 처리하시느라 고생하시고,
또 그토록 환영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옆집에 마실오는 마음으로 들렀다가 동창회 이야기에
아우내 장터에서의 옛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국장님의 마음 한켠을 엿볼 수 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이선생님 부족한 제 글까지 다 읽어 주시고...
대단히 감사 합니다.
좋은 작품 많이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