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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도법스님, 이종민(기대리선애빌 주민), 최광식(순례단), 박달한
진행: 김재형 (선애학교 선생님)
기록: 권명심 (한생명)
● 참가자 인사
정상혁 보은 군수님 인사말씀 외 참가자 소개.
● 토론 진행
김재형(진행자): 동학으로 본 화쟁으로 토론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명평화와 관련된 내용이 동학에서 온 경우가 많습니다. 도법스님께서 그동안 순례하면서 거쳐 왔던 동학의 현장들, 화쟁의 경험들을 나누면서 질문도 받고 하면서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소개부터 하면서 시작하시죠.
이종민(기대리선애빌): 갑자기 이 자리까지 앉게 되니까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보은군 기대리에 공동체 마을을 일구어 살고 있습니다. 주민하고 학생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고 도법스님이 하시는 말씀도 토대로 삼아 공부를 해 왔는데 좋은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도법스님: 순례하고 있는 도법입니다.
최광식: 저는 저 자신을 아직 잘 모릅니다.저는 노가다를 하는데요, 노는 아니다를 뜻하고 가다가 일본말로 틀인데, 틀에 갇히지 않은 삶을 사는 최광식입니다.
박달한: 보은 지역의 박달한입니다.
김재형(진행자): 동학운동을 10여년 동안 해오셨는데 박달한 선생님부터 얘기를 시작해 주시죠.
박달한: 올해로 17년째 동학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문화가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우리의 많은 활동들이 서구의 이론으로 활동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우리 전통속에서 충분히 우리 시각으로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나, 그래야 하지 않나 해서 동학을 우리의 텍스트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진행했습니다. 하고 있는 것은 일 년에 한 번씩 행사하는거 외에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그런 뜻이 풀어지는 것은 아닌데 이걸 왜 계속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잘 되지는 않고 그런데 왜 계속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하)
최광식: 보통 종교의 가르침이 신은 따로,사람 따로 이런 거거든요. 신은 높은 곳에 계시고, 사람은 밑에 있고. 동학의 가르침은 사람이 하늘이라는 거잖아요. 니가 하늘이고, 내가 하늘이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겠어요? 하늘이라는 자각을 가지면 우리 사회의 갈등이 풀어질 거라고 봅니다.
도법스님: 다녀 보면 사실은 역사유적이라고 하면 대부분 싸움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가 겪었던 역사의 경험인데 굉장히 가치 부여를 하는 역사적 사건이 동학이죠. 그런데 동학 현장을 무수하게 가게 되는데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동학의 한이. 동학, 증산교 이런 게 다 한으로 남아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2005년인데 전남 장흥을 가면, 거기가 동학의 마지막 격전지이고 동학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데, 거기는 아직도 동학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진보는 동학, 보수는 체제 수호자. 여전히 해결이 안 되고 있더라고요. 동학 정신의 후예들이 대부분 돌아가시면 과연 장흥 지역에서 동학의 싸움이나 동학의 한이 끝이 날까, 해결이 될까, 현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해요. 하나는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람 모시기를 하늘 모시는 것처럼 해라. 이게 동학사상의 핵심이잖아요. 이걸 가지고 깊이 있게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사람을 하늘 대하듯이, 하늘 모시듯이 모시는 게 동학이라고 한다면 동학군을 탄압했던 당시 관료들이라고 할까요,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학을 탄압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탄압받는 사람들끼리는 하늘인데, 탄압하는 사람도 하늘로 모시지 않는다면 논리적 모순인데, 그 얘기를 한 번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인내천이라는 사상을 높이 평가하는데 실제 현실에 적용을 했을 때 과연 제대로 적용됐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이루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당시에 동학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혹세무민이 중요한 이유가 됐어요. 동학군이 혹세무민한다.그래서 정부가 동학을 탄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동학이 혹세무민하는 부분이 있었을까, 이런 부분을 짚어내야 동학정신을 기리면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희망을 말하는 게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리해보면, 하나는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이 하는 게 동학이라고 했을 때 우리를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동학혁명이라고 하는 게 척결, 청산론으로 가는 게 과연 사람으로 모시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누군가는 하늘로 모시고 누구는 척결,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게 정당한가. 혹세무민으로 가는 부분, 걷어내야 하는 부분이 없었는가 하는 거에 대해서 동학을 논하면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종민: 동학에 대해 해방운동의 역사로 공부한 적은 있지만 뭐라고 말씀 드릴 처지는 못 됩니다. 저희가 공동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맥이 닿아있는 거 같아요. 왜 공동체로 살고 있는지는 구성원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희가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면 하늘이고 하늘이 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마을공부와 명상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수십 년 산 부부도 이해 못하고 싸우는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게 어렵습니다. 소유권을 따로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자금을 통합적으로 모아서 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게 되고 치고 받으면서 공부를 해오고 있습니다.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건 죽을 때까지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고, 하지만 남을 탓하지 않는다는 점,남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 일을 같이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를 풀 때, 그 문제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객관적인 논리로 풀어나가되 일은 일로서 풀어나가고 거기에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풀어나가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재형(진행자): 명상을 공부할 때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생각이 조금만 공부해보면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도법스님께서 중요한 문제제기를 해 주셨는데, 우리하고 반대되었고 대립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인내천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지, 적대적인 사람들이 우리를 비판할 때 쓰는 혹세무민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었는지 얘기해 봤으면 합니다.
박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있는데 죽임과 살림의 관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고 가는 관계가 있는데 혹세무민도 마찬가지에요. 어느 입장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 같습니다.동학의 미신적인 요소들, 혹세무민이라는 부분들이 있다고 들어왔는데, 경전에 병이 낫게 하는 약이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 된다고 나옵니다. 정성을 들인 사람은 되고, 정성을 들이지 않은 사람은 안 되었다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전해져오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학의 탄압 이유에 대해서는 체제전복이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탄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기존 체제에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으면서까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국군대를 불러오잖아요. 청군을 불러들이면 일본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말리지만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 외국군대를 들이게 됩니다. 공동체적인 시각을 갖느냐 안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은데, 양반같은 경우도 동학군을 척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물자를 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거죠. 사람이 하늘인데, 머리하고 가슴하고의 갈등, 이게 저도 고민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따귀를 두 대 때릴 때는 웃으면서 대할 수 있는데, 열 대를 넘게 때린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저 사람이 사탕을 줄 때는 좋아하지만 따귀를 열 대 때리고, 손목을 부러뜨리는데, “하느님 왜 이러십니까?” 이럴 수 있겠는가. 수운선생, 혜월선생은 체제에 반하는 것은 하지 않았었거든요, 동학민중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이 때가 아니라고 했었고, 멈추게 하려고 했었고, 전체적으로 동학은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는 않았었구요, 보국안민에서 탐관오리를 솎아내는 것, 썩은 구더기를 솎아내는 것이었는데, 혜월선생은 그러다가 몽둥이라도 들고 나와서 싸우자고 했는데.
최광식: 혹세무민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혹세무민이 나쁜 것인가? 먼저 깨닫는 사람이 아직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혹세무민이라면, 기득권층에서 보면 나쁜 것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득권 세력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인가? 어떻게 보면 더 불행하고 영혼의 불안 속에 헤매는 사람들이 아닌가?
도법스님: 주문을 외우고 부적을 붙이는 것, 이런 것들, 합리적이지 아니한, 과학적이지 않은, 신비한 이런 것들. 동학이 신비를 얘기하고 기적을 얘기하고 불가사의를 얘기할 때, 주문을 외우고 부적을 불살라서 신비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건 안 된다고 봐요. 그렇게 가게 된다면 혹세무민으로 가는 쪽으로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봐요.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거랑은 다른 얘기죠. 병도 나았다 하고, 죽은 사람도 살아났다하고 이런 게 혹세무민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거죠. 동학, 증산도에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혹세무민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박명수 교수, 동학전문가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종교라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동학이 신비를 얘기하고 기적을 얘기하려면 사람을 하늘로 모시니까 기적이 일어나더라, 신비가 일어나더라,불가사의가 일어나더라,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고 봐요. 동학이 시대의 정신으로, 시대의 희망으로 살아나려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얘기해야 합니다. 동학하는 분들은 불편한 얘기지만 이 부분은 다듬어내야 동학의 정신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고, 시대정신으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는 데 신비가 있고 기적이 있다, 이것을 설득력있게 얘기해내야 한다고 봅니다. 간디 같은 경우는,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데 동학에서 척결의 사고방식,간디는 척결의 사고가 없어요. 영국이 적인데, 간디의 비폭력이라고 하는 것의 내용을 보면 진실과 사랑의 실천 행위가 비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비폭력이라는 말 속에는 주먹뿐만 아니라, 심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을 다 포함합니다. 적을 상대할 때 기본적인 원칙이 비폭력입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대한다는 겁니다. 진실과 사랑의 행위가 비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적을 대할 때도, 목숨을 다해서 싸울 때도 비폭력으로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학을 한 분들에게서 그런 설명을 못 들었어요. 주문 외우고 부적 불사르면 신비한 기적이 나타난다는 설명은 많이 들었는데, 이래서 동학의 정신을 빛낼 수 있겠는가, 우리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 있죠.
이종민: 혹세무민이라는 문제가 그 당시 민중들의 의식 수준과 같이 가는 거 같은데요, 많은 종교들, 예수님과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고, 그 당시 민중들의 의식 수준에 맞춰서 법을 설명한 게 아닌가 합니다. 동학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당시 민중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그랬던 게 아닐까 하고, 지금은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간디의 사상이 지금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많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불가피하지만 그 대립을 통해서 대립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60억명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고 성격이 다 다를 수밖에 없고,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나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런 수준이 공동체와 그 사회의 수준이라고 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싸울 수 있다고 보는데, 척결이 아니라 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끝까지 싸워야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하느냐, 간디의 방법이 그 당시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옳았다고 보고. 그 당시 의식 수준에 맞게 나오는 방식이 혁명이라고 보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현재 의식 수준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김재형(진행자) : 동학의 두 가지 성취는 계급, 신분제를 넘어선 거 같아요. 인내천 같은 단순한 말 한 마디로 표현해서 계급을 넘어선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의식이 생기게 한 것, 여성의 가치를 찾아낸 것에서 동학의 가르침이라고 봅니다. 베 짜는 여성에 대해 혜월선생이 베 짜는 하늘님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어떤 신비적 작용을 통해서 하늘님으로 볼 수 있었던 것, 이런 점이 도법스님이 말한 부분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구요. 당시 조선시대가 갖고 있던 문제가 전염병이었어요. 콜레라로 많이 죽었는데 동학하는 사람들은 많이 죽지 않았어요. 그건 신비죠.그런데 신비가 아니라 물을 끓여 먹은 거였어요. 이것이 사람을 하늘로 모시는 과정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이런 게 신비였을 거 같아요. 이종민 선생님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갈등과 고통을 많이 겪고 있는데 도법스님이 화쟁코리아 순례하시는게 갈등과 대립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화쟁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 싶으신 거 같은데 여기에 대해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달한: 신비체험과 간디 부분에 대해 짤막하게 제 생각을 얘기하겠습니다. 주문을 외우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데, 혜월선생님은 그걸 천어라고 얘기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신비한 소리를 들어서 얘기하는데 혜월선생님은 안 되니까 겨울에 찬 물에 들어가고 방안에 빛도 안 들어오게 하고 하다가, 다시 찬물에 들어갔는데“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는 말이 들렸었대요. 그래서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간디 부분에서 저도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당시 영국 식민지 상태와 동학 민중혁명 당시의 상황은 다르다는 거죠. 동학 민중혁명 당시 일본군에 의한 죽임이 있어서 혜월선생이 기포령을 내렸어요. 살육의 현장에서 몽둥이를 들었다는 거죠. 화쟁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 자타불이나, 인내천처럼, 이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같아요. 동학에서는 인내천에 대해서,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로 대하라)에 대해서 이해하면서 생활양식 속에서 실천해 냈죠. 양반 상놈에 대한 구분 없이 맞절을 한다던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힘든 것은 저 사람이 내 목을 치고, 내 팔을 자르는데, 그냥 하느님하고 모실 수 없는 거잖아요? 생명의 살림과 죽음, 생명의 순환의 상태가 있는데, 동학에서 드는 생각은 상대방이 진짜 아닌 경우가 있을 때 어떻게 하느냐, 기억나는 말은 “공경하되 멀리하라” 이 말이 기억이 납니다.
최광식: 저는 화쟁을 저 스스로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화쟁순례 발걸음을 시작했구요. 나를 죽이고, 내 에고를 죽이고,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살아가게 하는 것,나만 그래서는 안 되고, 상대방도 에고를 내려놓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과 그대 안에 계신 하느님이 만나는 것이 진정한 화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가 내가 정신 차려서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상대방에게 그것을 강요할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만 하늘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자연까지 하늘로서 모시면 화쟁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수운 선생님을 통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아직 실행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농민전쟁,농민혁명과 관련된 장소는 회자도 많이 되고 기념관도 짓고 했는데, 아직 수월선생님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가자: 일제시대 같은 경우도 어린이 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동학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당시는 어린이나 여성이 사람 대접을 못했기 때문에 혁명적으로 봤는데,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20세기에 교육을 받은 우리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합니다. 선과 대립된 개념을 불선, 덜 선한 것으로 보면 되는데, 지금은 선과 악으로 봅니다. 대립하게 되고 화쟁하기 어렵죠. 이기와 이타가 구분이 되지 않아야 하나가 되는 지점으로 가는데, 감정과 사건을 어떻게 구분하면서 대처해야 할까 이 지점을 짚어야 하겠습니다.
김재형(진행자): 조선시대를 통틀어 제사를 중요한 정치질서, 가정의 문제로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지나면 제사가 허례허식이 되어버립니다. 기독교는 들어오면서 제사를 우상숭배로 철폐하면서 대립하고 갈등했는데, 혜월스님은 제사는 중요하지만 허례허식은 잘못 됐다라고 보고 허례허식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밤 12시가 아니라 점심 먹을 때 하자고 해서 불편한 것, 허례허식을 모두 없앴습니다. 제사의 대상을 조상에서 사람에게로 내려오게 하는 것이 화쟁이라고 봅니다.
이종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집단을 포용하는 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화쟁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 타인이 하늘이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늘이기도 하면서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세월호 선장, 회사의 사장이 어떤 입장에서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정리
도법스님: 원효스님에 의해서 제시되어 진 것이 화쟁사상인데, 세계관, 가치의 문제가 있어서 논리가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핵심적인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진실에 입각해서, 진실에 토대해서, 두 번째는 진실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수용하면 다툼은 없어진다는 논리거든요. 그렇게 봤을 때 중요한 것은 진실을 잘 드러내는 거잖아요. 진실을 부정할 수 없잖아요. 예를 들어보면 경상도 사람들은 박정희대통령이 최고라고 얘기합니다. 전라도, 진보진영은 김대중대통령이 최고라고 합니다.진실은 뭘까요? 진실이 두 개 일수는 없는 거잖아요. 박대통령이 최고일까? 김대통령이 최고일까? 제 삼의 시선으로 보면 예측되는 결론은 뻔하죠. 사람인 이상 절대적으로 훌륭할 수는 없죠. 잘 한 것도 있을 수 있고 못한 것도 있을 수 있고, 완벽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진실을 인정하고 수용한다고 한다면 양쪽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미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보니까 내 생각만 하는 겁니다. 화쟁이라는 것이 진실을 토대로 하고 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동학과 연결시키면, 사람이 하늘이다, 이 표현은 사람이 최고다 이런 말이죠. 동시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겁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하늘이다, 여자든 남자든, 상놈이든 양반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이 진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존중하고 수용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몸짓이 사람을 하늘로 모시는 행위라고 봐요. 사람을 하늘로 모시는 것이 화쟁이다, 이렇게 정리해도 괜찮다고 봅니다. 사람을 하늘로 모시는 것이 진실이고 이 진실을 수용하고 인정해서 이 진실에 맞게 잘 받들어 모시는 행위, 이것이 진실을 수용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사람을 하늘로 아는 것, 이 진실에 맞게 사람을 받들어 모시는 것 이것이 화쟁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청중들의 질문 및 소감
포교사 : 화쟁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화쟁이 진실이라는 거를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아서 가겠습니다.
보은리 주민: 스님이 정리하시는 두 가지를 들었을 때 첫째는 두렵고 그리고 반갑습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렵다라고 하는 것은 산 속에서 닭을 키우고 살지만 요즘처럼 사람이 무서웠던적이 없습니다.흑과 백, 중간에 있다가는 돌 맞을 거 같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마흔 아홉 살입니다.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요즘 생각은 인생에 대한 목표가 돈이나, 권력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떠서 땀 흘려 일하고 저녁에 편히 잘 수 있다는 거 말고는 가치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드는데, 스님은 신문에서 보면 열심히 하시고, 열심히 걸어다니시는 거 같아요. 적당히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사시며, 봄꽃이 필 때 튼튼하건 약한 나무이건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는데 스님께서는 갖고 있는 모든 열정을 꽃피우듯이 사시는 거 같습니다. 제 결론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지 듣고 싶고 그거에 따라 저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보은리 주민 아내: 저는 충만감으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요즘 봄꽃이 지는 걸 보면서 피기는 어려운데 훅 지는 걸 보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게 나중에 훅 가는 건데... 올해 불이 나고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위로의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도법스님: 인생은 허무해요.(하하) 일찍 좀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좀 늦은 감이 있네요. 불교 사고방식은 이렇죠. 인생은 영원한가, 허무한가? 어떻습니까? 영원하다고 하는 게 맞습니까? 허무한 게 맞습니까?
정윤주등불님 : 때로는 영원한 게 맞구요, 때로는 허무한 게 맞습니다.
도법스님: 불교는 그거를 양극단이라고 해요. 실상을 왜곡시킨 견해다라는 겁니다. 인생을 허무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단견, 극단적인 견해다라고 하는 거죠. 인생은 영원한 거야라고 하는 것도 실상을 왜곡하는 단견이라고 합니다. 양극단을 벗어나야 한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중도입니다. 실제로는 인생은 허무하다고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의 관념이죠. 영원하다는 것도 우리의 관념이죠. 실제는 허무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영원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굳이 말로 설명을 해야된다면 실제는 영원하지도 않고 허무하지도 않다, 또는 영원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뭔 말인지 잘 모르겠죠? (하하) 불교 사고방식으로는 그렇게 설명한다는 겁니다. 인생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생을 허무하다고도 할 수 있고 영원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아인슈타인식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은 우주라고 하는 유기적 생명체를 형성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와 인간을 분리해서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은 관념이지 실제가 아닙니다. 태어나면서 시작하고 죽으면서 끝난다고 하는 것은 관념입니다. 실제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 진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죠. 인생을 허무하다고 하는 것도 병이고, 영원하다고 하는 것도 병일 수밖에 없습니다.이 병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은 매 순간 순간을 사는 겁니다. 영원하다는 관념,허무하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 이 두 가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지금 현재를 온전히 살 때 가능합니다. “너 왜 이렇게 악 쓰고 다니냐?” 그런 거잖아요? (하하) 글쎄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런 허구의 감정, 영원의 감정, 이런 것에 구속되거나 끌려다니지 않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온전하게 살고 싶은 몸짓이 그렇게 나타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애요. 그리고 또 그렇게 얘기해요. 난 자포자기한 인생이야. 자포자기한 인생이 지금 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살고 있다고 얘기해요.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최선의 몸짓, 이것을 농담으로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고 있고, 그게 죽기 살기로 사는 거로 나타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위로해 달라고 하는 분은 나를 위로해 주세요. 그러면 본인이 위로될 거에요.(하하)
김재형(진행자): 저는 불이 두 번 났는데, 2년 동안 번 돈이 날라갔어요. 그런데 2년이라는 시간과 불이 났던 한 시간이 같은 시간일 수 있구나라는 것을 배웠어요. 동아시아 사람들은 즐거움이라는 게 중요하더라구요. 스님 보면 자포자기라기 보다는 즐거우신 거 같아요. 자포자기라고 하는데, 이렇게 안 살면 스님은 힘드실 거 같아요. (하하) 이렇게 살지 않으면, 나를 비워버린 상태에서 즐기지 않으면 얼마나 슬픔에 빠지는지 몰라요. 지금 페이스북을 보면 모두가 울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안 울고 있더라구요. 그건 슬픔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즐거움을 꾸준히 발견하는 사람들은 자기 방어력을 키울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걸 못하는 사람들은 쉽게 무너져요. 화쟁코리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거 같아요. 선애빌 가족들을 보면 정신이나 의식으로 건강하신 거 같아요. 즐거움을 찾아서 살아가는 축복 같아요.
차량이동 9시30분 법주사.
일과마무리.
유성기업 철탑농성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측의 이야기도 듣고싶어졌다. 그들에게도 분명한 사정이 있을 것 같다.
대화마당에서 인생은 영원하다 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는데 영원하다고 느껴지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무위님께서 우리에게는 순간만이 존재하고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 때, 영원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하신다.
동학에 대해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을 하늘로 모실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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