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물] 3장 재현하기
1.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중세 기사 소설에 빠져 본인이 기사라고 생각하며 모험을 한다. 그리고 가축의 무리를 군대로, 하녀를 귀부인으로, 여인숙을 성(城)으로 본다. 그는 닮음의 원리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돈키호테」가 발표된 17세기의 사고의 본질은 더 이상 닮음이 아니라 같음/다름(동일성/차이)이다. 그래서 기사 소설의 표지를 세상에서 찾아다니는 돈키호테는 유비 속에서 이성을 잃은 문학 속 주인공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유사성이 동일성/차이의 엄정함에 의해 무시되는 이 시대에 여전히 유사성으로 사고하는 두 부류가 시인과 광인이다. 시인은 기호의 언어와 그 분별작용 안에서 닮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비유를 찾지만, 광인은 기호 사이의 닮음을 끊임없이 확산시키면서 결국 기호 자체가 사라지도록 한다. 광인과 시인 사이에 열린 지식의 공간에서는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차이가 본질이 된다.
2. 질서
베이컨은 유사성은 우상이고 차이를 인식하는 신중한 정신만이 이 오류를 떨쳐낼 수 있다고 했다. 데카르트도 닮음을 배제하고 동일성/차이, 크기와 순서의 견지에서 사물을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닮음을 거부하면서 비교의 방법을 사용한다. 단위를 통해서 균등/불균등 관계를 분석하거나(치수의 비교), 특정 요소의 강도에 따라 차이를 배치한다(순서의 비교). 이때 비교를 통해 인식되는 것은 사물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물이 인식될 수 있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사물은 관점에 따라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17세기에 ‘합리주의’라는 새로운 에피스테메를 부여한다. 유비가 비교를 통한 분석으로 대체되어 완전한 열거가 가능해 지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 쪽으로 열린 유사성의 체계가 비교를 통해 완벽한 확실성에 이르고자 하며, 정신의 활동은 단순한 비교를 넘어 차이를 식별하게 된다. 사물에는 근본적인 불균형이 존재함에도 사물의 관계가 질서와 크기의 형식 아래서 사유되면서 분석이 보편적인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일반문법, 자연사, 부의 분석 같은 질서의 과학이 출현한다. 16세기에 해석이 유사성의 인식이었던 것처럼 17세기에는 기호의 정돈으로 모든 지식이 동일성/차이에 관한 지식이 된다.
3, 기호의 재현
고전주의 시대의 기호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1)개연성: 기호는 인식되는 순간부터 존재하며 미지의 기호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는 확실한 것과 개연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며, 인간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존재할 수 는 없다. 그래서 지식은 디비나티오(divinatio:점, 예언)와 멀어지며 인식의 내부에서만 기호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2)분석과 조합: 기호는 의미하는 것에 포함이 되면서 동시에 의미하는 것과 분리되어야 한다. 기호가 의미하는 것과 기호 자체가 함께 인식되어야 기호가 작동한다. 그래서 기호의 성립은 분석을 요하며, 기호는 분석의 결과이면서 수단이 된다. 또한 기호는 세계를 분석하면서 동시에 조합해서 정연하게 배열한다. 기호에 의해 사물들이 개별적이거나 동일성을 유지하고 서로 나뉘고 관계를 맺는다. 3)체계의 자의성: 기호는 자연적이거나 관습적인데, 이 중 완전하게 작용하는 기호는 관습적(인위적) 기호이다. 인위적 기호는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특징으로 상상을 의지적 기억으로, 자연스러운 관심을 성찰로, 본능을 합리적 인식으로 변화시킨다.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에서는 보편적 계산과 기본적 탐구가 하나의 인위적 체계에 속한다. 고전시대 기호로서의 언어는 분석하고 조합하는 언어로 실질적으로 계산의 언어여야 한다. 이러한 개연성, 분석과 조합, 체계의 당연한 자의성을 인식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기호들의 체계이다.
4. 이중화된 재현
의미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의 관계는 인식의 내부에서 한 사물의 관념과 또 다른 사물의 관념의 관계이다. 과거에는 후자에서 전자의 표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닮음이 전제되었지만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 닮음에 의한 사유가 사라지면서 이항구조로 대체된다. 이 이항배치는 기호가 이분화되어 재현이 이중화된다. 의미하는 관념과 의미되는 관념 사이에 재현관계가 확립되고 또한 의미하는 관념 내부에 이 재현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현은 지시이자 출현이며 대상에 대한 이해방식이자 자기발현이다. 이 과정에서 기호는 재현과 외연(外延)이 동일해지면서 재현의 분석과 기호의 이론이 뒤섞이게 된다. 이렇게 기호가 재현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의미작용의 이론이 배제되며, 기호는 기호의 내용을 지배할 수 있는 법칙만 갖게 된다. 의미는 기호의 연쇄적 전개가 되며 기호의 분석으로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기호의 이항체계는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은 둘 다 재현되면서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기호의 이론은 관념학이 된다.
5. 닮음의 상상력
17세기에 닮음의 사유가 배제되기는 하지만 닮음 때문에 재현이 인식될 수 있다. 닮음은 상상력에 기대어 작용한다. 상상력이 없으면 사물사이의 닮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재현은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상상력의 무질서함과 애매한 닮음(부정적 계기)은 동일성과 차이를 분석할 때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학적 진리에 도달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상상력(긍정적 계기)은 무질서한 자연에서 닮은 것들을 재현해 낼 수도 있다. 자연의 분석하는 상상력은 최초의 인간(루소), 깨어나는 의식(콩디야크), 세계에 내던진 외부의 목격자(흄)이라는 신화적 형태로 전개된다. 17세기의 닮음은 지식의 변경으로 밀려나 상상력, 불확실한 반복, 흐릿한 유비와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해석의 과학이 아니라 동일자의 조잡한 형태에서 동일성/차이/순서에 따라 발달된 광범위한 지식까지의 발생쪽으로 진행된다.
6. '마테시스'와 '탁시노미아'는 다음시간에 이야기합니다. 10시를 넘길때까지 한 장을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한줄 한줄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읽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안되던 내용을 세미나를 하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지만 참 쉽지 않습니다.
다음시간은 4장을 읽고 이야기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