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알아보는 地名의 속내>
2023. 2. 27 <潭陽편> 厚堂 高 光 昌
地名은 옛날 우리 先人들께서 지어주신 것인데 훗날 지명에 걸 맞는 시설물이 들어서는 걸 보면 선인들의 先見之明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靈光(신령한 빛) - 원자력 발전소), 高興(높이 세우다) - 우주선 발사기지
地名의 由來를 알아보면 지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알 수 있으나 지명이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즉 그 地名에 숨은 뜻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지명의 변천사도 알고 싶지만 그 보다는 지명의 속내 즉 지명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하다. 그러나 지명의 속내를 알아보려면 그 지역의 특징이나 지리와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潭陽은 못 담(潭)자와 볕 양(陽)자를 쓰는데 ‘陽’자는 볕이 잘 드는 陽地라는 뜻으로 담양의 동쪽과 남쪽에 큰 산이 없어 볕이 잘 들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潭陽에는 못(潭)이 한 곳도 없는 곳인데 지명에 왜 ‘潭’자를 쓰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명의 속내를 알려주는 책자도 없고 그런 시설물들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도 없었다. 하지만 모르고 있는 동안은 궁금하고 기대도 되지만 막상 지명의 속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예로부터 담양하면 대(竹)와 죽제품(대 바구니)이 떠오르는 곳이다. 담양은 가는 곳 마다 대(竹)가 많은 竹鄕이다. 대(竹)는 죽제품은 물론 김 양식과 건축자재로 널리 쓰여 비싼 몸값을 지니고 있어 대(竹)를 金에 비유하여 대밭을 살아있는 金밭 즉 ‘生金밭’이라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담양은 군 단위 지명은 물론 면 단위 지명 어디에도 ‘竹’자가 들어가는 곳이 없었다. 못(潭)이 하나도 없는데도 ‘潭陽’이라 부르면서 ---
그러던 중 1976년 영산강유역농업종합계획으로 추진된 사업의 일환으로 광주호와 담양호가 완성되었다. 한꺼번에 못(潭)이 두 군데나 생긴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무릎을 치면서 ‘아하! 그렇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선인들이 地名을 잘 못 지을 리가 없지’ 하였다. 담양읍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담양호는 북쪽에 있고 광주호는 남쪽에 있다.(광주호는 광주와 담양의 경계선에 걸쳐져 있어 ‘광주호’라 부르지만 광주호의 물은 담양 고서들녘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담양의 호수나 다름없다)
潭陽은 볕이 잘 내리쬐는 곳인데다가 위아래로 북쪽에서는 담양호가 남쪽에서는 광주호가 친환경적인 自然 加濕氣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작물 생육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天惠的인 조건을 갖춘 고장이다. 담양호는 담양관내 식수 상수원과 농업용수로, 광주호는 농업용수로 긴요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재배된 영양분이 풍부한 작물들은 좋은 먹거리로 담양군민은 물론 광주시민들에게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이제 ‘潭’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는데 ‘竹’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남아 국가인 태국과 베트남에서 값싼 죽제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플라스틱 제품이 개발되어 대(竹)로 만들던 죽제품이 모두 플라스틱 제품으로 교체돼 버리자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竹값이 날개 없는 비행기마냥 추락해 버리고 말았다. 竹의 몸값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추락해 버릴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하지만 담양이라는 지명을 지어주신 선인들은 이런 걸 예상하시고 지명에 ‘竹’자는 넣지 않고 오로지 ‘潭’자만 넣었던 건 아닐까? 만약 당시에 지명에 ‘竹’자를 넣었었더라면 지금쯤 지우개로 ‘竹’자를 지우고 ‘潭’자를 새겨 넣어야할 판이었다. 선인들의 지혜가 대단하시다는 걸 다 시 한 번 깨달았다. 先人 여러분! 감사합니다.
요약하면 ‘潭陽’이라는 地名의 속내는 ‘물이 풍부하고 양지바른 땅’ 다시 말하면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인 것 같다.
지명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화순, 나주, 장성 등 광주 인접 시군은 모두
광주에서 다니는 기차 철도가 있다. 그런데 담양에는 철도가 없어 버스 교통에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1922년에 광주에서 담양까지 ‘全南線’이라는 이름으로 철도가 깔려 기차가 다녔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4년 일본이 2차 대전에 눈이 어두워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데 ‘쇠’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철도를 거두어 가버렸다. (지금은 고서에 ‘장산역’, 봉산에 ‘마항역’ 담양읍 백동리에 ‘담양역‘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철도가 없어지자 담양주민들은 20여 km를 걸어서 광주까지 다녀야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애들도 한 번 주었던 물건을 다시 빼앗아 가면 울고 난리가 아닌데 ---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사람이 함부로 대드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미국이 힘센 나라인 줄도 모르고 미국에 철없이 대들던 일본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맛을 보고서야 두 손을 들고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못된 짓을 하다가 天罰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 철거된 ‘全南線’ 철도는 오늘날 까지도 복원이 안 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潭陽은 어떤 곳인가?
1. 竹鄕
대(竹)의 값어치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潭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대(竹)다. 담양에는 어디가든지 대(竹)가 없는 곳이 없고 지금도 담양에서 볼거리 1호는 단연코 竹綠園이다. 죽녹원은 대(竹)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대숲에 들어가면 맑고 깨끗한 공기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샤워를 하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2. 義鄕
o 고인후의 의병활동 - 임진왜란이 일어나 의병장 ‘고경명’이 의병을 모집하자 창평 처가에 살고 있던 둘째 아들 고인후가 담양에서 의병을 많이 모집하고 지금의 담양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의병대를 조직하고 훈련시키는 등 이곳 담양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o 고광순의 의병활동 - 198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고인후’의 11대 손 ‘고광순’이 좌도의병장이 되어 많은 의병들을 이끌고 전남북 일대에서 왜군들과 싸우다 지리산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 그의 기념관이 창평에 있다.
3. 歌辭文學의 産室
‘정철’을 비롯하여 ‘기대승’‘송순’‘고경명’ 등 많은 詩人들이 ‘息影亭’에 모여 시를 짓고 읊는 등 가사문학의 발전에 커다란 공적을 남긴 곳이다. 그래서 이곳 지명이 최근에 ‘歌辭文學面’으로 바뀌었다.
4. 敎育의 고장
‘고인후’의 10대 손 ‘고정주’가 ‘英학숙’을 세워 제2대 부통령 ‘김성수’,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와’호남은행 사장 ‘현준호‘ 등을 길러냈고 다음에는 ’창흥의숙‘을 세워 ’김병로(대법원장)‘, ’고재욱(동아일보 사장)‘, ’이한기‘(총리), ’고재필(장관)‘ 등 우리나라 큰 인물을 많이 길러냈다. 창흥의숙은 오늘날 창평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고, 최근에는 고정주의 제자 고일석이 창평중‚고등학교를 세워 서울 명문대를 많이 입학시킴으로서 담양이 名實相符한 교육의 고장임을 입증했다.
5. 슬로우시티
2007년 한국 최초로 ‘昌平’이 ‘공해 없는 삶 속에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슬로우시티로 지정을 받았지만 창평뿐만 아니라 담양 관내 전 지역이 ‘슬로우시티’나 다름없다. 산기슭 우거진 숲속에는 반드시 정자가 있고 그 정자마다 옛 시인들의 시나 가사가 적혀있다.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점점이 떠 있고 들판에는 누런 곡식이 널려있고 과일나무에는 과일이 주렁주렁, 참 한가한 농촌 풍경이다.
6. 담양의 볼거리, 먹거리, 인물
(1) 담양의 볼거리- 죽녹원, 소쇄원, 매타세콰이아 길, 메타프로방스, 식영정, 관방제림,
대나무 박물관, 추월산, 영산강 시원지 가마골 용소, 창평 슬로우시티, 딜라이트 담양
(2) 담양의 먹거리- 딸기, 숯불갈비, 떡갈비, 대통밥, 죽순요리
(3) 담양의 역사적 인물
o 송강 정 철(1536) - 정치가(좌의정, 西人), 시인(가사문학 선구자)
작품 -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 100여 수
o 학봉 고인후(1561) - 고경명의 둘째 아들, 예조참의, 문신, 권율장군 휘하 장수
담양에서 의병을 소집하여 왜적과 싸우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
※담양에 고씨가 많은 이유 - 고인후가 순절한 후 그의 5남매(4남 1녀)가 외가인 창평 에서 자랐기 때문
o 춘강 고정주(1863) 고인후의 10대 손, 근대교육 선구자, 영학숙, 창흥의숙 설립
제자 - 김성수(전북고창, 부통령), 송진우, 김시종(장성, 신간회운영), 현준호(영암, 호남은행설립), 이한기(총리), 김병로(전북순창, 대법원장), 고재욱(동아일보 사장),
고재필(장관),
o 고하 송진우(1890) -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 교육자
동아일보 사장 재임 중 손기정 선수 사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사퇴
o 이한기(1917) -법학자, 행정가, 교수, 감사원장, 국무총리
(4) 담양의 현대적 인물 - ‘광사 십오야 밝은 달’ 회원, ※ ( )안 지명표기는 현 주거지
최수현(光州), 조학(光州), 조영모(光州), 정재남(인천), 이정학(光州), 윤재홍(光州), 문수한(서울)
※필자는 潭陽과는 아무런 因緣이 없는 사람으로 潭陽에 대해서는 無知한 사람이다. 그래서 ‘들은풍월’에 따라 몇 자 적었으니 웃으면서 즐겁게 보아 주시되 혹여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기록 중에 高씨가 자주 나오니 필자가 좀 멋쩍기는 하지만 이건 역사적 기록인지라 어쩔 수 없으니 널리 해양하여 주시길 바라옵고 --)
담양의 현대적 인물인 ‘십오야 밝은 달’ 회원들이 자기 고장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시니까 ‘담양’이라는 지명의 속내를 써주었더라면 좋았으련만 담양에 대해서 無知한 사람이 쓰게 되어 담양의 현대적 인물 諸賢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 다른 지역 지명의 속내는 돌아가면서 그곳 출신 회원들이 써주시되 그 내용을 우리 카톡방에 올려 모두 함께 즐겁게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2023.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