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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25일 월요일, 맑음.
*걷기- 열닷새 날
*보아디야스 델 카미노(Boadillas del Camino)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까지.
*이동거리 : 25.5km.
*누적거리 : 379.5km.
태양이 뜨는 아침은 늘 같지만 하루도 그 모습이 같은 날은 없는 것 같다. 날이 새는 아침 길도 같은 길은 없고 또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아주 멋진 아침이다. 동이 트는 동쪽을 뒤돌아본다. 마을 급수탑이 검게 세워져 있다.
우리는 길고 넓은 수로를 만났다. 수로 길을 따라 걸어간다. 수로라기보다는 운하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카스티야 운하 (El Canal de Castilla)다. 프로미스타에는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근대적인 업적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카스티야 운하다. 나무가 늘어선 한적한 길을 따라 프로미스타로 흔른다. 이 운하는 카리온 강과 피수에르가 강의 물을 티에라 데 캄포스 평원에 고루 분배한다. 운하 공사는 18세기 중반에 시작해서 19세기 초반에 끝났다.
운하의 길이는 200km가 넘으며 카스티야 내륙 지방과 칸타브리아 해안 사이의 물류 이동을 담당했다. 현대식의 피수에르 운하가 관개를 목적으로 설계되었다면, 이 수로는 옥수수 방앗간을 돌리는 힘뿐 아니라 경작된 곡물의 수송까지 담당했다.
이후엔 관개수가 흐르는 운하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엔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이동한다든가 말을 타고 운하를 따라 달리는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화석 연료가 출현하고 나서 이제 이 수로는 관개와 낚시 용도로만 사용된다.
최근 지역 정부는 50개의 수문들과 함께 수로 체계를 재건하는 계획을 공표하였단다. 수로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동트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수로 가에 세워진 고목들도 정겹고 수로에 갈대가 질서 있게 자라고 있는 것이 울타리 같다.
아침 공기는 약간 춥다. 참새가 가지 끝에서 조용히 아침을 맞는다. 운하 옆에 있는 창고 건물에는 낙서가 보인다. 멋진 아침이다. 멀리 설산도 보인다. 고도가 높은 메세타 지역에 운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한참을 운하를 따라 걸어간다.
수양버들이 멋지게 늘어진 곳에 주택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자동차도 보인다. 운하 선착장에는 사람타고 다니는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다. 경사가 급하고 좁아지는 높은 수로가 나온다.
예루살렘 4,478km,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424km, 로마 1,587km, Fromista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바로 옆 작은 창고 같은 건물 앞에는 커다란 책이 돌 밭침 위에 펼쳐져 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수로 위로 사람이 다니도록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프로미스타 운하의 수문이다. 우리는 발아래 만들어진 수문 위로 수로를 건넌다. 수문은 사용되지 않고 있단다. 수로의 좁은 다리를 건너 제방 아래로 내려가면 길이 헷갈린다. 기찻길이 보이는 도로 지하로 가는 길을 가야한다. 프로미스타 마을이다.
기찻길 아래를 지나 중심가의 교차로에 이른다. 교차로 오른쪽 방향으로 꺾어 다시 왼쪽으로 가면 산 마르틴 광장이다. 어제 머물렀던 곳에서부터 도착한 프로미스타 마을도 팔렌시아 주에 속해 있다. 팔렌시아 주는 논과 밭의 땅이다.
강과 운하가 비옥한 땅에 물을 대주어 넓은 경작지가 잘 가꾸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밀이 경작되며 약간의 야채와 와인도 생산된다. 사아군(Sahagun)의 피수에르가와 시아(Cea)강 사이에 있는 평야다.
붉은색 흙벽을 바싹 말려대는 무자비한 태양으로부터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는 거의 없다. 나무와 돌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흙이 건축 재료가 되었다. 애초부터 공기로 건조된 벽돌들은 결과적으로 작업의 속도와 안정성을 높여줬으나 아직도 오랜 기간 유지되는 데는 부족하다.
언덕 측면에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 족 집처럼 생긴 와인 저장고가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시원한 지하에 저장하기 위해 이 지역 전역에 이런 형태의 저장고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란다.
프로미스타 마을에는 1066년에 봉헌된 아름다운 11세기 건축물 산 마르틴 성당(Iglesia de San Martin)이 유명하다. 순수한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좋은 예로 평가된다.
교회는 절묘한 비율을 지니고 있으며 각각 다른 사람과 동물, 신비로운 모티브가 새겨진, 늘씬한 탑과 문, 아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당나귀, 음악가, 곡예사, 여러 얼굴 등 각각 다른 장식이 되어 있는 주두와 300개가 넘는 추녀 받침이 독특하다.
성당 내부의 주두에 새겨진 인물들은 중세 석공들의 비밀결사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후손들에게 은밀한 장소를 알려주는 힌트라고 한다. 한때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피나는 노력으로 재건되면서 국립 기념물이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관광버스 무리가 이 ‘관광객이 반드시 봐야 할’ 장소를 돌아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이 성당은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카스티요의 성모 성당(Iglesia de Nuestra Senora del Castillo)도 보인다.
카스티요 성모 성당은 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1944년 스페인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을의 다른 편 끝에는 15세기 고딕 양식 성당, 산 페드로가 있다. 산 페드로 성당 (Iglesia de San Pedro)은 아름다운 현관과 봉헌화, 패널화 등이 있다.
성당 안엔 패널에 스페인 플랑드르 양식으로 그린 종교화 29점이 소장된 작은 미술관이 있다. 보다 경건한 분위기 이며, 성 야고보의 동상과 함께 설치된 종교적 예술품을 보유한 작은 박물관이다.
카미노에서 프로미스타의 중요성은 중세에 오스테리아 팔메로스 같은 여러 순례자 병원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팔로메스는 ‘성스러운 땅’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귀감이었고, 그의 상징은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를 나타내는 조가비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종려나무 잎이었다.
프로미스타는 라틴어로 곡식을 뜻하는 프루멘툼(frumentum)에서 유래했다. 이 지역이 팽창하는 로마제국에 엄청난 양의 밀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서쪽 산티아고가 아니라 로마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동쪽 방향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프로미스타는 해발 800m 고원지대에 있다. 한마디로 프로미스타는 티에라 데 캄포스(Tierra de Campos)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마을이다.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있고 놀라운 카스티야 운하와 돌에 새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메시지, 파문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카스티야의 밀밭에서 태어나 뱃사람들의 수호자가 된 성인의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뱃사람의 성인을 만나다. 영어권에서 성 엘모(St. Elmo)로 불리는 성 텔모는 뱃사람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내륙 도시 프로미스타에 뱃사람 수호성인의 조각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것은 프로미스타에서 태어나 뱃사람의 수호성인이 된 성 텔모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성 텔모의 불은 바다에서 풍랑이 난 다음 불빛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뱃사람들은 갈리시아 해안에서 설교하며 살았던 성 텔모가 풍랑에서 그들을 도와주려고 나타난 것이 이 불빛이라고 믿었다.
교회와 주택들을 만난다. 누구를 위하여 성당의 종은 울리나. 마을마다 있는 성당은 가장 높은 곳에 외부나 내부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신자는 거의 없고, 성당은 새들의 보금자리. 종탑은 두루미들의 집이 있고, 성당입구 포치엔 비둘기들, 성당 내부엔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가장 공들인 인간이 하나님 집을 떠나고 새들이 차지한 현실이 안타깝다. 육교 앞에는 순례자 모형도 있다. 직선 도로와 함께 걷는 길은 하늘 구름이 멋지다. 손 모양의 조각이 엄청 크다. 마을이 보이면서 작은 성당이 우리를 맞아준다.
산 미겔 성당 (Ermita de San Miguel)이다. 매력적인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에 초기 고딕 양식이 보인다.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Población de Campos)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다. 언덕 위에는, 막달레나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Magdalena) 이 있다.
성당까지 이르는 길은 경사가 져있고, 마을의 벽돌 벽에는 아랍식 기와를 얹은 지붕이 있는 집들이 있다. 산 미겔 성당 근처의 가로수 길은 이 마을의 매력을 보여준다. 이 마을은 1410년 알폰소 7세에 의해 예루살렘 성 요한 기사단에 기부되었다.
시간이 오전 9시 경이 되었다. 아침 식사를 해야겠다. 빵과 커피가 땡긴다. 작은 카페(BAR-Tienda "Los cigüeños")를 들어갔다. 하몬과 치즈가 들어가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카페라떼와 함께, 돼지고기 염장한 하몬 덩어리를 기계에 넣어 얇게 썰어주고 치즈 덩어리도 기계에 넣어 얇게 썰어서 커다란 바게트 빵에 넣고 반으로 뚝 잘라준다.
6유로다. 뜨거운 우유 커피와 함께 먹는다. 꿀맛이다. 하몬치즈 빵 반은 포장해서 점심에 먹기로 했다. 하몬(Jamón)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하는 방식으로 숙성한 햄(Ham)이다.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며, 원 단어의 뜻은 햄으로 만든 특정한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소금에 절인 뒤 말린 햄을 통칭해서 '하몬'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 돼지가 고대 스페인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냉장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고 오래도록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 말린 데에서 시작되었으며, 따로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슷한 건조 육류인 살라미 등과 비교하면 기름기가 적은 편이다. 따로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을 수 있으며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에 끼워 먹거나 치즈 등과 함께 술안주로 먹기도 한다. 마을길도 농로다. 시청 광장에는 급수대가 있고 포플러 나무가 조용하게 지키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레벵가 데 캄포스(Revenga de Campos) 마을이다. 순례자의 십자가, 프랑스 길이라는 거리가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 까미노 마을이다. 또한16~17세기의 오래된 집과 스페인 역사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태어난 곳이다.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옆에 있는 작은 기념물은 이 마을에서 태어난 바르톨로메 아모르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는 독립전쟁 때 침략자들과의 전쟁에서 팔렌시아 시를 지켜낸 인물이다. 투박한 동상에는 Jacobeo 2004라고 적혀있다.
야고보인지 바르톨로메인지 모르겠다. 오래된 주택들이 마을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밀밭 옆에는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도로와 농로가 마을에 함께 있다. 계속 마을이 이어진다. 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Villarmentero de Campos) 마을이다.
아담한 마을로 멀리서 보면 지평선과 혼동하여 지나쳐 버리기 쉽다. 마을 안에는 벽돌로 지은 아담한 집이 있다. 그림 같은 풍경 안에 지친 영혼에 안식을 주는 시원한 샘이 있으며 우람한 소나무가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그늘을 제공한다.
이곳은 알폰소 6세가 왕이었을 때 볼페헤라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란다. 산 마르틴 데 투르 성당(Iglesia de San Martin de Tours)이 있다. 아비뇽에서 사라진 산 마르틴 데 투르의 유해를 실은 노새가 이곳에 나타나자 성당의 종이 저절로 울렸다고 전해지는 성당이다.
성당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돌과 벽돌, 목재 들보로 지은 소박한 16세기 건축물이다. 정원이 넓은 카페가 반갑다. 일단 들어가 벤치를 차지하고 앉았다. 햇살 가득한 정원이 따스하다. 커다란 조각상도 있고 십자가도 세워 놓았다.
버섯 모양의 조형물들도 정원을 차지하고 있다. 순례자들이 하나 둘 보인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이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출구에 소나무 3그루가 견고해 보인다. 밀밭길을 간다. 석조 십자가상이 나타난다. 도로와 함께 직선으로 걸어간다.
비알카사르 데 시르가(Villalcázar de Sirga) 마을이다. 마을의 규모는 작지만 순례자와 여행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는 마을이다. 맛있는 음식 때문에 유명하고, 템플 기사단의 본거지였다는 점 때문에 마을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관심을 끈다.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라면 반드시 방문해봐야 할 마을이란다. 커다란 광장을 갖고 있는 성당을 마주한다. 블랑카 성모 성당(Iglesia de la Virgen Blanca)이다. 산타 마리아 성당(Iglesia de Santa Maria)으로도 불리며 13세기 템플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성당은 팔렌시아의 고딕 양식 보물로 14세기의 산티아고 소성당이 추가되었다. 고딕 양식의 성상이 있는 박물관이 있고 거대한 석조 블랑카 성모상, 섬세한 고딕 양식 십자가의 길 조각이 있다. 또한 블랑카 성모 성당 안에는 시선을 끄는 고딕양식의 무덤이 세 개 있다.
템플 기사단 기사의 무덤, 현명왕 알폰소 10세의 동생 돈 펠리페, 그리고 그의 두 번째 부인의 무덤이다. 이 성당에 있는 산티아고 상은 두통을 가라앉히는 효험이 있다는데, 두통이 있을 때 손수건을 성인상의 이마에 댔다가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템플 기사단이 세운 성당 중에서 블랑카 성모 성당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블랑카 성모 성당은 블랑카 성모에게 봉헌되었고, 기적이 일어나는 부조 조각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질 뿐만 아니라, 성당 신랑에 있는 우물은 기사단의 비밀 은신처로 가는 비밀 통로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희망의 성모상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성모상이 마치 임신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블랑카 성모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가장 유명한 기적은 성당 건축 중 일어났다.
성당을 짓던 중 건축용 석재가 도난당하자 한 순례자가 범인으로 몰렸다. 그가 교수형 당하려는 순간 성모 마리아가 그의 발밑에 건축용 돌을 놓아주며 무죄를 입증했다고 한다. 현명왕 알폰소 10세는 블랑카 성모가 일으킨 기적을 정리하여 유명한 노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어제 보았던 비슷한 모양의 급수탑도 보인다. 카리온 데 콘데스 6km, 산티아고 463km라는 이정표가 반갑다. 이제는 6km 만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 도착이다. 기운을 내서 또 걷는다. 직선 길이 누런 벌판를 가로질러간다. 하얀 구름이 높다.
몽골 고비사막에서 보던 구름과 비슷하다. 언덕을 넘어가간다. 정면에 마을이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다. 이 마을은 지리적으로 카미노 프란세스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세력이 한창일 때에는 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는데 지금은 2,500명 정도 가 살고 있단다. 카리온 백작 가문인 레오네세 베니-고메스 가문이 통치했단다. 이 가문의 몇 명은 호전적인 엘 시드의 손에 이른 죽음을 맞이했단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매우 어리석게도 엘 시드의 딸을 학대했다고 한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들어오면 16세기~19세기까지 만들어진 귀족들의 집과 건축물을 볼 수 있다. 히론 가문의 집(La Casa de los Giron), 로마나 가문의 집(La Casa de los Lomana), 눈물의 집(La Casa de las lagrimas)이라고 부르는 카사 그란데(La Casa Grande)가 특히 아름답다.
이 저택들을 방문하고 살다냐의 박물관(Museo en Saldana), 낀따니야 데 라 꾸에사의 로마 시대의 마을 등을 방문해보려고 한다. 또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는 순례자들의 눈과 입이 즐겁단다. 아마르기요(Amarguillos; 씁쓸한 맛이 나는 과자)와 토
씨니요스 데 시엘로(Tocinillos de cielo; 돼지고기 요리) 그리고 유명한 살치차(Salchichas순대 같은 음식)라는 후식이 맛있단다.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는 전원 서정가로 유명한 산티야나 후작의 고향이란다. 커다란 흰색 저장 창고 건물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교회 낡은 벽에는 커다란 벽화가 성인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커다란 길 옆에는 성당들이 여러개 보인다. 돌 십자가도 보이고 차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여 반갑다. 커다란 축대 성곽도 있다. 산타 마리아 델 카미노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del Camimo)이 중심이다.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건물로 정문에는 동방박사의 경배가 조각되어 있고, 파사드에는 황소의 머리 조각상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카리온에서 이슬람교도들에게 처녀 백 명을 바쳐야 했다. 그 중 네 처녀가 성모 마리아에게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청했다.
그들을 동정한 성모가 황소 네 마리를 나타나게 해서 이슬람교도들을 쫓아내서 처녀들이 풀려났다고 한다. 이밖에 성당 내부에는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승리의 성모와 도움의 그리스도가 있다. 도로 중앙에는 조롱박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모자를 쓴 커다란 순례자의 동상이 있다.
숙소(Hostal Santiago)를 찾았다. 오후 2시 30분이다. 2층 침대가 아닌 침대 4개가 있는 방이다. 시설이 좀 좋아보인다. 동네 구경을 나왔다. 강과 다리와 성당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시청 앞 광장에 섰다. 시계탑이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식당들이 여러개 보인다. 좀더 내려가니 다리를 건너 공원이 넓게 펼쳐진다. 엘 시티(El Plantío) 공원이다. 수양버들 나무와 잔디가 있어 초록이 가득하다. 곧게 자란 미루나무들이 줄 맞추어 자라고 있다. 강이 흐른다. 카리온 강이다.
축구장이이 있다. 아치를 여러개 갖고 있는 긴 다리(El Plantío)를 만났다. 아치가 열 개는 넘는 것 같다. 순레자의 모형이 들어간 예쁘게 제작된 철판 마을이름이 반갑다. 커다란 수도원 같은 건물이 보인다. 왕립 수도원 호텔이란다.
커다란 조가비 형상이 카이론 이라는 글씨와 함께 바닥에 심어져 있다. 강가 왼쪽 언덕 위에는 커다란 성당이 세워져 있다. 동상과 성당, 그리고 돌 십자가가 보인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간다. 기념품 가게가 열려있다.
지팡이와 우비, 배낭, 신발 등등 순례자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광장 구석에는 여성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다. 박물관 같은 극장 건물도 보인다. Santander 은행도 보인다. 우뚝 선 성모상이 광장을 내려다 보고 있다.
주변에는 성당과 문이 유명하다. 아래 마을, 신시가지로 걸어간다. 사람은 하나도 없고 햇살만 가득하다. 커다란 조형물이 로터리를 차지하고 있다. 경계선 같이 성곽이 길게 이어진다. 저녁식사를 골목 식당에서 했다.
소고기와 토마토 야채 샐러드 그리고 감자칩이 나온다. 순례자 메뉴란다. 11유로다. 물을 구하려고 슈퍼를 찾았다. 무너지는 종탑이 있는 지역을 빙빙돌아도 열린 슈퍼가 없다. 급수대도 말라있다. 겨우 슈퍼를 하나 찾아 물을 샀다.
1.5리터가 0.65유로다 싸다. 사과 3개도 샀다. 2.41유로다. 숙소로 왔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유진이와 통화를 했다. 손톱도 깎았다. 그러고 보니 약을 안먹고 걸었다.
오른쪽 다리는 아직도 부어있다. 통증이 조금 남아있다. 걷는 것도 맵새가 황새 따라가려면 고장이 난다. 자기 속도를 유지해야한다. 오늘도 무사히 잘 걸어왔구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