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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출애굽기 제 2 강 메시지_아산UBF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말씀 / 출애굽기 2:1~25
요절 / 출애굽기 2:24,25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생명역사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하신 말씀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굳건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건지시고 모세를 예비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심을 배우고 하나님께서 쓰임받는 주의 종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2 절을 보십시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같은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낳으면 애굽인에게 주어 나일강에 버려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레위 여자 요게벳은 달랐습니다. 아기를 안고 석 달을 숨겼습니다. 그녀가 아기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파라오의 명령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위험하더라도 아기를 살리고자 결단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23절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아기를 숨긴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석달이 지나 더 숨길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아이 부모는 갈대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여 방수처리 하였습니다. 아기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가 방주를 짓는 장면이 떠오르게 합니다. 이것을 누나가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사람의 아기로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 강을 신성한 강으로 여겼습니다. 나일 강에서 목욕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이 널러 퍼져 있었습니다. 이날 목욕하러 나온 바로의 딸은 어린 자식을 잃은 바 있었습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갈대상자가 열렸을 때 천사가 아기의 뺨을 쳐서 아기를 울렸다고 합니다. 바로 공주의 귀에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녀 마음을 깊은 긍휼로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공주는 아기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누나 미리암은 지혜가 있었습니다. 갈대상자를 나일 강 강가의 갈대 사이에 두었다고 하였는데, 위치가 바로 궁전에서 가까운 곳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미리암은 갈대상자가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고 바로궁궐 사람들이 목욕하러 오는 지점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미리암은 지켜볼 때와 말할 때를 알았습니다. 전해오는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이날 공주가 여러 애굽 여인들을 불러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고 합니다. 아기모세가 다른 여인들의 젖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때 미리암이 나섰습니다.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9,10절을 보십시오. 미리암의 지혜로 인하여 요게벳은 자기 아들의 유모가 되어 젖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공주의 보호아래 아기를 젖 먹이고 키우며 믿음과 경외심도 함께 아기에게 부어 줄 수 있었습니다. 공주는 아기의 이름을 모세라고 하였습니다. “물에서 건져 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스라엘을 노예살이에서 건져내는 일을 할 모세가 물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위대한 모세가 나일강에 던져지지 않고 살아남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는 구체적인 기록이 출애굽기이고 이 역사에 택함입은 사람이 모세인데, 이 모세를 건지는 일에 쓰임받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영적인 덕목이 있습니다.
첫째, 경외심입니다. 요게벳은 눈에 보이는 세상 왕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하였습니다. 권세 있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앞세웠습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들 속에서 생각하고 사람들에 마음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머리로 인식되는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고 보이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믿고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둘째, 긍휼입니다. 바로 공주는 히브리인의 아이임을 보고도 아이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있는 공주를 하나님께서 살리는 일에 쓰셨습니다. 일 중심인 사람은 귀한 일 하기 어렵습니다. 성과 중심인 사람도 큰 일 하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신을 이해받기 원하는 사람도 당연히 하나님의 큰 역사에 쓰임받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내 일을 보조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조차 자아실현의 도구로 삼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용기와 지혜입니다. 미리암은 상황을 잘 파악하였습니다. 갈대상자를 어디에 놓을지 장소를 알았습니다. (지체 높은 애굽 왕궁사람이 와서 목욕하며 갈대상자를 발견하기까지)기다려야 할 때를 알았으며 (멀리서 갈대상자를) 지켜볼 때를 알았습니다. (공주가 여러 사람에게 젖을 먹이려 애쓰는 것을 바라보면서 )인내심을 발휘하여야 할 때를 알았으며 (유모로 쓸 사람을 제가 데려 올까요? 하며) 나설 때가 언제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는 미리암을 위대한 모세를 건지는 일에 사용하셨습니다.
세 사람의 자매님들은 아기 하나를 살렸지만 아기는 자라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큰 일-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온 세계를 구하는 일입니다. ‘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 탈무드에 있는 구절입니다.
11절 전반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장성한 후에” 모세를 나일 강에서 건져 올린 바로공주 하셉투트는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아 20년간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녀에게는 직접 낳은 자녀가 어려서 일찍 죽었기에 양자 삼은 모세 외에 자녀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셉투트는 결혼하여 남편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투트모스 2세입니다. 모세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는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모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하고 번성한 이집트 왕자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선진국 이집트에서 그는 모든 학문과 교양과 무술과 정치를 배웠습니다. 그는 말과 일에 능한 유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출애굽기 성경은 이 세 단어로 모세의 장성한 40년을 기록하였습니다. 11절 후반절과 12절을 보십시오.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며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모세는 왜 히브리 사람을 형제라 여기고 있습니까? 모세는 왜 히브리 노예를 학대한다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인 것입니까?
히브리서 11:24절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장성한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 히브리인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위대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최강 나라의 왕자이기 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히브리인으로 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이 결단으로 히브리인을 형제로 여겼고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결단을 하였으므로 히브리 백성들이 그를 민족의 지도자요 앞으로 이끌어 줄 영웅으로 영접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다음날 나가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중 잘못한 사람을 타일렀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그러자 그는 반발하며 말했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모든 교육을 받았습니다. 능력도 출중하였습니다. 고난 받는 자기 백성들을 돕고자 위대한 결단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그러나 형제라 여긴 자기 백성이 그를 거부하였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히브리 백성들은 그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제 죽인 애굽 사람의 일을 알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왕위를 남편 투트모스 2세에게 넘겼는데 이 사람이 장성한 모세를 정적으로 여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모세는 정적들로부터 공격받을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과연 파라오 투트모스 2세는 이 사실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급히 망명하였습니다.
모세는 인간적으로 볼 때 지도자로 합당하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하고 이집트에서도 추격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우물가에서 어려움에 처한 일곱 처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이집트 왕자답게 혼자서 여러 목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18~22절을 보십시오. 일곱 처자들의 아버지는 르우엘인데 이드로 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큰 딸 십보라를 모세와 결혼시켰습니다.
이때부터 모세는 일곱 명의 양 치는 여자들이 있는 집에서 처가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는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그네는 힘이 없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의 친절을 의지하여야 하며 주인에게 얻어먹어야 합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광야생활에 이어서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고 부르짖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셨으며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시고 기억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강에 버리라는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눈에 보이는 권력자, 눈에 보이는 상황, 눈앞에 벌어지는 형편에서 개인의 꿈은 사라집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희망도 없습니다. 소망 대신 절망, 기대 대신 낙심이 모든 이스라엘의 마음에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달빛도 보이지 않는 가장 어두운 밤, 흑암 속에 서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강에 던져질 운명에서 건져 살리시고 모세를 무서운 바로의 왕궁에서 키우셨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장성한 모세는 위대한 결단을 하였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한 남은 절차가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그를 영적인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은 한시도 쉬지 않으시고 변함도 없으시고 흔들림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24, 25절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구원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시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약속 때문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3)”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17,18)”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이루시고자 그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시고 계셨으며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굳은 맹세였습니다. 그 굳건한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기 위하여 모세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창35:11,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주저하던 야곱에게 이 약속을 주셨는데,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었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리라는 약속은 진작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은 큰 소리로 장담하고 맹세한 것조차 그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약속을 반드시 기억하고 그 약속을 꼭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아무리 어두운 밤일지라도 아침이 올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절망과 낙심을 몰아내고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약속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으로 그 사람에게 자리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스스로 넘을 수 없는 산을 넘는 삶을 삽니다. 스스로 지날 수 없는 골짜기를 지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스텦목자 (모임)회의가 있었고, 말씀공부 두 강 공부하는 주였습니다. 화요일에 부담이 큰 미팅이 잡혀 있었습니다. 스탶목자 말씀공부에 참석 못하는 분들 위하여 강의노트가 별도로 보내옵니다. 그렇지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에 순종하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스탶 모임과 말씀공부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말씀은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남은 시간 준비해서 화요일 부담되는 미팅에 갔더니, 카이스트에서 최고의 회의장소를 제공해주어 미팅 환경이 최상이었고 미팅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제가 대학교 2학년 2학기 때 영접한 말씀입니다. 1986년 가을 이후 이 말씀에 있는 약속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데 마음을 드렸을 때, 지금까지 저의 삶의 행로에는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다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은 믿은 자들에게 이미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출애굽기 저자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애굽왕궁에서의 화려한 생활은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위대한 결단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거부당하고 바로에게는 추격받아 도망친 사건은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위대한 결단을 한 모세가 왜 이런 일을 겪었을까? 3장과 4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장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기록하고 있고 4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하실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하나님께서 상세하게 알려주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지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알려고 구하는 것도 없고 하나님께 뜻과 계획에 대하여 받은 바도 없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에 대해서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리더십도 없고 하나님께 주시는 약속에 대한 믿음 없이 이스라엘에게 온 모세에 대하여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묻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백성들이 반발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백성들이 모세의 자세와 모세 자체의 됨됨이를 보면서 모세가 다스리려 하고 재판하려는 리더로 느꼈기에 한 말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런 지도자는 거부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과 죄를 참아주고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하여 묻지 않은 채, 결단과 열정과 자기 계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갔다가 오히려 광야로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어떤 분이 안서동에 있는 S대, 상명대에 교수로 부임하여 ‘내가 3년 내에 열 두 제자를 세우겠다’고 장담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자기 계획과 자기 결심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분들을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주시고 길을 주십니다. 저는 요즘 2020년대 MZ세대를 대할 때 70년대 중학교 나와 공장에 들어가던 시대 사람들 대하는 것과 별 다름 없는 것을 보고 마음 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70년대를 산업화시대라고 부릅니다. 77년 100억 달러 수출 달성하였고 GNP1000달러를 달성하였습니다. 78년 대통령은 드디어 5천년 역사이래 처음으로 우리 땅에서 난 쌀로 우리 국민들이 세끼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쌀 자급자족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싼 임금이 나라 경제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계속 희생하고 그러고도 적은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시대의 인식을 지금도 그대로 사람 대할 때 가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80년대를 민주화시대라고 부릅니다. 국민소득 5000달러가 넘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백성들은 민주화에 대한 목마름이 생기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되는 것으로 사회학에서 정설로 나와 있습니다. 이런 세대는 왜 누구는 희생하고 누구는 그 열매만 먹는가? 문제제기 합니다. 공평을 보장하지 않는 권위는 올바른 권위가 아니라며 어떤 권위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하고 들어주지 않는 권위는 무너지게 합니다. 이 힘을 집단화를 통하여 발휘합니다. 민주화시대 가치는 공평이고 공평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항상 집단으로 움직입니다. 집단화하기 위하여 집단을 감동시키거나 집단을 분노하기 위한 소재를 찾아내고 폭로하고 전파하는 일을 조직적으로 실행합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2000년대 이후를 정보화시대라 합니다. 지금 MZ세대들은 불공평도 싫어하지만 집단적 가치도 다 따져보고 결정합니다. 따져볼 줄 알고 검증할 줄 압니다. 정보와 지식에 빠르고 똑똑합니다. 이런 세대에 대하여 70년대 청년 대하는 것과 똑 같이 대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듣습니다.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시대의 MZ세대를 도울 길을 주십니다. 우리시대의 새로운 청년들을 돕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행하시는데 이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요게벳),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바로 공주)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하여 묻는 바 없었던 모세는 결단과 열정으로만 시작했다가 시간을 약간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약속을 이루십니다.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믿음과 경외심과 긍휼의 마음 갖기를 기도합니다. 약속이 우리에게 있고, 하나님께서는 만민 구원역사를 지금도 변함없이 이루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으니 새로운 시대 새로운 MZ세대에 대하여 과감하고 창의적인 믿음의 도전을 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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