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24철사철4장7절B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1938),
브레이어(Bréhier, 1876—1952)
- 제4권. 17세기, Le dix-septième siècle1-273
# 들어가기 전에,
벩송이 고등사범을 졸업한 후, 강의들 중에서 남아 있는 첫째의 것은 끌레르몽-페랑의 강의이다. 그 강의 중에서 「심리학 강의(1887-1888)」(5강에서 44강의: 39강)(1990출판)와 그리고 나중에 파리에 올라와서 앙리-4세 고등학교에서 「심리학 강의 (1892-1893)」(19강)(1992 출판)가 있다. 앙리 위드(Henri Hude, 1954-)가 편집하였는데, 「서문(Avamt-propos)」을 앙리 구이에가 썼으며, 「입문(Intoiduction)」을 앙리 위드가 썼다. 앙리 위드는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 네 권을 편집 출판하면서 베르그송(2권 1책, 1989, 1990)의 단행본을 냈다. 이런 서지적 소개를 먼저 하는 것은 강의록 4권, 즉 고대철학 부분은 2000년에야 출판되었다는 데, 물론 앙리 위드가 편집하였다. 이 넷째 권에는 플로티노스 강의록과 그리스 고대철학의 강의가 들어있다. 각설하고,
박홍규 선생님은 플라톤을 읽으면서 먼저 플라톤의 저술들 속에서 용어 또는 개념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탐구해야 한다고 하였고, 그리고 그 용어들이 철학사에서 앞시대와 다음세대 또는 후대와 연관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연관이 제대로 된 탐구인지는 플라톤이 썼던 용어가 그리스 문화와 다른 문헌과의 관계를 잘 다루어야 플라톤의 진면목을 밝힐 수 있다고 했다.
벩송도 마찬가지이다. 박선생님은 가끔 벩송을 읽기가 [플라톤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다. 그 수업 당시 읽었던 이들은 벩송의 문장은 간단명료하고 명쾌하다고 하면서 선생님이 너무 과도하게 벩송을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시론(1889) 의 강의를 들은 적이 없지만(내가 수강 신청을 했을 때는 물질과 기억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선생님께 시론(1889) 에 대해 논문을 쓴다고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 다시 읽게, 그 다음에는 수학사를 잘 읽어보게 새로운 책이 나왔어(수학의 확실성이 88년 쯤에 나왔는데), 다시 생각하게.. 뭐, 답은 없었다. 그 당시에 윤구병에게 박홍규 논문은 5번이나 읽었다고 했을 때, 윤구병은 이해 안되면 열 번 읽지 그래, 그 스승과 그 제자는 꼭 선문답하듯이 응답해주었다. 그리고 시론(1889) 이 왜 어려운지는 2장의 시작부터인데 여러 주석서를 보았지만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수와 단위는 나의 나름대로 퓌타고라스에서 산술학에서 플라톤 기하학의 단위에 대한 추상화라고 내 마음대로 결론짓고 나의 학위논문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가 물으면, 그게 나의 해석이지 벩송의 견해가 무엇인지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이오니아하파의 단위와 엘레아학파+퓌타고라스 학파의 단위는 다르다는 정도이지 그 이상의 진척은 없었다. 코로나로 혼자 책 볼 시간이 많았기도 하지만, 벩송의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2017부터 4권이나 나왔다)의 출판을 알게 되었다. 거의 1년을 걸려 노트하면서 읽었는데, 엄청난 고민이 풀렸다. 한 가지만 시론(1889) 의 단위 설정은 강의록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4권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완전히 한 대 맞은 기분이었고, 물어볼 수 없지만 왜 박선생님은 다시 읽게라고 말하기만 하셨을까도 생각나게 되었고, 벩송이 박사학위 부논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토포스를 왜 썼는지도, 서로 톱니가 물려 돌아가듯이 연결되어 돌아간다는 것도 느꼈다.
벩송의 두 심리학 강의를 읽으면서 프랑스 심리학 개론을 여러 권 들여다보다가 삐아제를 버리고, 뒤마의 심리학도 철학과 연관성이 부족하였고, 마르티네(?)인가 두 권 짜리가 그래도 벩송과 연관을 볼 수 있어서 참조했었다. 그리고 벩송이 일반인들이 말하는 정신을 다루는 유심론이 아니라, 영혼을 다루는 실재론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으로 여러 질문자들에게 알맞은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벩송이 정신적 에너지라는 심리학의 연관들의 단행본의 제목에 정신적이라고 했는데, 그 정신이 아니라 프쉬케(영혼)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나로서는 어렵기도 하고 이리저리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기도 하여, 벩송이 유심론(spiritualisme)의 계보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했었다. 나의 학위 논문은 휠레주의에다 갖다 붙였으니 온갖 질문이 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신주의(유심론)는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쟈니꼬가 생각하듯이 프랑스 반성 또는 회상 심리학의 계보에 벩송이 서있지 않다고 해도 설득력이 없다. 단지 벩송이 자기의 출판된 저술 전체 그리고 편지글과 기존 강연록에 멘 드 비랑을 언급하지 않는다. 왜? 답이 없는 것 어떻게. 그런데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기억의 역사를 강의 하면서 기억을 다루는 것은 재인식이고 회상을 다루는 것은 재현(표상)이라는 구별을 분명하게 한다. 물질과 기억을 다시 읽으면서 제3장 이미 잘 쓰여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여러 번 읽고 강의도 여러 번 해보았는데, 왜 일반적 읽기 습관과 달리 읽히지 않았을까? 공간과 시간이 지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조차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은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그제서야 말로만 달리 읽고 달리 사유하자고 하지말고 진실로 그대로 읽는 것이 달리 읽는 것이리라.
그러면 영혼(프쉬케)를 다루면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물론 벩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이지미”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루는 방식이 어디서 왔을까? 여기 에밀 브레이어의 말브랑쉬를 다루는 방식에서 그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편의 심리학 강의는, 데카르트 이후로 두 실체라고 하든, 두 속성이라고 하든, 사유와 너비에서 왔다. 너비는 공간만일까? 너비의 생산은 의식(영혼)에서 이라고 보면, 사유는 정신(로고스, 추리)이다. 이런 구별의 낌새는 벩송의 영혼론 강의록에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너비 속에 영혼 사유 속에 정신으로 구별하는 것은 너무 단순화되었다고 지적을 받았었다. 더 나아가면 너비 영혼 질료 아페이론가 한 묶음이고, 정신, 추리, 기호(상징), 이데아가 한묶음이라고 하면, 또 말도 많았다. 논쟁하기도 싫었거니와 설득할 수 있는 방법도 거의 없었다. 이제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를 읽고 나서야, 샤를 빼기가 쓴 벩송 단행본에서 라이프니츠 다음으로 최고의 형이상학자가 벩송이라는 칭찬이 단순히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째거나 스피노자의 긴장의 풀림(ex-pression)과 다른 시각으로서 라이프니츠의 충분이유율을 다시 생각하였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된 것은 들뢰즈의 주름의 해설이 독특하고 또한 벩송주의라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벩송의 강의록과 들뢰즈를 함께 엮으면 벩송은 스피노자 선상에 있지 않고 라이프니츠 선상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말브랑쉬는 앵글로 색슨에서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의 연장선에서 기회원인론으로 읽게 된다. 그런데,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자들 명단에, 나로서는 이해 안 되었는데, 말브랑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챘다. 우선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사상사의 연결에서 말브랑쉬는 소중하다. 그 보다 더 19세기 후반에 심리학의 발달에서 20여종의 심리학 체계들이 등장하는데, 형이상학과 연관해서 심리학, 그리고 자아, 영혼의 연결을 다루는 것은 벩송인데, 그렇다고 당대의 생리학과 생물학을 멀리하지 않는다. 그 영혼(l’âme) 즉 프쉬케와 너비의 연관은 말브랑쉬 다음으로 벩송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너비는 실재적이고 앵글로 색슨의 연장은 상징으로서 추상이다. 이 차이(차히) 매우 크다. 같은 계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브랑쉬가 오랜 작업에서 스스로 사유의 단계를 높이면서 실재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재성에서 벩송은 새로운 실재성으로서, 19세기 후반의 생리학적 자료들과 맞물려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학을 보탤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말브랑쉬의 실재성을 다루는 것은 자연을 토대로 했지 않을까 한다. 인간의 자연과 신의 자연은 같은 선상에 있을 것이다.
앙리 위드가 「심리학 강의록(1887-1888)」 서문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예정 조화는 스토아학파의 공감에 유비적인, 실체들의 실재적 개입에 자리[여지]를 남겼다. 이 때에 직관을 마치 공감처럼 정의하는 것이 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것은 이런 틀에서이다. / 벩송 교수는 점진적으로 새로운 실재론(un nouveau réalisme)에 이른다. 벩송은 라이프니츠로부터 동력학[역동론]적 경향성들과 범영혼론(panpsychisme)을 보존한다.”(19쪽)고 하였다. 줄쳐놓고도 중요성을 몰랐는데, 벩송이 말브랑쉬의 너비의 분석과 해석들을 이어서 “신실재론”으로 나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물질과 기억의 7판 서문에서 이미지를 관념론과 실재론의 중간참(mi-chemin)이라는 설명에서 실재론에 한발 물러선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데, 그래서 새로운 형이상학을 새로운 철학으로 보았던 자들이 실재론을 말하기를 한 발 물러섰던 것이 아니가? 그러나 물질과 기억의 이미지 공간의 차원(가로축)이 아니라 지속의 차원(세로축)에 자리를 차지한다. 신실재론이라 표현하든, 새로운 철학 또는 새로운 형이상학이라 표현하든, 벩송은 우주발생론으로 동적으로 보았고, 다른 편의 철학은 우주론으로 정적으로 보았다. 벩송이 말하지 않은 것은 크리스트를 대상화하는 철학은 동적이 아니라 정적이고, 앵글로색슨의 우주론과 관념론 또는 개념론에 가깝다. 그러면 남는 문제가 지각작용에 관한 것이다. 지각작용은 신체의 너비에 관한 것이고, (기나긴 이야기를 간략하게) 외적지각 작용은 현상을 다루는 방식에서 반성과 재현으로 추리할 따름이다.
우리네 입말에서 어른들이 꼬마애의 행동에서 지각있다고 하는 것은 개념있다는 것이 아니다. 지각은 삶에서 행동, 사회에서 행위에 관한 것에 가깝고, 개념은 수학과 물리학에서 설정 또는 정립에 가깝다. 후자를 전자에 적용 또는 사용은 오류이다. 훌륭타, 탁월하다는 개념작용이라기보다 지각자용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지각작용의 지각 내용은 오랜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57MKB)
***
제7장, 말브랑쉬 Malebranche 176-201
4절 기회 원인들 – IV Les causes occasionnelles
사람들이 알다시피, 말브랑쉬에 앞서서 기회원인들의 이론에 도달했던 많은 데카르트주의자들이 있었다. [한편] 물리적 물체를 마치 단순한 너비와 동일한 것처럼 고려하는 것, 그것은 운동하는 힘이 물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힘은 너비의 용어 속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데카르트는 신 속에 운동의 제1원인을 두었다. 그리고 연속적 창조의 주제를 채택하면서 그는 시간의 매 찰나(chaque moment)에 신적 작용이 다시 새롭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른 한편, 데카르트 방식으로 생각된 사유 실체 속에서, 양태들은 (사유 속에서 관념 또는 감정, 너비 속에서 운동) 항상 실체를 함축하고 있으나, 실체는 이런 저런 양태의 효과적인 현존을 결코 함축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현존은 실체에게는 낯선 효과적 원인에 기인한다. 이 실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라이프니츠의 실체와 다르다) 자기의 양태들을 그 양태들을 생산함이 없이도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영혼과 신체의 구별은, 데카르트가 그렇게 제시했던 대로, 두 실체 사이에 모든 종류의 상호개입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체들 사이에서 현존하는 상호소통은 감각작용들, 정념들 또는 의지적 작동 속에서 서로서로에 상위 원인에게 호출을 요구한다. 보다 더 깊이 있게 다음처럼 말해야만 한다. 수학적 불가지성의 전형은 항구적 연관들 속에 있는데, 이 연관들은 어떠한 효과적인 능력[잠재력]의 관념도 연관들 그 자체 속에 포함되지 않다는 것이다. (187)
말브랑쉬가 피조물들 속에서 효과적인 능력[잠재력]들을 믿는 세속적 신념들에 반대하여 가치있게 한 것은 이 모든 이유들[이법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물의 관념에 의해서만 한 사물에 대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물은 충분히 명석하여 너비는 움직이는 어떠한 힘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영혼 속에서 변모[변형]작업들을 생산할 수 있는 어떠한 힘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브랑쉬는 자신의 분석에서 더 멀리까지 간다. 효과인의 관념 또는 작용하는 권능의 관념은 관념 그자체로 고려하면서, 그는 이런 용어가 신적인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진실한 원인은 그 원인과 그 결과[원인과 결과] 사이의 원인이다.정신은 필연적인 연결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단지 전능(全能)인 존재의 의지이다. 그 바탕에서 진실한 원인성 전체는 창조적이다. 신체 자가의 고유한 힘에 의해서 스스로 변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이 신체에게 부여하고 원했던 변모작용들과 다른 변모작용을 가지고서 신체가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88)
따라서 자연적 원인들의 효과를 믿는다는 것은 이방종교(le paganisme)의 기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은 이방종교의 한 형식일 뿐이다. 주목해보자: 비록 그가 실체에 대한 명석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단지 분석 덕분에, 말브랑쉬는 영혼 안에서 모든 효과적 원인성을 부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자기 선배들보다 훨씬 멀리가면서, 그는 영혼이 물체에 관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 자체에 관하여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영혼에게 거부했으며(사람들은 자유가 영혼의 진실한 능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 위에서 보았다), 인식가능성의 철학적 요청과 피조물의 무능에 대한 종교적 용어를 이렇게 동일 평면위에 놓았다. (188)
신만이 효과인아라는 주장은 또한 기회 원인들의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조건이다. 그러한 주장은 9세기경에 뮈즐망 신학자들에게서,우주 속에 불연속성과 임의성을 도입했다. 그러나 말브랑쉬의 신은 질서를 사랑하는 신이며, 가장 단순한 길들에 의해 진행한다. 그러므로 신은 변질하지 않는 [종교의] 명령들에 의해 그리고 보편적 법칙들에 따라서 작용할 것이다. 이런 법칙들은 게다가 매우 변화된 결과물들을, 마치 수학적 기능처럼 정확하게 생산할 것이다. [또한] 수학적 기능과 동일하게 있으면서,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는 것에 가치들을 부여하는 만큼 많은 다른 가치들을 생산할 것이다. 여기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인 이런 또는 저런 사건이며, 예를 들어 이러저러한 조건들에서 서로 부딪히는 저 두 물체의 만남이다. [수학적] 상수(la constante), 그것은 운동들의 소통의 법칙들이며, 이 법칙들 덕분에 물체들은 매 찰나에 규정된 속도들과 방향을 틀림없이 갖는다. 이때에 사람들은 충돌이 운동의 기회적또는 자연적원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자연적 원인은 실재적이고 진실한 원인 아니라, 단지 기회적 원인이며, 그리고 이 기회적 원인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이러저러한 만남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주제자를 규정한다. 신은 피조물의 상태에 맞게 자기 작용의 효과를 항구적인 방식으로 알맞게 한다(accommoder). 자연 속에서 작용하는 권능(une puissance d’agir)을 전혀 요청하지 않고 오히려 단지 그것[자연]의 양상[양태]들 사이에서 항구적인 연결을 요구하는 것은, 거기에서 경험이 요구하는 것 전체이다. (189)
이런 항구적 연결을 발견하기 위하여 경험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이 항구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이 의지가 어떤 것인지를 아직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데카르트에게서 법칙들은 운동 보존의 규칙으로부터 연역되었다. 이 규칙 자체는 “창조자의 행위가 그의 불변질성의 성격에 근거해야만 했던”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말브랑쉬가 말하기를 “그럼에도 경험은 데카르트 씨가 속고 있다고 우리에게 확신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견해에서 형이상학적 원리는 거짓이 아니라, 왜냐하면 그가 끌어낸 결론이 진실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 결론이 처음에는 극히 진실인 것 같이 나타날지라도 말이다.” (진리 탐구, t. II, p. 397.)이리하여 말브랑쉬는 라이프니츠의 비판들에 근거하여, 진리 탐구의 첫 작성에서 운동보존원리위에 근거했던 충돌의 법칙을 1698년에 변경하였다. 기회 따라서 기회 원인의 용어는 말브랑쉬에게서는 법칙의 용어와 밀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혼과 신체의 통합에 대해 말하면서, 말브랑쉬는 신이 감각작용 또는 정념 안에서 신체의 몇몇 변모작용들을, 또는 의지 속에서 몇 가지 운동들의 기회원인의 몇몇 사유를, 확립하였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에 따라서 그는 영혼과 신체의 통합에 대한 법칙의 현존을 가르쳤다. 이것은 그가 심리학적 탐구들에서, 즉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탐구들에서, 규정하고자 애썼던 것은 법칙들이다.그 이상의 것이 있다. 즉 영혼 속에서 사유는 다른 사유의 기회 원인이다. 따라서 또한 영혼 속에 항구적 법칙들이 있다. 이런 법칙들중에서 말브랑쉬는 하나의 법칙을 지적했는데, 그 법칙에서, 주의의 노력이 명석한 관념들의 지각을 동반한다는 것을 원했다. 결국 은총을 [실질적] 소재로 다루면서, 어떠한 인간도 그 자신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런 받을 만한 것 덕분에, 은총은 인간에게 그것을 수여했다. 그러나 그의 작용들(기도들 또는 선업들)은 기회들이며, 게다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법칙들에 따라서, 신은 기회들에게 이런 은총을 일치시켰다. (189)
따라서 기회론(l’occasionalism)은, 라이프니츠의 비난에 따라 “영속적 기적”을 가정하는 것이기는커녕, 결정론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결정론의 법칙은 일련의 사건들을 엄격하게 고정하는 것이다. (190) (57LLE)
5절 인식의 자연 과 신의 통찰 – La Nature de la connaissance et la vision en Dieu 190
“인식의 종류들”에 대해 주제로 다룬 것은 데카르트로부터 영감을 받은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스피노자가 다루었던 것처럼, 명석 판명한 관념을 마치 완전한 인식의 전형처럼 취급하면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식을 마치 모호하고 혼동된 관념처럼 고려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말브랑쉬는 대단하게 혁신하였다. 모호하고 혼동된 관념의 용어, 그리고 명석 판명한 관념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모든 것은 모호하고 혼동된 관념의 인식이라는 주제는 그에게서 서로 결코 만나지 않는다. 명석 판명한 관념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모든 것은 관념에 의해 전혀 인식되지 않는다. 거기에 데카르트주의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있다. 데카르트주의는 데카르트의 관념과 상당히 다른 관념의 용어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서 관념들은 사물의 “이미지들”이다.이미지들은 사물들이 “형식적[주관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을 “대상적[객관적]으로” 포함하며,객관적 현존은 형식적 현존보다 열등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말브랑쉬는 그에게는 모호하게 나타나는 그러한 구별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그가 관념(idée)이란 단어에 부여하는 유일한 의미는 원형(archétype) 또는 표준(modèle)이라는 플라톤에서 의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물들을 그것들의 관념들에 따라서 판단한다고 하더라도, 관념들이 사물들을 재현하는 것은 단지 이런 의미에서이다. 이때부터 말브랑쉬는 동일한 선 상에 있지 않는 인식하는 세 가지 방식들을 인정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1] 사물들 그 자체들에 의한인식,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신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식과 같다. 왜냐하면 신은 분명히 원형은 아니기 때문이며, 무한은 그 자체로서만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의식 또는 내적 감정에 의한 인식, 사람들이 “자신으로부터 구별되지 않는 모든 사물들”로부터 갖는 인식, 우리가 영혼으로부터 갖는 유일한 인식. 결국 [3] 우리가 사물들로부터그것들의 관념에 의해 갖는 인식, 우리와 다른 사물들에게 오로지 알맞은 인식, 사물들 그 자체에 의해 인식할 수 없는 인식.이것은 자연의 물체들로부터 우리가 갖는 인식이다. 여기서 말브랑쉬가 말하는 물체들의 인식은 물리학에서 추리된 인식이 아니라, 외부 물체들의 통속적 지각작용이라고 물론 이해하자. (191)
관념들이 관념들에 의해 재현된 사물들의 전형들이라면, 말브랑쉬는 그 유명한 신속에서 통찰(la vision en Dieu)의 주제에 피할 수 없이 이르게 되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관념은 흩날리는 종류들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종류로 데모크리토스는 영혼과 신체 사이에 매개물을 만들었는데 말이다. 관념들은 영혼의 피조물이 더 이상 아니다. 왜냐하면 관념은 감관들의 죄수가 아니게 되자마자, 관념이 표상[재현]하는 물질적 사물보다 훨씬 더 진실한 실재성처럼 나타난다. 관념은 정신이 관념 속에서 발견하는 성질들을 갖고, 그 성질들은 어느 면에서는 정신에 저항한다. 정사각형의 관념과 정육각형의 관념은 실재적으로 다른 두 사물들이다. 이 실재성들을 정신의 창조적 작동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정신에게 신의 전능을 부여하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관념들이 영혼에서 태어났다고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연속적인 지각작용들에서,관념들은 영혼에 차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념들이 영혼 속에 완전히 현재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 혼돈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영혼에게 또한 부여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서] 제거에 의해서, 유일하게 가능한 가설이 남는다. 그것은 관념들이 신 속에서 관점들(vues 보여진 것emf)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은 자신 속에 그가 창조했던 모든 존재들의 관념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인간의 영혼은 신에게 무매개적으로(immédiatement) 통합되어 있다.그리고 그 영혼은 마치 무한한 존재 속에 한계설정처럼, 개별적이고 정해진 존재만을 지각한다. 결국 신은 점점 더 단순한 길들에 의해서 작동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신 자신 속에서, 이 물체가 나의 고유한 신체 위에서 외부적으로 생산한 인상의 기회에 알맞는 외적 신체의 관념을 발견한다. (191)
신속에서 통찰은 데카르트 주의자들, 즉 아르노(1612-1694)와 레지스(1632–1707)와 더불어, 열렬한 논쟁의 주제였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여기서 말브랑쉬를 비판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이름으로 항상 하기 때문이다. 아르노는 은총에 관한 말브랑쉬의 주제들 때문에 상당히 잘못 다루었으며,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브랑쉬의 자연론과 은총론(Traité de la nature et de la grâce, 1680)에 응답 없이 남아있다. 이 작품에 대해 말브랑쉬는 그에게 그 해보다 앞선 여러 해들에서부터 알게 해주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아르노의 논쟁은 신 속에 통찰에 반대하는 진실한 관념들과 거짓 관념들에 대해(Des vraies et des fausses idées, 1683)의 책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685년에 단지 그는 아르노는 은총에 체계를 공격했다. 레지스는 자신의 철학 체계(Système de Philosophie, 1690)에서 아르노의 견해를 지지하였고, 관념들에 관한 토론은 그와 말브랑쉬 사이에 1694년에 개입되었다. 일련의 긴 반박들과 반복들에서, 동일한 논증들이 자주 나왔다. 말브랑쉬와 그의 반대자들 사이에, 데카르트로부터 나온 공통적인 전제가 있다. 아르노는 그것을 이렇게 진술한다: “우리가 무매개적으로 (신체 속에서가 아니라) 보는, 그리고 우리 사유의 무매개적인 대상이라는 우리들의 관념들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어느 누구도, 신체의 인식이 관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정하여 생각하지 못한다. 관념들의 자연(la nature)과 기원(l’origine)을 규정하는 것만이 중요하다.아르노에 따르면 대상의 관념은 영혼이 그것으로부터 갖는 지각작용과 다르지 않다. 알려진[인식된] 대상은 작동(l’acte)과 동일하며, 이 작동에 의해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한다. 이런 관념-지각작용(la perception-idée)이라는 유일한 사물은 단지 두 가지 연관을 맺는다: 하나는 영혼에, 다른 하나는 지각된 사물에 연관을 맺는다. 전자에서는 사물이영혼을 변모하게 하고(perception), 후자에서는 사물이 객관적으로 오성 속에 있는 한에서(관념)이며, 객관적 현존은 “대상들이 정신 속에 있는 데 익숙해진” 방식을, 즉 “대상이 실재적으로 현존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불완전한 방식”을 지칭한다. 그런데 지각작용은, 말브랑쉬도 그것을 동의 하듯이, 영혼의 변모작용이다.따라서 관념도 또한 영혼의 변모작업이다. 이때부터, 관념들의 기원은 신체들을 보는 권한(la faculté, 능력)에 의해 충분하게 설명된다. 이 권한[권세]을 가지고 신은 우리의 영혼을 창조했다. 신 속에서 통찰에 관하여, 그 통찰은 매우 큰 난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통찰은, 우연적인 관념의 양태들과 더불어 신체들의 각각이 있다는 것보다 신 속에서는 개별적 관념들이 그 만큼이나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자 힘쓰기 때문이다. (192)
두 관점에 관하여 말브랑쉬는 응답한다. 첫째로 지각 작용과 관념의 구별에 의해서, 둘째로 인식할 수 있는 너비의 이론에 의해서 이다. (192)
말브랑쉬가 레지스에게 쓰기를, 관념과 지각작용 사이의 차이는 “인식하는 우리와 우리를 인식하는 것 사이에 있는 차이”만큼이나 나에게는 명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런 대조는 놀라운 것이다. 인식하는 우리로서, 우리는 우리자신에 대해 어떠한 명석 판명한 관념도 갖지 못한다. 우리의 양태들은, 즐겁거나 고통스러운 것 같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관념으로부터 갖는 지각작용과 똑 같은 것처럼, 우리들 자신들에게 모호하다. 인간의 실체를 밝히기는커녕, 인간은 자기에게 인식가능하게 할 수도 없다.반대로 우리가 아는 것, 즉 관념은 명석 판명하다. 그리고 내가 관념을 마치 영혼으로부터 구별되어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직사각형의 관념을 그것의 성질들과 더불어, 마치 나 자신과 구별된 것처럼 인식한다. 만일 관념이 나의 영혼의 양태였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살마들은 실체 없이 양태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르노의 주제가 증명되기 위하여, 따라서 너비 속에서 둥근 것을 만큼 명석하게 영혼 속에서 관념을 보는 것이 불가능해야 할 것이다. (193)
게다가 첫째 질문에 응답은 둘째 질문에 응답에 연대적이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들이 영혼이, 아르노가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유한하고 한계 있으며 우연적인 물체들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한 인식 가능한 너비를 실재적으로 지각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이런 귀결에 이를 것이다: 관념과 영혼의 관계는 마치 무한과 유한의 관계와 같을 것이다. 그런데 유한한 영혼은, 무한하다는 지식 가능한 너비처럼, 양태를 생산할 어떠한 역량(une capacité)도 갖지 못할 것이다. “유한한 것은 무한을 표상되기 위하여 충분한 실재성을 갖지 못한다.” (193)
이런 이유가 가치 있으려면, 만일 신체에 대한 지각작용의 진실한 대상이, 신체들이라는 개별적인 관념들 만큼에 의해서 아니라, 오히려 인식가능한 너비(l’etendue intelligible)의 관념과 같은 유일한 관념에 의해서, 구성되는 경우에서이다. 여기서 말브랑쉬 사유를 이해하기 위하여, 데카르트에 따라서 너비는 개별 신체들에 – 개별적 신체들은 너비의 한계작용들일 뿐이며 - 앞선다고 하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하학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물리학에서 물체는 한계에 의해 선현존하는 너비로서 규정된다. 따라서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부분들에서 전체로 가지 않는다. 그 인식은, 사물들의 총합이세계라고 하는 데, 그 유한한 사물들을 서로 서로 병치하는데 있지 않다. 인식은 전체로부터 부분으로 간다.인식은 무한에서만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말브랑쉬에 따르면, 거기에 일종의 인식의 보편적 법칙이 있다. 모든 개별적 인식은 어느 정도로는 인식이 규정한 무한한 토대로부터 분간되어 있다. 이리하여 일반관념은 개별적 관념들의 합계의 결과물이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관념은 그러한 관념들의 무한에 알맞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인식은, 그것의 표본으로서 있는 개별적 관념들의 바깥에서, 보편적이고 무한한 존재의 관념을 함축한다. 이 무한하고 보편적 관념은 어느 정도로 개별적 관념들을 향해 퍼진다. 이런 일반성은 개별적 존재들의 합계와 같은 우리들 자체로부터 끌어내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외적 물체들의 지각작용은 일반적 규칙에 복종한다. 이 일반적 규칙은, 데카르트의 물릭학에 따르면, 인식할 수 있는 너비의 통찰에 근거하면서, 물체들의 세계의 원형을, 즉 관념을 구성한다. 우리는 물체들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이 관념에게만 상의해야만 한다. 거기서 마치 모든 인식에서처럼 무한의 사유가 항상 앞서며, 게다가 그 사유는 영혼과 신의 무매개적 통합에 힘입어서만이 현존할 수 있다. 확실히 영혼이 무한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사람들은 무한을 이해함이 없이 무한을 지각할 수 없다.말하자면 개별 신체는 우리가 제한 없이 지각하는 너비 속에서 우리에게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너비의 실증적(긍정적) 무한성은 그렇기 때문에 포착되지 않는다. (194)
그러나 인식론적 주제는 부득이하게 신학적 주제로부터 이중화되어 있다. 이 신학적 주제는 새로운 공격의 기회가 될 것이다. 지성적 너비는 피조물이 아니다.왜냐하면 이 너비[공간]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비는 신 속에 있다. 그러나 만일 신속에 있는 모든 것이 그의 본질의 부분을 이룬다면, 즉 알 수 있는 너비의 부분이라면, 그것은 신 속에서 본질 자체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말브랑쉬에게 그 반대자들이 대립시킨 접근할 수 없으나 그래도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는 이 귀결에게 무한의 용어를 이용하면서 응답한다. 17세기 과학에서 무한의 용어는 상대적 용어가 되었다. 여러 다른 질성들의 무한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다른 하나에 연관해서만 무한하다. 예들 들어 유한한 [직]선은 무한소들의 무한한 선들의 합계로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무한(infini)라는 이 단어는 실재성들의 전체를 반드시 지칭하지 않는다. 신만이 이런 상대적 무한에 대한 무한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은 존재 전체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신은, 그 차체로 생각될 경우에, 무한하게 무한하다. 그러나 알 수 있는 너비는 단순히 물체들의 원형일 뿐이고, 따라서 거기서 신은 그 자체로서 고려되지 않았으나, 오로지 가능한 물질적 피조물들과 관계 속에서만 고려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관계를 보면서는 신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본질을 말하는 자는, 유한으로는 결코 표상되지 않는 (무한하게 무한한) 절대적 존재를 말한다.” 반면에서 우리는 신의 실체만을 보는데, 그 실체는 “피조물들에 상대적으로 파악되거나 또는 피조물들에 의해 참여할 수 있는 한에서 파악된다.” (194)
알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신 속에서 통찰의 주제에서 동시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특이성(un singularité)이 남는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의심에 의하여 감각적 지각작용들을 멀리함으로써만이 너비를 자기 물리학의 원리로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너비의 용어에 의한 이런 매우 지적인 인식은 공통하는 지각작용을 배제하였다. 그러나 말브랑쉬가 설명하고자 원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런 공통 지각작용이었다. 그런데 만일 알 수 있는 너비가 물리학에서 지적인[주지주의적인] 인식의 원리일 수 있다하더라도, 사람들은 어떻게 이 너비가 – 하나이며 연속적이고 어떠한 변이도 변모도 없으며 모든 감각적 성질들을 박탈당한 너비가 - 이런 다양한 지각작용을 생산했는지를 잘못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지각작용들은 따로 떨어진 다수의 물체들을, 그리고 그 지각작용들을 구별하는 감각적 성질을 지니고 나온 다수의 물체들을, 우리에게 보게 해 준다. 말브랑쉬의 응답은 데카르트가 행했던 조작 작업과는 반대조작 작업을 하는데 있다. 데카르트는 분석에 의하여 너비를 감각적 지각작용의 나머지로부터 분리했다. [이에 비해] 말브랑쉬는 이 두 사물들을 따로 고려했다:우선 너비이고, 다음으로 색깔, 냄새 등과 같은 감각작용들이다. 이 감각작용들은 성질인 한에서 그 자체들로 파악되며, 너비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이것들의 대립을 지지했다. 너비는 관념의 대상이다. 그런데 반대로 감각작용들은 순수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영혼의 양상들이며, 우리에게 전혀 인식하게 하지 않는 [영혼의] 감정들이다. 예를 들어 헛되이 사람들은 소리가 무엇인지를 실재적으로 알기 위해 소리의 감각작용에게 문의할 것이다. 청각은, 소리의 감각작용 대신에 알 수 있는 수학적 연관들로 대체하면서, 소리의 감각작용을 젖혀 둔다. 만일 감각작용들-감정들이 우리에게 사물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것들은 정확한 법칙들에 따라서(영혼과 신체의 통합의 법칙들) 우리 신체의 상태들에, 그리고 신체 상태와 외부 불체들과 연관들에,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 물체들이 우리의 감각작용들의 (기회적인)원인들이라고 할지라도, 물체의 보존에 관심에서 확립된 법칙들은 물체가 진행할 수 있는 위험들을 영혼에게 경고한다. (195)
데카르트에게서 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이렇게 분해가 이루어졌으므로 (왜냐하면 감각작용은 혼동된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의 인식이 아니기 때문에), 외적 지각작용을 생산하기 위해 어떻게 두 요소들이 통합되느냐를 보는 것이 남는다. 신체의 지각작용은 우선 알 수 있는 너비 속에서 알 수 있는 도형의 지각작용이다. 신은 다양하게 알 수 있는 너비를 우리의 정신에 적용하는데, 우리의 신체와 외적 물체 사이의 다양한 연관의 기회에 따라서 이다. 동일한 찰나에서 생산된 영혼의 양상들 또는 감각작용들은 신체 속에서 [널리] 퍼진다. 게다가 각각의 제한된 너비는 여러 감각적 성질들을 포한할 수 있으며, 이 여러 감각적 성질들은 서로서로 어떤 방식으로 상호 침투된다. 왜냐하면 너비이라는 성질은 감각적 성질들의 어떠한 것에도 본질적으로 속하지 않는다. (195)
“인간은 그가 안다고 생각한 것을 종종 무시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것의 관념들을 갖지 않고서 스스로 상상하는 어떤 것들을 잘 안다.” 물체들의 지각작용이 그것의 증거이다. 사람들은 지각작용이 우리에게 외적 세계를 알게한다고 스스로 상상한다. 그때에 지각작용은 우리에게 신 속에 세계의 원형과 단지 관계(relation)있게 하고, 우리 영혼의 양상들과 관계있게 한다. 그러고 나서 외적 세계의 현존은 [영혼에게]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현존은 마치 우리 감각작용들의 원인의 현존처럼 더 이상 증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의 효과성이외에 다른 효과성들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효과성은 성스런 책들의 계시에 의해서만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6)
최종 의심은, 메랑(Mairan, 1678-1771)과 서신교환에서(1713-1714)말브랑쉬의 마지막 논쟁의 기회였다. 메랑은 말브랑쉬의 주제를 스피노자의 주제로 환원하고 원했다. 말브라쉬가 쓰기를 “이 창조자의 중요한 오류들의 원인은, 내가 보기에, 그[스피노자]가 피조물들의 관념들을 피조물들 자체들로서 간주하는 것으로부터, 신체들의 관념들을 신체들로서 간주하는데서 온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관념들을 물체들 자체에서 본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만일 오류가 있다면, 메랑에 따르면 말브랑쉬는 그 오류를 범했다. 왜냐하면 그는 신 속에 있는 알 수 있는 너비와 물질적 너비인 신체들 사이에서, 신의 속성과 스피노자에게서 양태 사이에 있는 구별과는 다른 구별을 보게[알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쓰기를 “‘알 수 있는’(intelligible)이라는 단어에 현혹되게 내버려 두지 않아야만 한다. 사물들의 본질들은 순수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신체의 개념 속에 갇혀있는 너비와 알 수 있는 것이라 불리는 너비 사이에 진실로 어떠한 구별도 없다. “표상하는 본질의, 물체들에 의해 참여할 수 있는 것의, 물체들의 원형의, 이름들은 귀결을 구해내거나 또는 부드러워지게 할 것 같다. 물론 당연하지만, 이는 물체들의 실체의 이름들로 환원되는 것이다.” (196)
메랑의 이런 비판이외에 어떠한 비판도 말브랑쉬의 체계 속에 깊이 침투하지 못했다. 아르노와 레지스(Régis, 1632–1707)에게서 관념은 본질적으로 표상적이다. 그것[관념]의 존재는 대상적[객관적] 존재에, 즉 사물들의 이미지의 존재에, 그친다. 말브랑쉬에게서 신적 관념의 원형이라는 관념은 그 자체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표상적이 아니다. 관념은 단지 표상적이 되는데, 이 경우는 신의 의지에 의하여 신이 이 모델[원본, 원형]에 따라서 존재들을 창조하기를 원하는 데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의지 자체는 계시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다.우리가 물체들로부터 갖는 인식, 즉 물리적 인식은 단지 너비의 관념의 인식이며, 따라서 그것들의 현존의 인식과는 전적으로 독립적이다. 그 물리적[너비] 인식은 이런 [물체들의] 현존의 인식 없이도 충만하다. (196)
이런 이론은 정신(l’esprit)을 신과는 다른 것에 연결하는 것으로 보이는 마지막 연결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는다. 정신은 자기에게 독립적인 현존의 우연성에 더 이상 스스로 굴복하지 않는다. 정신이 만난 저항들은 그 자신 속에만 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 관념들과 감정들, 변질하지 않는 내적 진리와 매찰나에 변하는 인격적 영감, 자연적 빛의 명증성과 본능의 생동성 등이 대립되는 것은 그[정신] 속에서 이다.이런 항들 사이에 전자의 항들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정신의 능력들(facultés, 재능들)을 지칭하며, 둘째 항들은 우리 신체의 보존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항들이다. 인간의 오류는 이 둘을 혼동하는데 있다.철학자의 임무 이 둘을 더욱 깔끔하게 항상 구별 것이다. (197) (57LLI)
6절 말브랑쉬주의자들
능력있는 반대자들에도 불구하고, 말브랑쉬의 철학은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그리고 오라트와르 수도회에 만큼이나 대학들에서도, 심지어는 베네딕드파들과 제수이트파들에게서까지도 17세기 말에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냥 부인(Mme Grignan, 1646-1705)같은 귀족 부인들이 그의 열렬한 독자들이었다. 말브랑쉬의 질녀인, 바이이양(Mlle de Vailly, s.d.)는 매주 그녀의 거실에서 파리의 말브랑쉬주의자들과 회합을 가졌다. 말브랑쉬 자신은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었으며, 그의 동료들 중에는, 확신을 가진 많은 찬성자들이 있는데, 무한소의 제창자중의 한 사람인 로피딸 후작(marquis de L'Hôpital (1661-1704), 수학자인 까레(Carré, 1663-1711), - 퐁뜨넬(Fontenelle, 1657-1757)에 따르면, 까레에게서는 “모든 기하학은 단지 그의 값비싼 형이상학으로 통과하기 위한 단계일 뿐이다”라 하였고 – 기술자인 델리사라레(d'Eliçagaray, 1652-1719), 그리고 데카르트 물리학의 찬성자로 남아있었던 여러 기하학자들도 있다.
여러 수도회에서는 말브랑쉬의 관념들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저작들은 1709년과 1714년에 금서목록 여전히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신부 토마생(Louis Thomassin, 1619-1695)은 신학 교리(Dogmata theologica)의 저자이며, 이 책의 둘째 권은 신과 신의 성질에 대하여(De Deo Deique proprietatibus)라는 제목이 붙여 있고, 그리고 그는 플라톤, 플로티노스, 플로클로스, 드니 아레오파지트에 대한 중요한 독자였다. 그는 르네상스의 박학다식자들의 전통을 따르면서, 철학자들에게서 “교회법이 써 놓았던 영원하며 동일한 지혜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가 말브랑쉬를 결코 지칭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아마도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특히 그가 플라톤에게서, 제1원리들은 신적 말씀 속에 영원히 존속한다는 학설을 빌려올 때, 그리고 이 제1원리들이 연속적으로 모든 지적인 자연들을 소개할 때를 - 이 자연들이 제1원리들에게 적용되는데 - 보면 말브랑쉬의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 (197)
말브랑쉬의 생애는 로크(1632-1704)의 경험주의와 뉴턴(1642-1727)의 물리학이 이들의 승리에 가까워지는 시기에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내내, 영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안티감각주의사상의 조류가 현존하였다. 이 조류는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에게서 나타난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프랑스 정치사상가이다.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들, 1721에서 “정의는 두 가지 사물들의 합치의 연관이다. 이 연관은 항상 동일한 연관이고, 그 연관을 고려하는 어떤 존재가 있으며, 그것이 신이거나, 또는 천사거나 결국에는 인간이거나 동일한 연관이다.” (편지 81) 루소(1712-1778)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기를, 1736년[스물넷] 책들을 통해 철학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 책들은 과학의 숭배를 포함하고 있었고, 그러한 과학들은 특히 오라트와르 수도회와 포르-르와얄의 수도회의 과학들이었다.” 특히 오라트와르 신부인 라미(Bernard Lamy, 1640-1715)의과학들에 관한 대담들(Entretiens sur les Sciences, 1684)을 “그는 읽고 또 읽어 백번을 읽었다” 그리고 이 오라트와르 신부는 셋째 판본(1709)에는 철학의 담론들을 삽입했으며, 외적 지각에 대한 말브랑쉬의 학설을 찬양하였다. 이 외적 지각론은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은 것이며, 신의 시선에서 인간의 배타적 의존성을 보여준다.
결국 루소가 암시한 것으로 매우 열심히 읽혔던 것은 지루한 문학이었다. 예를 들어 그것은 로쉬(Antoine-Martin Roche, 1705?-1755)의 영혼의 자연과 영혼의 인식 기원론: 로크와 그 찬성자들에 반대하여(Traité de la nature de l'âme et de l'origine de ses connoissances contre système de Locke et de ses partisans, 1715)이었다. 말브랑쉬의 적극적 지지자인 르르벨(Henri Lelevel, 1665-1705)이 쓴 형이상학적 진리와 거짓(Vraie et la fausse métaphysique, 1694)은 데카르트주의자인 레지스(1632–1707)의 경험주의적 경향성에 반대였다. 더군다나 많은 논쟁들이 신적인 효과성의 주제와 피조물의 행동의 주제 주변에 가담하였다. 영혼의 기원에 관한 형이상학적 성찰들(Meditations metaphysiques de l'origine de l'ame, 1683)을 쓴 페데(René Fédé, 1645-1716)같은 말브랑쉬주의자는 스피노자로 향하는 경향이 있으며, 피조물들이 신적 거대함에 연결 때문에 피조물들에게 “무한 지속”을 부여한다. 어째거나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론을 비판하는데, 라모리니에르(Lefort de La Morinière, 1696-1768)의 신속에 있는 과학에 관하여(De la science qui est en Dieu, 1718)와 라미(François Lamy, 1636-1711)의 자기 자신의 인식에 대하여(De la connoissance de soi-meme, 1704)에 따르면, 예정조화론이 인간 행동에 너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방에 대해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의 자유를 부정하는 말브랑쉬를 방어한다. 샤뜰레 미롱(Châtelet Miron, ??)에게 충고자가 학식있는 유럽(Europe savante(1718-1719)에서 쓴 것이 편지들의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이다. 제수이트 신부인 앙드레(André, 1675-1764)는 자신이 겪었던 박해에도 불구하고 말브랑쉬의 충실한 제자였으며, 그는 그의 전기를 썼다. 또한 그의 미에 관한 시론(Essai sur le beau)(1770)과 담론(Discours)(?)은 학설의 정신을 퍼뜨렸다. 그리고 그는, 제수이트들에게 꾸준히 가르쳐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감관들을 통과하지 못했던 정신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중요한 원리의 철학이, 명증하게 모든 과학들을 그리고 도덕론을 뒤엎는다는 것을 유지했다. (199)
게다가 영국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로크는 1695년에 An examination of Malebranche’s opinion of seeing all things in God을 썼다. 진리의 탐구에 대한 두가지 영어 판본ㅇ이 1694년에 나왔다. 그리고 말브랑쉬 주의자인 노리스(John Norris, 1667-1711)는 (An Essay toward the Theory of the Ideal or Intelligible World (1701–4)의 제2부에서 로크의 경험론을 비판하고서, 특히 로크가 관념들의 자연을 규정하기에 앞서 관념들의 기원의 문제를 제기한 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학설을 꿰뚫고 있었다.
18세기 동안에 안티감각론자와 말브랑쉬주의자의 주제들은 이탈리아에서 마티아 도리아(Mattia Doria, 1667–1746)의 존 로크에 대항하여 형이상학의 방어(Difesa della metafisica contro il signor G. Locke, 1732)에 의해, 파르델라(Fardella, 1650–1718)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밝힌 인간영혼의 자연(Animae humanae natura ab Augustino detecta)에 의해, 추기경 게르딜(Gerdil, 1718–1802)은 로크에 의해 증명된 영혼 불멸(Immaterialité de l'âme demontrée contre M. Locke, 1747)를 쓰고 이어서 관념들의 자연과 기원에 관한 신부 말브랑쉬 감정의 방어(Défense du sentiment du P. Malebranche sur la nature, et l'origine des idées contre l'examen de M. Locke, 1748)에 의해 주장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추기경 뽈리냑(Polignac, 1661-1741)의 류크레티우스 반대(Anti-Lucretius, 1747)에 의해서, 그리고 수도사 떼라송(Terrasson, 1670-1750)에 의해서이다. (부이이에(Francisque Bouillier, 1813-1899)가 1769년에 말브랑쉬 이름으로 출판된 창조된 무한론(Traité de l’Infini Créé을 떼라송에게 아마도 잘못 부여했을 것이다. 이 저술은 물질이 무한하다고, 정신도 무한하다고, 인간과 비슷한 존재들이 거주하는 세계에 무한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들이 있는 만큼 신의 구현화 작업들이 있고, 결국에는 세계들의 지속이 무한하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형이상학 원론들(Éléments de métaphysique, 1753와 내밀한 감관의 증거(Témoignage du sens intime, 1760)를 쓴 수도사 리냑(Lignac, 1697-1762)은 기회 원인들의 확고한 지지자로 남았다. (199) (21:21, 57LLJ) (등, 12:08, 57LMF)
[# 천야 첨가]
19세기 말의 심리학의 발전과정에서 벩송 심리학의 용어(또는 개념)을 정리를 위해 두 번이 강의를 했고, 학생들이 잘 받아쓰기를 해서, 거의 그대로 강의록이 1990년에 출간되었다. 고등학생들의 바칼로레아를 위한 강의이지만 당대의 심리학이 용어들이 정리되는 시기이고, 이런 용어에 대한 정의와 설명에서 심리학의 여러 분파들이 등장한다. 그 당시의 교재들에서 소개하는 심리학파들은 거의 20개 정도 되었다.
벩송의 강의록은 심리학의 중요 개념들을 철학사적 사유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을 이 말브랑쉬를 번역하다보면 매우 비슷한 점을 발견한다. 정신이라는 사고가 전개하는 개념도 있고, 영혼이 정신과 달리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것은 너비관념과 더불어 간다. 데카르트 이래로 정신 즉 사고, 물질 즉 운동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혼은 정신에 귀속시키려 하지 않고 너비와 더불어 물질(신체)의 생산과 생장과 더불어 설명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실재성을 갖고, 정신은 실재성이 아니라 논리적 귀결, 즉 일반화와 추상화의 귀결이며, 나아가 상징에 가깝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런 과점은 종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날 것인데, 벩송은 메시아가 도래하지 않았다거나, 천국이 하늘에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메시아나 천국 등은 상징이지 실재성이 아니라는 사유를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신의 실재성은, 영혼이라는 의식의 내재성이 자기 생성과정에서 드러나는 측면이라는 것이다. 실재성의 완전성으로 이데아들도 신들도 상정하지 않는다. 물론 EC(창조적 진화)에서 이런 전제들을 설정하는 것이 착각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57LMF) (15:09, 57MKB)
첫댓글 *1 실재론은 존재에서가(엘레아학파) 아니라 현존에서(이오니아학파) 대상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우주론에서가 아니라 우주발생론으로 다루어야 한다. 수학의 상징과 천체 물리학 운동의 대상 등은 현존이 아니라서, 벩송 말하듯이 방에서 종이와 연필이 있으면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현존에서 실행과 관계, 이전의 과정과 연관 등을 탐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공부해야 한다. 이점에서 벩송은 후자의 철학이 진솔한 철학이며, 전자의 철학은 그 다음으로 생각했다. 그는 EC와 PM에서 철학은 “삶이 먼저이고 다음이 사색하는” 것이라 한다. 나로서는 학위논문 이래로 벩송의 철학을 새로운 형이상학으로서 질료형이상학, 심층형이상학 등으로 표현했었다. 브레이어를 읽으면서 소크라테스와 퀴니코스학파 후예로서 스토아학자들이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을 공간과 시간이라 했고 어떤 스토아 학자들은 이 둘에 아톰과 영혼을 보탰다고 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네 가지라는 것은 철학사에서 의미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