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책
니힐
세상이 변한 이즈음 독서란 나 같은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독서인은 물론이고
종이가 아닌 디지털 문명의 적자인 전자책의 출판을 가져왔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문명이 진화하면서 이 시대 독서의 패턴 역시 종이에 침을
발라 페이지를 넘기기보다 가볍게 화면을 터지 해 가며 책을 읽는 디지털 독서인이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아날로그 활자이건 디지털 활자이건
책을 읽는다는 현상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위기지학의 소산일 것이다. 나를 위해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세상은 한시도 멈춤이 없이 움직인다. 시간이 그렇다. 시간의 변화를 통해 사람의
생각이 바뀐다. 시간은 사람의 문화를 바로미터하는 역사적 좌표가 되기 때문이다.
세월의 변화와 함께 문명이 변화를 한다. 문명의 변화가 곧 시대의 풍속을 바꾼다.
이를 잘 기술하는 문학이 인간의 서사를 다루는 소설일 것이다.
소설이 세태를 반영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염두한 말이다.
이야기가 논점을 많이 벗어났다.
다시 원점으로 독서를 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보기로 한다.
나는 나의 글읽기의 원인을 위기지학이라고 하였다. 나를 위하여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배움을 위한 활동을 한다. 배움이란 결국,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나만의 철학 쌓기다.
그 철학의 글짓기가 비단 나만의 옹졸한 관(이즘)만으로 쌓일 수 없기에
나가 아닌 타자의 철학이 필요하게 된다. 타자의 철학이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일 것이다. 그에 어울리는 인간학습의 기초가 나는 책을 읽는 독서라고 본다.
풀이하면 A라는 대상을 나는 A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떤 책을 읽고 나는 A가 A일 수도
있고 B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독서의 힘이 존재한다.
인생이란 형이하학과 형이상학 간의 모순된 구조로 짜여 있다.
수학적인 명제를 증명할 논리의 구조에는 필요악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으나
인생이란 살아 꿈틀거리는 변화무상을 증명할 물음표에 그 어떤 필요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도가도 비상도이며 명가명 비상명이 우리들 난해한 인생의 명제이자 죽기 전
풀어야 할 숙제이다.
노장의 사상이 그러하고 유가의 극기복례와 호연지기가 온고이지신 하여 신이호고가 되었을 때
참나의 본질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이는 서양의 사상이 직선적인 세계관과
궤를 달리한다.
나는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에 관심을 둔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에 빠지면 자주 길을 잃어버리는 허무주의와 만나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나? 저렇게 살아가나? 어차피 해는 동쪽에서 뜰 것이고 서쪽으로
지게 마련인데, 나는 왜? 왜? 이렇듯 삶의 문제에 괴로워하지?
비단 이런 물음이 나만의 개인적인 일화일까?
그리하여 나는 차라리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에 방점을 찍는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란 옛말이 있다. ( 이 도저한 허무주의)
선현들이 쓴 글을 통하여 나는 왜 우리의 삶이 공수래공수거가 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다시 되묻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