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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출13:12)
본문: 창세기 39:20∼23
한 젊은 육상 선수가 올림픽에서 명성을 얻은 뒤 성공을 거둔 소감을 말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나와 함께 달려주셨기 때문에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해설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이 이기도록 도우셨다는 말은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훈련하는 데 필요한 준비도 못했을 것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달려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까?
우리는 너무도 자주 매일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지금껏 살아온 하루하루 삶의 기적,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재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이 세상 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신 그분을 인정할 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동행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성경은 아름다운 동행자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행이란 단어 때문에 유명한 이가 에녹입니다. 에녹은 성경에서 아주 짧게 기록돼 있는데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동행이라는 말 때문에 에녹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동행할 수 있는 분 가운데서 가장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과 동행하면 분명히 복을 받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의 동행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에녹에 대한 기록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 눈에 띕니다. 에녹의 죽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장의 에녹이 포함된 족보에서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표현이 공통적이었지만 에녹은 예외였습니다. 에녹의 죽음을 말할 때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너무너무 좋아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데려가셨던 건 아닐까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할 수만 있으면 사랑 받는 자가 됩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라면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창31:3)
어떤 교회의 한 어린이가 헌금봉투에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를 적어 내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안녕하세요? 저희 가족이 이번 주에 휴가를 떠나서 부탁드릴게 있어요. 사흘 동안은 먼 곳을 갔다 와야 하니까 그 기간 동안은 어디 가지 마시고 저희 가족을 지켜주세요. 아, 그리고 혹시나 급한 일이 생기거나 어디로 휴가를 가게 되실 경우에는 미리 알려주세요. 그래야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고 휴가를 떠난 하나님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테니까요』
편지를 읽은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후 그 아이를 불러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자신의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란 걸 깨닫고 환한 미소와 함께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특정 순간에만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돌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찬송가 430장 (통 456장) 『주와 같이 길가는 것』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2.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3.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4. 옛날 선지 에녹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 올라갈 때까지 주와같이 걷겠네
<후렴>
한걸음 한걸음 주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고독과 외로움에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함을 알고 돕는 배필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18). 그것도 모자라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처럼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만 확실하다면 우리는 현재의 어떤 고난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고난이 찾아와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신뢰하며 선을 행하였습니다(시 37:3).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지만 그들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성실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합니다(행 16장). 이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입니다. 오늘 나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불평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성실히 일을 합니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합시다. 고난과 역경은 성실한 우리의 신앙적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고, 없애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둘째,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창39:23).
『형통케』의 히브리어 『짜라흐』의 뜻은 『번영케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실한 요셉과 동행하자 요셉의 모든 일이 번영케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 축복을 주실 수도 그리고 저주를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동행한다는 말은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모든 일이 자꾸 꼬이고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제일 먼저 점검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모든 일이 풀리고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동행하기를 거절하신다면 모든 일에서 실패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범사가 형통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대상17:8)
셋째, 환난 중에도 신뢰를 받습니다(창39:21, 빌3:4).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동행하시므로 주님의 은혜가 임하자 도저히 신뢰받지 못할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행 5:13). 이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에게도 그의 성실한 모습이 좋은 영향력을 미칩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는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열방에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편118: 8, 9)
『교회는 수십 년 다녔지만 믿기 전에 비해 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품도 삶도 옛날 그대로입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가정은 지옥같이 느껴지고 교회 생활도 형식적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물론 예수를 자발적으로 증거 해 본 경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만 가면 모범 신자로 대접받다보니 저 자신의 이중성과 위선에 괴로움만 더해갑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고뇌에 찬 고백인데요.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깊은 고뇌 속에 빠지게 될 때, 그 때가 바로 성령의 격려하시는 음성을 듣는 때입니다. 또한 새롭게 일어서야 할 때이지요. 그리스도인이 이 같은 고뇌 속에 빠져 무력해지는 이유는 한 마디로 새로운 신분에 맞는 삶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겠지요. 즉,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의 삶보다는 과거의 습관대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아무리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낸다 할지라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은 그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래서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볼 수 없겠지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둘째, 그리스도의 제자는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을 받기 보다는 주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 받게 되는 선물인 성령의 열매이지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세 번째로, 그리스도의 제자는 사랑 중의 최고의 사랑은 복음으로 이웃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나서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장 16∼17절)
『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이처럼 말씀대로 순종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삶, 이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령과 동행하는 자의 삶은 매일 변화됩니다. 가정은 천국이 되고 교회 생활 역시 받는 은혜로 뜨거워집니다. 그 뿐입니까?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삶인 것이지요. 이 같은 충성된 제자들을 통해 오늘도 이 죄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소망하시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가족과 이웃들과 동행하며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법’이란 질문으로 공모를 낸 적이 있습니다.
1등으로 뽑힌 답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길이라면 어떻게 가든, 얼마나 멀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누구와 함께 하십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출 3:12)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길을 걷는 천국으로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매순간 동행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신, 하나님이 동행하신 길이었지만 평탄하고 … 순조롭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후에 분명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지만 험난한 광야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지나야 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광야와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2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했습니다.
하나님이 앞서가셨고,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진행하게 하셨습니다.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코스는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경로가 어땠는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의견을 택하든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까지 한 달이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야 했습니다.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견뎌야 했고, 밤에는 추위를 참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길에는 …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었습니다.
잠언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했고
시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 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믿고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신가요?
혹시 고통, 고난, 광야, 어둠, 시련의 길을 가는 것 같더라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결국 승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Footprints in the Sand)’이란 시가 있습니다.
모래위 발자국.png
어느 날 밤 꿈에서 그분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네.
모래 위엔 두 사람 발자국 하나는 내 것, 또 하나는 그분 것. 거기서 내 삶의 끝을 보았네.발자국이 멈춘 데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종종 그 길엔 한 사람 발자국만 눈에 띄었네.그러나 내 삶이 제일 비참하고 슬프던 그때! 거긴 한 사람 발자국뿐이었네.
나는 물었네. ‘주님, 어째서 제가 제일 힘든 때 저를 버리셨나요?’
주님이 대답하시네.
“나는 널 사랑하고 절대 널 버린 적이 없단다.
시련과 고통의 순간 네가 본 발자국은 너를 안고 걸은 내 발자국이란다.”
지금, 혼자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시나요?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 같은가요?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어제도, 지금도, 앞으로도 안고 가십니다.하나님은 우리의 걸음을 주목하고 지키십니다. (욥 34:21)
길을 같이 가는 것을 ‘동행’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와 동행을 시작하셨습니다.
너의 인생길, ‘내가 같이 가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길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와 깊이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 승리해야 합니다.
다른 무엇을 잘하기 전에 예배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 예배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예배(禮拜)’라는 한자를 풀면 ‘예를 갖추어, 절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찾아가서 절합니까? 어른을 뵙고 절하러 가면서 아무 옷이나 입고 가나요?
빈손으로 가서 ‘저 왔어요’하고 절하십니까?
예배하는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절하고 절 받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형편상 매번 주일 지키기 힘드신 분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떤 마음으로 주일을 보내십니까?
가정의 어르신을 찾아뵙기로 약속한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아니면 직장의 높은 상사와 약속을 정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에이, 다음에 뵙지 뭐,’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합니까?
나를 기다리는 어르신과 상사에게 아무 연락 없이 안 갑니까?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예배하지 못하는 때에도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다시는 안그러도록 …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읽고, 듣고, 배웠으면 …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우리가 그 말씀을 은혜로만 받고 그치면 동행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비행기는 관제탑과 계속 소통해야 합니다. 비행기는 비행 상태를 관제탑에 보고합니다.관제탑은 날씨와 공항 상황을 비행기에 연락합니다.
그런데 소통만 잘하면 무슨 소용입니까? 관제탑에서 알려준 대로 비행기가, 조종사가 따라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절한다면 …
우리의 관제탑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안전하게 인생의 비행을 마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부족하여, 우리가 연약하여, 때론 악하여 …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드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모두) 죄와 무관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매 순간순간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도 “…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했습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로마서 7:21~23)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롬7:24) 했습니다.
‘나 참 힘들다. 나 비참하다. 불쌍할 정도다’ 이 둘이 싸우는 것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입니다.이 중에 하나를 죽여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나를 죽이고 사십니까?
하나님의 법대로 살려고 하는 나, 세상 법대로 살려고 하는 나 …
이 둘 중에 하나는 죽여야 되는데, 날마다 죽어야 하는데 누구를 죽이느냐 말입니다.
예외 없이 여러분이나 저나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오늘도 고개 들고 사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야 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입니다.(출 20:8~10, 31:13, 사 58:13)그래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첫 열매, 첫 소산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 23:10, 잠 3:9) 첫 마음도 하나님의 것입니다.그래서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레 27:30, 말 3:8~10)
하나님의 것을 내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 것과 하나님 것을 구별하기를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골 3:17)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면서 … 어려운 순간에 좀 도와주시면 안되냐고 한다면 얼마나 얌체 같습니까.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그 말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와 같이 길 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에드먼드 힐러리’(Sir Edmund Persival Hillary, 1919~2008)는
1953년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 1914~1986)와 함께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누가 정상에 먼저 올랐는지를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두 사람은 끝까지 함구했습니다.그리고 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올랐다.”
그 누구도 정상은 혼자 오를 수 없습니다.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했던 탐험가도 한 발, 한 발, 서로 살펴주었던 셰르파가 없었다면 등반은 불가능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삶의 길이, 인생길이 외로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실수하고 타협하고 탄식하고 또 회개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다 보여주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눈물 나는 사연이 왜 없습니까?
기쁜 일, 슬픈 일, 마음 아픈 일, 감격에 벅찬 일, 좋은 일, 나쁜 일, 자랑스러운 일, 부끄러운 일,
놀라운 일, 탄식할 일. 우리 집에 다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떠신가요?
너무 힘이 들고 어려워서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여러분에게 있어도
동행하시는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안아주시는 하나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승리의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