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가문(四代家門)의 지혜
아내는 어릴 때 만주 봉천(선양)에서 자랐다. 장인어른은 결혼 하자마자 일제가 이끄는 이민정책으로 황무지를 개척하면서 타국 생활을 하시었다. 나는 4대가 그것도 전 씨 집성촌에서 대대로 살던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내와 나는 전혀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하고 있던 지난 연말에 굳이 늘 해오던 새해 가정행사를 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 임시 퇴원을 했다. 나는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은 세배도 받지 않는 법이라고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내가 지시하는 대로 나는 심부름을 열심히 하여 새해 가정행사를 거의 손색없이 치렀다. 늘 하던 대로 새해 가정예배를 드리고 세배도 받았다. 우리나라 전통풍속으로 지켜오던 윷놀이를 손자 손녀도 포함하여 해오던 대로 차질 없이 실시하였다. 새해 첫날에 각자의 1년 계획을 적어 병에 넣고 해마다 봉해놓은 것을 개봉하여 읽어보는 전통을 만든 것도 아내의 지혜였다. 여기까지는 아내가 존경스러웠고 아내 덕에 참 행복한 시간을 누린 셈이었다.
1월 2일 병원 업무가 시작하는 날 아내는 다시 입원하였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내의 몸에는 병의 가짓수가 늘어갔다. 처음 입원할 때부터 신경과에서 재발을 막기 위해 처방하여 주는 약을 먹어왔고, 지금 소속해있는 재활의학과에서 오른손과 오른다리 재활 치료를 매일 오전 오후에 각각 두 시간씩 하고 있다. 임시 퇴원하여 집에 기거하면서 기침이 심해져서 병실 룸메이트들까지도 괴롭히는 상태가 되었다. 호흡기내과 의사의 검진을 받고 약을 먹게 되었다. 게다가 혈당이 200까지 치솟아 당뇨를 담당하는 내분비내과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을 추가하여 먹게 되었다.
재입원한지 닷새 만에 재활의학과 담당 의사가 보호자인 나를 불러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일러주는 말에 기겁을 할 일이었다. 균이 가래에서도 나오고 소변에서도 나왔는데 항생제를 투여했는데도 제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집에 가 있는 동안 화장실에서 넘어져 갈빗대가 셋이나 부러졌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환자가 숨겨왔고 늦게야 이야기를 해서 알았다는 것이었다. 정형외과 의사의 처방으로 약을 추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허리 밴드를 착용하게 되었다. 움직이지 말라며 대소변을 받아내게 되었고 기저귀를 차는 신세가 되었다.
접근 금지 표시를 붙여놓고 아내의 침대머리에 일회용 비닐장갑 뭉치와 소독 액체가 담긴 바구니를 걸어놓고, 간호사들조차도 마스크를 하고 소독 액체로 손을 세척하고 비닐장갑을 끼고 아내를 다루는 것이었다. 물론 이 부분 담당은 감염내과 의사의 몫이었다. 액체주사 봉지가 두 개가 되었다가 세 개가 되었다가 내가 매일 오전 오후에 찾아갈 때마다 상태가 변하였다.
한 가지 병이 늘어날 때마다 아들 둘과 며느리 그리고 미국에 사는 딸까지 온통 비상이 걸려서 합심 기도를 하기로 다짐에 다짐을 하고 기도에 매달렸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으로 믿습니다. 의사들의 정성으로 특단의 약물을 투여하여 어렵사리 병균을 제압하게 되었다. 닷새 동안 식구들은 초긴장상태로 기도에 매달린 후 드디어 좋은 소식이 의사 입에서 나왔다.
“접근 금지 해제!”
비교적 믿음 역사가 짧은 며느리가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열심히 기도했다며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현재 아내의 기침은 거의 완화되었고, 갈비뼈 통증도 완화 되어가고, 어려운 고비를 넘어 서고 있다. 물론 아내는 약물이 너무 많이 투여되어 입맛이 없고 구토를 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대체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전통 4대 가문에서 자란 나의 권고를 따랐다면 상당히 큰 비중으로 아내의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은 전통행사라도 치르지 않는다.”
이 지혜로운 풍속을 아내는 단지 미신이라고 무시하였기에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얼마나 무서운 일들을 겪게 되었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내는 약물에 취해 입맛이 없어 한다. 나는 아내의 밥 먹기를 돕는다. 요즘 나는 오후 3시에 아내 병실로 가서 휠체어를 밀고 지하 매점으로 간다. 아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산다. 비교적 넓은 6층 휴게실로 간다. 얼굴을 마주 보며 간식을 함께 먹는다. 나는 아내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모자를 씌워준다. 우리는 53년 전 연애시절을 회상한다.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피운다. 우리는 잠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