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국 사이소
1970년대
부산의 겨울이 깎아놓은 거리를
양동이 하나를 머리에 이고
새벽을 깨우는 소리
“재첩국 사이소...”
얼굴에 그려진 주름이
인생이 되어버린 할머니 한분이
“재칫국 사이소..재칫국”
이라며
새벽을 훎고 지나갈 때면
게슴츠레한 모습으로
잠이 들깬
아침이 걸어나옵니다
무르팍이
툭 튀어나온 내복에 난 구멍을
양은 냄비로 가려가며
새벽불 밝혀놓은 대문 앞에
빨간 돼지 저금통을 껴안고
덜...덜.덜...
떨고 서 있는 나를 본 할머니는
“와 엄마는 오데가고
니가 그 서있노?”
울먹거리는 나를 보며
알겠다는 듯
노란 양은냄비에
재첩국을 한사발 퍼서는
“얼렁 드가자“며
부엌을 열고 들어가시더니
꺼져가는 희미한 연탄불을
갈아주시고는
그 위에
양은냄비를 올려놓고
전구지 한 움큼 띄어 놓으시더니
“다 끓고 나거덩
요 찬밥 한 덩어리 넣어가꼬
어머이 드리거래이“
대문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재첩국 양동이를
꽈리를 튼 머리 위에 올리시고
바쁜 걸음 내서 가시려는
할머니 앞으로
빨간 돼지저금통을
내미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시더니
“엄마 잘보살피거래이”
라시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돈 전대에서 꺼낸 십원을
돼지저금통에 넣어주시고는
녹슬은 몸을
이끌고 멀어지고 계셨습니다
구겨진
다음날도...
바람에 할퀴어진
그 다음 날도...
새벽을 걸어와
똑같은 온기를 내어주시며
“니 빨간 돼지 친구 어딨노?“
하시며
10원짜리 동전을 넣어준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와
새벽이슬에 그을려가며
대문앞에 서있어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고운 빛깔로 빚어준 하늘에게
고마워하며
보름이 지나가던 어느 날
게으른 구름 한 점이
하늘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아침을 따라
“재칫국 사이소“
반가운 목소리에 뛰어나간
저는
“어...
그 할머니 아니네”
“아지매...
앞전에 그 할머니는...?”
엄마의 그말에
그날 우리 집을 들리시고
굽어진 하늘을 따라
가파른 골목을 내려가다 그만
빙판길에 미끄러져
집에 누워계시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던 마음이 슬픔으로 채워진 길을
따라 찾아간 엄마와 나를 보며
“뭐한다꼬 요까지 왔노 새댁아?
아들 감기들구로“
“억수로 감사해서예”
“새댁 니는 좋겠데이
효자아들 둬서”
엄마가 주신 봉투를
몰래 내가방에 넣어주시곤
“이담에 커서
휼륭한 사람이 되야한데이..”
할머니는
떠밀리듯 훎고 지나는 세월에도
세상좋은 인심을 내어주시며
미소로 배웅해 줘서인지
내가 사는
달동네 사랑방인 구멍가게 앞에
다달았을때
옹기종기
모여 앉으신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바람이 피워놓은 이야기 한 줄에
웃음 꽃을 피우다
우릴 보고 반기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그래 어찌됐노
게안티나?“
“내는 며칠 전엔 아파 못 일어났디만은
그 할머니께서
제첩국 한 사발을 놓고 안 갔나“
“내도 전번에 연탄 갈 힘도 없어가
냉골에 아파 누워있었는데
연탄도 갈아놓고 솥에 재첩국도
한사바리나 넣어놓고 간기라“
“어르신들께서 염려해 주시니깐에
퍼떡 일어나실겁미더“
“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아이가”
“하모...
웡카 착한 일을 많이해가꼬
천지신명이 돌봤는갑다“
몸져누운 노인들에게
행복을 퍼 담아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지만
저마다
재첩국할머니에게 받은
온기와 사랑을 실어 내뱉는 한마디에
온 동네는 햇살이 달구어 놓은
들녘처럼
따스함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어릴적 살던 그 자리에 서서
"재칫국 사이소 "
할머니의
그리움으로 물든 그 목소리를
오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