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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4장 37절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7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아라. 이제 담임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입신보다 더 깊고 정확한 계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주시겠습니다. [1]
오늘의 읽을 시리즈 설교 첫 번째 시간인데요, 제가 이 설교 제목을 가지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세 가지 성경의 세 가지 인도에 대한 설교인데, 몇 번을 생각해도 며칠을 생각해도 적절한 제목이 잘 안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고민을 좀 많이 했는데, 제목이 마음에 안 차서 고민을 했는데, 이틀 전에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기도하는 중에 제목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 제목이 뭐냐면 "신앙생활 완벽 가이드: 성령의 세 가지 인도"입니다. 신앙생활 완벽 가이드, 성령의 세 가지 인도, 아 성령의 인도,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에 대해서 가르치나 보다. 단순히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굉장히 신앙생활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포괄적인 내용이고, 그 다음에 전체적인 지침을 줄 수 있는 아주 굉장히 귀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참 관심을 가지고 잘 들으시기를 바라고요.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실 성령의 세 가지 인도에 대해서 직접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오늘은 서론 말씀을 드리는데 서론이 좀 길어요. 요즘에 제가 설교를 좀 짧게 하죠, 옛날보다.
왜냐면 옛날에는 원고를 있는 대로 다 했는데, 지금은 원고에서 자를 수 있는 걸 막 잘라요. 나중에 책으로 보라 그러자고 해서, 이제 꼭 필요한 설명들만 이렇게 하거든요. 그게 좋다, 이게 더 많은 사람들을 듣게 하려면 그게 좋다.
그래서 이제 책은 원곡 그대로 내더라도 그렇게 설교를 하는데, 이번에는 자를 수가 없어요. 거의 없더라고요. 반드시 필요한 그런 내용들을 위해서.
그래서 서론만 말씀드리지만 일반 설교보다 약간 깁니다. 마음의 백신을 맞으시고, 마음 준비하시고 그렇게 좋을 것 같구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굉장히 특이해요.
"입신보다 더 깊고 정확한 계시"라는 제목인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2]
지난해였죠, 지난주에 부활절 예배가 굉장히 특별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꿈에 대한 강력한 말씀을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부어 주셨어요. 그래서 성도님들 그걸 나누는 시간이었구요.
그래서 그날 설교는 "당신이 함께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가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려야 되는 게,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려야 되는 게 전체 개신교와 열방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려야 되는 게 단순히 교회 성장하고 이런 게 문제가 아니에요. 힘을 앞에서 하나님의 꿈을 반드시 이루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뜻깊은 부활절이 지나고 그 다음 날이었어요.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꾼 두 가지 꿈, 뭐 여러분들 아실 텐데요. 그 두 가지 꿈이 기억나게 해주셨어요.
그 다음에 그 꿈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더 깊이 해석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제 영이 말씀하시기를 두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꿈 내용들이 워낙 거창하고 엄청나기 때문에, 이게 정말 다 이루어질까 안 이루어질까, 어느 때는 이루어질 것 같고, 때는 안 이루어질 것 같고 막 이렇게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꿈에 대한 새로 추가되는 해석들을 우리 성도님들과 나누기 위해서 녹음을 했습니다. 아직도 안 나은 일인데 그걸 녹음을 하고 난 다음에 마음의 감동이 오더라고요.
기도를 충분히 했지만 기도를 더해야 되겠다. 왜냐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더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에 막 소환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기도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다시 의자에 앉았어요. 그렇게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계시감이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갑자기 계시적인 설교가 저에게 부어졌어요.
기도하다가도 다시 일어서야 돼. 왜냐면 녹음해 놔야 되니까. 녹음할 에너지는 모르니까 다 잊어버리니까.
그래서 여러분 녹음하기 위해서 다시 일어났어요. 일어나면서 막 계시적인 설교가 막 오는데, 아 근데 대지의 순서가 약간 불안전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일어나서 녹음하라는데 바로 다 바로잡히는 거예요.
대지의 순서들도 적당하게 다 녹음하는 것 바로 바로 잡히고 또 계속해서 세 가지 대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시들이 부어졌어요. 그날 밤 10시 30분까지 이에 관한 계시가 저에게 4번이나 임했어요. 근데 기도할 때만 임한 것이 아니라, 뭐 하루에 한 4번 정도 밤 11시 30분까지 계속해서 다음날도 또 계시가 임했어요.
그 다음날도 또 그 설교에 대한 보충적인 더 깊고 더 중요한 많은 계시들이 계속해서 임했어요. 그래서 그걸 녹음한 것을 녹취를 했더니 A4지로 약 100페이지 정도 되더라구요. 녹음한 게 아니라 100페이지 정도 계시적으로 부어준 거 로고방한 게 그 정도 되더라고요.
과연 그날 하나님께서 그 며칠 동안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무엇에 대해서 계시를 하셨는가, 무엇에 대한 계시를 부어주셨는가 궁금하시죠? 무조건 궁금해야 돼요. [3]
여러분, 그것은 성령의 인도에 대한 계시였어요. 성령의 인도에 대한 계시. 그것은 여러분 뭐 관련 구절, 성장의 인도에 대한 관련 구절들에 대한 주의라든지 강해 설교가 아니에요.
성령의 인도라는 주제 전체를 포함한 어떤 계시적인 주제 설교였어요. 그런 계시적인 지대 설교가 저에게 계속해서 며칠간 부어졌어요. 저는 이것이 굉장히 깊고 굉장히 정확한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할 때 저에게 가장 강력하게 많이 임하고 또 가장 깊이 깨달아졌던 선고가 뭐냐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에게 본문으로 여러분들이 함께 읽은 그 성구에요. 이게 제일 마음에 와닿았어요. 우리들의 14장 37절이죠.
만일 누구든지 자기네들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주의 명령인 줄 알아라.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 여기서 신령한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선지자는 뭐예요? 단순히 성령의 행사를 많이 받은 게 아니라 꿈과 환상과 예언, 때로는 입신을 통해서 계시를 받아서 전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뭐 대단한 평범한 분들이 아니죠. 이 대단한 분들이죠.
그런데 바울이 그들에게 뭐라 그랬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주의 명령인 줄 알아라. 네가 신령한 자도 말든 네가 선지자든 말든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은 주의 명령이다, 이것이 주의 음성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런 줄을 알라 그랬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바울이 신령한 자들보다 더, 바울이 선지자들보다도 더 큰 권위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더 큰 영적 권위를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이 말씀은 사도라든지 정경의 권위와 관계가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및 정경의 권위와 관계가 있는 말씀, 그러니까 이제 정경의 권위에 대한 말씀이고, 절대적인 또 사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절대적인 사도의 권위에 대한 말씀인데, 그런데 저는 동시에 이 구절이 환상이나 예언, 천사의 방문이나 입신을 통해서 받는 계시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깊은 유형의 계시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경의 계시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단순히 사도의 권위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계시하며 환상할 생각하고, 뭐 천사의 방문을 생각하고, 또 뭐 입신을 생각하고 그래요.
근데 그런 것보다도 더 깊은 계시가 있다, 그와보다도 더 중요한 계시가 있다. 그걸 우리는 집중하고 또 기울여야 될 더 중요한 계시들이 있다, 이거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거를 아는 목회자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영성운동, 뭐 성령 운동, 은사체험이 많은 사람도 이걸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그날 하나님께서 계시를 부어주면서 저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것이 이것이었어요. 환상이나 예언이나 천사의 방문, 또는 입신이라는 것보다 더 깊은 계시가 있다, 더 정확한 계시가 있다, 더 중요한 계시가 있다.
진짜 그거를 기이하게 해야 된다. 그 다음에 거기에 집중해야 된다, 그거를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이렇게 입신보다 더 중요한 계시, 더 정확한 계시, 뭐 여러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인데 이게 과연 어떤 계시일까요? 그죠, 과연 어떤 계실까요? 이제 좀 궁금하시죠? 제가 이제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는데요. 사람이 사람마다 비밀이 있어요.
근데 그 비밀을 누구하고 나누느냐? 아무거나 제가 이미 굉장히 저렴하지만, 아무한테나 내 비밀을 다 얘기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을 누구하고 나누느냐? 친구가 그게 여러분 부모라고 꼭 나누는 게 아니야. 부부라고 나누는 게 아니야, 친구하고 자기 비밀을 나눈다고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아무거나 비밀을 나누는 게 아니야. 무슨 말이냐면 환상을 본다고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는, 천사의 방문을 경험했다고 가르쳐 주는 게 아니야.
이 시인에서 천국에 올라왔다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는 비밀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 비밀을 나누느냐? 여러분 친구하고 나는 되는 거야. 일년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고 칭하며 불렸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었어요. 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했어요? 창세기 18장 17절 18절이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나님의 벗이에요. 그냥 하나님께 심판하면 돼,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내 친구인데 이걸 숨기겠느냐? 또 예수님도 친구로 받아들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어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드린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친구라는 증거가 뭐냐? 서로 비밀이 없다는 게 뭐냐? 서로 비밀을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마음 놓고 모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이경연합은 친구라는 거예요. 구약 시대 때에는 누가 하나님의 친구였어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친구였어요. 선지자들이 대표적인 하나님의 친구였죠.
그래서 아모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보니까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저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느니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나누는 친구들이었어요.
그래서 선지자들이 많은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천사의 방문을 받고 또 입신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수많은 귀신을 받은 것이 하나님께서 비밀들을 알려주신 것이에요. 그런데 신약 시대 때에는 누가 하나님의 친구냐? 대표적인 하나님의 친구들이 누구냐? 여러분 신약 시대에 선지자의 뒤를 잇는 것은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선지자가 아니에요.
신약 시대에 선지자들의 뒤를 잇는 것은 사도들입니다. 구약에도 선지자가 있고 신약에도 선지자가 있지만, 신약에는 사도들이 선지자들의 뒤를 잇습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 때에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가장 기꺼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 주시느냐?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사도들에게. 선지자가 아니라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환상을 보고 천사의 방문을 받고 입신한다고 가장 짓고, 가장 중요한 비밀들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 때에는 주로 사도들에게 가장 깊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중요한 그런 비밀들을, 그런 진리들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말씀은 도외시하고, 정말 말씀은 사모하지 않고 정말 말씀을 기울이지 않고, 뭐 입신 간증 막 기울이고, 뭐 누가 어디 천사가 나타나서 뭐라 그랬다 그러더라, 이런 데 기울이고, 이거 있잖아요. 뭐 어디에 뭐 축사가 대상이 나타난다 그러더라, 아니면 어디 뭐 치유가 대단히 나타난다 그러더라, 이런 데만 이렇게 혹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여러분 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본적인 걸 깨달아야 사람들이 신비주의의 미혹이 안 돼요.
당신이 되지 않아요. 여러분 미혹이 되지 않아요. 믿습니까? 그리고 이러면 신앙생활에 정도를 걸어갈 수가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장 기꺼 중요하고 정확한 진리들을 가르쳐 주실까요? 때로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십니다. 제가 환상이나 천사의 방문, 입신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이유가 있어요. 분명히 구약 시대 때 하나님이 꿈, 항상 천사의 방문, 입신 이런 걸 통해서 많은 계시들을 선지자들에게 주셨는데, 비밀을 나누셨는데, 그들의 바토는 있는 게 시작 시기, 사도들인데 왜 사도들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말씀할 때도 있지만 주로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지 않는가?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거기에 대한 이유가 있어요.
나도 몰랐어요. 근데 이 두 주 전에 제가 신학교 개강을 해서 강의를 하는데 성령께서 가르쳐 주세요. 강의하고 있는데 가르쳐 주세요.
환상, 예언, 천사의 방문, 입신, 이게 뭐 하고 관계가 있죠? 미래에 대한 예언과 관계가 있어요. 관상 그죠, 예언, 그 다음에 천사의 방문, 입신. 성경을 다 보세요.
기록들, 이게 주로 뭐 하고 관계가 있냐면 미래에 관한 예언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여러분 세 가지 입신에 대해서 설교할 때 입신의 목적지 하나가 뭐라 그랬어요? 미래에 대해서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미래에 대해 모든 것이 여러분 미래와 관계가 있는 거예요.
특별히 미래에 대한 예언과 관계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구약 시대 때는 어땠나요? 구약 시대 때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구약 시대 때는 초점이 미래예요.
희망이 미래에 있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구약 시대 때에는 미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연히 초점이 미래에 맞춰져 있죠.
그러니까 뭐가 중요해요? 미래를 알려줄 예언이 중요한 거죠.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미래를 알려줄 예언이 중요한 거예요. 대만의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에게 주어라 앞에서만 말할 것과 같은 그러한 신비한 방법들을 통해서 비밀을 계속해서 계시해 주시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우리가 읽는 구약 성경이고 예언서들인 것이에요. [4]
그러나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신약 시대에는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오셨어요. 메시아를 몇 천년 동안 기다렸는데 오매불망하던 메시아가 오셨어요. 또 선지자들의 예언한 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다 성취하셨어요.
11권을 다 이루셨죠. 그래서 이제는 미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과거가 중요한 거예요.
과거가 마음에 때가 중요한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다른 종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과거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십자가가 중요해야 되는 거예요. 부활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복음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진리가 중요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AD와 BC가 보여지는 것처럼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인 것이에요.
예수님은 전 인류 역사의 중심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예수님 같은 분이 없어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보다 중요한 사건은 없어요.
나머지는 다 갔어요. 석가모니든 뭐 마호메드든 다 가짜입니다. 믿습니까? 예수님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참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이. 그게 뭐예요? 복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참 의미를 가르치는 복음.
또 여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진리들이 있어요. 그 진리들이 중요한 것이에요.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렀어요.
제자들을 불러서 그들을 선지자가 부르지 않았어요. 예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선지자라 부르지 않고 제자들을 말하느냐? 말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도라고 불렀어요.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믿는 도리의 진리하고 관계가 있는, 이해가 되십니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 말합니다.
예언이 아니에요. 메시지를 대신해서 전달하는 거야, 말씀과 관계가 있는, 말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도라고 부르신 거예요. 또 사도들의 사역이 선지자들의 사역하고 다른 것이에요.
사도들은 맨날 꿈꾸고 예언하고 환상 보고 뭐 천사 방법 맞고 입신하고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한 일은 뭐냐? 병 고치고 귀신 쫓으면서 천국복음 전파하고 그 다음에 진리들을 가르친 것이에요. 복음 전하고 진리를 확신한 거예요. 처음에는 이걸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사도도 이걸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예언 사역도 이걸 위해서 존재하는 거예요. 핵심은...
뭐냐, 치유가 아니죠, 예언이 아니죠. 핵심은 뭐냐? 복음인 것이에요. 핵심은 예수님이고, 핵심은 복음이고, 믿습니까? 핵심은 진리인 것이죠.
사도들의 3중 사역은 바로 그것을 한 것이에요.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서, 그것을 심히 해봐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진리를 경각에게 가르치고, 그걸 퍼뜨리는 거예요.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장 기껏 중요한 진리들을 계시하실 때, 이제는 선지자들에게 주셨던 그런 방식으로 계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똑같은 방식으로 구약 시대처럼 사도들에게 진리를 계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형태로 계시하시느냐? 우리는 그걸 사도 바울을 통해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바울도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도 입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환상 본 거를 기록한 게 로마서가 아니에요. 바울이 입신 간증을 한 게 고린도전서가 아닙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환상도 보고, 여러분이 입신도 했어요. 그런 것을 통해서 받은 계시록, 서신서들을 쓰지 않았어요. 그러면 어떻게 계시를 받고 사도 바울이 성경을 썼을까요? 바로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서예요.
하나님이신 지혜를 통해서 베드로 3장 15절에 보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이것이 바울 서신에 대한 베드로의 설명이고 평가예요. 바울 서신, 로마서부터, 바울 서신은 뭐냐? 하나님이 바울에게 지혜를 주셨다. 그 받은 지혜로 깨달아서 쓴 것이 바로 로마서고, 그걸 쓴 것이 바로 바울 서신이다.
여러분, 모든 지혜가 계시는 아닙니다. 모든 지혜가 계시는 아니지만, 그러나 어떤 지혜는 계시입니다. 그럼 어떤 지혜냐? 지혜의 말씀을 의해서 임한 것, 주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이지만, 계시적인지 모든 지혜가 계시는 아니에요.
그러나 어떤 지혜는 계시입니다. 여러분, 그 증거로 방금 인용한 구절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12사도를 둘씩 파송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했냐면 이렇게 말씀했어요. 마태복음 10장 19절에서 20절, 너희를 넘겨줄 때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런데 복음서를 읽어보면 이 구절과 병행 구절로 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경 구절들이 나와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1절,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누가복음 12장 11절에서 12절,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 14절에서 15절,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할 말을 주신다, 그때 마땅히 할 말을 말씀을 너에게 주신다.
그 다음에 말씀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다. 너희들이 말하기로 성령이다. 그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다음에 또 이거예요. 성령께서 할 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
이게 왜 중요하냐? 왜냐하면 이것들이 성령이 주시는 구변과 지혜와 병행을 이룹니다. 어떻게 여러분 할 말을 주실까요? 간단히 말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임할까? 어떻게 여러분을 통해서 성령이 말씀하실 거예요? 어떻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우리가 모르는 진리들을 가르쳐 주실 거예요?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까요? 그 답이 여기에 나와 있는 거예요. 어떻게 말씀을 주느냐? 어떻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느냐? 어떻게 우리에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느냐? 그렇죠, 여러분, 바로 구변과 지혜를 통해서인 성령께서 주시는 구변과 지혜를 통해서, 꿈이 아니고 환상이 아니고, 천사의 방문이 아니고 입신이 아니에요.
그런 방법들을 주로 사용하시지 않다는 걸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바라 여러분 구변과 지혜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이,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거를 헤아릴 수 없이 경험해 왔어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경험해 왔어요.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주 경험하고 있어요.
여러분, 다른 이들보다 이것에 대해서 그래서 잘 알죠.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설명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타고나거나 습득된 지혜나 말재주가 있어요.
뭐, 이건 그것에 대한 것 당연히 아니죠.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적인 구변과 지혜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주시는 구변, 성령이 주시는 지혜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이것이 성령께서 주신 것인가 아닌가? 그걸 알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로 한번 따라해 볼까요? 첫째로는 빛입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구변과 지혜는 빛과 같습니다.
빛과 같아. 예수님의 말씀하신 구별과제는 빛과 같아. 둘 다 빛과 같은 특성이 있고, 빛처럼 작동을 합니다.
홀연히 빛과 같은 지혜가 성령님께로부터 임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빛 때문에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거예요.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거예요.
구변이라는 것은 말재주인데, 말재주도 평소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런 말재주가 아니에요. 자기가 말을 잘하고 못하고 이거하고 무관한 것이 빛과 같이 발재주가 임하는 거예요. 빛과 같이 말재주가 아니면서, 그래서 순간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를 자기 영에 머리가 아니야.
자기의 영에 선명하게 알게 되는 거예요. 자기의 영의 선명하게 알게 되는 거예요. 둘째는 계시.
첫 번째 특징은 빛이에요. 두 번째 특징은 바로 계시입니다. 캄캄한 것에,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을 빛이 비치면 안 보이던 것들이 막 보이잖아요.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나죠. 이와 같이 홀연히 구변과 지혜가 비처럼 임하면 순간적으로 안 보였던 것들이 보입니다. 이해가 안 됐던 것들이 이해가 됩니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즉각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뭘 연구하고 묵상하고 예수 되는 게 아니에요.
빛이 들어오면 갑자기 안 보였던 게 확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계시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빛과 같은 구변과 지혜를 부어주면, 여러분, 순간적으로 알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구변과 지혜는 이렇게 역사하지 않죠. 사람의 구변과 지혜는 머리를 작동시킵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한 구변가는 머리가 아니라 영을 작동시킵니다. 머리가 아니라 영을 작동시켜 비처럼 역사합니다.
스위스를 누리면 순간적으로 불이 켜지고, 안 보였던 것이 확 보이는 것처럼 방금 전까지 안 보였던 건 방금 전까지 몰랐던 것을 순간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 구절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알아요.
근데 갑자기 똑딱 했는데 알아요. 그 구절이 뭔지, 이게 뭔지 갑자기 이해가 돼요. 갑자기 확실하게 알아요.
아이, 구절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요. 주석들도 다 읽고, 원어도 찾아보고, 문법이라 문맥도 살펴보았고, 유사기들도 비교해 보았고, 번역본들도 다 비교해 보고, 너 깊이 묵상하고 한없이 씨름하고 열외를 그렇게 했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거는 불가능하다. 이래서 낙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 그거네, 어, 이거잖아, 어, 그거잖아. 갑자기 알게 돼요.
갑자기 깨닫게 해야 돼요. 여러분, 성령께서 주시는 그 구변과 지혜는 이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구변과 지혜는 빛이고 계시입니다.
빛이고 계시. 이건 단순히 지혜가 아니에요. 이거는 빛으로 임하는 계시예요.
꿈만 계시가 아니에요. 환상만 계시가 아니에요. 예언만 계시가 아니에요.
천사가 방문해야만 계시를 받고 입신에서 예수님을 만나야만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것이 계시고 실제로 여러분 사도들에게 이런 계시들이 주로 임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주로 이런 계시를 통해서 신약 성경을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게 성경 아니에요? 근데 이런 계시를 통해서 주로 여러분의 성경이 완성이 되고 기록이 되었다는 거예요. 제가 간혹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뭐 두 주 전에도 강의할 때, 그 뒤에도 제가 설교를 준비할 때도, 두 번 성령님의 계시가 저에게 임했어요. 그 여기 다 지금 이제 포함이 되어 있는데 설명하는 것을 여러분 성령께서 가르쳐 주셨다, 성령께서 계시해 주셨다.
이렇게 말할 때가 많이 있죠. 요새는 내가 이제 그런 말을 잘 안 합니다. 그게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 이런 것을 뭘 봤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난 뵈는 게 없다니까, 오늘 파티하는 게 아니고, 뭘 들었다는 것도 아니에요. 이단 사냥꾼들은 9tv의 떠드는 그런 칸을 왜 만들었는지 몰라요. 진짜 나쁘지.
이단 사냥꾼들을 위한 마당을 만들어 놔, 다른 교단도 아니고 순복음 교단이 완전히 역행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여러분, 거기에 내가 보니까 이단 사냥꾼들이 나와 가지고 떠드는데, 나 진짜 기가 막히더라고요. 소경들이 떠드는데 뭐라 그러냐면 하나님의 오늘날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시다.
어떤 교수를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다. 그래서 꿈이나 환상이나 예언 이런 걸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하셨다면, 그게 직통 계신 이단이다. 조용기부터 딱 이단이고 이 영원도 이단이고 순복음 교단 자체가 왜 떠들게 내버려 두자고 그런 장을 왜 만들어 줘요.
잘못된 거거든요. 참 잘못을 또 거기서 그들이 뭐라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니, 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우리는 얘기 안 해.
옛날에 내가 이 영혼한테 한번 닦아 세워 가지고 데워 가지고 뭐 증거 다 들이대가지고..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잘 안 다루는 영성 언덕이나 성령 언덕이나 지네들이 진짜 이단도 있고 맘대로 이단이라고 지네 멋대로 떠드는 것도 있고, 그런데도 있을 텐데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는데, 하나님의 말씀하셨다 그러는데,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들은 것도 아니고 본 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어이가 없다면 어이가 없는 거는 얘네들이에요. 이게 얼마나 무식한 건지 몰라.
하나님의 성적인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무슨 말 같은 헛소리들이야.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셨는데, 성령을 무엇이고 성령이 마음은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한 당한 성경에 나이고 베드로가 오순도 될 걸 확인을 했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무지 무지막지한 소리들을 떠들어대냐고.
교수라는 것들이 이런 것들을 왜 세우냐고. 그래서 뭘 실제 듣지도 않았는데, 뭘 실제로 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말씀하셨다 그러는데 그게 막 하나님 말씀하신 거냐? 이 무지하게 짝이 없어요.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것처럼 그러면 바울서시는 하나님 말씀이 아니게, 그건 바울의 그리게, 바울에게 무슨 음성이 들려서 로마서를 썼는지 알아? 바울 서신을 썼는지 아니면 천사가 불러준 대로 썼나? 입신에서 들은 대로 썼나? 그게 아니거든요.
여러분, 그가 받은 지혜로 쓴 거거든. 근데 이게 특별히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리고 바울도 계시로 자기 가르쳐줬다고 말하잖아요.
환상으로 본 게 아닌데도 계시로 가르쳤다고 말하잖아요. 믿습니까? 그러니까 성경을 똑바로 봐야지, 정말 성경을 모르는 것들이 함부로 판단자, 옆에서 가지고 실력도 없는 것들이 그런 이단 사냥꾼들을 다 그랬거든. 이단 성분들이 실력이 있는 사람이 어디서 다 무식한 것들이라는 거지.
성경도 모르고 무지한 것들이 거기에다가 거짓되고 악하기까지 하면 지멋. 하나님은 주로 이렇게 계시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믿습니까? 지혜를 통해서 계시하시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차에서 빙의는 이렇게 주어지는 계시에 대해서 다 한 것 같이 말을 했습니다. 언어나 다른 지각 전달 수단으로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경우, 누군가가 가르침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생각 그 자체가 우리 마음에 직접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생각에 대한 표식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이 행하시는 사역이다. 성령의 이 사역을 어떻게 행하시는지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성령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 직접 우리 마음속에 생각 그 자체를 새긴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에 직접 역사하시는 성령은 외적인 표시를 통하여 살아있는 생각을 전달한다. 성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구와 노력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성경 구절들을 끊임없이 개시한다. 승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말씀하시면 우리는 즉시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말씀하시는데,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직접 우리의 마음속에 그의 생각을 넣어주십니다. 때때로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인간의 말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엑스타시 입신 중에 들은 것과 같은 영계의 마음에 언어, 직접적인 말 없는 언어로 하십니다. 제가 엑스타시 중에 천사나 성도들에게 하는 말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말 없는 영적인 언어입니다. 그것은 제가 발음을 하거나 입술을 열기도 전에 그 의미가 전달됩니다.
말을 통해서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영의 계시가 되고 영의 알아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여러분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고 지금 여러분 제가 설명하는 같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제 구변과 지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시관이 많은지 여러분들이 설명을 들어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변과 지혜라고 생각해요.
지금 설명한 이 빛과 같은 계시와 같은 믿습니까? 이것이 바로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구변과 지혜라고 생각하고요. 또 이것이 극대화된 게 뭐냐? 말씀의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혜 말씀의 특징이 누구에게 주어야 되느냐? 사도들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1차적으로는 사도들에게, 그 다음에 선지자들에게 주어지는 제 말씀의 은사는 교사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첫째는 사도들에게, 두 번째는 선지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것처럼 영성운동 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혜의 말씀이 미래에 대한 계시를 뜻한다고 오해를 했어요.
영성운동에서는 지혜의 말씀은 미래에 대한 계시고, 지식의 말씀은 과거나 현재에 대한 계시다 그러잖아요. 케네스에게 목사님도 그렇게 가르치시죠. 오랫동안 저도 그렇게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어렵게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지혜를 통해서 계시적으로 말씀을 부어 주신 것을 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걸 제가 책으로도 냈죠. 그죠? 더 큰 행사를 삼아하라? 이러면서 이제 그걸 책으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가정에서 이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멘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두 은사가 정확하게 뭐를 위하는가 그걸 알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주석을 전부 읽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얘기가 나오니까 알아보기 위해서 다행히 주석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19세기에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 찰스 하지 고린도전서 주석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전에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인데 요약해서 제가 좀 인용을 하겠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지혜를 말하거나 전달하는 은사이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은 지식을 전달하는 은사이다.
또한 지혜는 복음, 즉 게시된 진리의 전체 체계이며, 지혜의 말씀은 그 진리 체계를 신앙의 대상으로 밝히는 은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이 견해를 뒷받침한다. 첫째, 바울은 그 말을 이러한 의미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2장에서 그는 우리가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도 결코 발견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계시에 오신 숨겨진 지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지김들의 배열이 여기에서 제시된 은사들의 배열과 어느 정도 부합되는 28절에서 추론될 수 있듯이, 그 은사는 가장 중요한 은사로서 또한 사도들의 특징적인 은사로서 첫 번째에 위치한다. 은사대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지혜의 말씀이다.
그리고 직임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사도들의 직입니다. 이러한 대응을 처음에 주목했어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이 은사는 완전히 사도들에게만 속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신약 성경의 선지자들에게도 속했다. 그러므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종종 동일한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연상되고 있다. 지식의 말씀은 아마도 교사들에게 속했던 은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28절에서 제기된 열과에서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다음에. 나오고 있다. 지식의 말씀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게시된 진리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나타내는 은사였다.
잘 들으셨나요? 여러분, 여기 보니까, 영성을 통해서 말하는 그런 은사가 아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말씀이잖아요. 주의 말씀은 말씀에서다.
그 다음에 이거는 사도들에게 주신 은사다. 이 은사는 완전히 사도들에게만 속하겠다 이렇게 말을 했어요. 저희한테는 아주 기대하지 못한 큰 성과였어요.
나는 그렇게 깨달았는데, 영성운동에서는 다 다르게 말해요. 천국만큼 얻은 것 같아. 아마 여러분, 제가 지혜의 말씀에서는 이런 은사고, 지식의 말씀에서는 이런 사람 이렇게 설명을 해도, 워낙 영성운동에서 지혜의 말씀의 맹세를 따르게 얘기하고, 지식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당연하죠. 나도 헷갈리더라고. 그래서 뭐 한 1, 2년 전에도 다시 한번 또 책이 나오고 난 다음에도 두드려보기 위해서 정말 내가 옳은가 아니면 핵이 목사님이 옳은가 이래가지고, 뭐 성경을 갖다가 깊이 다시 연구하고, 또 수양관에서 이동기 목사님하고 같이 이렇게 씨름하면서 그 토론도 깊이 하고, 뭐 그런데 그때에도 유동기 목사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결론은 우리가 말하는 게 맞다.
저는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게 궁금한 분들은 제가 설명하는 것을 좀 더 들으면 더 잘 이해가 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두 가지 은사 목록이 나와요.
두 가지 은사 목록이 나오는데 우리는 찰싸지가 지적한 대로 두 목록 간의 대비해 주목이에요. 대비는 종전이 아니라 거리면서 12장 8절에서 10절, 이게 첫 번째 은사 목록인데요. 첫 번째 강사 목록인데 다 해결 시간이 없어.
앞부분 맑음은요,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일으킬 수 있어요.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비교해 보라는 거예요.
뭐 하고 비교해버리냐?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서 30절에 보면 두 번째 목록이 나와요. 요것도 앞부분 말고 드리겠는데 비교해보세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뭐 능력, 회복, 병 고치는 거 뭐 여러 가지가 그 뒤에 나옵니다. 여러분 이렇게 두 목록이 있는데, 두 목록은 불가분의 관계예요. 왜냐하면 전자는 은사를 말하는 거야.
그죠, 은사를 말하는 거. 후자는 뭐예요? 은사에 맞게 주어지는 직임을, 은사와 부르시면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은사와 부르심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은사와 책임은 불가분의 관계죠. 이해가 되시죠? 근데 앞에는 은사, 뒤에는 그 은사에 맞는 책임을 기록한 것이 성령님은 각 사람에게 그분의 뜻대로 성령의 은사를 주시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신지 아세요?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그에 맞는 직분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그 은사를 뜻대로 나눠 주신다. 그럼 에베소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도, 혹은 복음전하는 들어 목사와 교사. 예수님이 하시는 은사는 성령이 주는 것이고, 책임은 주님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12장 4절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방언하는 건 아닌데,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갖고 여러 가지 은사가 우리가 달로 다가트는 것. 근데 다 한 성령이 주신 거, 그러니까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사도 선지자 복음자 다 달라.
근데 이거를 주신 분이 누구냐? 주님이 되는 거야.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8절이야 10절은 은사 목록이죠. 그 다음에 읽어드린 28절이야 30절은 직분 목록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가 서로 대응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빛을 비춰준다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빛을 비춰준다.
그런데 첫 번째 목록에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나오죠. 그 다음에 두 번째 목록 맨 위에는 사도와 선지자, 그리고 교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도, 선지자, 교사 셋 다 뭐냐? 설교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 뒤에 병 고치는 것도 나오고 여러 가지가 교사 새 땅과 뭐예요? 설교자. 그러니까 이 색과 관계가 있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 뭐냐? 말씀의 은사라는 거예요. 그게 무슨 미래에 대한 계시가 아니다, 과거나 현재에 대한 제시가 아니다.
이거는 말씀의 은사라는 거예요. 믿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그걸 통해서 알 수가 또 저는 이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어요. 구약 시대에는 미래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예언이 중요했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복음과 진리가 중요하다.
복음과 진리가 중요하다. 그게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사도와 병행을 이르는 은사가 미래에 대한 계시를 지르는 사람이 이상하지 않나요? 구약 시대하고 초점이 다른데 신약에는 복음과 진리가 핵심인데 이해되시죠? 여러분, 예수님은 삼중사에 가셨는데, 진리 가르치며 천국복음 전파하시며 병 고치시며 믿습니까? 사도들도 다 3종사에 간 것인데, 아니 그러면 사도들에게 주는 은사가 말씀의 은사로 해야지 사도들에게 뜬금없이 예언적으로 가진.
여러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거는 불합리화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혜의 말씀에서 그렇게 영성운동해서 보는 것은 그 견해는 잘못된 것이 되는 거예요.
사도들의 주 사명은 선지자들처럼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죠? 십자가의 복음과 진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널리 전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사도의 상응하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복음과 진리를 기껏 정확하게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바울에게 주신 것 같은 바, 그래서 성경을 쓰게 한 것 같은 그래서 설교하게 한 것 같은 믿습니까? 그것을 봐야지 갑자기 뜬금없이 지혜의 말씀에서 미래에 대한 계시를 암만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어도 성경을 오해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잘못했으면 이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저에게 굉장히 특이한 거란 게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굉장히 특이한 거예요. 성경을 봐라. 성령의 은사에 설명이 필요한가.
은사의 명칭이 그 은사가 무엇인지를 나타내고 있다. 은사의 명칭이 그게 어떤 현상이 로마서 12장을 안 읽겠어요? 시간 없으니까. 근데 지금 우리가 주로 고린도전서 12장을 보세요.
11절 보세요. 보세요.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자 이제 잘 보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그럼 믿으면서는 무슨 은사죠? 믿으면서지.
믿음의 은사가 무슨 은사야? 믿으면서. 믿음의 은사가 방언의 은사야?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를. 병 고치는 회사가 무슨 의사죠? 병 고치면서 연구해봐야 도대체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능력 행함이 뭐죠? 엄청난 능력을 행하는 거지. 믿습니까? 병 걸치는 게 아니라 막 물로 포도즙 만들고 막 바다를 잠잠케 하고 막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나고 그저 아무도 능력에 가는 거지.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이게 뭐죠? 덕을 사고 권면하고 아냐. 이게 예언은 예언인 거예요. 예언이 미래를 말하는 거지 무슨 덕세고 권면하고 아니면 해.
이해가 되시니까 여러분. 그분한 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거예요. 예언이 뭐야 예언이지 여행하는 구약 시대 때부터 계속 오셔서 친구 예언만 하는 거지 뭘.
그죠 귀에 아니. 예언이지. 뭘 예언이 자꾸 예언이 아니라 그래.
예언은 계시가 아니라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들은 영등불변하면 영.
저는 버섯을 분별을 잘해요. 먹는 버섯인가 독버섯.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숨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저는 말씀도 분별을 잘해요. 그런데 갑자기 지혜의 말씀 그럼 아, 지혜를 통해서 말씀을 주시는 거구나 이렇게 얘기해.
이제 지식의 말씀 그룹은 어떤 지식? 지식 말씀을 잘 열던 그런 지식을 주시는 거구나. 믿습니까? 그런 거를 이해를 해요. 그 은사들이 나온 지혜와 지식이 실제로 지혜와 지식으로 예를 해야지 실제로 지혜와 지식을 뜬금없이 하나는 미래 하나는 과거나 현재에 대한 계시를 뜻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걸 뜻하는 것이겠느냐? 그것은 불합리하고 성경에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성경에는 지혜를요 그런 식으로 미래에 대한 걸로 표현한 이런 게 전혀 없어요. 그나마를 하잖아요 죄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에 은사에 대한 영성운동의 오래된 견해가 틀렸다.
그러기에 말씀의 은사라는 하나님 사도에게 주시는 은사고, 하나는 교사들이 계시는 주로 주시는 사람은 이해석이 옳다는 것이 있습니까? 이것이 옳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점점 속 시원하게 이해가 되시죠. 한편 이처럼 사도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짝을 이룬다는 거.
사도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짝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이거는 여러분,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보여지는 것처럼 사도들이 성경을 기억했어요. 그 받은 지혜로 그걸 보여주는 것처럼 정말로 깊고 정확하고 중요한 계시는 환상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니다. 예언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니다.
그건 천사의 방문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니다. 그 입신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니다. 우리도 입시 많이 했어요.
환상 많이 봤어. 천사 본 사람도 많아. 그래서 그분들이 내가 설교하는 것보다 정확한 복음에 대한 제시를 받은 사람이 있나요? 내가 분별하고 정립하고 설교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진리에 대한 계시를 받은 사람이 있나요? 하나 없어요.
여러분들은 걸 통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주는 것이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가장 중요한 계시는 바로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임한다는 것을 이 두 가지의 병행이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거예요.
설명을 드리니까 이해가 되시죠? 여러분 어거지를 얘기하는 게 아니거든. 예를 들어서 베드로는 구병과 지혜를 주시리라는 약속을 예수님께 직접 받은 제자 중에 한 사람이죠. 또 베드로도 성경을 썼어요.
그래서 그런 경험했어요. 그런 경험이었어야 합니다. 그는 자기가 알아요.
어떻게 가장 정확하고 기쁜 중요한 계시들이 임하는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바울서신에 대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쏟고 나도 그랬다 그거예요. 바울도 그 말은 나도 그랬다.
요한도 그랬다. 야고보도 그랬다. 마태도 그랬다.
얘를 쉽게 얘기해서 우리가 형제, 사랑하는 바울도 받은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썩고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또 바울이 어떤 사람이에요.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로 올라가고 수련하는 환상과 계시를 받은 사람이.
그러나 바울서시는 입신 간적이나 천사가 전해준 말들이 아니죠. 베드로가 말한 대로 받은 주의 즉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부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신 내용들이에요. 그것이 바울서신이고 성경이라는 말씀이에요.
또한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런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9절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연구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죠? 바울은 영구 없다.
내가 열심히 연구하겠다 이러지는. 그런 복음의 비밀을 알리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을 부어주어야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걸 목사들이 알아야 돼.
이걸 시작되고 교수들이 알아야 돼요. 연구가 다가 아니라 연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연구가 다가 아니야. 하나님이 말씀을 부어주셔야 됩니다.
여러분, 선지자가 자기가 연구해서 예언합니까? 아니죠. 그런데 선지자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이 사도예요. 그런데 이 사도는 예언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당연히 연구해야 돼요. 그러나 선지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사도는 여전히 계시적인 사람이라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연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이것이 강의에서 교자들에게 유명한 강의에서에게 필요한 것이, 수많은 목사들에게 필요한 것이 영구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지혜의 말씀에 의한 계시라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한 계시라는 거예요. 바울은 이렇게 자기에게 맞는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바울은 지금 설명하던 이런 방식으로 자기에게 임한 계시가 지혜를 통해서 자기에게만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담대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우리에게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자유와 말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사람 말로 받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줄로 이거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진실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러분 믿습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여러분 김세영 교수님과 신학자들이 바울이 이제 복음을 계시요 사람에게 배운 게 아니라 계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전하는 복음이란 진리는 계시록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이것에 대해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을 통해 연구하고 출원에서 깨닫고 정리한 것을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설명한 글을 읽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죠. 바울이 다메섹 경험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맞지만, 그가 복음과 진리를 깨달은 것은 단지 묵상이나 연구가 아니라 그에게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연구 말고 여러분, 연구한 글을 계시라고 그래요. 여러분 입신하거나 천사가 나타나거나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지혜를 통해서 진실을 받았기 때문에 계시라고 말한 것이에요. 교수들이 말이 틀린 것이 자기 수준으로 생각하는 거야.
바울은 실제로 계시를 받은 거예요. 주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지혜를 통해서 복음과 진리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받은 것이에요. 그래서 계시라고 했다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이 계시다면 환상 보거나 음성을 듣거나 천사의 방문이나 입신 같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들을 위해서 계시가 임합니다. 또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도 그런 내용들이 있잖아요. 신약성경에도 복음을 설명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이런 내용만 있는 게 아니고, 신약 성경에도 미래에 대한 종말에 대한 예언적인 내용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연합 중에 어떤 분들은 저한테 이렇게 질문을 할 수도 있어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계시하신 것이 주로 미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고 신학 시대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약성경에 예언이 이루어졌고 예언이 아니라 복음과 진리가 초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신약성경에도 이런 유형의 계시들이 예언적인 내용들이 일부 나타나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저에게 질문할 수 있겠죠. 그죠? 질문할 생각을 안 했어요.
질문해야 되는 건데. 아! 이게 왜 그런지 아세요? 여러분, 왜 그런지 알아요? 이틀 전에 말씀을 막 준비하고 있을 때 계속 성령께서 말씀을 또 부어 주시도록. 여러분 이게 왜 그러냐면 신약 시대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게 있어요.
신학 시대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겠어요? 구약 시대 때 왜 주로 예언 계시적인 것을 예언이나 꿈이나 환상이나 천사나이 기도를 통해서 말씀했느냐? 미래에 대한 예언이 초점이기 때문에. 근데 신약 시대 때에도 예수님이 오셨고 다 성취가 됐지만 신약 시대 때에도 아직 안 이루어진 게 있죠. 그게 뭐예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자 이거를 염두에 두고 신약 승객을 한번 훑어볼게요. 간단하게 먹을 때 볼게요 여러분. 이것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예언에 해당되는 마태복음 24장까지 25장,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을 생각해 보세요.
뭐에 대한 내용이죠? 복음이나 일반 진리에 대한 게 아니에요.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죠. 또 이걸 염두에 두고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 중에서 예언에 해당하는 고린도전서 4장이나 베드로서 3장.
뭐에 대한 거지요? 바로 휴거와 종말에 대한,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계시를 받은 요한계시록이요. 요한계시록이 어떤 내용인지 보세요. 어떤 내용이죠? 마지막 때 일어날 대환란과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거예요.
이해가 되십니까? 복음과 진리에 대한 것들은 거의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는 예언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약 시대 때와 같은 방식으로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계시록을 쓸 때 위로 올라오라 육신 딱 시키고, 또 내가 보니 환상 보고, 또 내가 보니 또 보여주고, 또 내가 보니 또 안 번 보여줘.
그저 계속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바로 이제 뭔가 보이십니까? 뭔가 보이시나요? 구약 시대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로 환상과 예언, 천사의 방문, 입신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절에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고 예언이 중요했어요. 그래야 신약 시대 때는 비례가 아니라 과거가 중요합니다. 믿습니까? 과거가 중요합니다.
즉, 초림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의 부활, 여기서 파생된 복음과 진리들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환상과 예언, 천사의 방문, 입신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이걸 인정해야 되지만, 이건 사용해야 되지만, 여기에 목매면 안 된다는 신약 성경의 재림에 관한 예언 구절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구약의 선지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계시해 주신다는 거예요.
믿습니까? 하지만 복음과 진리에 대한 계시들은 그런 방식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여러분, 재림에 대한 주요 진리들이 신약 성경의 완성을 통해서 충분히 주어졌잖아요? 그죠? 충분히 주어졌어요. 그런 계시들의 필요성이 현저히 낮아졌어요.
현재의 육신을 통해서 성장이 없는 희한한 얘기들을 몇 개 들었습니다. 몰라도 돼. 그게 맞을지 안 맞을지 우리는 모르고, 믿습니까? 절대적인 것도 아닐뿐더러, 몰라도 돼.
모르면 어때? 아무 문제 없어. 성경은 모르면 안 돼. 진리를 모르면 안 돼.
천사가 한 말 몰랐대. 내 복음을 모르면 안 돼. 근데 진리를 모르면 안 돼.
이걸 바르게 알지 않으면 안 돼요. 여러분, 그러면 계시들의 필요성이 현저히 낮아졌죠. 그러니까 여러분, 초대교회 사도들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성경이 기록되는 복음과 진리에 대한 깊고 정확하고 중요한 계시들을 주실 때, 새로운 계시를 주는 게 아니라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계시를 주실 때, 어떻게 하느냐, 구약 시대 때 선지자들에게 계시했던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주신 대로,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지금 굉장히 중요한 얘기라는 거예요. 머리에 받는 것도 좋고, 다 좋아. 근데 이 뼈대를 바르세요.
골조를 바르게 하고 털을 바로 닦고 골조를 받아서야지, 아무리 이쁘게 해놔도 그러면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 생활이 뼈대를 잃으면 미혹되는 일이 없는 거야. 은사를 인정하고 입신 간증을 읽고 뭘 하면서 여러분들이 이심간질한 사람하고 천사가 많은 사망하고 설교 시간이 졸고 딴 교회가 하지만, 웃기려고 한 소리니까 가지 말고, 가지 마오.
회개하고 회개하고 정신 차려서 설교 잘 들으세요. 여러분, 간증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희한한 체험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희한한 입신 간증이 중요한 그건 몰라도 되는 거예요. 그건 안 들어도 되는 거예요. 그건 주식이 아니에요.
주식 사지 마세요. 그거는 가끔 먹는 별식이에요. 안 먹어도 아무 문제 없는 거예요.
많이 먹으면 이빨 썩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여러분, 말씀을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 복음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적인 설교를 사모하고 갈망하고, 그게 바비야. 왜 자꾸 딴 걸 먹으려고 그래? 그게 영의 양식이에요. 그게 생명의 떡이에요.
그게 우리를 살리는 거예요. 그게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를 잘하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에 사모하는 성도가 돼야 돼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다른 거 아니에요. 양은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고, 염소는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
말씀을 사모한다. 양은 말씀을 갈망한다. 믿습니까? 여러분,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기울여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하나 더 아셔야 할 것이 있는데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교리에 영향 때문에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성경을 기록한 토대적인 사도들에게만 주어졌다고 착각을 해요.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요.
이 은사는 성경을 기록한 토대적인 사도들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비토대적인 사도들에게도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완성과 함께 은사가 사라졌다는 은사 중지론은 마귀의 교리잖아요. 진짜 이게 이단 사람들이 이단이거든.
그게 은사 중단론을 퍼뜨리는 이단자들입니다. 그리고 구원파적인 잘못된 교리를 터뜨리는 이단자들입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오늘날도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받은 계시는 잘 들으세요.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 받은 것과 같은 유형의 계시입니다. 이걸 잘 들으셔야 돼요.
오늘날도 지혜의 말씀에서, 그리고 단순히 설교가 아니라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준비하는 설교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제 설교가 그런 말씀을 따라서 준비하는 설교가 있어요. 여러분이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준비하는 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이 받은 것과 같은 유형의 계시에요.
같은 유형의 말이 이거를 뒷받침해 줍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인간의 말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엑스타시 중에 들은 것과 같은 영계의 마음의 언어, 직접적인 말이 없는 언어로 하십니다. 제가 엑스타시 중에 천사나 성도들에게 하는 말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말 없는 영적 언어입니다.
그것은 제가 발음하거나 입술을 열기도 전에 그 의미가 전달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성경의 저자들이 진리를 전달받은 것과 똑같은 언어입니다. 받는 깨달음과 설교와 메시지는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받은 계시하고 같은 유형의 계십니다.
같은 유형에 계신데, 그런데 중요한 게 있어요. 균형을 잘 잡아야 조심히 균형을 잘 잡아야 돼. 무슨 말이냐면 이거는 같은 유형에 계신데 같은 수준의 계시가 아니에요.
유형은 같은 지혜의 말씀에서 주시는 거예요. 같이 지혜를 주셔서 주시는 거야. 같은 유형인데 같은 수준의 계시가 아니에요.
1세기에 사도들은 성경의 기록을 위한 특별 계시를 받았어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받는 것은 특별 계시가 아니에요. 정경은 캔논 기준입니다.
1세기에 사도들이 받은 계시는 완전 무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누구도 그런 계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완전 무호한 계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도 주의 말씀에 은사를 통해서 수많은 계시를 받습니다. 또 연구를 함께 병행합니다. 그래서 설교도 하고 그래서 책들을 쓰는데, 그러나 저의 설교나 책들은 무호한 것이 아니잖아요? 무호한 것이 아니에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죠. 오류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1세기 사도들이 받은 계시는 분별의 기준이 되는 계시지만, 오늘날 우리가 받는 계시는 분별의 대상이 되는 계시입니다.
성경 아래에 있는 계시예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성경 아래에 분별이에요. 그래서 성경적인 것만 받아들여요. 꿈도 마찬가지고, 환상도 마찬가지고, 예언도 마찬가지고, 천사의 방문도 마찬가지고, 입신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성경 저자들과 같은 특별 계시를 받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반드시 그대로 믿으면 안 돼요. 잘못되는 사람들이 특징이 뭐냐면요, 그냥 자기가 바른 대로 그대로 믿어. 자기가 받은 대로 그게 다 맞는 자라, 그의 양심 역사의 첫걸음이에요.
성경 가지고요, 엄밀하게 분별해야 돼요. 성경을 가지고 철저하게 분별해야 돼. 앞에 것도 인정해야 돼.
같은 유형의 계시라는 거. 뒤에 것도 인정해야 돼. 같은 수준의 계시가 아니라는 거.
전통적인 교회는 앞에 거를 달린 적은 안 해. 영성은 당하는 교회들은 뒤에 거를 잘하네. 양쪽에 다 문제가 많아요.
우리는 앞에 거를 인정합니다. 우리는 뒤에 것도 인정합니다. 철저하게 믿습니까? 그래서 절대 철저하게 우리는 뭐, 맨날 말씀 안 해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성경책이 강의 설교하는 교회.
이름 대박, 우리 교회처럼 성경책이 그 목사 설교하고 책하고, 한번 비교해서 봐봐.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야. 성경적으로 왜 그러냐, 우리는 여러분 지혜 말씀의 은사를 통한 계시를 인정하지만, 여러분 또 수준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절대적인 권위를 둡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성경 말씀으로 절대적인 분별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성경이 아니라 교리로 분별하잖아. 강 유명한 관계에서 교리적인 성경이 그거 아닌데, 맨날 그거 떠들다가 죽잖아요. 설교 잘하면 뭐 해? 맨날 성경을 뒤틀려 가지고 비틀어 가지고 전하다가 죽고, 교회만큼은 뭐예요? 자, 이상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드린 것처럼, 진짜 정확하고 중요하고 기쁜 계시들은 주로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이 하나님이신 지혜로 쓴 바울 서신을 입신 간증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하나님이신 지혜로 쓴 바울 서신을 입신 간증하고 비교할 수 있는 또 천사가 나타난 사람 말이나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은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없죠. 또 오늘날도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같은 유형의 계시들이 임합니다. 이것들도 환상이나 예언이나 천사의 말이나 입신 간증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근데 어떤 걸 더 사모하느냐는 거예요. 어떤 거에 대해서, 그게 대단히 잘못된 거라는 거예요. 뿌리를 모르기 때문에, 근본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다는 우리 모두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최고의 계시들이 오는 거구나. 지혜가 주 통로구나. 그래서 은사 목록에 지혜의 말씀을 제일 앞에 둔 거구나.
예언은 저 뒤에 있는데, 의사 목록에 지혜의 말씀을 제일 앞에 둔 것이구나. 그러므로 신비한 간증이 아니라 복음과 진리에 대한 설교를 더 사모해야 되구나. 더 주의해야 되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게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는 비결이구나. 여러분, 그거를 깨달아야 된다는.
설교는 잘 들으세요. 입신으로 했나 안 했나, 예수님을 만났나 못 만났나, 천사가 방문을 했나 안 했나,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닌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지혜의 말씀의 역사를 주셨나 안 주셨나? 지혜의 말씀에서 주시지 않으면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좀 그런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지혜의 말씀의 것을 주셨나 주셨나? 또 주의 말씀에서는 분명히 주셨다면 성경을 잣대로 철저히 분별하고 있는가 안 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분별하게 계시받은 것을 그대로 믿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부터 이제 한 두 달에서 세 달간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세 가지 인도에 대해서 말씀을 시리즈로 전할 것인데, 이것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특별히 계시적으로 강력하게 부어준 거예요.
그 다음에 이거는 뭐, 벌써 1년 6개월 정도 전에 받은 거니까, 여러분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항상 말씀의 메이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검증하고 충분히 분별한 내용이에요. 믿습니까? 신변이 검증하고 충분히 분별한 내용이에요.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예요? 입신보다 더 깊고 정확한 계시.
다음 시간부터 여러분들이 듣게 된 설교는 입신보다 더 깊은 내용이다. 육신 간증보다 더 깊은 입신 간증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다. 믿습니까? 이 생각할 때마다 훨씬 더 정확한 진리고 메시지다, 그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부터 와야 되겠어요? 안 와야 되겠어요? 그 다음 주부터 열린 마음을 가져야 되겠어요? 삐딱하게 쏴봐야 되겠어요? 그 사모해야 되겠어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설교를 끝까지 다 듣고 소화해서, 믿습니까? 신앙생활 전체를 이렇게 다뤄주는 것은 잘 소화하셔 가지고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더 확실하고 건전하고 성경적이고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런 신앙생활은 여러분들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우리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겠는데요. 내가 보니까 그래요. 여전도사님들이 기도인들을 잘 알잖아요.
영감 있잖아요? 그래서 전도사님, 목사님만 들리면 안 되거든. 여기서 이 기도를 하라는 것은, 여기서는 기도인들 할 테니까 여러분은 묵상하라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여기서 기도인들 하려니까 여러분들이 폭발적으로 기도하라고 기도인으로 하는 거거든요. 그렇잖아요? 이거 고쳐야 되겠어요? 여러분들이 진실하게 기도하는 거 압니다.
근데 여기는 새신자도 오고요. 타교에서도 그 소리에 감동을 받아 가지고 막 뜨겁게 기도하는 건데, 안 돼. 지금도 속으로 기도하는 거 금지해.
통성 기도하자면 주여 삼창 하니까 주여 삼창만 딱 해버려. 주여 삼창만 딱 하고, 그 다음부터 여전도사님들만 여기서, 여러분들이 숫자가 훨씬 많잖아요. 안 들리게 믿습니까? 여러분, 뜨겁게 기도해야 됩니다.
뜨겁게 기도해야 돼요. 예배 시간에 아멘 안 해도 돼요. 그건 헷갈려.
하나님은 전혀 안 헷갈려. 전혀 아닐걸요, 여러분들 다 들으셔.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그 습관 바꾸겠습니다.
무조건 소리 내서 기도하세요. 목사 기도하지 마세요. 무조건 소리 내서 하세요.
[음악] [박수] [박수] 제대로 설명을 생활을 하며 신앙생활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느라, 마음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더욱더 내 말씀을 간절히 탐모하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심령될 수 있도록 주님이 시간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바보 아버지, 우리에게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말씀을 참여하며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하나님,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복음의 세례를 알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고마워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복음을 지으려고 그 복음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그대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그렇다고 하는 마음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진리를 바르게 알 때 아버지와 우리가 참 자유를 얻으며 아버지 이 땅에서 모두 [음악]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은혜인지 하나님, 우리가 참으로 성경적인 바른 진리 안에 거할 수 있도록 귀한 말씀들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이 은혜를 아버지 어떻게 감사해야 될지,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이곳 가운데로 부르시고 하나님께 하신 적이 깨달음으로 성령의 그 가르침 안에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실 하나님의 은혜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더 사모하게 하소서. 말씀을 더 사모하고, 이 성경적인 진리를 받고 우리가 깨달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 더 보여 주옵소서. 하나님, 목사님에게 부어 주시니 가르침이 얼마나 높고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서 부러지는 것인지 우리가 알기에 하나님, 진정으로 우리가 이 복음 진리를 더 사모하며 말씀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처럼 성경적인 진리를 사모하며 분별하며 우리가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진리의 말씀대로 계시를 받으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하나님, 더 깊은 은혜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더 사모합니다. 성경을 더 선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봐도 깨닫는 마음에 깊이가 더 부어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지금부터 보여주시는 이 말씀을 인도를 따라 우리가 깊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르도록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 모두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부르짖게 하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하여 힘 있게 부르짖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부르짖음을 들으시옵소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우리 함께 닿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은혜가 주의 진리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박수]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탐험이 증거되게 하시고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알게 되시는 이 성령의, 제 말씀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사로잡아 하나님의 메시지, 제 부활의 성도를 가기를 원합니다.
성자모 정숙하게 되어 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어 원합니다. 아버지여, 우리의 삶이 새로운 영역으로 돌파되어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성령을 부어 주옵소서. 깨닫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찬양합니다. 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진리를 사모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도대가 되는, 하나님 말씀을 더욱 더 잡을 수 있도록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아버지 시간이 없어요.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시간이 없어요.
주시옵소서. 우리가 달라서 어떤 것이 아니니, 하나님 아버지, 그 생일을 더욱더 말하며 성경을 사모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넘쳐 볼 수 있도록 주의 성령이 몇 시간이 없도록 우리가 다른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아니하게 하소서. 그 어떤 것들이 마음을 뺏기는 것이 아니에요.
주시옵소서. 주님, 주의 영으로 더 임하시옵소서. 주의와 계시 영으로 임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님도 은행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을 향한 하나님의 본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법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자들 되기를 원합니다.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을 얻은 지식에 도소하소서. 우리는 아무 걱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빛으로 임하시옵소서. 빛으로 임하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음악] 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모으신 주님을 향한 사모와 주의 말씀을 열기를 원하는 그 칼과, 하나님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목사님에게. 부으시는 말씀들, 담아버지, 우리는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를 아버지, 우리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주의 마음을 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발견하게 하소서. 성령님의 인도를 더 따라가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주님 앞에 날마다 겸손히 엎드리며,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를 구하며,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하늘에 부으소서. 주의 성령님도 역사하옵소서. 각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보시고, 진리를 향한 갈망을 부으소서.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밝게 보여주신 주님. 벗어날 주의하여 [음악]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친구들을 낼 수 있도록 아버지, 우리가 그렇게 날마다 주님을 기뻐하라고 성장할 수 있도록, 주의 성령이 제 성령으로 내려 주시고, 우리에게 충만하게 나를 보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모든, 깨달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날마다 주님을 도와주심을 거쳐 주셔서 아버지의 주님 자시나요.
그렇게 한 사람을 받으며 일상의 수많은 영혼을 사랑할 수 있도록 더더욱이에게도 당연히 돕길 원합니다. 아버지, 모든 것들을 분별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성경, 진리의 말씀을 주어 우리의 삶을 살피게 하시고, 아버지와 성경, 우리의 [음악]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계시의 빛을 받을 수 있는 계신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보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에 계시하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구병까지의 은혜가 무지게 하시며, 그런 사람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성령의 빛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앞에 깨달음과 말씀들을 선포하며 전할 수 있는 그 계실 사람들로 우리 모두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나 성령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성 응원합니다. 새로운 돌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부소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들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붙잡힌 바 되어,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주시는 그 계시록 말미암아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할 수 있는 계실 사람들,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리로 보장되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더욱더 우리가 새로워질 수 있도록, 반석에 굳게 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 제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듣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더 넓은 충만한 영임을 찬양하며 감사하므로 찬양드리며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교회, 하늘 담임 목사님을 통하여 주의 말씀의 모두 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음악]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교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우리 교회 처음 오시거나 온라인 등록 후 참석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예배 후 방송 안내를 따라 오른쪽 스크린 앞으로 나오시면, 환영과 함께 교회생활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신기록 경신 소식입니다. 할렐루야! 지난주 16만 5천 305명이 출석하여 최고인원이 경신되었습니다.
2023년 추석 사랑 나눔 안내입니다. 추석을 훈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난한 성도님들 중, 2인 이상 가정의 30만원, 1인 가정의 20만원씩 지원합니다. 셀 리더분들은 이의상 가정의 총 수입이 200만원 미만, 1인 가정의 총 수입이 100만원 미만인 가정을 조사하셔서, 각 교구 목사님이나 담당 교육자님에게 9월 22일까지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음 주 주일에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제12차 아프리카 선교 소식입니다. 이번 주는 우간다 마신디에서 목회자 세미나가 열립니다.
아프리카 선교팀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역자와 리틀잇 안내입니다. 금주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국내에 사랑하는 교회 전체 목사님들이 가족 동반 리트리트로 함께 보입니다.
사사모 안내입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 사사모는 추석 연휴로 인해 쉽니다. 나머지 광고는 주보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담임목사님 나오셔서 드려진 예물 위에 축복해 주시고, 축도로 주일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오늘만 그렇게 소리 내서 목이 튀었던 이니까, 다음 주부터는 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게 습관이 돼야 돼요. 전통이 돼야 돼요.
기도하겠습니다. 돌아오신 아버지, 감사드리고 찬송 드리며,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지혜의 말씀을 통한 강력한 말씀과 강력한 기도의 천사들을 지켜주시고, 강력한 예언과 강력한 치유와, 아버지 온갖 것들을 부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또 아프리카 문을 여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신 주님, 감사드리고 찬송 드리며, 주님께로 돌립니다. 아버지, 우리가 다 하나가 되고 더 열심을 내서,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아버지 내 감사에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은 글 11조, 감사한 건 각종 예물을 주 앞에 올려 드렸습니다.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물도 드린 성도님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양손의 제물들에 능력이 지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양손의 재 능력이 임하게 될지어다. 임하게 될지어다.
힘은 들어 풍성하게 거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에게 부활했던 큰 복을 부어 주시옵소서.
복의 그런 데는 사명 감당하는 성도들 되게 하시고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아버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들뿐만 아니라 아시아뿐만 아니라 열방이 복 받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완성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높임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한 가지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갈망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기뻐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다 함께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는 우리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으로 충만케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강력하게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권능으로 옷 입혀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을 간절히 원합니다. 병든 자들을 만져 주시옵소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머리 끝으로 발끝까지 치유될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암은 살아질지어다.
모든 불치병들이 치유될지어다. 머리 끝에까지 모든 크고 작은 질병들이 이 시간에 떠나갈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지어 될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더러운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우울증도 떠나갈지어다. 자살 충동도 떠나갈지어다. 정신병도 예수님으로 떠나갈지어다.
귀신 들린 것도 예수님으로 떠나갈지어다. 아! 그 더러운 모든 귀신들은 예수 이름으로 떠나갈지어다. 예수님으로 따라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자유케 될지어다. 아버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로만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거룩한 줄을 예배하고 돌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심령이, 가족과 자녀와 사업이, 몸된 교회와 서울 시민과 북녘 땅의 굶주린 동포들이, 이스라엘과 아프리카와 열방들을 위해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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