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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산행후기
오늘은 서울 둘레길 13코스, 안양천따라 걷는 길(구일역<->석수역)
어느덧 한해를 마감하는 송년 산행이다.
걷기 좋아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어젯밤 꿈자리?를 들먹이며 행동이 굼뜨다. 어제 눈이 많이 온데다 날이 추워져서 길이 미끄러울거라며 출발시간이 되어도 미적거리며 도무지 빨리 갈 생각을 안한다. 요즈음 늦게까지 잠을 못자곤 하더니 어젯밤도 잠을 설친 모양이다. 허긴 평소 걱정이 많은 사람인데 어제 눈까지 내렸으니 오죽하랴..
성당으로 가는 도중 휴대폰을 열어보니 다른 송년모임과 겹쳐 오늘 못온다는 문자 메시지가 2개나 와 있다. 아쉽지만 연말이니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로는 나이와 관계없이 바쁘게 사시는 모습이 부럽다.
그래도 얼추 예상했던 수준으로 8명이다. 연중 참석율 평균치를 웃도니 감사할뿐이다.
잠깐 커피 마시며 담소를 나눈 뒤 일어섰다. 늘 하던 대로 성당에서 집이 먼 3명은 직접 가신다 했기 때문이다. 그 분들과는 걷기 출발점, 구일역 1번, 10시 20분에 만나기로 했다.
오늘 이동은 둔촌동역(5호선)출발, 신길역에서 환승(1호선), 구일역으로 가게 된다. 신길역 환승구간에 유난히 긴, 보통의 3배쯤 되어 보이는 오르막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요즈음 짧은 구간도 계단 이용하는 사람이 드문데 정덕영 안셀모님이 긴다리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른다. 신선하고 듬직해보인다. 뒤편 계단 기둥에 ‘산 오르듯 계단이 좋습니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건강한 젊음이 보기 좋다.
그는 지난 2년간 성당 총무일로 바뻐서?(시간이 어긋나서..)못 나왔었다.
그러다 오늘 비로소 소임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함께 하게 된거다. 키가 커서 일까? 아니면 평소 책임감이 강한 모습이 좋아 보였을까?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다.
그러고보니 둘토산을 맡은 지도 이번 달로 꼬박 2년이 되었다. 아내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붙어 국내외 여러군데를 돌아다니게 되었고 어쩌다가 앞장까지 서게 되었다.
당시는 코로나로 인해 활동도 침체 되어 있어 거의 새로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참여를 유도해야 했다. 산행계획을 세우면서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고, 대중교통 이용만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로 ‘한양도성길과 서울둘레길 21개코스’ 선택했었다. 처음에는 아득했지만 오늘 서울둘레길 13코스를 걸으면 14코스 하나만 남게 된다. 나름 뭔가를 매듭지을 수 있어 흐뭇하고 뿌듯하다. 마치 추수한 벌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느낌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구일역에 도착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고 기쁜 일이다. 심기술+김해순님, 신용건 레지나님을 만나 8명 완전체가 되었다.
출구와 출발점이 연결되어 있다. 안양천 둑방길이 황토색 마사토로 단장되어 있어 어머니품처럼 따스한 느낌이 든다.
눈으로 미끄러울거라던 생각은 완전 기우였다. 어제 온 눈은 바람에 날려갔는지 온데 간데 없이 감쪽같다. 대신 그 자리에 단풍이 남아 마치 찬란하던 늦가을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 마치 물댄 동산처럼 싱싱하다. 강변이라 그런 모양이다.
우리는 빨간 우체통 앞에서 단체 인증샷을 남겼다.
‘기억은 사라지고 사진은 남는다.’ 는 아내의 명언?을 떠올리며..
오늘 길은 강변을 따라 8km만 걸으면 되기에 어찌보면 무료하고 단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 길의 다른 이름은 ‘기찻 길따라 걷는 벚꽃길’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 아마 봄이 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거다.
걷기전에 주변을 둘러보니 겨울 하늘도 예쁘고, 안양천에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철새들도 예쁘고, 사이클 조깅하는 사람들마저도 예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불현듯 겨울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철새들을 보며 걷는 안양천 길”은 어떨까?
걷다보니 겨울은 겨울이다. 강변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어제 내린 눈 때문일까...습도 높은 영하의 차거움에 코끝이 시리다. 게다가 걷기에 간편한 옷차림으로 나왔더니 몸에 한기가 스며들어 움츠려든다. 마침 정자를 지나는데 율리아님이 따스한 커피 한잔하자고 제안하신다. 역시 추울 때는 따뜻한게 최고다. 고구마, 옥수수와 함께 커피 한잔하고 출발이다.
이 길은 뚝방길 중간 중간에 쉴 수 있는 정자와 화장실이 자주 보인다. 지자체(구로구, 금천구)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가보다. 뚝방길 양옆으로 습기를 머금은 겨울 벚꽃나무는 흑빛을 띠고 있다. 빼곡하게 심어놓은 모습이 마치 건장한 병사들 사이로 사열하며 걷는 느낌이다. 역광으로 찍으니 예술이다.
이번에는 뜬금없이 통행로 가운데에 통나무들을 세로로 각각 간격을 다르게 세워 놓았다. 그 위에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써놓고 길을 가로 막으며 어디 자신 있는 곳으로 통과해 가보시오. 라며 도발을 하고 있는 거다. 다들 질세라 도전해본다. 6~70대분들이 두 세단계 낮은 3~40대 코스에 도전한다. 믿을 수 없는 의외결과가 나왔다. 한 두단계 낮은 코스를 통과해버린거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마 실수가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구청에서 뱃살나온 시민들을 배려해서 넉넉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는 거다. 뱃살에 대한 경각심만 주면 되지 굳이 곧이 곧대로 만들어 시민들 스트레스 쌓이게 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어서 철로변 길가에 상록수를 심어 놓았다. 소음 방지겸 가림막으로 키 큰 유럽 상록수종을 쓰려 했던 모양이다. 아직은 키가 작아 어림없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당초 목표 달성 가능할 거 같다. 아무튼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져 좋은 길이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이제 금천구청역을 지났으니 2.5km 정도 남았다.
둘토산도 보통은 2년 단위로 차기로 넘겨야 하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일단 즐겁게 2년을 더 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향후 2년 계획을 세워보았다. 기왕 일단 컨셉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산이 아닌 둘레길로 대중교통 접근이 용이한 곳이어야 한다. 게다가 가고 싶어하는 길이면 더욱 좋겠다. 몇몇분들과 의견을 묻고 고민한 결과 경기도 ‘양평 물소리길’과 ‘수원화성, 둘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경우 양평역은(전철과 경의중앙선 이용) 1시간 12분, 가장 먼 지평역도 1시간 40분이면 가능하다. 수원 화성행궁의 경우도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 40분 정도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왜 그동안은 대중교통으로 갈 생각을 못했던걸까?
사실 2년전 서울 둘레길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냥 한번 걸어보자 했는데 어느덧 완주에서 1코스를 남기게 되었다. 이 정도면 세계 유명한 어느 길과도 견줄만한 ‘명품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유명한 길들은 나름 그 길들이 갖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해에 44만명이 찾는다는 ‘산티아고’ 길은 순례길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길은 장비,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런데 서울시민이 즐길 수 있는 서울둘레길은 서울 주변을 산과 강을 환형으로 연결해 언제 어디서 출발해도 되고 그 보다 더 좋은 점은 일상생활중에 1시간 정도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다닐 수 있는 ‘일상속의 길’이다.
이러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닐 수 있는 길 개념을 확장했더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고 안보이던 길을 찾게 된거다. 뭔가 하려면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문득 우리보다 앞질러간 3인은 어디쯤 가셨는지 궁금해진다. 단톡방에 식사장소까지 알려주었으니 아마 빨리 가셨다면 그것에 도착했으리라. 오늘은 송년의미 겸해서 식사장소를 종착점,석수역 부근 맛집 ‘어탕 곰탕’(별점 4.8)으로 공지해두었던거다.
우리가 도착하니 앞질러가셨던 분들이 되려 빨리 따라왔다며 반겨주신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당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행스럽게 우리 앉을 자리는 비어 있다. 식사메뉴는 딱 2가지 어탕과 곰탕이다. 다들 어탕을 주문한다. 아마 평소 안 먹어본 메뉴이기도 하고, 소양강 민물고기라는 말에 솔깃했는지도 모른다. 가족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서인지 믿음이 간다. 음식도 맛도 깔끔하다. 얇은 옷 추위에 떨었던지라 따스한 국물에 소주 한잔 들어가니 손끝 발끝까지 행복이 전해진다. 이런 것이 일상중 소확행 아닐까?
느닷없는 계엄령과 불발로 인해 온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어지러운 세상에 부디 평화를 주시고 소외된 이웃들도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 함께 해주신 둘토산 8분과 다른 송년모임으로 못 나오신 분들 모두,.안양천따라 걸었던 서울둘레길 13코스처럼 평탄하고 쿨한 새해 되시고 건강하소서~~
첫댓글 라우 회장님, 쉽지않은 일 매주 걷기 인도하시느라 수고하시고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걷다 보니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걷는 이유도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