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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극]
아기토끼 밀키
김 둘
때 : 어느 겨울날
곳 : 숲 가장자리 토끼마을
< 나오는 이들 >
밀키 : 돌키의 누나. 고집 세고 남과 비교를 잘하고 항상 이기고 싶어 함
돌키 : 밀키의 동생.
밀키엄마 : 돌키와 밀키의 엄마. 밀키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고 혼자서 돌키와 밀키를 키움
당근아주머니 : 마음 따뜻한 이웃집 토끼 아주머니
킁킁할아버지 : 마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토끼 할아버지.
< 무대 >
한낮, 산 입구 작은 동굴 속에 토끼굴이 있다. 다른 토끼굴에서는 이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밀키네 토끼굴은 조용하다.
1장 「1등을 할 거예요」
밀키네 집이라고 적혀있는 동굴 앞에 이웃집 당근아주머니가 와서 안을 기웃거린다.
당근아주머니 : (관객들에게) 글쎄, 말이유. 이제 더 추워질 거라 깊은 숲속으로 갈 거예요. 그런데 이 집은 어쩐 일이지 이삿짐 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이에요. 무슨 일일까 해서 한 번 들러 본 거라우. 이웃 간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쯤 들러보는 것이 맞지 않겠수?
( 토끼아주머니, 동굴 문을 똑똑 두드린다 )
당근아주머니 : 계세요? 밀키 엄마?
(아무 소리가 없다)
당근아주머니 : (문을 좀 더 세게 두드리며) 밀키엄마, 밀키엄마!
밀키엄마 : (문을 살며시 열고는) 아, 아주머니 어서 오세요.
(문을 활짝 열어 주고 밀키와 돌키에게) 너희, 아주머니께 인사
드려야지.
밀키.돌키 : (무표정하게) 안녕하세요….
당근아주머니 : 그래, 잘 지냈니.
밀키.돌키 : (둘 다 무표정하게 쳐다보고만 있다)
밀키엄마 : 죄,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애들이 아직 철이 없어서….
당근아주머니 :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아, 괜찮아요. 애들이 본래 그렇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나저나 밀키엄마, 곧 큰 눈이
올 텐데 왜 이사 채비를 안 했어요? 우린 준비 다 했는데.
밀키엄마 : 아, 예…. 그, 그게요. 우리 밀키가 여기를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서요.
당근아주머니 : 그렇더라도 잘 달래서 데리고 가야지. (밀키를 바라보며)
얘, 밀키야 무슨 이유로 떠나지 않겠다는 거야?
밀키 : 겨울 동안 여기서 훈련을 해야 해요.
당근아주머니 : (눈을 똥그랗게 뜨고) 뭐? 훈련? 무슨 훈련을?
밀키 : (귀에 힘을 꽝 주고 허리를 곧추세우며) 지난번에 토끼마을 운동회
할 때요 제가 달리기에 1등을 못 했거든요. 그래서 겨울 동안
달리기 연습을 하려고요.
당근아주머니 : 뭐? 달리기 연습…? 밀 키야, 그때 너 1등은 못했지만 2등
했지 않니? 다들 너 달리기 솜씨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밀키 : (눈에 힘을 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것으론 안 돼요. 전 1등을
해야 해요!
당근아주머니 : (밀키엄마를 쳐다보며) 이런, 밀키가 고집이 세군요.
밀키엄마 : 그러니까요. 동생은 벌써 짐을 다 쌌는데 저 애는 절대로
안 간다네요. 어떻게 데리고 가야할지….
당근아주머니 : (밀키에게 달래듯이) 밀키야, 달리기 연습은 숲속 깊은
곳에 가서 하는 게 어때?
밀키 : 하지만 달리기 대회는 내년 봄에 이곳에서 하잖아요. 전 이곳에서
계속 연습할 거예요!
밀키엄마 : (한숨을 푹 쉬고 당근아주머니를 쳐다보며) 휴, 고집부리는 게
이것만 아니에요. 지난번 당근 갉기 대회 때 1등 못했다고
당근 갉아 먹는 연습을 한다잖아요.
당근아주머니 :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밀키를 향해) 밀키야, 너만큼 당근
갉기를 잘하는 아기 토끼가 우리 마을에 있을까?
네 솜씨는 정말 훌륭하단다.
밀키 : (눈에 힘을 뽕뽕 주면서) 그렇지만! 지난번에는 이빨 끝이 아파서
1등을 못 했잖아요. 이제 좀 나았으니 연습을 시작해야죠.
당근아주머니 : 하지만 밀키야, 그때 너 거의 1등 할 뻔하다가 2등 했잖아.
1등이나 2등이나 꼭 같은 거야.
밀키 : 아니에요. 1등 한 토끼에게는 저보다 더 큰 당근을 주었잖아요.
다음에는 제가 꼭 1등 할 거예요!
당근아주머니 : 저런….
밀키엄마 : (한숨을 푹 쉬면서) 휴, 그것만이 아니에요. 지난번 멀리 보기
대회 때 1등 못했다고 눈 돌리기 연습을 한다잖아요.
당근아주머니 : (또다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밀키야, 우리 모두 다 멀리
보기 연습을 해야 한단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같이
멀리 보기 연습을 하자꾸나. 어때?
밀키 : (눈에 힘을 뽕뽕 주면서) 숲속 깊이 들어가면 흰 눈 때문에 연습이
잘 안 돼요. 여기서 저 아래 마을 사람들 보며 눈 운동 할 거예요.
당근아주머니 : 어휴, 얘야. 그러다가 사람들한테 잡히면 큰일 난다.
사람들은 무조건 피해야 해.
밀키 : 아이, 참 아줌마도. 제가 도망치면 사람들이 잡지 못해요.
제가 얼마나 빠른지 아시죠? 비록 달리기 대회에서 2등 했지만요.
당근아주머니 : 이런….
밀키엄마 : (또다시 한숨을 푹 쉬면서) 휴, 그것만도 아니에요. 지난번
냄새 맡기 대회에서 1등을 못 했다고…. 냄새 맡기 연습도….
당근아주머니 : (또다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밀키야, 너만큼 냄새 잘 맡는
아기 토끼가 우리 마을에 또 있을까, 넌 저쪽 마을에서
날려 오는 꽃향기를 아주 잘 맡잖니. 봄꽃 향기를 제일
처음 알아차리는 게 너잖아.
밀키 : (옆에 있는 동생 돌키를 가리키며) 하지만 지난번 냄새 맡기
대회에서 돌키가 1등을 했잖아요. 돌키는 꽃향기도 잘 맡지만,
동물들 냄새도 잘 맡아요. 돌키보다 더 많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연습해야죠!
당근아주머니 : 하지만 밀키야, 그 대회에서 너 3등을 했잖니.
3등이면 정말 대단한 거야.
밀키 : (시무룩한 표정으로) 하지만, 다들 돌키만 칭찬하고 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다음에는 제가 꼭 1등을 해서
칭찬받을 거예요!
2 장 「우리끼리 떠납시다」
저녁 무렵, 돌키네집 앞에 횃불을 들고 킁킁할아버지가 문을 두드린다.
밀키엄마 : (문을 살며시 열어 방문객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며)
아, 어르신. 어서 오세요. 바깥이 추운데 들어오셔요.
너희들 킁킁 할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밀키.돌키 : (조금은 무서워하며) 안, 녕, 하, 세, 요….
킁킁할아버지 : (화난 듯한 표정으로) 너희 둘 중 누가 이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밀키.돌키 : (서로를 쳐다본다)
밀키엄마 : 아, 어르신. 그게….
킁킁할아버지 : (밀키엄마에게) 다 알고 왔으니 어멈은 나설 필요
없소이다. (다시 밀키.돌키를 쳐다보며) 너희 둘 중 누구냐!
밀키 : (깜짝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그게…. 제, 제가요….
킁킁할아버지 : (밀키를 노려보다가) 어째서냐!
밀키 : (무서워 벌벌 떨며) 그게…. 달리기랑 당근 갉기랑 냄새 맡기랑
연습을….
킁킁할아버지 : 그 연습을 꼭 여기서 해야겠단 말이지?
밀키 : (기죽은 목소리로) 예….
킁킁할아버지 : 우리가 이사 가는 숲속에서도 할 수 있다.
여기는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밀키 : (눈에 힘을 조금 주면서) 하지만, 여기서 해야 내년 대회에서
1등 할 수 있어요.
킁킁할아버지 : 왜 꼭 여기서 연습을 해야 하느냐!
밀키 : (눈에 힘을 뽕뽕 주면서) 이곳에서 대회를 열 거니까요. 다른 데서
연습하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없잖아요.
킁킁할아버지 : 너 이 녀석!
(밀키엄마와 밀키와 돌키, 너무 놀라 얼음이 되어 버린 듯 몸이 굳는다 )
킁킁할아버지 : (밀키엄마를 향해) 밀키어멈, 내일 이 아이를 여기 두고
우리끼리 떠납시다.
밀키엄마 : (당황하며) 아, 어르신…. 하지만 아이를 혼자 두고….
킁킁할아버지 : 거, 욕심이 저렇게 많은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숲속에
들어가겠소. 저런 욕심꾸러기 토끼를 데려갔다간 오히려
우리만 욕을 먹고 쫓겨날 수도 있소. 산 할아버지는
자기 생각만 하는 산토끼라면 숲에 들이지 않소.
그러니 돌키랑 어멈 짐만 잘 챙겨 두시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떠날 것이니.
밀키 : (긴장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본다)
밀키 엄마 : (밀키의 얼굴을 보더니 결심한 듯) 그래, 밀키야. 안됐지만
그렇게 해야겠구나. 우리는 할아버지 말씀을 따라야 해.
밀키 : (불안한 표정으로 엄마를 향해) 하지만, 엄마….
저 혼자 두고 가시면…. 위, 위험하지 않겠어요?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킁킁할아버지 : (성난 목소리로) 그만둬!! 너 같이 자기 생각만 하는
아기 산토끼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밀키 : (울먹이며) 할…. 할아버지…. 그렇지만….
킁킁할아버지 : 그러게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려? 밀키어멈, 그리 알고
내일 아침에 돌키 데리고 마을 공터로 나오시오. 에헴~! (할아버지 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돌키 : 하, 할아버지, 그럼 우리 누나는 어떻게 해요? 우리가 가고 나면….
킁킁할아버지 : 모르지, 남아 있다가 어흥 호랑이한테 잡아 먹힐지, 으르렁
늑대한테 잡아먹힐지, 아니면 산 밑 사람들이 가져온 총에
맞아 산토끼 바베큐가 될지.
돌키 : (울먹이며) 안 돼요. 우리 누나도 데리고 가요. 엄마, 제발요.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누나 데리고 가자고 해 주세요. 누나 혼자
두고 가면 위험하잖아요. 어흥 호랑이나 으르렁 늑대한테 잡아
먹히거나 사람들에게 잡혀 산토끼바베큐가 되면…. 그건 안 돼요, 엉엉 (큰 소리로 운다)
돌키엄마 : (웃음을 참으며 큰소리로) 우리가 데리고 가고 싶어도
네 누나 밀키가 안 간다잖아. 나중에 1등 해야 하니까
혼자서만 여기서 연습한다잖아. 할 수 없잖아.
돌키 : (엉엉 울며 엄마에게) 엄마, 누나도 데리고 가요. (밀키를 바라보며)
누나…. 우리랑 같이 가자. 다음에 냄새 맡기 대회에서 내가
1등 하지 않을게. 제발 같이 가자. 엉엉….
킁킁할아버지.밀키엄마 : (돌키를 보며 웃는다)
3장 「우리의 밀키」
밀키네 동굴 안, 돌키는 울다가 잠이 들고 밀키엄마는 이삿짐을 싼다. 돌키는 옆에서 자는 척한다.
밀키엄마 : (밀키에게 들으란 듯) 밀키야.
밀키 : (눈에 눈물이 고여 있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밀키 엄마 : (밀키에게 들으란 듯 이삿짐을 싸면서) 밀키야, 네가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린 너무너무 기뻤어.
밀키:….
밀키엄마 : 아빠와 엄만 네가 뛰지 못하는 토끼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밀키:….
밀키엄마 : 설사 네가 냄새를 못 맡는 토끼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단다.
밀키 :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떨어진다)….
밀키엄마 : 네가 다른 아기 토끼들보다 걸음이 느리고 달리기를 못할 때
아빠랑 엄만 너가 조금 늦을 뿐이라고 생각했어.
빠르고 느린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니까.
밀키 : (눈을 떠서 말없이 듣고 있다)
밀키엄마 : 아빠가 돌아가실 때 엄마한테 뭐라고 한 줄 아니?
밀키 : (말없이 귀를 쫑긋 세운다)
밀키엄마 : (뒤에서 밀키의 귀가 쫑긋 세워진 모습을 보며) 우리 딸 밀키는
조그만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토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밀키 : (큰 눈물방울이 눈에서 떨어져 내리고 어깨가 들썩거리게 흐느낀다)
밀키엄마 : 정말이야. 우린 네 웃음만으로도 행복했어. 그래서 우리는
두 손 모아 빌었지. 우리 밀키가 어떤 일을 하든 항상 웃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요즘 밀키는 행복해 보이지가
않아…. 옛날의 웃음도 사라져 버렸어. 아빠한테 약속했는데,
네가 늘 웃으며 살 수 있도록 잘 키우겠다고. 하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네. 돌아가신 아빠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밀키 : (울먹한 소리가 입 사이로 새 나온다)
밀키엄마 : 네가 1등 못했다고 눈물을 흘릴 때 엄마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 밀키는 밀키거든. 우리의 밀키거든. 온갖 대회에서
1등을 한다 해도 우리의 밀키고 대회에서 와장창 꼴찌를
한다 해도 우리의 밀키는 밀키거든. 엄마 아빠의 밀키….
밀키 : (서서히 엄마 쪽으로 몸과 얼굴을 돌려 누워 엄마 얼굴을 바라본다.
밀키 얼굴엔 눈물 콧물 범벅, 조그만 목소리로 엄마의 말을 따라
한다)
엄마의 밀키, 아빠의 밀키, 우리의 밀키, 아기토끼 밀키….
밀키엄마 : (밀키에게 다가가 귀를 만져주며) 그래, 넌 우리의 밀키야.
우리 모두의 밀키야. 당근아주머니의 밀키, 킁킁할아버지의
밀키, 돌키의 밀키, 웃는 모습이 예쁜 밀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사랑스러운 밀키….
밀키 : (엄마를 껴안으며) 엄마…. 저는 돌키보다 못해요. 늘 제 생각만
해요…. (훌쩍훌쩍 운다)
밀키엄마 : (밀키를 안아주며) 이런, 또 그런다. 남과 비교하면 행복은
멀리달아 나. 다른 것들과 비교하면 결국 밀키는 불행해져.
왜냐하면 밀키는 밀키니까.
밀키 : (눈물 콧물 닦으며) 응. 하지만 진짜로 내일 나 혼자 남겨두고
갈 거예요?
밀키엄마 : 그건 알 수 없지. 어쨌든 우리는 킁킁할아버지 말씀에 따라야
하거든.
밀키 : (동굴이 떠나가도록 소리 내어 운다)
밀키엄마 :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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