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와 교만 (신명기 8:11~14)
아름다운 소식.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고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이런 말씀을 대하면 우리 마음은 기쁘다. 이런 복을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평생 배부르고 부족함 없이 은금이 증식되는 삶을 위해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말씀을 지켜 약속된 풍요를 늘려가길 원한다. 증식 번성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성경 말씀이 인간 본성에 딱 들어맞게 되어있다. 순종하면 주겠다. 심플하게 말씀대로 되면 좋을 텐데.
그런데 성경 기록 목적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서라면 성경은 기복적 말씀 기록된 우상숭배 책이 될 것. ex욥. 이스라엘 백성. 가나안땅에 들어간 다음 여호와를 잊어버린다. 물론 그들은 안 잊어먹었다 생각. 다들 여호와 믿는다 생각했는데 그 여호와가 바알.
우리가 믿는 예수가 바예수- 가짜 예수일 수 있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실제적으로 이 말씀을 받아 기쁘고 즐거워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들어가서 잊음. 나중에 바벨론에 팔려감. 하나님은 풍부를 약속하고, 풍부하게 되었을 때, 다시 우리 교만함으로 인해 우리를 징계
하나님이 말씀 주시는 목적 1 심판하기 위해. 그 심판을 통해 새로운 자아 만들기 위해. 이 모든 말씀대로 행하려는 순간 우리는 심판받게 된다.
레지던트 이블. 상주하는 악.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있는 악.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형벌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식으로 날아온다. 어떤 말씀 지켰다고 기뻐할 수 없다.
청년 부자. 너의 소유를 다 팔아 나눠주라.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말씀. 본인이 피땀 흘려 벌었다면 도무지 양보 불가. 우리가 예수 믿을 때 나의 것을 지켜준다, 내 것 보호해준다는 믿음 전제하에 믿는 것. 내 것 뺏기려고 예수 믿는 자 없다. 따라서 우리 믿음은 다 가짜.
현재 있는 내 것을 지키고 보호해줄 때 의미 있는 예수. 내 것을 내놓으라는 예수는 도둑.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말씀하실 때 예수를 죽여 버리는 것.
우리가 뭔가 믿을 때는 내게 도움 되라고, 내 재산 생명 보호받으려고 믿는 것. 예수를 오히려 십자가에 죽인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나올 때 내 생명 건강 재산 식구 보호받으려는 마음으로 교회 나와 성경 펼친다.
전제조건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잊어버리면 죽는다. 그런데 실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부분 잊어버린다.
돈을 지키는 마음. 우리는 다 돈의 경비원. 그러나 말씀은 잊어버린다.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 어떤 물건을 살 때도 제값 주는 사람은 없다. 돈이라는 것은 내가 갖고 있을 때만 권력, 자유. 이 돈이 넘어가는 순간 권력 넘어간다.
우리가 주님 말씀 대할 때. 풍부할 때에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말라. 돈을 쥐고 있는 한 우리는 돈만 기억한다.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을 주는 순간 우리에게 잊어버린바 되신다.
우리에게 아슬아슬하게 계속 주를 바라보도록 주시는 것. 풍부했다- 다음 가난함이 밀려온다.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는다. 모압, 암몬, 가나안... 다들 주께 부르짖음. 주님이 사사들을 세워 쫒아냄- 또 잊어버림.. 반복
왜 하나님께서 줬다 뺏다 함? 하나님의 초점은 우리 복지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어디에? 모든 이방종교는 인간의 인권, 복지, 혜택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점은 우리의 행복 아니고 예수님 본인의 행복에 있다.
복음은 gospel good news 누구한테 좋은 소식? 일차적으로 우리한테 기쁜 소식인 것처럼 들리지만 최종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하나님의 구원 작업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평생 반복된다. 왜?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체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소유가 많아지면 네 마음이 교만해진다. 소유가 많아져도 겸손하게 살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소유가 많아지는 순간 주체 불가. 자동적으로 교만해진다. 소유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 바꿔말해 우리는 죄인.
돈이 기쁨. 내 집 내가 가진 것이 내 자랑. 그런데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고, 심지어 못생겼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기뻐한다? 이런 사람은 없다. 하루에 5초 정도 기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머지 23시간 59분 55초 내 소유로 기뻐한다.
눈에 보이는 교회가 날아간 것 때문에 슬퍼하고, 눈에 보이는 교회 짓는 것 때문에 기뻐하고. 보이는 건 돈.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예수님을 기억해서 기뻐하고, 예수 때문에 슬퍼하는 교회 없다. 나한테 이런 소유도 안주는 하나님이라면 탄핵받아 마땅.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 아니다.. 현실적인 말씀 안하고. 소유를 가지고 기뻐하는 삶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옥의 전초전, 버림받은 자의 모습. 속고 있는 것. 어떤 사람도 소유로 자기 생명을 얻지는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소유가 우리를 살린다는 믿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옥 백성의 사고방식. 하루에 4초 정도 소유 없지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은혜 때문에 산다는 깨달음, 깨달음이 주는 자유..
나 억울하다. 당신의 의롭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움 따위 안중에도 없다. 의로운 당신을 그대로 지옥 보낸다. 나는 의롭고 억울하다는 판단 기준 자체를 하나님은 무시. 그 의로운 게임에서 당신을 건져내는 것. 그 새로운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
우리는 우리 개인의 의로움 우리 소유에 눈멀어 살아간다. 그런데 천국 들어갈 때는 우리 개인의 의로움으로 통과 안 된다. 천국의 문은 자기 의에 빠져 평생 살아온 나 - 예수님이 대신해서 만들어놓은 의가 있다.
소유가 많으면 생명이 풍성 - 착각. 어리석은 부자. 오늘 밤 네 생명을 찾는다면 너의 소유가 어떻게? 인생은 하루하루 늘어지는 것이 아니고 쌓인다. 백년을 살아도 한날밖에 안된다. 돌아보면 한순간. 세계 최고 고령자 117세 할머니.
은행에 들어있는 십억 백억 숫자에 불과. 우리를 살리고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자체는 대신 죽으신 예수님 덕분. 우리는 욕심꾸러기. 줄 때는 좋아라 하지만 가져갈 때는 원망. 청춘을 돌려다오- 하나님 앞에 데모하는 것.
이 말씀을 대하고 이 풍부함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대로 살고 여호와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자기를 모르는 것. 우리는 욕심꾸러기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매일 우리가 욕심꾸러기라는 사실을 성령에 의해 책망 받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면 이전에 자아는 어디에? 그런 자아가 어디로 간 게 아니고 그 자아도 우리 속에 함께 있는 것.
새로운 자아가 이전에 자아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는 것. 욕심 많은 자아, 죄 많은 자아, 주면 좋아하고 뺏으면 욕하고. 이런 자아는 하나님 심판 받고 지옥 가야 마땅. 따라서 그 실체를 파악했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피조물의 자아가 있다는 것. 이게 구원받은 자.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씨름하다가 이스라엘 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야곱은 이스라엘로만 살아감? 아니다. 끝없이 야곱의 본능이 튀어나오면서 그 위에 이스라엘이 부어진다.
야곱의 뜻. 발뒤꿈치 잡고 속인 자. 감각을 속이는 것이 없으면 물건 안팔린다. 좋은 집, 만두집 김. 인간 자체가 속이는 존재. 자체가 야곱. 항상 뭔가를 잡아당긴다.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
세례 요한도 속임. 약대 털옷을 입고 있음으로 내용물을 속인 것. 예수님이 초라하게 오시니까 속음. 여전히 야곱은 살아있다. 그 위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덮어진 것. 이 과정을 통해 속이는 자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따라 나오는 것.
은혜라는 것은 만두가게 김 나오는 것처럼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우리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 사랑. 용돈 줄 때 흐뭇함이 파생. 그 흐뭇함을 물질로 바꾸어 지갑에 넣을 수 없다.
야곱의 속성 드러날 때 야곱의 허물을 덮어주고 이스라엘 되게 하시는 은총. 죽을 때까지 뭘 가지면 교만해지는 속성을 숨길 수 없다.
하나님께서 풍부하게 한다- 이 풍부함을 지키기 위해 겸손함을 지켜야겠다. 주님께서는 결국 교만하게 만든다. 그걸 통해 우리의 야곱적 본성을 까발린다. 우리는 결국 주님 때문 아니라 돈 때문에 기뻐한다는 사실을 드러난 이후. 이러니까 지옥 가야 마땅하다는 것 고백시킨다. 말씀 지키는 네 노력으로는 하나님 나라 갈 수 없다.
우리는 말씀 앞에 박살. 말씀 앞에 매일매일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이 야곱. 그 야곱 앞에 예수님이 피 뿌림으로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 입혀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구원의 작업을 우리 인생을 통해 드러내기 위해 우리에게 줬다 뺏었다 하는 것.
예수 믿는 고정적 자아를 가져가는 것 아니다. 탐욕 가운데 빠져있다는 사실.. 제사장 의복 화려. 의복과 의복을 입은 사람 둘 중 무엇이 중요? 의복이 중요. 하나님은 제사장 의복을 보시고 그 의복을 입은 제사장 활동 통해 영광 받으시는 것. 의복 벗은 아론을 보면 당장 죽음.
우리가 중요한 것 아니고 우리 위에 입혀진 의의 옷이 중요. 그 속에 떨고 있는 우리, 야곱... 우리는 다 야곱 계열. 툭하면 뺏어오고 싶고. 양심껏 돌려준 자기 의로움으로 천국 못 간다. 그 의로움으로 교만해서 주님 잊어버림.
우리 하루하루의 삶이 매일 온탕과 냉탕. 거기서 우리는 내 뜻대로 내 인생 고정화시켜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끝없이 예수 그리스도 바라본다. 농사 잘 되서 수 년 동안 고정적으로 놀고 싶은데. 나라는 고정적 삶의 틀을 유지할 수 없다. 다시 주님을 잊지 않도록 우리 인생을 끌고 간다. 그것이 은혜 받은 증거.
매일매일 만나를 기대하는 삶. 그것이 은혜받은 증거. 오늘 죽어도 주의 품 안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는 삶. 이 말씀 통해 우리에게 풍부한 소유 올 때 감사하자. 그 풍부함은
주의 은혜로 먹는 것이 풍족한 밥. 은혜를 벗고 보면 만족 못한다. 우주를 삼켜도.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게 되는 순간에는 멸치 찍어먹어도 은혜. 은혜 속에 있을 때 비로소 만족함을 안다.
풍부하게 되어도 우리 인간 욕망 끝없고, 풍부하게 될 때 그 교만함이 하나님을 치게 됨. 예수님이 피땀흘려 만들어주신 의의 옷을 기쁘게 입고 살 수 있도록 축복을 더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