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6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19: 사랑의 세레나데......1 04/24 12:30 124 line
이렇게 좋은 아침, 빌리 할리데이의 재즈를 들으며 출근하는
것은 그리 어울리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경쾌한 행진곡풍의 음악을 들으며 짜증나는 러시아워를 버텨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수자의 행진곡에는 웬지 군국주의
의 냄새가 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교련복을 입고 운동장에 모여
소위 <교련조회>라는 것을 서야만 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 짜증나던
시간을 끝내고 교실로 돌아올 때는 항상 수자의 행진곡이 들렸었지요.
월요일 아침에 처음으로 듣는 음악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한 주가결정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기사 주말이고, 휴일이고를
헤아리지 못하고 꼬박 사무실을 지켜야만 했던 이번 4월은 그야말로
제게는 "잔인한 달"이었고, 그러기에 굳이 월요일 아침을 따질 필요가
없겠지만, 그저 공연히 월요일 아침의 맑은 날씨를 즐기고 싶습니다.
오늘은 그럼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나 한 번 풀어 볼까요...
강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2월의 여의도에서 불러 제끼던
사랑의 세레나데, 눈물없이는 감히 볼 수 없는 그 아름다웠던 지난 날의
이야기나 한 번 해 볼랍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남자가 당신의 창가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찬가를
부르는 것을 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혹 여러분은 사랑하는 그 녀의 집앞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 본
경험이 있습니까?
사랑이라고 하는 단어가 하도 많이 남용되다 보니깐 언제부터인가 가장
진부한 단어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이란 가장 아름다운 단어 중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짝사랑이던, 아니던간에 말입니다.
한 이대생을 사랑했던 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다니는 과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이름도 모올라요,
성도 모올라..."하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그 친구의 마음만큼은 쥬리엣을
사랑한 로미오처럼, 춘향이를 사랑한 몽룡이처럼, 순애를 사랑한
수일이처럼,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난장이처럼, 머니를 사랑한 샤일록
처럼, 제비를 사랑한 놀부, 아니 바람난 아줌마처럼 지고지순했었음을
저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그 녀의 집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대현골에서 길가다 얼핏 본 여자를 쫓아 종로 2가 시사영어 학원 앞에서
한 시간 십오분을 기다리고, 종로서적에서 사십 오분을 쫓아 가구,
여의도 가는 버스를 같이 올라타 마냥 쫓아 가고(아마 그녀가 택시를
잡아 탔다면, 오늘의 이 이야기는 할 수 없었겠죠.), 좌우간 이악물고
한나절을 쫓아 다니면서 "차라도 한 잔 같이 할까요"라는 말 한 마디를
못 건넨채, 간신히 그 녀석이 확인한 것이라고는 그 녀가 여의도
대교아파트에 사는 섬처녀라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를 처음
본 장소가 이대 앞이구, 그녀의 가슴에 이대생임을 알리는 뱃지가
달려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녀가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친구는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매일같이 여의도
대교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가 등교하는 것을 기다려 같이
신촌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집이 수유리였던 녀석이 그 짓을 할려면
새벽별을 보면서 집을 나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녀석의 부모님은 매일 새벽 규칙적으로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세째 아들을 보면서 이제야 저 자식새끼도 사람이 되었다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대생과의 수업시간표가칼같이 일치하지 않는 한, 그 자식이 그
지랄을 떨고 다니면 다닐수록 결강이 늘어나고, 이윽고 수업일수 미달로
권총을 찰 수 밖에 없었음을 말입니다.(이 글을 읽으시는 대한민국의
학부모 여러분, 자식새끼가 밖에 나가서 무슨 짓꺼리를 하고 다니는지
늘 도끼눈을 뜨고 감시해 주십시오. 품안에 있는 자식이라구 해서
밖에 나가서도 토끼같은 애새끼는 결단코 아니올시다.)
그래도 그 친구는 주장했습니다.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라구요. 녀석의 행복은 매일 아침 여의도
대교 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 녀와 짐짓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
보는 것에 다름아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우울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녀석이 우울해 하는 날은 보나마나 아침시간에 그녀를
만나 보지 못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최고 4시간까지 그 버스 정류장에
서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그 친구는 말했습니다.
그 지랄도 한 달을 넘기자, 그 친구를 도와주시는 독지가도
생겼습니다. 대교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의 토큰파는 오씨 아줌마,
오 아줌마는 그 친구가 행여 늦게라도 여의도에 도착하게 되면
"학생, 오늘은 늦었네! 버얼써 갔어..."
하시며 유용한 정보를 알려 주시거나, 추운데 들어와서 불이라도 쬐라며
토큰판매대의 한 귀퉁이를 넌지시 비워주시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내 자식이 학생같으면 벌써 때려 죽였을꺼여..."
라는 말씀도 잊지는 않으셨습니다.
겨울방학이 다가 오면서부터 그 녀석은 눈에 띄게 수척해 갔습니다.
아마도 방학이 되면 그 녀를 제대로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그 녀석을 그렇게 말라 비틀어지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전화를 걸었습니다. 술을 한 잔 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그 녀가 겨울방학 내내 종로의 시사영어학원에서 영어강좌를
수강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그 강좌를 같이
듣는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단 한 번의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는 말도 아울러 전하더군요. 한심한 인간의 종류도
가지가지겠지만 그 자식도 제가 본 한심한 인간 여럿 중에 한 자리를
분명히 차지하고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고급영문독해를 수강하고
있었습니다. 보케이블러리 이만이천은 커녕 이천 이백개두 제대로 모르는
녀석이 수업시간에 버벅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눈앞이 암담했습니다.
고급영문독해는 수강생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한 문단씩 해석을 시킨다구
하더군요. 자기 차례가 되면 자기는 밑도끝도 없이 버벅대고, 그럴 때
마다 그녀는 아주 즐거운 미소를 짓는다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로
행복해서 간혹가다 아는 문장이 나와도 이악물고 더 버벅거린다구
녀석은 술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에라 이 미친
자식아"하구 솔직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무러면 어떠냐"고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무러면 어떤 거라고 저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냥없이 마음이
아프고 우울했습니다. 그 녀석을 만나고 돌아 오면서 저는 그 겨울의
냉기서린 하늘을 바라 보면서 "사랑의 슬픔"을 나지막히 불러
보았습니다. 사랑에 빠져 버린 친구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 <사랑의 세레나데>라는 또 한 편의 지긋지긋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무릇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과 함께 이 감동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자식은 도대체가 쓰잘데 없는 말들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시는 분, 어차피 낙서이겠거니 생각하시고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중간고사 끝나고 스스로의 모습에 회한과 비통에 빠져
있는 분, <사랑의 세레나데>를 통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리지널 이야기 보다가 오리지널에 찾아가서 튀김이며 떡볶기 먹어 보고
실망하신 분, 사기라고 분개하시는 분, 각성하라고 소리높여 외치시는
분, 정말로 죄송합니다.
"거기가 그렇게 맛이 없어여여여여여요?"
#8988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20: 사랑의 세레나데......2 04/25 19:55 104 line
군소리없이 <사랑의 세레나데 2편>을 시작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서러움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라고 궁시렁궁시렁
대던 어느 시인의 주절거림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 친구는 어쨌거나 그 겨울 내내 시사영어학원의 한 귀퉁이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영어실력이
쥐뿔만큼이나 늘었다면 전 아무 후회없이 제 손가락에 장을 지졌을
것입니다. 물론 그 친구의 영어가 쥐뿔이나 늘었던지, 쥐궁둥이만큼이나
줄었는지 그건 제게 아무런 관심도 아니었습니다. 지 좋아서 하는
지랄인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만 1월 내내, 그리고 2월이 되어서도
집에 전화를 걸면 하루종일 영어학원에서 산다고 전해 주시는, 아무래도
이 놈을 외교관 시켜야겠다는 친구 어머님의 희열에 찬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슴아팠을 뿐입니다. 더 이상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친구어머님을 속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을 끄적끄적댄다고 해서 제 인간성이 천사표라는 이야기는
아니올시다. 전 다만 그 친구의 하는 꼬라지가 한심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러다 행여 저 녀석까지 오리지날 애인을
갖게 된다면 오라지 나 혼자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갖고 있었음을 십년이 지난 오늘 이 자리에서 간신히 밝히는
바입니다.)
2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자건 여자건 광분해 마지않는 발렌타인인가
빨래타임인가 하는 날이 점점 더 가까와지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요맘때는 사실 제게 있어서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우선은 우리 집이 있는 구역을 담당하는 우체부
아저씨들의 강력한 항의를 무마해 주어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무거운
우편행랑에 초콜렛 소포를 하루에도 몇백개씩 배달해 주는 일은 정말
인간으로서, 아니 우체부로서는 할 짓이 아니니 이성한은 자성하라는
성북우체국장 명의의 성명서도 발표되곤 하였습니다. 울릉도 호박엿
생산자 조합의 조합장은 당신때문에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하는 경고전문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가나초콜렛을 만드는
롯데제과의 영업부장은 감사의 편지를 보낸 반면, 롯데제과 생산직 사원
들은 너땜에 피곤해서 못살겠다고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걸곤
하였습니다. 제과의 명문 고려당은 제가 받을 초콜렛 전부를 싯가의
30프로로 되팔지 않겠느냐고 협상팀을 보냈으며, 아예 8톤트럭을 집앞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바른손 카드의 홍보부장님은 Cf전속계약을 맺자고
집앞에서 아예 텐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초콜렛을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최민수, 이정재, 박상원, 문경은, 이상민, 독고영재,
브루스 윌리스, 케빈 코스트너, 구봉서, 서영춘, 그리고 배영만은 그
자식 얼굴이나 보자며 달겨들었고, 개중에는 짱돌을 던지시는 분,
배때끼에 깨진 맥주병으로 금을 긋는 분, 손가락을 깨물어
<내게도 초콜렛을>이라는 혈서를 쓰시는 분이 계셨냐 하면, 싸인을
해달라고 달겨드는 신용카드 회사 직원도 있더군요.
(허허허.... 완전히 미쳤군....)
집안 어르신들은 하나뿐인 아들놈의 생명을 걱정하셔서 잠시 다른 곳으로
몸을 피신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저두 울며 겨자먹기로 그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 여러분, 제발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은 전하지 맙시다. 꼭 마음을 전하시고 싶으시면 차라리
만원짜리 지폐(또는 10만원짜리 수표)에 "요건 초콜렛임"이라고 써서
보내는 것이 보다 현실적입니다. 아니 아예 발렌타인 데이의 원래 취지
대로 빨래나 하면서 하루를 보냅시다. 아, 그 옛날 그 허무맹랑했던
시절, 돌아와 올 해 발렌타인 데이때는 우리 집 달력 중에 하필
2월달 달력이 찢겨나가는 바람에 그 날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내 버렸다우.(종우야, 강부자가 비키니입고 소주 마시는 그 사진이
아무리 섹시하다고 하더라도 어찌 남의 집 달력은 찢어 가냐?)
결국 저는 집안어르신의 권유와 친구들의 충고와 주변분들의 경고성
협박에 못이겨 피신처를 찾기에 이르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은 곳은 바로 그 때까지도 여의도와 종로에서 버벅대고 있었던
바로 그 한심한 친구의 수유리 자택(?)이었던 것입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그 녀석은 돌아 왔습니다. 겨울내내 골아픈 학원을
다니느라 녀석은 곤죽이 되어 있었으며, 그 차가운 날씨에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여의도를 헤매고 다니느라 녀석의 살갗은 완전히
도마뱀을 뺨칠 정도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불쌍한 녀석!!!
그렇습니다. 그 친구는 그 사이 시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찌 당신을 스치는 일이 우연이겠습니까?
오랜 옛날 당신에게서 떠나온 후
어두운 곳을 헤매던 일이 어찌 저만의 추억이겠습니까?
하루종일 나는 당신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아싸! 가오리!!!!)"
"에라, 이 얼빠진 놈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거늘 넌 어찌하여 한갖 아녀자에게 홀려 이다지도 무지몽매하고
허랑방탕하며 아웅다웅하고 오손도손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냐?"
"여의도 대교아파트 앞 버스정류장 토큰파는 오씨 아줌마를 생각하여라
내 자식같으면 벌써 요절을 내도 골백번은 냈을거라던 그분의 그 숭고한
말씀을 가슴깊이 되새겨라....어화디 둥둥 둥두르둥둥 둥둥..."
그러자 그 친구가 이야기했습니다.
"성한아! 성한아! 나의 성한아!(오메 징그러워라!!!), 어찌 좋은 방법이
없겠냐?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겠냐? 정말 요즘
미치고 피똥쌀 지경이다 어허허허허허허허엉 엉엉! 꺼이꺼이, 끄윽."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아니, 옳거니 바로 요거야,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이제 넌 된거야, 아주 한 큐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마.
잘되면 술사구 안되면 너 혼자 쪽팔려라....
저 지금 술마시러 갑니다. 이제 행사일까지 D-2일, 어떻게 잘 되겠죠.
잘되면 술마시구 안되두 술마시죠 머...
어쨌거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며 목마를 타고 바다로 간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나 해야겠습니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