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세월 보내는 것…참선 아니다”
<23>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③-2
[본문] 다시 또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이 일(悟)을 관계하지 말고 다만 이렇게 쉬어만 가라. 쉬게 되면 정념(情念)이 생기지 아니하리니 이러한 때에 이르러서는 캄캄하여 무지한 것이 아니다. 바로 성성(惺惺)하고 역력(歷歷)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독약으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나(雲門)는 평소에 이러한 무리들을 보고 사람으로 보아 대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자신의 눈이 밝지 못하여 다만 책에 있는 말을 가져다가 본보기에 의지하여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가르치겠습니까? 만약 이런 가르침을 믿는다면 영겁토록 참구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을 쉬어서 망상 사라지면
성성하고 역력한 경지에 올라
[강설] 앞의 말씀에 이어서 역시 묵조선의 잘못된 가르침을 들어서 비판하는 내용이다. 좀 더 부연하면, “깨달음은 관심을 갖지 말고 다만 모든 생각을 쉬라. 생각을 쉬기만 하면 망상(情念)이 사라진다. 망상이 사라진 그 상태는 곧 무지한 경지가 아니고 성성(惺惺)하고 역력(歷歷)한 경지다. 그 경지는 선불교의 최고의 경지다”라는 내용인데 간화선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상태는 흔히 말하는 “멍청한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라고 비판하였다.
오늘날 간화선을 하는 사람들도 화두를 일념이 되도록 활활 타오르게 들지 못하고 졸다가 깨어나서 망상을 좀 부리고, 망상을 부리다가 다시 졸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방선(放禪)을 하고나면 화두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온갖 세상사에 마음이 빼앗겨서 세월을 보내고 마는 참선인이 적지 않다면 이 또한 작은 일이 아니다.
방장과 조실들은 이러한 점을 살펴서 고치지 않는다면 다수의 참선납자를 대혜선사의 표현처럼 “독약으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며 작은 일이 아니다.”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은 공부인들을 게으름뱅이와 무식쟁이로 만들어서 아무 것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뜻이다. 참으로 크고 큰 일이다.
시주의 은혜를 등지고 빚만 짊어지고 가는 것이 된다. 불교에 무슨 보탬이 되겠으며 세상에는 또한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나(雲門)는 평소에 이러한 무리들을 보고 사람으로 보아 대접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말씀은 모든 공부인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또 새겨야 할 충고라고 생각한다.
[본문] 나도 평소에 사람들에게 고요한 곳에서 좌선으로 공부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병에 응하여 약을 주는 일입니다. 진실로 이렇게 사람을 지시한 것은 없습니다.
[강설] 고요한 장소에서 좌선하는 문제를 들어서 선불교의 바른 길을 밝혔다. 한국의 참선납자들이나 시민선방에서 수선 안거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고요한 곳에 앉아서 좌선을 하는 것으로 참선공부라고 생각한다. 심한 경우는 앉아서 시간을 채우는 것만으로 참선공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동안 모두 몇 시간을 좌선을 하였다는 것을 계산하여 자랑하는 사람도 보았다. 혹시 주변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나거나 사찰의 한 모퉁이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들려도 시끄러움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대혜선사도 역시 좌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부득이 해서 병에 따라 약을 쓰는 것이다. 진실로 좌선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 라고 까지 하였다. 앉아서 고요히 세월을 보내는 것으로 참선공부라고 생각해서 안 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이 서장이라는 책은 간화선 공부의 제일가는 지침서이다. 간화선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도 바로 이 <서장>이라는 지침서 덕택이다. 그런데 만약 이 지침서의 가르침을 어기고 화두 참선을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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