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잘 먹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간 곳은 "예술인 마을"인 "제주현대 미술관"이다.
이 많은 분들의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며칠을 방문해도 어려울것이다.
나는 이중 지난 달에 작고하신 "박서보"님의 그림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길을 잘못들었다.
가다보니 "김흥수 아뜨리에"가 있다.
아, 이 분도 제주에서 작품활동을 하셨구나,,,,,,,,
우리는 김흥수님의 그림을 보기로 했다.
나는 이분과 조금 인연이 있다.
행당동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에 근무를 할 때다.
행당동 언덕위에 "영성공예"라는 공장의 차가 단골로 수리를 하러 왔다.
"영성공예"는 그림 액자를 만드는 공장이였다.
젊은 분이 사장이였는데 항상 웃는 얼굴인 사람이였다.
89년 가을인가?
영성공예 사장님이 흰색의 레코드 로얄 싸롱을 타고 왔다.
같이 내리는 분은 키가 크고 건장하신 분인데 의외로 나는 한 눈에 그를 알아 보았다.
"김흥수"화백이다.
내가 그분을 어떻게 알까?
1954년 나는 어릴 적에 신당동에 살았다.
우리집에서 한 불럭을 내려 온 사거리 좌측에 이층집이 있었다.
2층 베란다에 키가 크고 건장한 남자가 서서 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김흥수 아뜨리에"라는 나무로 만든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딱 한번 보았을 뿐이다.
8살의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이 어떻게 각인이 되어 남았을까?
"옛날에 신당동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깜작 놀라며 나를 바라 보았다.
"당신 나이가 몇인데 그걸 아시오?"
그때 2층 베란다에 서 계신걸 본 적이 있다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그후 그분은 우리 공장에 자주 오셨다.
나중에 결혼하신 '장수현'화백과도 몇번 같이 오셨다.
"영성공예" 공장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당시 김흥수 화백의 대작이 여러 점 액자를 만들기 위해 공장에 있었다고 한다.
공예사 사장은 당시의 김화백의 그림값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 재산인 집문서를 들고 김화백을 찾아 갔단다.
김화백님은 오히려 위로를 하며 많은 돈을 빌려주어 공장을 재가동 시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특히 그분의 그림을 보고 싶었다.
김흥수 화백을 "한국의 피카소"라고 했던가?
급히 사진을 찍느라 긴가민가하는데 아마도 이 그림의 제목이 "남자의 초상"이였던듯하다.
사색하는 여인.
1987.
캔버스 혼합재료.
162 X 261cm
사랑을 온 세상에.
1974년?
캔버스 혼합재료.
256 X 441cm
꿈.
1990.
캔버스 유채.
133 X 212cm
바람.
1992 .
캔버스, 혼합재료.
73 X 137cm
칠월 칠석의 기다림.
1997.
캔버스, 유채.
164 X 394cm
여름의 해변.
1973.
캔버스, 혼합재료.
135 X 135cm.
꿈의 소녀상.
2005.
종이에 콘테, 아크릴.
78.5 X 108.5cm.
환상.
2000.
캔버스, 유채.
38 X 46cm.
그런데 여기부터는 그림의 흐름이 조금 다르다.
? 뭐지?
자세히 보니 "SHI JI"라는 사인(sign)이 있다.
"변시지"라는 제주도 태생의 화가의 그림이다.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 한국작가로는 유일하게 작품 2점을 상설 전시하는
세계적인 화가로 2013년 6월 8일 작고하신 분이다.
기다림.
1985.
캔버스, 유채.
39.2 X 20.5cm.
섬 소나무.
1985.
캔버스, 유채.
32.2 X 21.5cm.
하늘로 가려는 나무.
2003.
캔버스, 유채.
41 X 32cm.
바람이 지나는 길.
1997.
캔버스, 유채.
162 X 130cm.
미로.
1992. 생존.
캔버스, 유채. 1991.
46 X 33cm. 바람.
1991.
폭풍. 캔버스, 유채.
1991. 41 X 32cm.
떠나가는 배.
1991.
섬 이야기.
1992.
캔버스, 유채.
50 X 65cm.
제주 바다.
1992.
캔버스, 유채.
89.5 X 115.5cm.
폭풍의 바다.
1993.
캔버스, 유채.
130 X 97cm.
고목.
1991.
캔버스, 유채.
61 X 73cm.
거친바다 젖은하늘.
1997.
캔버스, 유채.
130 X 162cm.
좌도 빈집 우도 빈집.
1997.
캔버스, 유채.
162 X 112cm.
폭풍속에서.
1991.
캔버스, 유채.
38 X 45cm.
태풍.
1987.
캔버스, 유채.
97 X 130cm.
어촌노인과 말.
1988.
캔버스, 유채.
46 X 53cm.
해촌.
1977.
캔버스, 유채.
24 X 66cm.
그러면 조금이라도 "변화백"의 이야기를 써 놨어야 한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 두 분의 그림을 같이 보며 점시 혼란이 온다.
어찌됐던 여기까지는 그냥 그림이니까 내 시각으로 보고 이해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무척 난해(難解)하여 전위예술(前衛藝術)이랄까?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배경의 그림은 원래 동영상이다.
전면에 배치해 놓은 상자들과 후면의 동영상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한켠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설명지.
몇번을 읽어보아도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다만 나중에 알아보니 "무진형제"는 '정무진', '정효영', '정영돈'으로 구성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이란다.
이것 역시 "무진형제"의 동영상인데 위의 설명들과 관련은 있는듯한데 끝까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옆으로 길게 이어 놓은 간단 명료한 글씨.
이것도 작품이라면 작품이겠다.
"로와정"이란 분의 작품인데 이 작가도 내게는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365장의 그림이다.
게다가 저 많은 짐승들의 이름이 각각 다 있다.
상상의 동물인듯한데 그림에는 모두 다른 이름이 씌어져 있다.
이것 또한 내 머리로는 감당이 안된다.
게다가 이것을 연속으로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떤 분은 "로와정"의 작품이라고 하고 어떤 분은 "무진형제"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어느 분의 작품이던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