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줄탁동시(啐啄同時)
“존. 이쪽으로 와 앉으세요.”
연두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챵시밍 국회의원이 특별 보좌관 존 민재 강을 불렀다. 민재로서는 뉴질랜드 국회의사당이 처음이라 낯설 수밖에 없었다.
전에 만난 챵시밍 의원이 민재에게 특별 보좌관을 제안했다. 민재가 처음엔 선뜻 응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권유와 설득으로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
특별 보좌관이니 만큼 특별 사안이 있을 때 참여하는 걸로 했다. 이번에 소수 민족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하면서 민재도 세상눈을 많이 떴다.
지난 번, 호익 챵시밍 국회의원 건물에서의 만남이 떠올랐다. 민재가 한국학교 임대료 지원책을 건의하러 간 자리였다.
챵시밍 국회의원이 민재 의견을 묵묵히 들었다. 중국 여성으로 소수민족 장관을 역임 중이었다.
챵시밍 의원은 민재의 참신한 발상과 강한 추진력에 깊은 관심이 끌렸다. 직감적으로 민재의 현장 감각과 행동력이 남다르다는 걸 읽었다.
결국 민재를 특별 보좌관으로 채용하게 되었다.
오늘은 소수 민족을 위한 특별 법안이 발의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민재를 웰링턴 국회의사당에 불러 만나게 된 것이다.
존 민재 강. 명찰 목걸이를 목에 걸고 뉴질랜드 국회 의사당에 입성했다.
비행기 표와 호텔 숙박권도 제공받았다. 민재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현지인 학교를 빌려 쓰는 한국학교 운영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
국회 소위원회 회의실. 둥글고 긴 타원형 테이블 앞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앉았다. 해당 국회의원 뒤쪽에는 보좌관들이 참고자료를 가지고 대기했다.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설명하며 동의를 구하면, 여야 다른 국회의원과 운영 위원장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국회의원이 혼자서도 대응이 가능하면 별 문제 없지만, 특별 자료나 보완 설명이 필요할 때는 보좌관이 그때그때 지원을 해 주었다.
여당에서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는 시간이 먼저 진행됐다. 국내 주요 법안 상정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이어 소수민족 관련 법안 논의가 시작되었다.
소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여야 국회의원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새로 올린 소수민족 관련 법안에 많은 검토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심의를 거쳐 채택된 그 법안에 대해 챵시밍 의원님께서 먼저 발표해 주시지요.”
챵시밍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또박또박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뉴질랜드는 수많은 국가들이 모여서 만든 이민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민자들이 잘 정착하고 살 수 있도록 이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습니다.
소수 민족들은 이민 와 살면서 자녀들 교육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영어는 자연스럽게 잘 하게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태어난 나라의 정체성도 지켜나가길 원합니다. 그 일환으로 그 나라 고유의 글과 역사를 별도로 교육해 왔습니다.
자체 교회나 단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주말마다 현지인 키위 학교를 빌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해왔는데, 최근 들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상식이 맞지 않게 학교 렌트 임대료를 너무 과하게 부과하는 일이 오클랜드에서 있었습니다.
학교 빌려주는 데 불편하니, 학교를 빌려주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통보인 셈이지요. 이런 일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는 소수민족이 몇 나라 있습니다.
물론 그 교실을 쓰면서 물건을 훼손시키지 않고, 물건을 제대로 잘 둬야 되는데. 어린이들이 그걸 잊어버리고 실수하고 손상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현지인 키위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반대해, 그 학교를 빌려 주지 않는 걸로 결정을 내리며 임대료를 세배나 인상 시킨 겁니다.
현지 학교를 빌려 쓰는 측은 상심이 엄청 컸습니다. 첫째 임대료 세배 부과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둘째는 다른 학교 빌리는 것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있는 현지인 학교를 주말마다 빌려서 아이들 교육하는 소수민족들에게 배움의 장소인 학교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소수민족 어린이 교육을 위해서 국가에서 제도적 보장과 관련 비용을 지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이번 법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듣고 있던 여야 국회의원들의 반응이 달랐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했다. 소 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이를 인식한 듯 중재하는 입장에서 제안했다.
“챵시밍 의원님. 취지는 잘 들었는데요. 이 안에 대한 구체적 실무를 담당한
자의 생생한 사례 같은 걸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네. 위원장님. 그 내용은 특별 보좌관을 통해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존 민재 강. 준비한 내용 발표해 주십시오.”
챵시밍 뒤에서 대기하던 민재가 자료를 들고 일어섰다. 앉아 있는 모든 의원의 시선이 민재에게 쏠렸다. 민재가 의원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챵시밍 의원님의 특별 보좌관. 존, 민재강입니다. 오클랜드에서 뉴질랜드 한국 학교에서 봉사하고 있지요. 현지인 학교를 빌려 쓰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5일 동안 택시 운전을 하고, 토요일 날은 한국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하며, 한국말과 문화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데요.
남자 선생님이 부족하다 보니까 학교 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단속까지 하면서 관리직 일도 맡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상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개구리 소동입니다. 현지인 초등학교에서 학습용으로 어항에 키우고 있는 두 마리 개구리 중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한 야당 의원이 손을 들어 민재에게 추궁하듯 말했다.
“이야기가 왜 이래요? 참 황당하네. 법안 발의에 개구리가 어쨌다는 겁니까?”
그때, 운영위원장이 자제해 달라며 중재안을 내놓았다.
“네. 피터스 의원님. 잠시만 고정하시지요. 현장 이야기를 듣고, 본론에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민재가 피터스 의원에게 목례를 하고서, 침착하게 하던 말을 이어갔다.
“문화적 충격 사건입니다. 한국에서는 들판 논에 널려있는 게 개구리입니다. 그런 개구리가 뉴질랜드 학교 교실 어항 속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겠지요.
아이가 좀 만진 겁니다. 개구리는 시름시름하다 죽어버린 것이고요. 현지인 학교 측에선 난리가 난 겁니다. 관찰 학습용으로 어항에 키운 거였으니까요.
뉴질랜드는 유황성분이 많은 땅이라서 개구리가 잘 살 수없는 생태계입니다. 교육부에서 몇 마리씩 학교에 주어 관찰 일지를 쓰는 중인데 충격이겠지요.
현지인 선생님이 분노에 차, 그 교실 문 모서리에 각목을 대고 못을 박아 사용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날 교실이 모자라 학생들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 현지인 선생님이 급기야 아침에 교무실에 까지 달려왔습니다. 교무 회의하는 20여 명 한국학교 선생님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멘붕에 빠졌지요.
‘그 개구리 살려내라고! 학교 빌려주니까 게시물에 손대고, 개구리까지 죽이고. 이러다 학교 불내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정말. 다른 학교 알아보세요!’
그 뒤 현지인 학교 임대료를 세배 인상한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두 달 유예를 준다는 충격적 통보였지요. 결국 학교를 안 빌려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300여명 학생과 20여명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충격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변호사를 통해 육 개월로 연장시키고 다른 학교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어린 꿈나무 교육 터전이 보호되어야겠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소수민족이 빌려 쓰는 현지인 학교실태조사와 대안을 찾아 이번 법안으로 올린 겁니다.“
이번에는 여당 여성 마오리 국회의원이 민재에게 응원어린 말로 격려했다.
“존. 특별 보좌관님. 교육 현장에서 수고가 많네요. 문화적 충돌이 빚어내는 갈등과 문제는 관용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뉴질랜드는 생활 곳곳에 아직 관용이 살아있는 나라이니까요.“
민재가 그 여성 의원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며 가슴에 남은 말이 있습니다. ‘아코!’입니다. 뉴질랜드에서 나온 교육 용어였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유래된 말로 ‘가르치다’와 ‘배우다’ 란 뜻이 함께 들어 있더군요. 그런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뉴질랜드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아코’는 뉴질랜드 원주민 언어인 마오리어라는 걸 알고서 더욱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교육용어로 유명한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연상되더군요.“
마오리 여성 의원이 감동한 눈으로 민재를 보며 물었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요? 주따똥시? 미안해요. 제 서툰 발음이.”
“네. 줄탁동시.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할 때 나온 용어인데요. 병아리가 달걀 안에서 부리로 톡톡 쪼아요. 그때 어미닭이 그 자리를 콕콕 쪼아주지요.
그러면서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요. 배우다와 가르치다가 함께 할 때 꿈이 열리지 않을 까요?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처럼요.“
민재가 올린 법안 취지를 보완 설명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뉴질랜드는 전 세계 206개 국 가운데, 190개국이상에서 온 사람들이 이룬 이민국가입니다. 이런 배경에 근거해 좋은 정책이 발의돼 발전해 왔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오클랜드에 만 해도 여러 민족 어린이를 위한 주말 학교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클랜드 센트럴 시티에 유대인 학교, 세인트 헬리어스에 일본인 학교, 맹가레 공항 근처에 아랍인 학교, 노스 쇼어에 한국학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 중국, 필리핀, 통아, 사모아 등 여러 소수민족 학교 들이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꿈나무들이 이중국어를 배우고 다지는 교육터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육 체제를 제대로 갖춘 이민자 학교에서 모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가르치는 게 꿈나무 육성에 큰 투자라고 봅니다.
현지인 학교를 빌릴 때 드는 임대료 지원이외에도 여러 교육적 지원이 따를 때, 꿈나무들이 자라서 이 나라에 큰 자산으로 남을 겁니다.
선진국의 경우, 노벨 수상자나 IT 전문 기술자들 그리고 금융 천재들도 이민 와 사는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투자한 게 좋은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일이 생겨서 나중에 무마하고 처리하는 아프터 서비스(After Service)보다는, 일이 생기기 전에 손을 쓰는 비포어 서비스(Before Service)가 필요합니다.
어릴 적,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제대로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열린 공간 체험 터전에서 정서적 안정을 느끼며 꿈을 키워가도록 말입니다.
어른들이 어미닭이 되어. 달걀 속 병아리가 톡톡 쪼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자리를 콕콕 쪼아 줘 부화할 수 있게 만드는 관심을 법안에 담았습니다.“
민재가 여러 사례와 근거를 밝히며 이야기를 이어가자 여야 모든 의원들이 관심 있게 귀를 기울였다.
처음 의문시 하며 반대를 하던 야당 의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모두 발언 후 운영위원장이 그 법안을 본 회의로 올렸다.
챵시밍 의원이 민재 앞으로 다가와 흐뭇하게 꽃무늬 미소를 지었다.
‘특별보좌관이 처음 올린 법안이 기각되지 않고, 본회의에 상정되었다는 것. 역시 존은 보통이 아니네. 내가 콕콕 쪼아준 선견지명도 살아 있고. 호호!’
민재가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 걸 본 챵시밍 의원이 깜짝 놀라며 입을 열고야 말았다.
“존. 웬 꽃무늬 손수건이야? 애인이 준 건가 봐! 나도 있는데. 부러워라. 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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