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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라(2203.2023.8.6.)
히10:19-2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주 2박3일동안 용문산 기도원 연합집회에 인사말에서 여러분 말씀을 들으니 행복하고, 여성성도들은 행복한 것이 있는데 밥을 7끼나 안해서 행복하고 웃음-- 설거지를 안해서 행복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그래도 나는 설거지를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시는 분은 자원해서 해주신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설거지를 도와주시는분들이 있었고, 우리 상주교회 주방팀들에게 시원한거라도 사먹게 팁이라도 주시면 거절하지 안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정말 팁조 조금 들어왔지요. 어느 목사님이 단장님 이번에 단장님의 모습을 보고 너무 반했습니다 그래서 주방가서 팁을 2만원 주고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서 그분에게 그만한 보답을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방팀들 더운데 수고한다고 치킨 세 마리 주문해서 보내라고 했더니 그리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여선교회 회원들이 정성을 다하여 육신의 양식을 만들어 부흥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에게 무려 7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맛있게 드시라고 준비해서 해 주시느냐고 고생들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말 맛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정감독님도 식사대마다 내 입에 딱맞아서 맛있게 먹었다고 칭찬을 하고 감리사님들도, 정말 맛있게 잘했다고 칭찬을 해서 목사님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수고가 이런 칭찬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많이들 힘들었지요. 제가 알고 하나님도 아시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정말 에어컨도 없곳 더운속에서도 잘 해주셔서 여러분들의 수고와 땀은 목사님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목사님도 단장으로 총 지휘하면서 홍보, 재정후원, 인원동원, 주방, 등등 다 신경쓰느냐고 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넉넉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감사를 드립니다. 준비하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성도들 고생시킨것도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하다가 보니 은혜로 잘 마쳤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흥단 임원들에게도 처음부터 하나님 편에서서 일하면 모든 것이 충족될 것입니다라고 하고 마지막에도 단장임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재정도 육백만원이 남았습니다라고 보고를 받앗습니다. 이렇게 이번일로 인하여 상주교회 성도들기리도 서로가 칭찬하며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옆사람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봅니다. --수고했어요, 고마웠어요, 행복했어요. 다음에 또 합시다--
1.격려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것은 격려를 통해 사랑과 선행이 더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사랑과 선행을 행합니다. 그런데 돌아보아 격려하면 사랑과 선행은 한 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동기부여가 되어 사랑과 선행은 더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선행이 따라옵니다. 선행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격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은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다른이의 사랑과 선행을 보면 시기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의 피를 힘입으면 그 은혜를 알고 서로 격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이를 당연히 여기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했다고 격려해야 합니다. 격려하는 것이 몸에 배이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 피를 보면 한 마음이 되어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의 피 뿌림을 받은 자요, 피를 힘입은 자입니다. 예수의 피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죄악으로부터 정결케 되어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돌아보며 격려함으로 예수 피를 힘입은 공동체가 되어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격려라는 말은 ‘새로운 용기, 새로운 영, 새로운 소망 등을 갖도록 다른 사람들을 고취시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헬라어 원어의 뜻도 ‘자극한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도록, 선행하도록, 고취시키며 자극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격려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인정하는 것, 그 사람 자신을 신뢰하고 그 사람 자신을 인정하는 것,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 격려가 필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인정받기를 원치 않고 감사히 여김을 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믿어 주고 신뢰해주기를 원하지 ‘도움이 필요없다’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정해 주고 신뢰해주고 도움을 주는 이 세 가지 격려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러면 히브리서가 기록되었던 초대교회의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모임 자체가 위협을 당하였습니다. 매일 순교를 목도하는 그러한 여건속에서 살고 있었으며 매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임 자체가 어려웠고 모임 가운데에서도 두려움의 분위기가 항상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모이기를 피하기도 했으며 모이기를 폐하려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서 아무데도 가지않고 요지부동하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속에서 본문 24-25절에 모이기를 힘쓰도록 격려함과 동시에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고취시키고, 서로 사랑하도록 자극을 주고, 선행을 하도록, 착한 일을 하도록, 섬기는 일을 하도록, 봉사의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그 모임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저들에게 세상과 타협하는 삶을 경고하며 격려하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다’라고 성도의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려 주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찢어졌고 믿는 자는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앞에 당당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죄인으로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막힌 담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우리에게 새 마음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선행을 이웃들에게 추구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안에 두어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예수의 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새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 분명 넘어지고, 상처받고, 실수하고, 유혹 당하고, 죄를 범하고, 실망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나의 연약함을 능가합니다. 이를 힘입어 날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십시오. 그럴 때 현재 우리의 작은 새 마음은 날로 커지게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 자리에 모이기를 싫어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속회모임과 예배의 자리에 모이기를 언제나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말고 내 주변 이들이 말씀의 자리로 오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 원하시는 주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서로 말씀으로 격려하고,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행하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사도바울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서는 참옥하고 고난이 심했던 바울 당시의 성도들을 위해 쓰여 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통하여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믿음을 버릴 정도로 크게 유혹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의 흥미로운 점은 세상 유혹으로 흔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회복하라고 경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근본 진리로 돌아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전달함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담력을 얻은 것입니다. 또한 21절‘우리에게 큰 제사장이 계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은 바로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체휼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축복이며, 얼마나 힘이 되는 일입니까?
이러한 특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상기시킨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22절)‘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 (23절)‘말씀을 더 굳게 붙잡자’,(24절)‘서로 돌아보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격려해서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사랑하도록, 선행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일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임은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하고 헌금하는 것 이상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격려하는 사역입니다.
예배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증거와 교회에 대한 증거가 있고 세상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중 교회는 서로 세우고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또 우리라는 공동체를 주신 것입니다. 서로 붙잡아 주고 서로 격려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일으켜 세우라는 것입니다. 엡4:11-12절에는 우리 모두에게 직분을 주신 목적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가 교회의 멤버로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서로 격려해주라는 것입니다.
격려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세워주신 것은 서로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그저 나만 행복하고 평안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웃을 격려하는 사람입니까? 진정으로 가까운 이웃, 가족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믿음에 대한 격려입니다.
22절‘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난 경우라 할지라도 반드시 격려에는 진실한 마음과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갖도록 서로 격려하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빠진 격려는 신앙적이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킬 수는 있으나 결코 궁극적인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가령 성도 중에 인간관계로 빚어진 시험에 들었다고 합시다. 가서 위로한답시고 상대방의 사람을 험담하는 믿음이 없는 방법으로 일시적인 처방을 했다고 합시다.
그때는 좋았지요. 하지만 그가 시험에서 회복 되었을 때는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우리의 격려는 언제나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피차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마음과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갖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로 주님께 나아가도록 격려하십시다. 우리가 만날 때마다 온전한 믿음으로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피차 믿음을 격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소망에 대한 격려입니다.
소망을 격려하십시오. 주님이 좋은 일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힘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줍시다. 모든 일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을 확실히 믿게 합시다. 롬 8:28절‘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3절‘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주께서 약속하신 수많은 언약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살아가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그 소망이 자꾸 흔들립니다. 누구나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럴 때 그 소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소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격려입니다.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너 하는 꼴로 봐서는 꼭 망하게 생겼더라. 잘 망했어. 이제는 구제 불능이지 뭐, 저 꼴에 뭘 하겠어’하고 혀나 껄 껄 차고 있는 것이 위로가 아니라 어려워서 사방을 돌아 볼 겨를 없는 사람에게 소망을 볼 수 있게, 그 소망을 굳게 잡게 격려해 주라는 것입니다.
4.사랑과 선행에 대한 격려입니다.
우리가 만날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바라보는 소망, 진정한 주님의 사랑으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24절‘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에 격려는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말씀하십니다. ‘격려’란 말은 ‘마음이나 기운을 북돋도록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용기를 북돋아 주다는 뜻이며’, 헬라어로 ‘함께 부른다’뜻으로 서로 함께 용기를 북돋아 주라는 격려의 뜻입니다. 칭찬과 격려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칭찬은 잘했을 때 성공을 했을 때 주는 것이라면, 격려는 오히려 실패해서 넘어졌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칭찬이 상대방에게 보상을 심어주는 것이라면, 격려는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말이나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에게 칭찬도 필요하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 격려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약점이 곧 내 약점이요, 형제의 연약함이 곧 내 연약함이며, 형제의 부족함이 나의 부족함이 되는 것입니다. 격려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인정’입니다. 그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뢰’입니다. 그 사람 자신을 신뢰하고 그 사람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 할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음악이 울려 퍼지면 영국 여왕도 일어나 경의를 표하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 중 42번인 ‘할렐루야’가 그 곡입니다. 헨델은 근세기에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서 그가 만든 곡마다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사람들이 그의 곡이 발표되는 공연장마다 깡패들을 보내 공연장을 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는 반신 불구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에게 이름모를 한 시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버림받은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주님은 온 세상의 왕이 되어 다스리고 계십니다. 힘을 내십시오’이 한 통의 격려 편지가 헨델의 몸과 마음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다시 힘을 얻은 헨델은 2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묵상에 몰두했습니다. 24일째 되는날 하인이 그의 방에 들어갔다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헨델을 보았습니다. 헨델은 잠시 후에 악보를 들고 ‘내 앞에 하늘이 열렸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뵈었다’고 외쳤습니다. 바로 그 날 헨델은 영원불멸의 명작 메시야를 작곡하였습니다. 한 무명의 시인이 보낸 격려의 편지가 절망과 좌절로 죽어 가던 헨델을 일으켜 세워 영원불멸의 명작 메시아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따스한 격려는 삶에 지쳐 있는 여러분의 가족과 사랑하는 친지들의 몸과 마음에 정신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칭찬과 격려에 힘이 솟아납니다. 살맛이 생겨납니다. 삶의 열정과 변화가 일어납니다. 공부에 지친 자녀들, 생활이 힘들어하는 친지들,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사람들, 포기하려는 사람, 주저앉으려는 사람을 찾아 칭찬과 위로와 격려로써 주안에서 강건하게 일으켜 세어주는 서로를 향해 진정한 격려 자가 되시기 원합니다.
우리를 격려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25절의 ‘오직 권하여’라는 말은 ‘서로 격려하여’라는 의미인데 ‘보혜사(요14:26)’라는 말과 ‘서로 격려하여’라는 말은 서로 어근이 같은 말로서 ‘위로자, 격려자, 도우는자, 곁에 같이 있는자’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헬퍼(helper’로서 돕는 자인데 성령이 하시는 일이 바로 격려의 사역입니다. 우리에게 힘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다른 분을 섬길 때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 바로 이 성령님이십니다.
진정한 격려는 진정으로 성령님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자신의 삶속에 풍성히 흐르는 자가 그 마음에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가 우리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와 함께 해 주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주님이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격려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사랑하는 교우들을 주님이 내게 하셨듯이 더 많이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길 축복 합니다.
격려는 구체적인 사랑과 선행으로 합니다. 사랑해야 선행이 따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행은 사랑 없이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격려한다는 것은 사랑가운데 선행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24절 말씀은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격려하려면 깊이 생각하고 마음을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격려할 수 있을까’,‘저 사람에게 필요한 격려는 어떤 것일까’,‘저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격려의 말은 어떤 것일까’하고 마음을 깊이 써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격려 한마디가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그 앞에 나아온 자를 탓하거나 책망하여 소망을 잘라버리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본문에서 당시 배경을 보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핍박과 순교를 당하면서 믿음으로 살아야 했기에 예배에 모인다는 것은 언제 감옥에 끌고 가서 고문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고, 화형에 처할지 모르는 시대였기에 예배드린다는 자체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성도들은 무서운 신앙의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하나님을 믿는 불같은 신앙으로 모든 두려움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아껴주고 돌봐주면서 사랑의 격려로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5.격려의 성경적 모범을 익혀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 옅 사람과 한번 말해 봅시다. ‘나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 좀 해주세요’ 목사님도 격려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귀는 항상 지도자를 공격합니다. 모든 공격의 최종목표는 목사입니다. 목사를 시험에 들게 하고 넘어뜨리면 가장 큰 이득을 로는 것이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으니까 잘 하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격려의 말 한 마디도 안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힘들었을 때 ‘목사님, 힘내세요’라는 문자나 말을 들을때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분들을 통해서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러니 성도들이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격려하라고 했습니까?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 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로 사랑은 선한 행실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나타나야만 하는 행동 표현인 것입니다. 또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이것은 돌보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히브리서를 기록할 때처럼 지금도 서로 돌아보는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칭찬은 무언가 잘했거나 성공하였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면, 격려는 무언가 실패하거나 넘어졌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칭찬은 상대방이 이룬 일에 대한 보상을 심어주는 것이라면, 격려는 쓰러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 칭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누가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격려를 해줄 수 있습니까? 상대방의 약점을 내 약점으로, 상대방의 부족함을 내 부족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격려해 줄 있습니다. 상대방을 약점을 알고 수용할 때 사랑하는 관계가 오래갈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사랑과 선행은 서로 뗄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2대 덕목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해야 합니다. 물론 한 마디 격려의 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착한 행실로 하는 격려가 가장 큰 격려가 됩니다. 특히 인생에 시련을 만나 분들이나, 환난을 당한 자들에게는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로만 하는 격려가 아니라 실제적 도움을 주는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격려하는 사람입니까? 낙심케 하는 사람입니까? 소망을 가진 자라면 격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성도들도 모두 하나가되어 서로 사랑하고 돌보고 격려하기 위하여 모여야 합니다.
25절‘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심리학자들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습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합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행동을, 좋은 행동은 좋은 습관을, 좋은 습관은 좋은 운명을 낳는다고 합니다. 신앙생활 할 때에도 먼저 믿는 선배에게 좋은 습관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안 좋은 신앙습관을 가진 이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25절‘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라고 가르칩니다. 나쁜 습관을 극복하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입술의 달콤한 말은 이성의 일시적인 마비를 가져올 뿐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심정으로 번민하는 자에게 인간적인 방법은 잠깐의 육체적인 유익은 가져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위로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시험이 와서 흔들리는 자에게 진정한 위로는 신앙적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격려하며 사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격려의 내용들입니다.
서로 격려하십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결단하십시다. 나는 격려하는 자가 되리라. 내안에 계신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위로자이십니다. 격려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하여 격려를 받고 또 격려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우리에게 힘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다른 사람을 섬길 때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 바로 이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오신 그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고 충만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사역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어떤 분 곁에 있게 하시고, 그를 도와주고 격려하게 하는 일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게된 이유중 하나는 누군가가 우리 곁에 있었고, 누군가가 우리를 돌보아 주었고, 누군가가 우리를 격려해 주었고, 누군가가 우리와 함께 해 주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과 주님을 섬겼고 하나님에 의해서 쓰였던 사람들의 사역은 바로 이런 격려의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무너트리는 일보다 세우는 일에 더욱 쓰임 받아야 합니다. 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트리기는 아주 쉽고 잠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부부, 부모자녀 격려가 필요합니다. 교회안에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 격려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의 격려가 모든 근심과 염려, 분노를 쉬게 합니다.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이 기뻐하십니다. 성령충만하여 격려를 아끼지 않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서로 격려하여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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