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8:1-25, 무당을 의지하는 사울, 24.9.25, 박홍섭 목사
사울이 다윗을 죽이는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블레셋 왕 아기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대대적으로 군대를 모아 수넴에 진을 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영원히 자신의 머리를 지키는 호위대장으로 삼겠으니 함께 출전하여 이스라엘을 물리치라고 명령합니다. 지금 블레셋의 용병으로 있는 다윗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여호와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자기 동족을 죽어야 하는 싸움에 블레셋 군으로 참여하여 이스라엘의 원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지 않고 아기스의 명을 어기면 그동안 이스라엘을 치고 블레셋의 편에 섰다고 속여왔던 기만술이 다 탄로 나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열왕기 저자는 다윗의 처신에 관한 기록을 잠시 뒤로 미루고 갑자기 초점을 사울과 이스라엘 내부로 옮깁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큰 두려움에 빠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자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사무엘도 죽어 장사한 지 오래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이미 이스라엘에서 쫓아낸 신접한 자와 박수들에게 묻기 위해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내어 만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의 신앙과 그의 본질을 확인합니다. 그는 다른 때는 몰라도 전쟁에 나갈 때만은 꼭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미신적인 믿음입니다. 지금까지 사울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말씀대로 자신의 삶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찾습니까?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그런 종교적인 힘이 필요하고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해서입니다. 마치 중요한 일을 앞두고 꼭 목회자에게 기도를 받고 가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을 도와주었다고 아히멜렉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85명이나 죽였으니 누가 사울에게 진심으로 신앙적인 조언을 하겠으며 그를 위해 기도해주겠습니까? 그러자 그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신접한 무당 영매를 만나 묻겠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무당도 대충 흉내만 내는 무당이 있고 정말 신접하여 귀신의 능력을 행하는 용한 무당이 있습니다. 사울이 찾아간 엔돌에 있는 여인은 정말 신접한 용한 무당이었습니다. 그녀는 사울의 요구대로 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말하듯이 사울에게 말합니다. 15-19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나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을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올렸나이다 하더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섬기시리라 하는지라”
어떻습니까? 정말 죽은 사무엘의 영혼이 올라와서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다시 이 세상에 올라올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귀가 흉내 내는 속임수입니다. 사탄은 죽은 사무엘을 흉내 내어 신접한 엔돌의 여인도 속이고 사울도 속이고 주변 사람도 속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다는 것과 사울이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지 않았기에 나라를 사울의 손에서 빼앗아 다윗에게 준다는 것과 내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도 죽고 그의 아들들도 죽을 것을 말합니다. 너무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 같아서 하나님께서 귀신을 통해 사울에게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사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6). 그런데 굳이 귀신을 통해서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무리 그럴싸하고 정확해도 이 모든 말은 다 귀신이 사무엘을 빙자하여 속이는 속임수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할 수 있고 큰 표적과 기사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흉내 내어 사람들을 속여 미혹하기도 합니다(마 24:23-24).
본문이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신접한 여인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지금 사울의 모습을 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말씀의 지혜와 거룩한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겨우 무당에게 자신의 미래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악한 귀신에게 속아 큰 두려움으로 혼절하기까지 하며 무당이 주는 음식을 먹고 겨우 기력을 차립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사무엘서 내내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싫어하여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 왕의 본질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는 거짓된 신앙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할 뿐 아니라 마침내는 사탄을 의지하면서 자신과 공동체를 더 깊은 영적 수렁으로 빠트리고 있는 자리까지 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울이 이스라엘이 원한 왕의 모습입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믿음이 좋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변질되고 말년에 이렇게 비참하게 전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처음부터 거짓 믿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종교사회 안에 있기에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문화와 습관 속에서 여호와를 섬겨왔지만 한 번도 참되게 하나님을 섬긴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외적인 성령의 역사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을 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이스라엘이 원한 힘 있는 인간 왕의 본질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기회를 마음과 귀를 막고 듣지 않았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었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하고 싶은 말만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무당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능멸하는 자리까지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타락해도 이 자리까지 가지 않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고 주변의 경건한 믿음의 지체들이 만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 주변에 얼마나 믿음의 사람이 없었는지 그가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고 할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참된 믿음의 신하가 있었다면 “왕이여 그것만큼은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렸을 것인데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재빨리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소개해줌으로 함께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윗이 사울을 대신할 시간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가운데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에 사울처럼 이런 헛된 믿음, 유사 믿음의 요소는 없습니까? 아무리 급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성도는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가서는 안 될 곳이 있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잘 구별해서 성도의 자리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