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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사랑과 공의: 가장 큰 두 계명
연구 범위 마 22:34-40, 슥 7:9-12, 시 82, 미 6:8, 마 23:23-30, 눅 10:25-37 ●
기 억 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하나님께서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우 주적 대쟁투의 수칙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근절하지 않으시는 불 의와 악이 많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고통과 악을 최소한 어느 정도라도 완화하는 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없 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그 일을 해야 할 의 무가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사랑과 공의는 함께 가며,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정 의를 사랑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정의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안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다른 사 람이 가난, 억압 또는 어떠한 불의로 고통받을 때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억압받고 있을 때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세상에 주님의 완전한 의와 사랑의 성품 을 비추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확장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깨닫기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사 랑으로 주신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느끼기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정의를 사랑하고 주변 사람의 안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행하기 : 다른 이가 고통받고 어려울 때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보이여 그들을 사랑한다.
➊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바로 잡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➋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를 원하십니까?(마 22:37-40)
➌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가장 흔한 잘못은 어떤 것입니까?(신 6:5, 요일 4:20, 21)
➍ 하나님께서 정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미 6:8)
➎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짖는 것은 무엇을 요청하는 것입니까?(사 1:17)
➏ 하나님은 정의에 대한 관심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눅 4:18)
➐ 우리의 정의는 어떤 모습으로 왜곡되어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바르게 하겠습니까?
첫째 날 3월 16일(일) 가장 큰 두 계명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에 초점 을 맞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마태복음 22:34-4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율법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예수님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고,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계명은 갑작스런 주장이 아니며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마 22:37-40)라고 하셨다. 실제로 이 말씀 자 체가 구약성경에서 인용된 것이다. 마태복음 19:16-23을 읽어 보라. 젊은 부자 관원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마태복음 22장에 기록된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그분의 대답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예수님은 왜 이 사람에게 그렇게 대답하셨는 가? 그리고 이러한 만남은 우리의 지위나 처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무엇을 말해주 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 관원으로 하여금 그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완성시킬 수 있 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은 엄격하고 가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지혜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만 이 관원에게 있어서 유일한 구원의 희망이었다. 그의 높은 지위와 재산은 그의 성품 을 악으로 인도하는 교묘한 감화를 끼치고 있었다. 그것을 계속 간직한다면 그것들 은 하나님 대신 그의 사랑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서 조금이라도 물러가는 것은 도덕적인 능 력과 효능들을 감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 세상 사물을 귀중히 여기게 되 면, 그것들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사소할지라도 결국에는 마음을 모두 빼앗고 말 것 이기 때문이다”(시대의 소망, 520)
교훈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물을 더 귀하게 여길 위험에서 건지고 성품을 완성키 위해 사랑으로 말씀하신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묵상 : 예수께서 그 관원에게 모든 것을 다 팔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적용 : 모든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팔라고 요청받지는 않겠지만, 당신에게도 개인적 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영원한 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큰 계명 - “첫째 큰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며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 ‘둘째는 곧 이와 같으니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지니라.’ 이 두 계명에 도덕적 존재의 모든 관심과 의무가 달려 있다. 남들이 자기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사람 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실 수 있는 입 장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그분께 인정을 받게 될 것이 다. 그들은 사랑 안에 완전하여졌으며, 그들의 수고와 기도는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교회증언 2권, 550).
기도 :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 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연 약해서 때때로 세상 사물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 다. 존귀한 예수님의 사랑 을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 지 않도록 저의 마음을 지 켜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순 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둘째 날 3월 17일(월) 가장 큰 죄 두 가지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두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 다. 이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희생이 따 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의 실체이다. 그런데 가장 큰 두 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면 가장 큰 두 가지 죄는 어떤 것인가? 시편 135:13-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성경 전반에서 강조하는 흔한 죄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구약은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해서 강조한다(신 6:5 참조).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반대인 우상숭배라는 큰 죄와 밀접하게 연 결되어 있다. 스가랴 7:9-12를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비난하신다고 말하는가? 이것과 우상숭배의 죄는 두 개의 큰 계명과 어떤 관련이 있 는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진노하시는 일은 우상숭배만 아니라 그것이 개인적이든 집 단적이든 당신의 백성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불의 에 분노하신다. 구약 전체에서 강조되는 두 가지 큰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두 가지 큰 계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 가장 큰 두 가지 죄이다. 요 컨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계명을 지킬 수 없다.
실제로 요한일서 4:20, 21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 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교훈 : 구약이 강조하는 두 가지 큰 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두 가지 큰 계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
묵상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 십시오.
적용 :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연결 고리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영감의 교훈
인간과 하나님의 시각 차이 -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 은 책망을 받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한편, 술주정뱅이는 멸시받고 죄 때문에 하늘나라에 못 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은 특별히 하나님 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우상숭배에 대한 위협적 인 선고를 잘 아는 자들은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임 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증언 보감 2권, 256).
기도 :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는 부족하여서 온전히 사 랑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 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 우며 겸손히 따르도록 도 와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 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셋째 날 3월 18일(화)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한다고 선언한다(시 33:5, 사 61:8 참 조). 하나님은 불의에 대해 깊이 염려하시며 불의의 피해자인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의로운 분노를 일으키신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나님은 짓밟히고 억압받는 자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아끼시며, 가해자와 압제자에 대한 의로운 분노를 표출하신다. 시편 82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이 세상의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많은 주석가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이 구절은 사회의 불의에 책임이 있는 이 땅의 통치자들을 향한 비난이면서 이 땅의 부패한 재판관과 통치자들 뒤에 있는(마귀의 세력) 세상의 주관자(신들)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통치자들에게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 까지 하려느냐”라는 질문이 주어진다(시 82:2). 나아가 그들에게는 이런 명령이 주어진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 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시 82:3, 4). 구약의 여러 곳에서 선지자들은 분명하게 정의를 호소한다. 이것은 성경의 부수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구약 전체에서 나타나 는 선지자들의 기별이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하신 말씀의 핵 심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순종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시 고 요구하시는지는 비밀이 아니며 성경에 매우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사람아 주 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 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이 명령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직접 이렇게 말씀하 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요일 4:8-16 비교).
교훈 : 정의는 성경의 부수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구약 전체에서 나타나는 선지자들의 기별이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하신 말씀의 핵심이다.
묵상 : 미가 6:8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말과 행동으로 주의 깊게 그것을 실 천한다면 우리 가정과 교회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적용 : 정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정의에 대한 사랑을 더 잘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공의와 사랑을 함께 보존하는 길 - “하나님은 사탄을 하늘에서 추방시킴으로 당신의 공의를 드러내고 당신의 보좌의 영광을 보존하셨다. 그러나 인류가 이 반역의 정 신에 감염되어 죄를 범하였을 때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어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보이셨다.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 이 나타난다. 십자가는 루시퍼가 택한 죄악에 대하여 하 나님의 정부에 책임을 결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온 우 주 앞에 실증하는 큰 논증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00).
기도 : 우리는 다른 것에 초점을 맞 추면서 하나님께서 가장 중 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놓치 는 부족한 죄인입니다. 저의 부족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 받은 영혼이 있다면 그들을 붙잡아 주시고, 용서해 주 셔서 사람을 더욱 사랑으로 대하게 도와주옵소서.
넷째 날 3월 19일(수) 정의를 세우라고 부르심
성경의 선지자들은 사회의 정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성 경은 주저함 없이 계속해서 불의와 압제의 문제를 강조한다. 사실, 하나님께 심판을 촉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정의를 세워주실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의 불의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정의 를 향한 그의 기별과 외침은 오늘날 우리의 귀에도 크고 분명하게 울려 퍼져야 한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 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또한 그는 “불의한 법령을 만들”고 “가난한 자를 불 공평하게 판결하”(사 10:1, 2)는 자들에게 “화” 있을 것을 선포하며 경고한다. “벌하 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 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사 10:3). 마찬가지로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기별을 선포한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 에게 화 있을진저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 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2:13, 15, 16). 마태복음 23:23-30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시는 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더 중한 바”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불의에 대한 관심이 구약에 국한된다고 여기지 말 것은, 예수님 사역의 많은 부분에 서 불의가 그리스도에게 최고의 관심사였음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 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누가복 음의 평행하는 구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 다”(눅 11:42)라고 탄식하신다.
교훈 : 구약의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정의에 대하여 부르짖으며 예수께서도 사역의 많 은 부분에서 정의가 그리스도에게 최고의 관심사였음을 분명히 보여주셨다.
묵상 : 예수님의 때에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람들의 모 습과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더 중한 바’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늘 우리는 어 떤 모습이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그대들이 신뢰와 정직의 사람, 진실로 유용한 사람이 되는 여부는 그대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대들은 어 떤 환경에서도 정의를 위하여 서기 위해 준비하고 결심 해야 한다. 우리의 그릇된 습관은 우리와 함께 하늘로 가져갈 수 없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들이 우리를 의인들의 거처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쁜 습관들은 배격당할 때, 가장 활발한 저항 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쟁을 정력과 끈기로 계속하 면 그것들이 정복될 것이다”(교회증언 4권, 655).
기도 : 저에게 있는 허물을 주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고 기 도합니다. 하늘로 가져가지 못할 나쁜 것이 있다면 저 에게 알려 주옵소서. 눈을 밝히 떠서 더 중요한 것에 가치를 둘 수 있게 하시고 어떤 일에도 주님의 편에 서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다섯째 날 3월 20일(목)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큰 계명을 선포 하신 직후에 한 율법사가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라고 질문했다(눅 10:29). 예수님은 오늘날에는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이에 대답하신다. 누가복음 10:25-37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자비와 정 의를 호소하며, 선지자들의 외침을 통해 인류 역사 동안 다양한 집단이 ‘타인’에게 가 해온 여러 형태의 불의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정의를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 은 정의를 향한 예언적 외침과 갈망을 이루어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사 61:1, 2; 눅 4:16-21 참조). 그분은 모든 민족, 특별히 그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을 아는 만국 백성의 소망이시다. 권력을 움켜쥐며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는 원수와 정반대로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셔서 전혀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불의와 억압 아래 있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되셨다.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이요, 믿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으 로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원수를 물리치셨다. 만 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하신 것을 돌아보지 않는 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목숨까지 희생하시며 지키신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시편 9:8, 9은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 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라고 선포한다.
마찬가지로 시편 146:7-9도 하나님은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 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신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보다 더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교훈 : 하나님의 말씀은 도움이 필요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섬겨야 할 것을 명확하게 말한다.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돕고 정의를 세우기 위함이다.
묵상 :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에 대해 예수님의 삶과 사역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적용 : 우리는 어떤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까? 그분처럼 기적을 행하지 못하더라도, 오늘날 상처받은 많은 사람을 돕는 것은 얼마나 충분히 ‘기적적’인 일입니까?
영감의 교훈
형제의 고통을 돌아보라 - “우리 중에 가난한 자들과 고통하는 자들을 두심으로 주님은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시험하신다. 우리는 안전하게 원칙에서 벗어 날 수 없으며, 정의를 어길 수 없고, 자비를 소흘히 할 수 없다. 형제가 망해 가는 것을 볼 때 그냥 지나쳐 가 서는 안 되며, 그를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 고자 단호하고 즉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일에 우리 자아가 반영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상충되게 일할 수 없다”(교회증언 6권, 261).
기도 : 저의 무딘 마음을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뜻 을 분별할 수 있기를 원합 니다. 잘못된 마음으로 우 리 가운데 주신 소중한 영 혼을 고통과 어려움의 대상 으로만 보는 연약함을 불쌍 히 여기시고 주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여섯째 날 3월 2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29장 “안식일”을 읽어 보라.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난처한 처지에 휩쓸려 들어갈 것이 두려워 대중이 있는 곳에서는 그리스도께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유전을 범하기보다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도록 두면서도 지나친다면 소유주가 손 실을 당한다는 이유로 짐승은 구출해 주었다. 이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 람에게보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 더 큰 배려를 하였다. 이것은 모든 거짓 종교가 하는 일을 설명하여 준다. 이런 종교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 러나 그것들은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타락시킨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는 종교 마다 창조시에 가졌었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람에게 회복될 영광을 사람에게서 속 여 빼앗는다. 모든 거짓 종교는 그 추종자들에게 인간의 필요, 고통, 권리에 대하여 무관심 하라고 가르친다. 복음은 인류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바 된 존재로 높이 평가하며, 사 람의 필요와 고통과 권리에 자애로운 관심을 보이라고 가르친다. 주께서는 ‘내가 사람을 정 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 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시면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사악한 목적을 그들에게 직면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시며 행복을 주시던 그 때에 그들은 심한 증오심을 가지고 그분의 생명을 노리고 있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행하신 바 고통당 하는 자들을 고치는 것보다 그들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나았 는가? 하나님의 성일에 인자한 행실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것보다 마음에 살 의를 품는 것이 더 의로웠는가?”(시대의 소망, 286).
함께하는 토의를 위해
➊ 모든 거짓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무관심하도록 가르친다는 말이 사 실인가? 우리가 이러한 부주의를 피하려면 어떻게 유의해야 하겠는가?
➋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실질적인 면에서, 사랑을 실천 하기 위해 그 시대의 경계를 넘은 사마리아인을 본받게 하는가?
➌ 하나님은 정의와 자비를 사랑하신다. 어떻게 하면 예수께서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하신 것에 집중하며 그에 따라 행할 수 있겠는가?
➍ 예수님은 다른 이들, 특히 억압받고 짓밟힌 사람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랑했는지를 심 판과 연결해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가?(마 25:31-46)
결론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정의도 사랑하게 될 것이고 서로 를 사랑할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안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고통받고 어려울 때 외면하지 말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며 사랑을 보여야 한다. 이것 은 우리가 세상을 더 귀하게 여길 위험에서 건지고 성품을 완성하기 위해 사랑으로 주신 율 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