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진해지는 계절, 전남 함평을 찾았다. 꽃바람 불어오면 나비축제로 온통 들썩이는 이곳은 봄과 제법 잘 어울리는 고장이다. 이번 함평 여행의 주제는 나비가 아니라 ‘힐링’이다. 친환경 함평을 마음껏 누릴 1박2일 동안의 힐링 여행을 소개한다.
서해안을 따라 전라남도의 시작점 영광과 갯벌낙지로 유명한 무안 사이에 자리한 함평은 이 둘의 유명세 때문인지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덜 알려진 덕분에 여유롭고 자연 역시 깨끗하다. 이번 함평 여행의 주제를 ‘힐링’으로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평오일장부터 자산서원~고막천석교~돌머리해변~게르마늄 해수찜~자연생태공원~용천사~모평마을까지, 천혜의 자연을 품은 함평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여행을 준비했다. 이 여행 동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할 뿐 취향에 따라 더하고 빼는 작업을 통해 최고의 힐링 여행이 되기를.
영광과 무안 사이에 자리잡은 함평은 비교적 덜 알려진 여행지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깨끗한 자연환경과 고즈넉한 여유로움을 맛볼 수 있다. 함평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물 좋고 공기 좋은 함평천지는 농가인구 비중이 높았다. 그러다 IMF가 터졌고 농가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농가도 군도 모두 고민했다. 땅과 물 좋은 것 말고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때 묻지 않은 환경을 최대한 살리기로 하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때마침 당시 함평에 나비 박사가 있었다. 나비와 축제를 더했다. 축제는 인력을 필요로 했고, 농가에서는 나비를 키워 소득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비축제는 함평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함평을 설명할 때 나비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이 고장은 예로부터 ‘함평천지’라고 불렸다. 맛 좋기로 유명한 ‘함평천지한우’를 기억해보자. 천지라, 그만큼 너른 땅을 가졌다는 뜻이리라. 너른 땅과 갯벌은 풍부한 먹거리를 품었을 것이다. 함평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윤명 문화해설사는 “함평은 농가인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비옥한 땅에 물도 좋고 공장마저 없으니 그야말로 친환경 고장”이라고 함평을 설명했다. 이쯤이면 왜 함평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려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호남가] 한 구절 들으며 1박 2일 함평 여행을 시작해보자.
함평천지 늙은몸이 / 광주고향을 보려하고 / 제주어선 빌려타고 / 해남으로 건너올제 / 흥양의 해는 / 보성에 비쳐있고 / 고산의 아침안개 / 영암에 둘러있네…….
끝자리가 2,7일마다 열리는 함평오일장. 시골 장터의 소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새벽에는 우시장이 열린다.
함평을 제대로 여행하고 싶다면 매월 2일과 7일에 열리는 함평오일장을 기억해 두자. 함평오일장은 함평군청 근처 비빔밥 거리에서 펼쳐진다. 시골 장터의 소박한 재미는 물론, 이른 새벽 우시장이 먼저 열려 함평의 먹거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함평은 한우가 유명하다. ‘함평천지한우’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도 있다. 왜 맛있을까, 라는 궁금증은 나비축제가 열리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비옥한 땅과 물, 그리고 깨끗한 공기. 질 좋은 한우를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할까. 한우와 함께 이곳 별미로 꼽히는 육회비빔밥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우가 유명해 우시장이 함께 발달했고, 우시장 덕분에 신선한 육회를 넣은 비빔밥이 별미로 자리 잡았다. 종종 낙지 비빔밥도 볼 수 있는데 함평의 갯벌이 무안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함평의 바다로 넘어가기 전, 함평군청 남쪽에 자리한 자산서원과 고막천석교부터 들러보자. 조선중기 호남 사림의 수장이었던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을 모신 자산서원은 소박한 겉모습과 달리 조선시대 당쟁의 회오리를 품은 공간이다. 1589년 기축옥사에 연루된 정개청이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자 제자들이 건립해 1678년 자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관리소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곤재 우득록’ 목판도 자리한다.
다음은 함평의 유일한 보물 고막천석교(보물 1372호)로 가보자. 고려시대 고막대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돌다리로 수많은 홍수 속에서도 멀쩡히 살아남아 도술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함평과 나주를 잇는 고막천 위에 자리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망가졌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거급제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떠나던 함평의 선비들, 꽃가마 타고 함평으로 시집오던 새색시들도 이 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낙조 포인트로 꼽히는 돌머리해안. 물이 빠지면 갯벌체험을, 물이 차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잠시 지도를 살펴보자. 서해안을 따라 전남 영광, 함평, 무안이 자리한다. 영광은 그림 같은 백수해안도로가 있고, 무안은 양질의 갯벌에 낙지를 품고 있다. 그 사이에 자리한 함평 역시 무안과 갯벌이 이어져 찰진 낙지를 내놓는다. (낙지비빔밥에 올라가는 낙지는 미리 얘기하면 생(生)으로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낙지의 메카로 자리 잡은 무안 옆에서는 아무래도 힘이 떨어진다. 함평만의 특색을 담은 무언가가 없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문화해설사는 돌머리해안을 추천한다. 낙조만큼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단다.
무안과 갯벌이 이어지는 함평 역시 낙지 맛이 좋다. 함평 갯벌낙지(오른쪽)로 만든 낙지비빔밥(왼쪽). 주문할 때 얘기하면 산낙지로 올려준다.
돌머리, 석두해안이다. 이 바다에 기암괴석들이 많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란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잔잔한 백사장뿐인 것은 굴 양식장을 조성하며 바위들을 없앴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낙조를, 한낮에는 해수욕을 즐기러 찾는 이들이 많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나타난다. 지척에 자리한 원두막을 빌릴 수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유용하다. 오붓하게 해수욕을 즐겼다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보자. 먼저 주포항과 닿는다.
“여기 이름이요, ‘술 주(酒)’에 ‘포구 포(浦)’를 씁니다. 우리말로 풀면 ‘술항구’쯤 되겠지요? 얼마나 술집이 많았으면 항구 이름이 그리 붙었을까요. 그래도 한때 번성했던 항구였다는 걸 이름으로나마 알 수 있으니 성공한 것이지요.”
언젠가 꽉 채운 고기들로 가득한 고깃배가 오갔을 주포항을 지나자 함평의 명물, 해수찜이 나타난다. 해수에 약쑥과 숯, 짚가마니 등을 넣고 소나무 장작불로 뜨겁게 달군 돌을 넣어 이를 수건에 적셔 아픈 곳에 덮으면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그날만큼은 알차게 효자 노릇 할 듯싶다.
모평마을에서는 요즘 인기있는 전통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옛날 시골집 같은 편안함이 길손들을 토닥인다.
해가 참 길어졌다. 6~7시면 어두워졌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8시가 가까워도 날이 밝다. 바로 숙소로 이동하기는 빛이 아깝다. 자연생태공원을 살피고 모평마을로 넘어가기로 한다. 나비축제 메인 장소로 엑스포공원이 더 많이 알려졌지만 자연생태공원도 풍부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다양한 식물은 물론 반달가슴곰까지 볼 수 있어 아이들이나 연인과의 소풍으로 손색없다. 꽃무릇 붉은 물결 넘실대는 계절에 함평을 찾았다면 영광 불갑산과 닿은 꽃무릇공원도 놓치지 말자. 지척에 자리한 신라시대의 사찰, 용천사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함평에서 1박 이상 머물 계획이라면 모평마을을 기억해두자. 요즘 인기있는 전통마을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이미 유명해진 다른 전통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풋풋하다. 옛날 시골집 같은 편안함이 길손들을 토닥이는 이곳은 고려시대 함평 모씨가 개촌했다고 전해지며, 1460년 윤길이 정착하면서 파평 윤씨 집성촌이 됐다. ‘함평’이라는 지명은 함풍현과 모평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모평현이 함평을 이룬 2개 현 중 하나인 것. 상모평, 하모평, 운곡, 산내리 4개 마을이 ‘모평마을’에 속한다. 흙돌담길이 푸근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는 이곳에는 바닷물에 7년 동안 담그고 15년 동안 말린 소나무로 지었다고 전해지는 모평헌, 파평 윤씨 종가 등지에서 묵어갈 수 있다. 조선시대 천석꾼 윤상용이 세운 영양재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차 한잔 하며 운치를 즐기는 것으로 함평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