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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6일(토요일)
오늘은 조선의 25대 임금이시였던 철종을 만나러 가는날.
철종의 본명은 이 원범, 닉네임은 강화도령이다. 그 강화도령님을 만나보기위해 이른새벽 졸린눈을 비비며 일어나 연지찍고, 곤지찍고, 맛있는 햇 쌀밥과 과일 그리고 김밥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 조상들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의 도시 강화도로 가기위해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성건의 일당들은 국제의 도시 공항에 있는 송정역 버스 정류장에서 광역버스 NO3,000에 몸을 싣었다.
하나, 둘,셋 넸............. 열하나,열둘 우와 ! 1개분대는 되는 것 같다. 종팔이네 부부가 조금 늦게 오는바람에 우린 1,2차로 나누어 강화 터미널에 도착하고,.......................................
o. 강화도는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살아왔다. 신,구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산재해 잇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고인돌은 세계의 1/2이 이곳에서 발견되었으며(127기-고려사 지리지에 수록),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참성단과 단군의 세아들(부여, 부우, 부소)이 쌓았다는 삼랑성등이 있어 그 전설들을 더 뒷받침해 주고 있다.
강화의 옛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 하는데 갑비라는 말은 두곱절이라는 순 우리말이고 고차는 곶이라는 장소를 뜻하여 바다와 강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물이라 하여 갑곶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한강하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하며, 790년에 혈구진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여 군사요충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고려태조 23년에 강화로 부르기시작하여 고종 19년(1232년)에는 고려의 도읍을 이전(몽고2차 침입직전)시키고 강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1270년에 환도).충렬왕때 인주(인천)편입, 우왕3년에 강화부로 승격됨, 조선태종 13년에 도호부로 승격되고, 1896년(조선 고종)에 강화부로 강등, 1973년에 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군으로 되었다. 1995년에 인천 광역시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고려 고종3년(1866년)병인양호시에는 1개월동안 프랑스 군에게 함락되었다 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현수에게 패한후 철수하기도 하엿으며, 신미양효(1871년)때에는 초지진이 점령되고 – 어재현 군대가 광성보 에서 전원이 사망하는 치열(?)한 전투도 있었고, 일본과의 운요호사건(1874년) 에 의해 초지진이 파괴되고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는 수모도 겪은 곳이기도 하다.
드디어 오늘의 코스인 “강화 나들길” 제 1코스로 출발,
강화읍내를 지나 강화도령 집으로 쳐들어 갔다. 그런데 웬걸, 오늘의 주인공인 강화도령은 아니 계시고 “용흥궁”이라는 건물이름과 함께 아무도 살지않는 한옥만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
임은 지금 거기에 없었다. 임은 오래전(서기 1849년)에 출세를 위해 정든 강화를 떠나 서울로 서울로 떠나고 지금은 뭍 사람들만이 기웃거리는 강화 나들길의 들머리 역할만 하고 있다.
이름하여 “강화도령”
임이 거주했다던 집 용흥궁(龍興宮)을 둘러본다. 이름이 암시하듯 용(龍)이 흥(興)한 곳이다. 조선 24대 헌종은 4명의 아내에게서 간신히 딸 하나를 얻었는데 이도 일찍 요절하니 무자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루라도 왕좌를 비워놓을 수 없었던 왕실에서는 왕실의 큰어른인 순원왕후(순조의 후비로 안동 김씨)가 헌종의 외가인 풍양 조씨가 손을 쓰기 전에 정조의 이복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 이원범을 옹립하였다. 역모와 연루돼 집안이 강화도로 귀양 온 몰락한 종친에서 자라던 강화도령 이원범은 농사나 짓는 시골 무지랭이였다. 그런 그가 일약 조선의 왕- 이름하여 철종대왕(조선 제 25대임금)이 된 것이다. 이곳 용흥궁 자리는 강화도령이 살던 집터인데, 강화도령이 왕이 된 4년 후(1853년) 강화유수 정기세가 기와로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강화도령이 살았던 집은 아니라고 한다
용흥궁의 뒷 문을 나서니 성공회 성당이 우뚝서있다. 성공회 성당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1981년 7월 1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4호로 변경되었다. 보호면적은 6,452㎡이며, 성공회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이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성당을 뒤로하고 강화읍 북쪽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려궁터, 비록 그옛날 송악의 궁터 규모만큼은 아니지만 몽골의 침략을 피해 이곳으로 도읍지를 옮겨 39년간이나 고려를 통치하였던곳이다,
그러나 병인양효때 궁터내의 외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수많은 자료들이 프랑스군에게 불태워졌고 약탈을 당하기도 했던 자료들이 14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간신이 돌려받을수(?)있었던, 그것도 5년마다 임대의 형식으로........ 우리의 것을 우리가 찿아 오는데도 말입니다. 지금까지도 약소국가의 설움을 이런곳에서 받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씁쓸하기만 하다.
TIP – 정조는 1782년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설립했어요.
규장각이 있는데 외규장각은 왜 만든 것일까요?
외규장각은 규장각에 보관한 책들과 왕실의 유물들 중
영원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만 옮겨온 특별 서고로
사용하기 위해서 였답니다.
정조 6년, 드디어 외규장각이 완성되었고
이 곳에는 왕실의 책보, 어필, 주요 서책 등
762종, 4,892책이 봉안되었어요.
하늘이 파랗습니다. 정녕 가을인가 보네요. 오늘은 2012년 10월 6일, 따사로운 햇살은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성스러운 이 땅에도 아낌없이 내려쪼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 규장강을 보는 우리의 가슴속 저 깊은곳에 형용할수 없는 그 무엇이 항상 자리잡고 있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우린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강화 향교를 지나 산허리를 감싸고 길을 걷습니다. 하늘위로 쭉쭉 뻗어있는 나무들이 울적했던 마음들을 달래줍니다. 그래서 자연이 그렇게 좋은가 봅니다. 노오랗게 변해벼린 벼이삭들 짝짓기에 여념없는 고추 잠자리들의 안무가 마냥 즐겁기만 하고, 길가의 코스모스도 걷는 걸음따라 한들한들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마음도 어리애들처럼 설레입니다.
(범인은 바로 ......조사하면 다나와.)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마지막으로 도착한곳은 오늘의 종착지인 연미정, 코스따라 걷자면 아직도 5 ~ 6km는 더 가야하지만 오늘의 계획은 여기까지, 몇몇 화상들의 건강이 조금은 무리가 될듯하여 적당한 선에서 마감을 하기로했다. 그래도 13km정도는 걸었다. 연미정에서의 시원한 강바람(?)이 흐르는 땀방울을 스치며 순식간에 낚아채 가버린다. 그 모습이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연미정” 강건너 아스라이 보이는 건물과 민둥산처럼 보이는 산하들이 60여년전 분단된 우리의 민족 북한땅이다. 정말로 강화는 수많은 외침의 역사와 더불어 애환이 긷들여진 섬의 도시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굴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트레킹의 일정을 끝내고 우리일행은 군내버스를 타고 강화터미널뒤에 있는 풍물시장에서 시원한 막걸리와 밴뎅이회로 뒤풀이를 한다음 오늘의 일정을 모두마치고 또다시 3000번이라고 쓰인 광역버스를 타고 속세의 늪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기는 국제도시인 서울하고도 김포공항이 인접해 있는 송정-이곳에서 아주 맑은 음료수로 강화산사의 외롭고도 암울했던 우리의 과거사를 씼어내고자 몇몇 떼거리들은 또다시 의기투합하고 뭉쳐 버렸다. 2012년 10월 6일의 태양은 이미 강화의 산사에 묻혀버린지 오래였지만......
※ 추신 –추억의 한마당 : 고인돌의 귀신이 붙어버린 “감”들은 우리 몸속에 다 잘들있는지 모르겠네 ... 한톨의 밤알도 내것이 아니면 탐내지 맙시다. 그리고 자연을 사랑합시다.
안----------뇽
<가을바람>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들려온다
가을을 연주하는 바람이 몰려온다
높디 높은 하늘 속에서
바람이 내려온다
바람이불어온다
바람이 춤을 춘다
산 허리 돌아돌아
바람이 달려온다
가을이 오나보다
외로운 길섶 한무리 코스모스
넘늘거리는 버들 가지도
어즈녁 비바람에 지치기도하련만
가 - ㄹ 바람 시세움에 고개를젓는다
하늘을쳐다본다
파란하늘이 더 높다
하얀 실구름 저 너머로
까마득히 파랗다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이 돌아왔다
설렁설렁 옷깃 사이로
가을이 젖어온다
바람이분다
가을바람이 분다
얇디 얇은 땀 이슬이 바람 따라 돌아간다
은행나무 노란 잎,붉은 단풍 어우러진
산기슭 개울가
한여름 꾀꼬리는
벌서 나를 잊었나 보다
- 그냥 한번 읆어 보았습니다 -
첫댓글 아그들아 한마디 댓글 달줄도 알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