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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산책길 -2014.03.23. 일칠산우회, 해운대장산 산행 소감
이 재 익 / <소답자한 제64호>(2014.4월호) 에서
봄비는 소리 없이 내리는데, 아침에 비명으로 흩날리는 벚꽃 옆에서 빨간 명자꽃은 우람한 나무 부럽지 않은 듯 싱긋 웃는 그 모습이 참 침착하다. 김수장(1690~?)의 전통 시조 한수로 산책길을 출발한다.
봄비 갠 아침에 잠깨어 일어보니,
半開花封이 다투어 피는구나!
春鳥도 春興을 못 이기어 노래 춤을 한다.
봄이 빚는 홍매화 그림, 푸른 하늘과 색상의 대비가 산듯하다. 사방으로 트여서 아무런 방해도 없이 봄빛이 들어와 매화꽃에 둥지를 틀었다. 매화(흰색), 청매화, 홍매화는 있지만, 노란 단색뿐인 개나리는 눈부시다. 개나리는 순혈주의 꽃! 개나리는 흔한 꽃이라 시민들이 무심히 지나간다. 개나리 그 마음을 대신한다. "나를 보지도 않고 가는 임은 집에 가기도전에 발병나리라." 고
양운폭포수가 푸르고 맑다. 산에서 서성이는 우리 인생, 물을 보면 더 반갑다. 생명수가 아니겠는가? 이 맑은 물도 종내는 해운대 바다에 도착한다. 도화 몇 송이 띄우면 바로 안주가 되겠지. 내 언제 속박된 적이 있었기에 이리도 가벼운 마음이 드는 것인가? 아마도 봄바람 탓이라. 마음의 평화는 꽃사태처럼 다가온다. 폭포수 한잔 술에~ 초목이 물잣아올리기 바쁜데 덩달아 내 마음도 바쁘다.
시산제를 지냈던 마고당 바로 위쪽 불규칙한 돌무더기가 너덜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갖는다. 너덜에서 지팡이로 노를 젓고 계신 이 분은 뉘신가? 너덜가에 생강나무 다정한 꽃옆에는 무뚝뚝한 바위 자갈들, 그래도 어울리는 정경을 보라. 언제 여기에 눈이 덮였던 적이 있는가? 노란 봄 때깔이 더욱 곱다. 산수유와 비슷하다. 산수유는 나무줄기가 매우 거칠어 구분이 된다. 산수유는 산에는 거의 없고 마을에 있다.
산중 간이음식점 구남정, 거북구龜자 약자가 신자 같아서 신남정으로 읽는 실수들을 한다. 뒤뜰에 푸르러 가는 버드나무가 서당아니라도 우람하다. 아무렇게나 꺾어 꽂아두어도 잘 사는 생명력 강한 나무가 우뚝 지키고 섰다.
<무제> 유신허 (唐)
길은 흰 구름 따라 사라지고/ 봄날은 냇물 따라 흘러간다.
하롱하롱 떨어지는 꽃잎 / 물결에 향기 싣고 멀어져 간다/
한적한 대문은 산길로 열리고/ 글 읽는 서당에 버드나무 깊다. /
한낮의 햇살이 그윽이 들어오면 / 맑고 고운 빛 옷자락에 어린다.//
바람에 버들잎 아롱거리면 햇살도 따라서 하늘거릴 터이다. 장산마을 대숲. 손바닥만한 대숲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버들강아지 한 알만 눈떠도 봄을 끌고 오는 것을 모르는가? 삭아가는 억새밭에 섰다고 내 마음까지 삭지는 않는다. 다만 출렁일 뿐이다. 원추리 새싹이 내 앞에서 솟아오른다. 이 봄에 함께 비상飛上하자고 하네. 고것 참~!
숲과 꽃은 바라만 봐도 심리치유에 도움을 준다고 백병원 우종민 교수는 말한다. "숲 경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뇌 활동과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 활성에 영향을 미쳐 긴장 상태가 완화된다. 숲을 자주 보고 그 속에서 걷는 활동은 면역력을 최고로 해 항암 효과를 낸다. 2박 3일 정도의 숲 체험이나 삼림 캠프를 해도 암세포를 잡아먹는 NK 면역 세포의 활성이 높아진다." 누가 모르랴, 형편이 문제다.
장산에서도 멀리 바라뵈는 금정산, 이재익의 <삼월 금정산>에 '삼월은 결심하기 좋은 달' 이라 하였는데, 나의 시를 읽은 것처럼 근영 성님은 술을 탁 끊는 결심을 실천하고 있다. 대신 一日一善을 꼭 지킨다. 오늘 쓰레기는 내가 다 모아 가야지~ 이렇게 또 결심을 다지러 산행을 한다.
봄날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민들레꽃이 핀다. 그 씨앗은 <여행자> 처럼 가볍게 훨훨 멀리 난다. 김옥균의 <여행자처럼> 이다.
고요한 아침에 길을 떠나는 그대여/ 눈부신 태양이 그대앞길 막지 못하죠/ 지나간 열정은 계산하지 마세요/ 희망을 품고 떠나는 저 여행자처럼//
마음속에 미소를 채워보면 알 수 있죠/ 세상이 준 상처와 절망은 깃털처럼 가벼운 것/ 가슴가득 음악을 채워보면 알 수 있죠/ 그대가 찾는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환불 할 수 없는 여행 같은 것/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믿어요/ 누군가가 그대의 가치를 알아주고/ 관심을 가져줄 때 행복은 만들어지죠/
거친 파도가 그대앞길 막지못하죠/ 떠나요 우리, 함께 길을 떠나요/ 희망을 품고 떠나는 저 여행자처럼//
지나간 열정은 계산하지 말자, 희망을 품고 떠나는 저 여행자처럼. 미소로 채우면, 음악으로 채우면 번민은 가볍고, 행복은 가깝다네요. 친구 L씨는 아니야, 내 경우는 <울트라 마라톤>으로 채워야만 행복하더라~, 그건 특수체질인 경우이고, 이중에 누군가는 분 냄새만 맡아도 행복하다 하네요.
동행친구들이 근래 보기 드물게 신명춤도 절로 나온다. 그 중에는 꼭 모두가 즐겁다 할 때 '나는 기도하노라!' 는 자세도 나온다. 그러면 청개구리 아닌가? 아니다, 그는 모두 잠든 사이 홀로 깨어 있는 별인 셈이지. 울산에 살면서 행사모임때 마다 착실히 참가하는 C씨의 입장은 이렇다. '저마다 외롭다 할 때 나는 웃노라. 不遠間에 쫓아다니니깐'. 마음 깊은 곳에 미소도 깊고, 귀 밝은 곳에 의리도 돈독하더라.
무엇을 힘차게 가리키는 저 손가락 끝에 봄의 기운이 매달려있다. 그래 저 손가락 하나가 웃음을 끌고 간다. 즐거운 한 때가 여실하다. 중요한 사항도 있어, 메모도 하고.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 생동감을 확인하는 순간들이다. 눈 밝은 곳에 걸림 없는 풀꽃이 피더라. 향기로운 봄볕에 앉은 저 무게감 속에는 산이 작은 꽃들을 다 보살피는 듯 한 '다정다감' 이 내면화되어 있다.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감주와 같다.
군자는 담담하게 친근하고 소인은 감미롭다가 끊어진다." (장자)
제라늄꽃이 아름다운 자태로 4철 붉게 피더니, 먹다 남은 생강뿌리를 같은 화분에 심은 후로 시름시름 생명이 꺼져갔었다. 향나무 근처에도 잘 안자라는 식물이 많다. 분명 화합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더라. 화합 가능성이 있을 때 화합하고, 아니면 멀리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더라.
산에 올라온 것은 내 뜻이지만, 등산화가 나를 데려오기도 했다. 남모르게 수고하고 고마운 분들을 생각한다. 史記에 '分餘光'이라 했다. '등불은 여러 사람에게 갈라 비치게 한다.' 는 것이다. 은혜는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받게 한다. 은혜는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역사상 한 예를 든다. 스웨덴 국왕 아돌프 프레데릭(1710~1771)은 7명의 여인을 애인으로 거두어 주었다. 두 여자는 한쪽 눈이 없었고, 또 두 여자는 한쪽 다리가 없었고, 또 다른 두 명은 한쪽 팔이 없었고, 한명은 양팔이 없었다고 한다. 왕으로서의 연민이었겠지만 그 정신은 위대하였다.
참나무는 잎이 늦게 핀다. 종류도 다양하여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이 있는데, 떡갈나무 큰 잎새를 생각하면 외로워 보이는 것은, 큰 귀로 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다. 참 이상하다, 넓은 잎이 귀같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 누군가 나를 일깨워 준다면/ 세상을 읽으리라.//~ / 그리고 말하리라/ 힘겨운 삶도 살만하다고/ 살아온 과거는 연습이었다고.// 임영순 시인, <손잡아 줄 사람> 중에서
조용한 친구의 고요한 이미지가 마음을 울릴 때가 많다. 텅 빈 느낌 그 고요함, 모두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조용히 있는 것, 바로 '自然'이라는 말의 뜻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가 <사슴 울>로 읊었다. <텅 빈 산에 사람 보이지 않고/ 다만 들리는 도란도란 말소리/ 깊은 숲 사이 비껴든 햇살이/ 푸른 이끼 위에서 반짝거릴 때.//
옛사람이 깊은 산 속 홀로 정취를 느끼는 삶의 표현이 많은데 옛날에는 호랑이가 많았을 텐데. 그런 위험은 어찌 피해 갔을까? 이토록 의연하게 앉아서 기를 닦으면 짐승이 감히 접근을 못하였을 것이다.
이백의 <산중문답>이다.
나더러 왜 청산에 사느냐고 물으면/ 그저 웃고 만다네 마음도 한가롭게.
복사꽃 냇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 / 여기는 별천지 인간세상 아닌 것을.
이백 <산중문답>원문이다. 問余何意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窅然去도화유수요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 <요연; 窅然>이 좀 어렵다. 정신이 멍한 모양을 말한다. * 본인이 배부하는 본 교양지<소답자한>은 이 시의 <笑而不答心自閑 ; 그저 웃고 만다네 마음도 한가롭게>를 줄인 말 ; <笑答自閑>이다.
봄바람 불어불어 꽃피는 옛날 그대로의 계절인데, 향긋한 커피향같은 옛님의 소식은 알 수없는 인생이여! 단맛 쓴맛 모여서 새로운 맛이건만 인생의 맛은 갈수록 알 수 없는 맛이다. 빈말은 아니라는듯 모두들 웃고 있다.
내려오면서 들린 폭포사, 친구는 여러 번 들렸지만 석오리는 처음 본다 하였다. 옛날부터 있었는데도~ 눈 여겨 보아야 하고 마음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해운대 도서관 옆을 지나면 <먼나무> 빨간 가을 열매가 초봄인 지금도 아직도 선명하다. 오늘도 신비롭고 즐거운 하루가 저물어 간다.
<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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