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련 2011 상반기- 시조가 있는 에세이>
기다림
80년대에 마산 시외버스 터미널은 승객들의 길고긴 행렬들로 수를 놓았다. 특히 주말이나 일요일에는 줄들이 길어져 뒤에는 두 줄 세 줄 늘어나고, 그 끝이 뒤엉키어 길 밖으로도 나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고향에라도 가는 날이면 어느 줄을 서야할지 헤매다가 물어서 목적지의 줄을 찾아 맨 꽁무니로 가서 서곤 했다. 그리고 앞의 사람들 수를 세며 다음 번 버스를 탈 수 있을지 가늠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 기다림이란 지루하고, 답답하여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았다.
이 기다림은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진료를 받으려고 가면 무슨 아픈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몸은 아파오는데 사람들은 바글바글 앉아 있어 오늘 중으로 진료를 받을지 기다리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이 숨이 막혀 왔다.
예를 든 이외에도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기다리기, 부쳤다는 우편물 기다리기, 돈이 떨어진 상태에서 봉급날 기다리기, 배고픈 날 점심시간 기다리기, 장날 장에 간 어머니 기다리기, 심부름 시킨 아이 기다리기 등 어쩌면 사람은 일평생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인 줄 모른다. 보통 기다리는 자체가 지루해서 학수고대란 말이 나올 만큼 목을 빼고 기다린 심정을 알만 하다.
여기에 이 짜증나는 기다림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시조 한 수를 감상해 보자.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최남선의 시조다. 그 당시 국어선생님은 이 시조를 서너 번 낭송하시고, 그 표현이 기막히다며 입맛을 다시던 일이 엊그제 같다.
비 오는 날은 누구나 괜히 마음이 외로워진다. 지은이도 울적해지며 저절로 벗이나 친지가족이 생각났을 거다. 약속은 없었지만, 행여나 오지 않을까 그 기다리는 마음이 소록소록 종장에 잘 녹아 있다.
지은이는 분위기로 보아 안타까움 보다는 행복한 마음 상태일 것이다. 누군가 올 것 같은 기다림에 싸여서 가만히 오는 비도 마음을 즐겁게 만들고, 닫힌 문도 곧 열릴 것 같은 희망으로 아름답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반가운 이가 오지 않으면 또 어떤가, 목 메이게 그리운, 오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은 그런 기다림이 아닌 여유 있고, 낭만이 깃든 기다림이니 유유자적 한가함이 몸에 배었다.
그렇다. 이처럼 기다림은 짜증과 조급함을 벗어난 행복이어야 한다. 얼마나 멋진 삶의 지혜인가! 어린시절 운동회나 소풍,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마음은 참 행복했다. 그 언젠가 학예발표회를 앞두고 전날 준비를 하기 위해 몇몇 아이들을 남게 했는데 그 아이들만 아니라 대부분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고, 무대장치 꾸미기와 소품장식 만들기에 동참하느라 남았다. 축제일의 기대에 부푼 손놀림이나 얼굴표정들이 오래도록 행복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지 목적을 달성한 후의 성취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기대 이상의 행복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갖가지 많은 기다림이 찾아 올 것이다. 그 기다림을 행복하게 보내는 슬기를 지니면 멋진 인생길이 되지 않을까?
다음 옛시조는 앞의 것 보다는 기다림이 구구절절해진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조선 시대 천하일색 기생 황진이의 시조다. ‘동짓달 긴 밤’이라는 시간을 공간화 하여 그리는 임이 오면 그 긴긴 밤에 쌓이고 쌓였던 정을 풀겠다는 기다림의 마음이다. 어떻게 밤의 한허리를 베어낸다는 기막힌 착상을 하였을까? 이 시조 한수로 그의 천재적 재질을 직감할 수 있다. 깔아둔 이불 속에서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며 행복한 사랑의 기다림이 섬세한 여성의 감정 속에 애절히 묻어나지 않는가.
일전에 개성을 방문하였을 때 그 황진이를 만났다. 송도삼절의 하나인 박연폭포를 찾았는데 폭포가 쏟아지는 맞은 편 평평한 바위에 황진이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물 묻은 머리칼로 즉흥적으로 썼다는 글귀는 아무리 봐도 초서여서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 글귀를 지금껏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는데 김일성 수령이 보고는 재깍 알아냈다는 것이다. 곳곳에 신격화 현상이 절정에 이루는 것 같다. 그 다음은 무너지는 일만 남았다. 그걸 기다리는 마음이 행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