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분별(分別)하라.
사21:1-17절, 178.427.545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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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바벨론이 세상 연락에 빠져 무방비 상태로 있을 때 적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장차 바벨론에 의해 고통당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세상의 악한 세력은 영영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하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몰락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끝까지 소망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1.바벨론에 관한 경고입니다.(1-10절), 1)본문에서 바벨론은 “해변 광야”로 묘사되었습니다.(1-2절), 이 같은 묘사는 예언적이고 시적인 수사법으로 비유하자면 골짜기가 많은 예루살렘을 가리켜 “이상 골짜기”(22:1절), 라고 묘사한 것과 같습니다.
바벨론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유브라데 강 근처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의 서편으로는 광할한 광야가 펼쳐져있기 때문에 “해변의 광야”라는 표현은 바벨론의 성읍과 그 나라의 영토를 가리키는 적절한 묘사입니다.
(1)바벨론을 공격할 나라는 광야의 두려운 땅에서 몰려올 것인데. 그 모습은 마치 “남방 회리바람”같을 것입니다. (2)바벨론은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에 의해 약탈당할 것입니다.(2절), 첫째. 고레스 왕이 이끄는 바사 군이 전략에 따라 바벨론을 속여서 성읍을 함락시킨 후에 그곳을 약탈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바벨론을 함락시키는 자는 바사 군에 편입된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엘람과 메대의 군사들, 즉 바사의 군대를 사용해서 바벨론을 멸망시킨 결과, 바벨론의 압제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던 열방의 탄식 소리가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2)혹독한 묵시를 접하는 선지자의 고통과 두려움입니다.(3-4절),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고통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내 마음이 진동하며 두려움이 나를 놀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라고 했습니다.
3)세상(世上) 연락(連絡)에 빠진 바벨론이 적군(敵軍)의 기습(奇襲) 공격(攻擊)에 대비치 않습니다.(5절), 바벨론의 멸망은 악인들이 멸망당하는 모습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면서 세상적인 쾌락을 즐기고 있을 때 “순식간에”죽음과 몰락이 덮친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흥황과 그들의 형통함은 잠시뿐인 것입니다. 믿는 자가 이 세상의 부요함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잠24:19절에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4)파수꾼이 세워져 적군이 바벨론을 공격하는 것을 지켜봅니다.(6-9a)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파수꾼을 세우도록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파수꾼”의 표상은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파수꾼이 누구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파수꾼은 이사야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서 생각한 다른 어떤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 보는 것을 고하되 마병대가,
쌍 쌍 히 오는 것과 나귀 떼와 약대 떼를 보거든 자세히, 유심히 들으라 하셨더니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섰었고 밤이 맞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그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히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이 “주여“라고 부르짖은 것은 쌍쌍이 마병 대를 앞세우고 물밀 듯 밀려오는 바사 군의 엄청난 기세로
보아 바벨론이 이를 막아내기 힘들 것이므로 바벨론이 멸망당할 운명에 처했음을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5)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십니다.(9.b절) 엄청난 사건을 보고 부르짖듯 외치는 파수꾼의 보고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자로서, 담담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셨습니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멸망당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6)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입니다.(10절),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중심으로 하는 구속의 역사입니다.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이라는 사건도 그 범주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타작한 “마당의 곡식“을 위해서입니다. ”너 나의 타작한 것이며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여기서 ”마당 곡식“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타작을 당했다고 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사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바벨론 땅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바벨론이 멸망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타작(징계)도 끝나고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귀환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칭한 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신33: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 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2.에돔과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警告)입니다.(11-17절), 1)에돔에 관한 경고입니다.(11-12절), (1)에돔에 관한 경고의 말씀은 난해한 수수께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11절). 그것은 에돔 땅의 세일에서 어느 한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국의 상황을 물어보는 형식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세일”은 에돔 족속의 시조인 에서가 거주한 지역으로 사해 남단의 동쪽에서 남으로 길게 뻗은 에돔 중심부의 산악 지대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통상적으로 "에돔“에 대한 벌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를 향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11절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의 임무는 밤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 사항들을 주시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2)에돔인들을 향한 파수꾼의 대답이 막연합니다.(12절), 첫째.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는 것입니다. 2)아라비아에 관한 경고입니다.(13-17절), 열방들 중에서 열 번째로 경고의 대상이 된 나라는 “아라비아”입니다. 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의 후손들로 형성된 나라인데(창25:12-16절), 성경에 언급된 대로 그들은 동방의 땅 곧 이스라엘의 맞운 편에 있는 광활한 사막의 땅에 거했습니다.(창25:6.18절),
아라비아는 그 당시 여러 종족들로 이루어졌고 교역(交易)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가운데 교만(驕慢)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았습니다. (1)선지자는 먼저 드단의 대상을 들어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를 전합니다.(13절),
“아라비아 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이들 드단의 대상들이 앞으로는 통상적으로 통행했던 익숙한 대상로에서가 아니라. 거기서 벗어난 한적한 “수풀”곧 외떨어진 사막의 관목 지대에서 밤을 지새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통상적인 대상로에는 습격 자들이 날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곳에는 아라비아의 대상들을 공격하는 앗수르의 군사들이 있을 것입니다. (2)이사야 선지자는 드단의 대상에 이어 이제는 데마 땅의 거민들을 들어 어라비아에 관한 경고를 전합니다.(14-15절),
“데마 땅의 거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이 칼날을 피하여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앗수르 군사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겨우 도망친 대상들입니다.
이들은 앗수르 군사들의 칼날을 피해 근처에 있는 동족의 땅인 데마로 몸을 피신하러 도망쳐 올 것입니다. 선지자는 아직까지 전화가 미치지 않은 데마 땅의 거민들은 자신들에게로 도망쳐 온 곤경에 처한 동족을 보거든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영접해서 물과 빵을 제공해 주어야 하루 것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게달의 자손을 들어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를 합니다.(16-17절), “게달”은 이스마엘의 12아들 중 둘째 아들인 게달의 후손들로 유다에서 가장 가까운 북부 아리비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사막의 대상이 되어 교역 업에 종사하던 드단이나 데마 사람들과는 달리. 개달의 거민들은 아라비아 본토에서 정착 생활을 하면서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고 주로 유목 업에 종사하면서 다른 부족들에 비해서 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첫째. 게달의 영광이 쇠멸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勇士)의 남은 수가 적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게달의 영광(榮光)은 이 세상(世上)의 영광(榮光)을 대변합니다.
그것은 하려함. 멋짐. 번쩍거림. 자유분방함. 호기를 부림. 마음껏 즐기고 취함 등과 같은 것들입니다. 세상에서 그러한 것들은 사람에게 기쁨과 쾌락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참된 말씀의 도에서 벗어난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은 게달의 영광과 같은 세상적인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참되고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40:6-8절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요 영생의 길입니다. 이 길로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항상 우리 앞에는 축복과 저주를 선택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 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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