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공회(67회산악회) 주관으로 추석연휴를 이용하여(9/29~10/3) 일본소재 북알프스 원정 산행을 총12명이 다녀왔으며 본 산행기는 휘공회장인 유홍림(단국대 교수)군과 김현경(표준연구원 연구원)군이 공동으로 장장 3회에 걸쳐 소상히 쓴 글인데 본인들의 동의를 구해서 게시합니다.. 훗날 휘산회는 물론 휘문교우님들께서 북알프스산행시 좋은 참고자료가 되리라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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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회 동기회의 등산모임인 휘공회가 주관한 일본의 북알프스 등정을 참가인원 전원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4박5일이라는 짧은 일정과 우리 동기들의 산행 실력을 감안해 북알프스 중 주봉(오꾸호다까다게, 3190m)이 위치한 남쪽만을 등반하였기에 북알프스 반종주라 하겠습니다. 이번 산행은 작년(2003년) 보르네오 섬 말레이시아령에 있는 코타키나발루(4100m) 등반에 이어 두 번째 해외산행이었습니다.
북알프스를 다녀온 지가 거의 20일이 되었지만, 이제야 산행기를 올립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개인적으로 바쁜 업무들이 있었기에 산행기 게시가 늦어졌습니다. 아직도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생생했던 산행 경험과 감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빨리 게시판에 올리라는 적지 않은 압력에 굴복하여 시간을 짜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선 앞으로 펼쳐질 산행기의 이해를 위하여 북 알프스에 대한 간략한 안내와 일정, 그리고 참가인원 등에 대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북알프스 소개 부산(富山)ㆍ기탁(岐卓)ㆍ신갈(新渴)ㆍ장야(長野)의 4개 현(懸)에 걸쳐 있는 중부산악국립공원 내의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ㆍ북으로 약 75km의 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3000m 이상의 연봉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최고봉은 오쿠호다카다케(穗高岳 3,190m)로 후지산, 남알프스의 기타다케(北岳)에 이어 일본에서 3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북알프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들이 흔히 아는 가미고지(上高地)가 있는 남쪽과 다테야마, 스루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 북쪽으로 나누어진다. 높이도 높이이지만, 한여름에도 잔설(殘雪)이 남아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한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보름 정도는 계속된다고 하며, 6월 중순 무렵에도 그리고 10월 20일 정도에도 눈이 내린 적이 있다고 하며, 겨울 철에는 12발짜리 아이젠이 없으면 산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기후도 변화무쌍하여 일본 해외원정대의 훈련지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산은 광대한 넓이뿐만 아니라 웅장하면서도 조각한 듯한 암릉과 갚은 계곡으로 이루고 있고, 용암대지의 아름다운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이라고 한다. 특히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빙하지역은 독특한 매력이며, 고산 지역에서만 서생하는 진귀한 야생 동식물도 접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날씨가 허락하면 3000M가 넘는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에서 후지산, 남알프스의 연봉과 뒤로 보이는 야리가다케(槍岳), 다테야마(立山)연봉, 백마악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고 하며, 또한 그곳에서의 일출과 일몰, 운해(雲海)는 오랫동안 흥분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일정 북알프스가 가을철 단풍이 워낙 유명하다는 점과 제법 긴 추석 연휴와 주5일제 근무를 최대 활용하여 9월 29일~10월 3일까지의 4박 5일로 잡았습니다. 계획 초기에는 5박 6일로 잡아 다소 여유로운 산행을 계획하였으나,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전영옥군이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평생 생계가 달려 있다면서, 일정을 줄여 달라는 간청에 못 이겨 하루를 줄여 다소 무리한 산행을 하기로 友情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일정을 뒤엎은 전영옥군은 국정감사 일정을 핑계(?)로 참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몇 몇 대원들은 눈물겨운 산행을 하게 되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산행 내내 ‘영옥이 때문에’ ‘그 새끼(?) 때문에’ 하는 원망과 탄식으로 북알프스의 계곡이 요동쳤을 정도입니다. 내심으로 저는 좀 전에 언급한 몇 몇 대원들에 의해 아까운 우리의 친구인 영옥이가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걱정이 컸었습니다. 그러나 귀국 전날 영옥군 장인께서 갑작스럽게 별세하셨다는 핸드폰 메시지 때문에 그 살벌했던 분위기는 한결 누그러졌고, 단지 영옥이가 미리 납부했던 회비 가운데 몇 퍼센트만 돌려줄 것인가에 대해 격렬한 논의가 이루어졌었다. [영옥아! 장인께서 자네를 살렸으니, 이제부터는 와이프한테 밤낮으로 더욱 열심히 봉사를 해야 할 거야.]
참가인원 67회 8명(김규한, 김응구, 김현경, 유홍림, 윤승일, 이영일, 임창호, 조명하)과 53회 1명(김관수). 기타(김병태, 유홍석, 강철원) 3명을 합쳐 총 12명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우리 동기회에 등산 붐을 일으켜 주었고 여전히 산을 전파하려고 애쓰는 김응구 회장, 히말라야를 비롯한 국내외 고산들을 끊임없이 정복하고 있는 김현경, 희생정신과 매너를 갖춘 등산계의 신사 윤승일, 그리고 (약간의 훈련만 있으면, 전문산악인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등산계의 새로운 별 조명하 등은 나의 산행기에도 여러 차례 소개가 되어 이미 동기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또한 김응구 회장을 산에 입문시킨 것은 물론 우리의 큰 산행에는 항상 동행해 주어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는 김병태 사장(한국산악스키연맹회장), 나의 實弟이면서 우리 동기들과는 많은 산행을 했고, 마치 동문 후배처럼 지내고 있는 유홍석(극동건설 도곡동 현장소장),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 팀의 일원으로서 히말라야를 비롯해 남극 북극을 다녀왔으며, 현재 해외등반 및 오지 탐험만을 전문으로 가이드하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강철원 대장.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즈니스 개념은 접어두고 우리와 산행을 하였으며, 앞으로 다리에 힘이 빠질 때까지는 함께 하자는 桃園結義를 한 상태이다. 이제부터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본인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고, 또한 산과는 조금은 어색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 동기들과 선배에 관하여 몇 가지 느낌과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규한> 집 뒤에 있는 북한산을 거의 매일 오르내리면서 평소 체력관리를 해 왔다고는 하지만,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한 후 대퇴부에 아직도 철심을 박고 살고 있는 형편이라 원정에 참여하기까지에는 중대한 결심이 있었고 그리고 원정기간 내내 놀랄만한 오기와 뚝심으로 버티어 주었기에 모든 대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반면에 규한이는 어느 한 순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벌여왔던 ‘술들과의 전쟁’을 일본에서도 계속하였기에 대원들을 긴장시켰지만, 극주(克酒)하려는 정신에 그 누구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그 남산만한 체구와 1톤에 가까운 체중을 지닌 규한이는 보기와는 다르게 신경이 예민하여 원정기간 내내 잠을 거의 자지 못하였으며, 입맛 역시 까다로워 제대로 섭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대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영일> 하사관 학교 출신으로 졸업시 국무총리 상을 받기까지 했던 영일이는, 평소 회사에서 마라톤 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놀라만한 체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기가 가 보았던 가장 높은 산이 한라산이었기에 자기를 ‘한라 Lee’ 라고 불러달라던 그가 북알프스를 등정한 마친 후에는 다테야마라는 일본식 한자를 우리말로 발음해’ 立山 Lee’라고 불러달란다. 참고로 현경이를 ‘히말 킴’, 나를 ‘코타 류’ 라고 부르면서 분위기를 살리는 탓에 힘든 산행에 활력소를 제공해 주었다. <임창호> 20여년 동안 공직에 근무하다가 조만간 퇴직을 하고 사무실 개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본인도 체력훈련이 안되어 있다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옆에서 부추겨 동행하기에 이르렀다. 유난히 땀도 많이 흘리면서 안경을 쓰고 있으며, 이 글을 쓰는 나처럼 다리가 짧고, 인격(배)은 풍부해 산행하기에는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이번 원정산행에는 몸살 기운까지 겹쳐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불굴의 투지와 동료애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창호씨! 우리 함께 인격관리 좀 합시다. <김관수> 53회 선배로서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여러 곳의 市長 및 경기도 북부출장소 소장 등을 역임하셨다고 한다. 우리보다 무려 14년 선배. 그러니 환갑이 지나셨다. 그러나 목 아래만 보면 20대 청년과 같은 몸매를 지니셨고, 청바지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셨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선배님의 동기들이 선배 망신시키지 말라며, 극구 말리셨다고는 하지만, 체력 역시 우리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뒤지지 않으셨다. 선배와 관련된 일화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우선 출발장소인 인천공항에서 처음 본 선배님은 명색이 해외산행인데 25 리터도 안되는 배낭을 메고 동네 뒷산에 가는 차림으로 나타나셨다. 그 배낭에는 고산등반에 필요한 장비나 옷가지 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우리 모두는 놀라며 앞으로 닥칠 문제들에 대해 미리 겁을 먹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같이 가기로 했던 영옥이가 선배님한테 “모든 것은 제가 준비할 터이니 선배님은 물이나 한 병 떠 오시지요” 했다는 것 아닌가. 원래 맥주 컵으로 소주를 돌리시는 선배님이 주당이었던 영옥이의 충정어린 말대로 패트 병에 담긴 ‘산이슬’을 그 범상치 않은 배낭에 담아 오신 것이었다. 원래 고수들은 고수끼리 알아본다든가! 이래서 영옥이에 대한 원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선배님은 공항에 모여 있는 우리 동기들을 슬쩍 살펴보시고는 당신이 최소 꼴등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졌다고 한다. 선배님에게 희망을 드린 우리 동기들이 누구인지는 아나, 아직은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대가로 배상을 할 만큼 재산을 모으지 못했기에 최소 당분간은 입을 다물고 있을까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작년 코타키나발루의 등정에는 김응구 회장 사무실에 근무하던 박경덕 이사의 환갑 잔치가 열었었는데, 올해도 환갑을 넘긴 노인네를 모시고 간다는 우리의 운명에 관해서이다. 원래 휘문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보다는 예의범절이나 노인들에 대한 공경을 더욱 중요하게 가르쳤던 결과에서 빚어진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니 내년에도 우리 동기들의 아버님이나. 아버님뻘 되는 선배님을 미리 선정해 모시는 가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두 분이상은 아니 되니, 미리 신청바랍니다. <산행기 1> 에서는 주로 북알프스에 대한 개요와 일정, 그리고 참여대원들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가 있었다. 이제부터가 정식 산행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밝혀둘 것은 이제부터 게시될 산행기는 진짜 山사나이 김현경 대원이 제공해 준 사실적 기록들을 토대로 작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경아! 이 정도면 저작권 시비는 피할 수 있겠지?] 평소에도 그랬지만, 현경이는 지명, 거리, 높이, 산세, 무게, 가격 등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 항상 나로 하여금 존경심을 자아나게 한다. [현경아! 이 정도면 아부도 수준급이지?]
첫째날(2004. 9. 29): 인천공항→도야마(富山)공항→하꾸바(白馬) 다테야마(立山) 山莊
2004년 9월 29일 수요일 오후 3시에 인천국제공항에 집합한 12명의 대원들이 강철원 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탑승수속을 마쳤다. (이 때 우리가 일본에서 묵을 立山 산장의 안 주인 이현숙씨도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의 식사준비 등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강대장이 설득해 동행하는 거란다.) 출국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출국장으로 나가 간단한 출국심사를 마친 뒤, 면세점에도 들렸다. 어떤 친구는 담배, 어떤 친구는 딸들에게 줄 가방이나 악세사리, 어떤 친구는 넥타이 등을 사면서 시간을 보냈다.
약속된 시간에 예정된 탑승구로 갔더니, 탑승구가 다른 곳으로 바뀌어 허둥대었지만, 5시 이륙 예정인 비행기에는 무사히 탑승하였다. 각 대원들은 무작위로 나누어 준 탑승권에 적혀있는 번호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도 운이 있는 놈은 달랐다. 불편하지만 값이 싼 비즈니스 칸에 같이 탔어도, 영일이는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비상구 옆에, 그것도 이쁘고 싱싱한 승무원과 무릎을 맞대며 눈을 맞출 수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을 거머지게 되었다. 스튜어디스면 무조건 우리의 동기 이정식의 제자인 줄 알고, 작업에 들어갔더니, 자기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그냥 입사했다 하길래 다소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영일이가 다소 풀이 죽어 보이기에, 할 수 없이 내가 나서 이것저것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알고 보니 성신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이번 비행이 첫 번째 일본 비행이란다. 물론 사이사이에 면세품을 사거나 돌아오는 비행기에 받을 수 있도록 물품예약을 하기도 했다.
이쁜 스튜어디스들의 배웅을 받으며, 도야마(富山) 공항에 내린 시각은 19:00 경. 입국심사를 마친 후, 짐들을 찾아 들고 대기 중에 있던 전세버스에 올라 숙박지인 다테야마 산장(立山 山莊)으로 향하였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비교적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富山 IC를 통과하여 고속도로인 北陸自動車道를 이용하여 糸魚川 IC를 빠져나와 국도 148번을 타고 하쿠바(白馬)로 가는 2시간 내내 비는 계속하여 거세게 내렸다. 출발 전부터 우리는 이미 북알프스 지역 일대가 태풍 민들레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 현지 사정을 보니 다소의 실망과 두려움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마침 NHK 방송의 일기예보를 모니터링하던 김응구 회장 사모님이 안부의 전화를 걸어와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면서 안전산행을 당부하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도야마는 인구 30만 정도로 가내수공업을 주로 하는 작은 도시로 우리나라 속초와 위도가 비슷한 지역이며, 우리가 향하고 있는 나가노는 98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곳에만 스키장이 무려 13개가 있고, 평균 2 m이상의 Powder Snow에서 환상적인 스키를 즐길 수 있다고 하며, 스키 시즌이 반년이상 지속되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스키장의 개수가 13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곳의 풍경이 눈에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다테야마 산장에 도착하였다. 이 산장의 주인은 앞서 언급한 부인 이현숙씨의 남편 노운석(46세)씨이다. 이들 사이에는 아직 자식이 없으며, 몸 전체가 새까맣고 순한 개 ’세미’하고 함께 살고 있다. 한국산악회 회원이기도 한 노운석씨는 일본 유학생 신분이었지만, 산을 좋아해 후지산 가이드 등으로 용돈과 학비를 벌었다하며, 스키에 매료되어 이곳으로 이주해 산장을 경영하면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도 낙천적이라고 어찌 보면 철없는 어린애처럼 보이는 노운석씨에게서 묘한 부러움이 느껴진다. 산장은 3층 높이의 건물인데, 설계가 잘 되어 있어, 1층에는 거실과 식당, 주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실에는 간단하게 맥주나 커피를 할 수 있는 Bar가 마련되어 있었고, 노래방 기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식당은 25명 정도가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베란다에는 커다란 바비큐 그릴이 있었다. 그리고 1층에서 3층까지 거실의 천정이 이어져 있었는데, 벽에는 그 동안 한국에서 다녀간 각종의 산악회 깃발이나 회원들의 사인이 적힌 T 셔츠들이 걸려져 있었다. 7~8개 정도의 방이 있는데, 각 방의 바닥은 다다미로 되어 있고, 대부분의 방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으며, 각 방마다 다락같은 곳이 마련되어 있어 2~3명은 별도로 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각 방의 이름은 지리산, 덕유산, 월악산, 금정산 등등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우리가 산장에 도착해 보니 태풍 때문에 북알프스 텐트 트렉킹을 못하고 대피하고 있던 山 雜誌(조선일보사 발행) 기자를 포함한 일행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일행에는 두 쌍의 부부와 한 명의 초등학생도 끼어 있었다. 조별로 방 배정을 마치고 난 뒤, 세인들의 눈총을 받으며, 한국에서 공수해 간 야외용 소주 3박스(24개 × 3 = 72병) 가운데 몇 병을 꺼내 반주삼아 한국식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물론 이 때 우리의 주량을 익히 알고 있던 강철원 대장은 내일 비가 웬만큼 오더라도 산행을 강행할 터이니, 술을 그만 먹고 산행 준비를 하라는 지엄한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공갈(?)에 속을 리 없는 우리가 아닌가? 일본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TV 화면에 나오는 漢字는 읽을 수 있는데다가 작년 키나발루 등정 때에도 몇 차례 엄포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결정적으로 속은 경험이 있던 터라, 우리는 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 비공식으로 가져간 그 독한 홍주 1리터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물론 그러한 무모한 작태에는 내일 산행은 불가능할 것이며, 따라서 마지막 날을 예정된 관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였다.) 자기 직전, 계속해서 초조하게 날씨를 모니터링하던 강철원 대장이 우리 예상대로 내일 일정을 관광으로 잡아 주어서 수능시험을 만점을 맞은 고3 학생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달콤한 잠을 청하였다. 이 같은 나의 소박한 바람은, 선생님 말씀을 안 들으면 벌을 받듯이, 순간 허망한 것이라는 것이 인식되었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출발 전, 집행부에서는 효율적인 산행을 위한다는 핑계로 대원들을 3개조로 나누고, 조장을 임명하였으며, 방 배정도 조별로 하였다. 참고적으로 조와 조원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각 조의 첫 사람이 조장이었다. A조: 전영옥, 김관수, 임창호, 조명하(A조의 경우, 조장도 없이 출발하게 되었다.) B조: 윤승일, 김규한, 이영일, 김병태 C조: 김현경, 김응구, 유홍림, 유홍석 항상 계획에는 차질이 있게 마련.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조 배정에는 각자의 산행 실력은 물론 코고는 정도까지 고려한다고 하였지만,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진 못한 관계로,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대원들이 있었다. 평소 코를 곤다는 소문이 없던 대원들도 심하게 골았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 가운데는 필자도 속해 있다. 새벽 3시쯤 되어 잠이 깨졌고,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는데, 누군가가 B조의 방 앞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있는 것 아닌가?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다 못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했던 모양이다. 누군가 궁금하여 살며시 들쳐보니 김병태 사장이었다. 물론 덩치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규한이에게는 독방을 마련해 주었으니,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꼴등만 하지 않았다면 B조에서는 누가 코를 골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날 안 일이지만, 독방을 배정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규한이는 잠을 이루지 못해 혼자서 맥주 5병을 추가로 마셨으며, 결국 김응구회장에게 한방 수면제도 얻어먹고 잠을 잤다고 한다. (독방을 쓰는 규한이에게 회비를 더 걷을까 하는 악마적인 유혹도 있었지만, 참았다. 우리는 3학년 1반 친구 아니가?. 여기서 한 가지 더 밝혀야 할 에피소드가 있다. 술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잠을 이루지 못한 규한이가 준 것이 수면제가 아닌 소화제였다는 것을 곧 알아 챘지만, 그냥 자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잤느냐는 김회장의 말에 규한이가 수면제 덕분에 잘 잤다며 연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물론 C조의 경우도, 본인과 유사한 유전인자를 가진 유홍석이를 빼면 코를 심하게 곤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추려질 것이다. 필자가 비록 누가 누가 코를 골았다고 직접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억울해 하면서 너는 안 골았냐? 하고 항변을 하고 싶은 대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대원들도 휘문고등학교를 정상으로 입학만 했었다면, 앞으로도 몇 차례 산행기가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속으로만 욕하고 마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래서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였나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단체산행에서는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변수는 코를 고는 정도이며, 코를 고는 사람들은 한 방에서 재워야 나머지 순진 무궁한 대원들이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형평성만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도 이러한 교훈을 고려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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