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3:10-17절 진리 안에 거하는 삶
오늘 말씀은 진리안에 거하는 삶과 성경의 영감성과 유익함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10,11절은 자신이 겪은 핍박을 간증하면서 12-15절은 그리스도안에서 경건된 삶은 핍박을 받게 되고, 15-17절에는 성도가 진리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영감성과 유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심오한 영적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성도는 신앙적으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10,11절은 짧지만 바울의 지난 시간들의 이야기들을 함축해 놓았습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이러한 고통과 연단을 통해서 그의 내면은 성숙해 갔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처럼 변해갔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들 디모데에게 핍박과 고난을 통해 인내로서 소망의 날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향’이란 ‘프로데세이’는 ‘견고한 결심. 삶의 목적’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목적은 죽을 각오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오래참음’‘마크로뒤미아’는 분을 낼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견디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핍박이나 고난 가운데서 견디는 인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견주어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과연 이 시대에 그러한 고난을 받으면서 신앙을 지켜낼 수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내 신앙을 바로 세우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신앙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그리고 바울은 고전4:11절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빌3:17절“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딛2:7,8절“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원리라 하겠습니다. 고난과 핍박속에서 두려워하고 믿음을 버리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아멘. 바울이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핍박과 고난속에서도 함께 하시고 건지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전10: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우리는 이 말씀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속에 홀로 두지 않으시고 능히 이기게 하십니다. 시34:17절“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아멘.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멘.
세상의 핍박은 우리의 신앙의 참됨을 안정하는 사인입니다.
12절“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다르게 말하면 경건하게 살고자하면 핍박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고통과 역경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예수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병도 고치고, 번성한다고, 그럼 이 말씀과는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씀할까요?
이것은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의 속한 자들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어느 목사님이 자기의 소견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성도들에게도 가르칩니다. 그때 말씀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이 와서 그것은 틀렸다고 하면 받아 들이고 고치려 할까요?
10월 27일 시청앞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집회에 반대를 하고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자칭 선지자라고 자신은 하나님과 소통을 한다는 그래서 나한테 까불면 하나님 죽어했던 사람, 거기에 붙어 다니면 부역을 하는 손씨가 이렇게 외칩니다. 나라가 넘어가는데 차별금지법이 문제냐고, 거기에 부역하는 조씨도 그랬죠.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자들은 핍박이 있다고 하십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핍박이 오면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벧전 4:16절에서 베드로가 전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모든 사람이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할수 있어야 믿음과 용기있는 자입니다.
13절“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여기서 ‘속이는 자들’‘고에테스’는 곡하는 자들로 자신은 슬프지 않은데도 돈을 벌기 위해 슬픈 것처럼 속이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속이는 자들은 사기꾼이라고 하기도하고 속이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은 점점 자라나서 확대되고 재생산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점점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속고 속이는 굴레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14절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지속적으로 끝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신앙은 습득이 아니라 계속 배우고 익혀서 확신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요15:19절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아멘.
성경만이 우리를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유일한 지침서이며 또한 약혼의 증표입니다.
15-17절입니다. 진리안에 거하는 확실한 방법은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절“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절“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리를 따르고자 한다면 유일한 지침서는 성경뿐입니다.
디엘 무디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 성령이 나를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평론가인 콜로에리지는 “성령이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나는 확실히 알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해결할 수 없었던 삶의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성경만이 우리를 진리의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할수 있는 유일한 지침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같은 기독교라고 하는 집단에서 반기를 들고 구원받는 길은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집단이 WCC, NCCK, WEA, 등등 구원은 다른 길로도 받을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베드로 사도는 그의 책 벧전1:23절에서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했습니다.
다시 16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것은 성경의 그원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언어는 귀한 것입니다. 그 말로서 생각도 전달하고 상대방의 마음도 알아 차리기도 합니다. 그 언어를 하나님은 처음에는 구두로 전달하시다가 나중에는 글자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누군가는 구약과 신약은 예수님의 약혼서약서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윗 입술과 아랫입술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거나 듣는데 잘들어야 하고 잘 깨달아야 합니다. 전달에 있어 왜곡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공부하는게 좋고 유대인들의 관습도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말씀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히4: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아멘
마치려 합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애매히 나도 모르는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질병도 있고 핍박도 있고, 인간관계에서도 부당한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그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길힘은 말씀입니다. 문제는 한두번 이겼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온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계속 말씀을 의지하고 나악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붙잡고 승리합시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