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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칭의의 믿음과 율법에 대한 이해 (최근에 수정함)
전도자 Evangelist ・ 2021. 6. 26. 5:35
할렐루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늘 함께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면서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해야 하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속히 다시 모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비도 많고, 하늘이 맑은 날도 많고, 유월이 끝나가는데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합니다. 코로나로 세상의 기후도 영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변이종이 또 생겨서 끝날 조짐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기를 기도로 그리고 준비로 인내하며 잘 보내어 다시 모일 때 더욱더 하나님을 잘 찬양하게 하소서! 부패와 불의가 오직 성경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율법이 없이 세상의 법과 각자의 소견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부디 오천만 국민과 일천만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인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지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오랜만에 이곳에 다시 옵니다. 최근에 오천만의 성경 정리를 위해서 이미 올린 글들을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서문으로 위의 제목의 글을 썼고 이를 올립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믿음은, 처음 우리가 배우는 ‘모든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교회에서 배운 배움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을 선물을 받았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계속하면서 나중에 칭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란 간증문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주된 내용을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의 이해를 중심으로 위와 같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칭의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죄의 용서가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로마서 공부의 워밍업 부분 갈라디아서와 하박국서를 정리하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이해입니다.
이런 이해에 도달하기까지는 저는 위의 그림에서 표현한 과정과 같이 이신칭의를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로마서의 이해의 선행단계인 하박국서의 이해를 통해서 성도에게 이신칭의가 일어나는 시기를 저는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성도가 성령을 선물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어느 때 입니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모든 글이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있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이고 혹시 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제가 책으로 정리한 자료를 보내 드릴 테니 받을 주소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2권으로 정리했는데 jkdavid@hanmail.net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복사 비용이 칼라가 많이 들어가서 2권(약 550페이지) 4만 원이 넘는데, 배송비 포함해서 5만 원이니 필요하신 분은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자료는 다 블로그와 카페에 있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신칭의의 믿음(이신칭의 되는데 필요한 믿음)과 율법에 대한 이해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믿음이다. 동시에 두 사람의 믿음과 관련된 설명이다. 단순한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첫째, 두 가지 의미는 먼저 시간적인 연속성을 지닌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의롭다고 함을 얻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혹은 이제 갓 시작한 믿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지속해서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로마서 4장 17~22절로 설명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또 한 가지의 칭의가 되기 위한 믿음은 고난 중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칭의 되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서 나라가 망하고, 모든 동족이 불의를 행하는 중이라도 언제나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또 온 세상이 다 불의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시간이 가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치 않을 뿐만 아니라, 고난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정의롭게 하루하루 삶을 사는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신자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타협 없이 증거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논거에 대해 로마서에 인용이 된 믿음의 표본이 되는 두 인물의 삶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살펴봄으로써 믿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자. 먼저 창세기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창조주가 되시며,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시간이 가도 변치 않고 굳게 믿었다. 인간으로서 실현도 생각도 불가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이 믿음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결국 100세가 되어서 약속의 아들을 받았고 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됨은 물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로마서 4장 17~22절의 말씀이 이를 증거한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즉, 순간 혹은 일시적, 혹은 처음 시작하는 믿음이 아니라 시간이 가도 불가능한 약속을 그리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반드시 믿음이라는 단어 이면에 있는 이런 의미와 배경을 절대로 우리는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순)
그다음에 하박국서의 하박국의 믿음에 대해서 알아보자.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개역 개정에 번역이 되어 있어 의인은 믿음이 있기에 생존한다, 혹은 산다로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하박국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가 2장의 앞과 뒤의 상황을 알아야만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로마서를 정확하게 그리고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는 반드시 하박국서를 펴놓고 찬찬히 본문을 전부 읽어보아야 한다. 다행히 하박국서는 단지 3장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가 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기원전 약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다. 하바국 선지자는 홀로 남은 남 유다마저 많은 선지자의 경고를 외면하고 불의한 길로 행하던 때 남 유다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곧 멸망이 임박한 남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예언자이다. 그는 기원전 약 609년부터 605년까지 예언했다. 남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지만 이미 605년과 598년에 바벨론의 1.2차 침입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남 유다의 마지막 예언자라 할 수가 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 남 유다의 타락상(부패성)은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율법은 사라졌고, 제사장과 고관과 온 백성이 불의를 행하고 있었다. 이럴 때 이런 불의와 맞서서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하박국과 같은 의인들은 더 이상 올바른 생활이 불가하여지자 자신의 동족임에도 이 불의한 참상을 하나님께 고발하였다. 하박국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타락한 백성을 심판하시지 않고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묻는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결코 보시고만 계시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당시에 온 세상을 정복하던 악한 나라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남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대답하신다. 이에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남 유다가 악하다 할지라도 바벨론만큼은 악하지는 않은데 어떻게 더 흉악한 바벨론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하고 다시 하나님께 질문한다.
이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우리가 아는 너무나 유명한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으로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다. 이런 전후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해 보도록 하자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교만한 바벨론을 절대로 좋게 보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벨론 역시 그 악행의 대가로 처참하게 멸망 당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서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대로 멸망 당했다.
본 문장을 보면, 그러한 바벨론은 하나님의 인정도 사랑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의인들은 믿음으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약속을 성취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불의한 동족 남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이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을 또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의인이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불의한 세상을, 비록 그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라 해도 심판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사는 자를 언제나 어디서나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또한 이렇게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종국에는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하박국 2장 4절과 로마서 1장 17절은 이 믿음으로 의인이 산다는 것이다. 산다는 의미는 개역 개정에서 번역된 바와 같이 그런 믿음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생존한다, 살아남는다고 하는 의미도 부분적으로 내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영문의 기록 will live와 같이 그들이 믿음의 삶을 하루하루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박국 당시는 참으로 정직하고 정의로운 자가 자신의 순결을 유지하며 올바로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 되었다.
동족의 불의는 만연하고, 나라는 멸망하게 되고,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과 수탈과 그리고 죽음과 포로가 되는 삶이 연속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6. 그 소리를 듣고 나의 뱃속이 뒤틀립니다.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립니다. 우리를 덮쳐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개역개정, 공동 번역)
하박국의 표현대로 정말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평안하게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이런 환란과 고난 가운데서도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하나님을 믿는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그들을 언제나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절대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다. 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정의롭게, 순결하게 하루하루를 잘 견디며 믿음의 삶을 반드시 살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의 타당한 삶)
이런 믿음을 가지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이다.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누구나 본문을 영문과 다른 한글로 된 여러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쉽게 본래의 이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있게 된다. 이제 변명의 여지도 또 얕은 믿음의 의미도, 온전치 못한 이해로 갈 여유도 모든 이에게 허용이 되지 않는다.
오직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 되는 믿음의 의미는 시간의 연속성을 지닌 한결같은 변치 않는 믿음이라는 사실과, 또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으며, 정의롭게 삶을 사는 행동하는 믿음이라는 사실만이 존재한다. 이를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박국서의 내용이 증명하며 이런 믿음에 대한 의의 인정도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이다. 할렐루야!
이런 내용의 이해를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은 누구를 비판하거나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 부분의 이해에 어떤 분이 잘못이 있다면 누구든지 바로잡기 위함임을 꼭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원하시지 정죄와 처벌을 원하시지 않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칭의 되는 믿음보다 더욱 크고 비교도 할 수 없이 중요한 주제인 율법과 믿음과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법이다 라고 누군가가 선포했다. 또 어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려 법을 주셨다 라고 했다.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말이다.
법을 전공한 법대생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인간 세상 질서의 유지와 공동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법이 존재해야만 됨을 믿는다. 인간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인간의 조직도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 법과 규칙을 제정했다.
공동체를 규율하는 법과 규칙이 없다면, 각자는 마음대로 소견대로 살게 되어 결국은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 것이고 무질서와 혼돈과 그리고 파괴와 죽음만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법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며,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했으니 고대 함무라비 법을 비롯해서 로마법, 고조선의 8조 법금, 그리고 현대의 각국의 헌법과 하위법이 성문화되어 존재한다.
인간의 법인 이들의 법과는 달리 율법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법이 아니다. 천지의 창조주가 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해서 주신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법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의롭고, 모든 구성원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최고 최선의 유일한 법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이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셨다.
신명기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선포하는 이 모든 법만큼 바른 규정과 법규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 또 있겠느냐?
8. And what other nation is so great as to have such righteous decrees and laws as this body of laws I am setting before you today?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느헤미야 9:13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9:13. "You came down on Mount Sinai; you spoke to them from heaven. You gave them regulations and laws that are just and right, and decrees and commands that are good. (개역 개정, NIV)
시편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편 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시편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편 119: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율법의 정신 혹은 성격에 대한 구절, 개역개정, 공동 번역)
왜 율법이 이렇게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고, 질서를 유지해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지상 최고, 최선의 유일한 법인가? 이는 율법 속에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율법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믿음이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으니 누구나 법을 전공하신 분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연구하면 이런 진리를 발견할 수가 있다.
모든 성도도 역시 마찬가지로 조금만 율법의 조문을 주의해서 보면 하나님의 속성들이 율법(모세 오경)에 나타나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시며,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신뢰를 유지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 주신 법이 그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건설할 규정들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근간은 율법이며, 율법이 하나님 나라의 기본법이 됨이 너무나 분명하다. 율법을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 배우고 지킬 것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이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전도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일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시기 위해(구원하시기)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아울러 세상에 계실 때 율법에 대해 어떤 제자도 율법 학자도, 신학자도, 율법에 대해서 왜곡시키지 못하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개역개정, 공동 번역 순)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 이후 즉 사복음서 이후의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편지를 쓴 사도들의 모든 글은 이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에 비추어 말씀의 범위 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역시 그렇게 해석됨이 성경의 질서로서 너무나 타당하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친히 하신 율법에 대한 말씀을 그분의 제자들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께서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
그런데 후대의 신학자가 이를 잘못 해석해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조금이라도 훼손시킨다거나 무시하게 하거나 혹은 어긋나게 한다면 이는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잘못이 절대로 아닐 것이다. 오히려 후대의 신학자나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혹은 설교자들이 서신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칭의에 대한 믿음의 부분도, 로마서를 읽는 사람이 반드시 하박국서를 먼저 읽고 잘 이해한 후에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로마서를 읽기 전에 먼저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6장으로 된 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로 불리우며 로마서의 내용과 같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서보다 먼저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기에 로마서를 읽기 전에 갈라디아서를 반드시 먼저 읽고 이해를 하는 것이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오천만의 로마서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의 로마서 공부의 워밍업란에 있으니 참고를 바라고 새로 정리한 오천만의 성경 정리 제1탄 하박국서 정리, 제2단계 갈라디아서 정리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중요 쟁점이 되는 내용만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제 이런 율법의 이해를 가지고 먼저 갈라디아서를 보고 그다음에 로마서를 읽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라고” 했다.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이제는, 과거의 율법의 시대 즉 이스라엘 홀로 율법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며 살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신 믿음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자각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제는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과거 이스라엘 방법을 접어두고 온 세상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의롭게 되는 길인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인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다. 우선 죄인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다스리신다. 이제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의 할 일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의롭게 되니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다. 딱 이 말씀이다.
이제는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방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믿어야 하는 그 분이 바로 온 세상의 구주 예수님이시니 이제는 예수님을 이방인 유대인 불문하고 믿으라는 말씀이다. 이런 예수님을 여전히 믿지 않으려고 하고, 또 구약의 방법대로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고자 하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존재했기에,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들에 문제를 일으켰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다. 심지어 율법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과거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도 않고 율법을 믿으며 율법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율법을 신자들에게 강요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막고자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편지(갈라디아서)에서 위와 같이 하시는 말씀이다.
따라서 율법도 없이 그냥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우리(예를 들면 한국인과 같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물론 종국에는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임을 믿는다.
이제 우리와 같이 율법이 없이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신자와 당시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과연 행동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물론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 신자 즉 바울 사도와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 교인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신자들의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할 수가 있다. 예수님을 이미 믿고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된 성도의 삶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지금이나 그때나 남아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까지 오직 믿음이다라고 주장할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때 예수님의 사복음서의 율법에 대한 말씀은 가장 먼저 우리의 행위(성령의 인도를 받는)의 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마태복음 5장 17-20 절에서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은 율법의 조문 조문을 잘 지켜야 하고, 더 나아가서 사랑과 정의와 신의에 대한 조항의 이행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율법의 조문 조문의 이행을 하려고 사랑과 정의와 신의의 조항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키고 그렇게 지키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조문이라도 어기거나 어기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세상의 누가 이 예수님의 엄격하신 말씀에 도전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도전하고 율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모든 부분에 있어 율법은 폐지되었다. 혹은 모든 부분에 믿음이면 되니 행위는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율법은 살아있고, 행위의 근거가 되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신약의 성도는 성령을 약속대로 받고 성령의 인도로 혹은 주님과 동행하면서 율법을 완성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성령도 없고(성령세례를 받지 않고), 율법도 없이(율법을 배우지도 실천도 안 하고) 세상 법에 완전히 몰입된 삶을 사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니다. 믿음이냐 혹은 율법의 행위냐를 설명하시는 말씀은 어떻게 불신 이방인과 유대인이 구원받느냐, 의롭게 되느냐의 문제를 논하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결코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의 삶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닌 줄로 우리는 굳게 믿는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나 혹은 의롭게 된 신자들에게(이들이 이방인 신자인지 혹은 유대인 신자인지 불문하고) 너희가 세상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너희의 모든 올바른 삶의 결정에 있어 근거가 되는 성경의 율법을 너희가 배우지 않아도 되고 혹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성경은 절대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너희가 세상에서 사랑하고 정의롭게 사는데 필요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성경 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간절하게 신약의 성도나 구약의 이스라엘이 모세의 율법을 배우고 지키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원하신다. 진실로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의 오심이 모세의 율법을 성도가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 이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이 글의 말미에 틀림없이 증거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아니야 네가 잘못 이해하고 있어" 라며 반박할 믿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굳게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예수님을 모든 인류가 믿고 서로 사랑하고 세상에서 정의롭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있다.
그리고 성도의 율법의 준수의 문제에서 모든 율법을 문자적으로 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항 중에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성취하신 제사나 제물, 제사장에 관한 규정, 성막에 관한 규정 등은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의와 자비와 신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어떤 조항을 행할 때 각각의 상황에서 문자적 이행이 아니라 문자를 넘어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예수님 말씀 마태 23:23).
그리고 신약의 모든 성도는 반드시 율법을 하나님 나라의 기본법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어려서부터 배워야 하고 부모는 자기 자녀를 가르쳐야 하고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과 행위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또 주님과 동행하면 성령께서 그리고 주께서 우리의 모든 행동을 율법의 요구를 수행하고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이 분명하다.
절대로 성령께서 혹은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이 율법을 어기면서 이 세상에서 살도록 하시지 않을 것이다. 즉 그분들께서 율법의 내용과 위반되는 방향으로 성도를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마태복음 5장 17-20 절의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 어찌 성도를 율법의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시겠는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다만 성도가 율법과 다르게 불의를 행하며 사는 것은 성령도 무시하고 주님의 뜻도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사사로이 행하며 사는 것이 될 것이다.
성경 말씀, 성령님, 예수님은 모두 일치되어 있고 율법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 말씀은 어긋남이 없고, 모세 오경의 율법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니 성령님의 감동이나 인도와 틀림없이 일치함이 분명하다.
일천만의 성도가 있기에 모든 한국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바로 잡아서 정의롭고 공평하며 살기에 행복한 세상을 틀림없이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된 한국에서 너무나 많은 백성이 참고 더 이상 살기에 힘든 불의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율법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이를 누구나 반박할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를 성경적으로 제시한다.
한국의 모든 심각한 문제는 집 문제 땅 문제에서 비롯된다. 나라를 망치는 빈부의 격차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좁은 땅에서 집도 부족한 상태에서 집과 땅을 인간의 죄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아니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마음대로 가지도록 한 지금의 헌법하에, 사람이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불평등과 불의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안 사람은 별로 없었고, 모두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취해 있다. 그리고 율법의 중요성과 필수성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가르치는 이는 별로 없다. 이로 인해서 이 율법(모세 오경의 율법)이 모든 일천만 성도가 국법에 앞서서 배우고 지켜야 할 천국 백성의 유일한 법임도 알지 못하고, 오늘도 수많은 신자가 세상의 법을 따라서 죄악의 길로 가고 있다. 물론 많은 세상의 법이 건전하고 질서를 세우며 사람들이 평안하게 사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만든 법으로 하나님의 법과 달리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거나 정의롭지는 절대로 아니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집값과 땅값이 더욱더 상승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한국의 근로자 중에서 하루에 일당이 15만 원인 근로자가 같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자. 자신의 소유의 집과 땅이 없는 근로자는 하루에 15만 원 버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에 집과 땅을 가진 사람은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지방에 집과 땅을 가진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와 그 이전의 정부도 역시 집값이 오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함에도 최근의 예를 보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5년 동안에 8억이 올랐다고 하면 일 년에 약 1억 6천만 원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매일 매일로 계산하면 하루에 약 45만 원씩 올라서 그 아파트를 가진 사람의 수입이 매일 그렇게 느는 것이 된다. 그는 일당도 15만 원씩 매일 벌고 또 이와는 별도로 집을 통해서 매일 그렇게 버는 셈이 된다. 국민의 48%는 집이 없으니 일하는 날 일당 15만 원이 전부이나 서울 경기에 아파트나 집이 있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날을 포함해서 매일 집값 상승분 45만 원에 플러스 일을 하는 날 15만 원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토의 가용국토 100% 중에서 국민의 약 30%만 그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국민의 약 70%는 자신 소유의 땅이 한 평도 없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그래서 땅이 있는 30%의 사람들은 또 집값 상승과 별도로 땅값이 오름에 따라 땅이 없는 백성 70%와 달리 땅값 상승으로 인한 수입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틀림없는 한국의 현실은 헌법에 보장된 모든 국민의 권리 즉 자유권, 행복 추구권, 평등권, 재산권 보장, 교육에 대한 권리, 참정권, 생명의 존엄 등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헌법을 유명무실(이름은 있으나 실익이 없는 상태를 설명함)하게 하는 망국적인 현실이다.
아무런 노동도, 노력도 없이 자고 나면 수입이 느는 정의와 공평의 관점에서 너무나 불의하며 불공평한 일이 발생한 것으로서 나라의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는 타락(죄로 인한 낭패)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누가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이런 불의와 불공정을 지적하고 바로 잡겠는가? 집을 가졌거나 땅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집이 있고 땅이 있는 국민의 52%는 매일 매일 이를 계산하며 춤을 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오른 집값과 땅값으로 무엇을 하지 어떻게 돈을 쓸까에 골몰할 것이다. 그러나 집이 없는 국민의 48%는 그리고 땅이 한 평도 없는 국민의 70%는 한숨과 탄식과 그리고 삶에 대한 체념과 포기가 그들의 일상이 될 것이다. 이들 중에서 너무나 살기가 힘이 들고 주변의 사람이 보기가 싫어서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하루에 40명이 넘는다. 그 나라가 우리가 사는 한국이다.
이 일을 바로잡는 일을 모든 믿는 이들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사명이다.
그리고 이런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율법(모세 오경의 법)의 건재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세상의 밑바닥에서 살면서 많은 불의를 경험하고 때론 실망하고 때론 격분하였다. 어디에 호소도 못하고 권력과 강자에게 당하면서 기댈 곳 없는 소망 없는 존재와 같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 오경의 율법에 주목하게 되고 큰 빛과 소망을 보게 되었다. 모세 오경의 율법 속에 진정한 정의와 평등이 있고 이 법이 세상에서 지켜지게 되면 모든 인간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됨을 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안도하였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실로 40년의 고통스러운 삶이 주님으로 인해서 보람되고 축복이며, 반드시 견디어 내어야 하는 삶임을 보았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런 한국의 망국적인 문제를 고칠 유일하며, 정의롭고 공평한 지상 최고 최선의 법이 모세의 율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이 법은 전세계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방해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말씀의 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법이며, 특별히 온 세계의 믿는 모든 사람의 국법이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심판의 기준이 되는 준엄한 법이 바로 모세 오경의 율법이다. 그리고 인간 누구도 일점일획도 침범할 수 없고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이 사라진다 해도 온전히 그대로 존재하는 엄위한 법이다. 이런 위대한 율법이 있으므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늘 율법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제 이 율법에서 어떻게 집 문제와 땅 문제를 말씀하시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제 이 율법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우선 땅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그 소유자가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
창세기 1장 1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늘들과 지구)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그리고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사고파는 것이 제한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2)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3 No land may be permanently bought or sold. It all belongs to me--it isn't your land, and you only live there for a little while.
진실로 하늘과 지구는 하나님께서 무에서 창조하셔서 존재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부동산 즉 토지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며 사고파는 것이 제한이 됨을 밝히고 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이 잠시 이 땅에 살다가 가는 나그네 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각의 나라의 경계를 분명하게 정해 주셨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고 다른 민족의 예도 보겠다.
시편 74:17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출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민 34:3-11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행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1)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6 From one person God made all nations who live on earth, and he decided when and where every nation would be.
27 God has done all this, so that we will look for him and reach out and find him. He isn't far from any of us,
신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8 that God Most High gave land to every nation. He assigned a guardian angel to each of them,
이렇게 하나님께서 민족과 나라의 경계를 정했다고 함은 어떤 국가 강해지더라고 함부로 국경을 넓히기 위해서, 혹은 주변의 약한 나라를 침범하고 수탈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국경을 범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영웅은 어떤 국가의 영웅은 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그 나라를 강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칭기즈칸, 진시황, 광개토 대왕, 김유신 장군, 그리고 알렉산더, 시저 등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이들이 절대로 영웅이 될 사람들이 아님을 보게 된다. 성경에서 타국을 함부로 범하고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간 나라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심을 보았다. 반드시 그런 나라들은 망하거나 쇠약해진다는 것인데 이런 사실이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맞음을 우리는 본다. 만약에 이 시대에 중국이 강해져서 주변국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괴롭히면 틀림없이 중국도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받을 것을 믿는다. 이 복음을 중국에 전해야 한다.
그리고 정해 준 경계를 함부로 옮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신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29: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당연히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스라엘에 사는 개인은 국가의 국경이나 개인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해 준 대로 반드시 지키면서 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사장 지금의 목사는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였다.
18: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목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1 The people of the Levi tribe, including the priests, will not receive any land. Instead, they will receive part of the sacrifices that are offered to the LORD,
한글 번역은 분깃이라고 해서 애매하나 영어는 land 즉 땅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땅을 가진 목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 땅을 가지고 계시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온 백성이 12지파로 이루어져 있다. 12지파가 다 모이면 이스라엘 민족의 구성원 전부가 모이는 것이다. 이들에게 당시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이 땅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나누어 주었다. 이들도 역시 이 경계를 반드시 지키면서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엔 국가의 경계가 있고, 그리고 모든 사는 부족의 경계가 또 정해졌다. 이스라엘이 힘이 강성해져도 다른 나라를 침범해서 국토를 넓혀도 아니 되고, 그리고 국민도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정해진 지역에서 오직 (죽으나 사나)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와 경제력을 지녔지만 왕과 국민은 하나님께서 정해 준 국경을 지켰다. 그리고 판 토지는 언제든지 되물을 수가 있고, 50년 즉 희년이 되면 토지를 본래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만 했다. 이제 우리나라와 같이 땅과 집을 주변의 이웃을 무시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이사야서에 있는데 우리에게도 틀림 없이 적용이 되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말씀은 아무리 인간이 무시하고자 해도 무시할 수가 없이 틀림없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런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사람들에 대한 징계에 대한 말씀이다.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개역 개정)
8.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9.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10.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공동번역)
이 경고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이 되었다. 불의한 이스라엘(남 유다가 망함)이 망하고 당시의 고관대작과 제사장과 왕족들은(당시의 왕은 시드기야)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고, 그리고 그들이 소유했던 집과 땅은 빈민들의 소유가 되었다.
렘 39: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정말로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토지 조사사업을 시행했다. 왕비인 민비를 시해하고 왕을 폐하고 왕자들을 일본으로 잡아갔다. 이전의 국토의 왕토 사상으로 글도 모르는 백성이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는데 이 사업으로 개인의 토지 소유에 대해서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60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이씨 왕조가 해체가 되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고, 그리고 한국의 토지는 토지조사사업으로 개인이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는 왕족과 양반, 그리고 중인과 백성, 그리고 천민과 노비의 신분제도가 너무나 엄격했고, 조선 시대의 노비는 우리가 아는 흑인 노예 못지 않게 인권의 침해를 당하며 살고 있었다. 이 수백 수천 년의 못된 폐습에 도전을 한 천주교의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평등하다는 가르침과 양반과 종이 형제로 되는 사상은 왕과 왕족 그리고 양반에겐 비수와 같고 독과 같았다. 그래서 그들이 100년 동안 천주교를 믿는 성도 약 1만 명 이상을 목을 치고, 너무나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죽였다. 그리고 이런 일을 자행한 왕과 왕족 그리고 양반이 있는 조선이 일본의 침략으로 망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 모두가 부동산 광풍에 싸여 있다 해도, 일천만 성도는 절대로 이에 기웃거리지도 보지도 따르지도 말아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율법(모세의 법)의 규정을 지키며, 세상이 이렇게 망하는 쪽으로 가는 길에서 멀어져야만 할 것이다. 먼저 한국의 땅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율법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즉 이웃에게 해가 되는 집과 땅의 소유를 우리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어린아이도, 좁은 한국에서 오천만이 살고 있는데 누군가가 땅을 많이 가지고 집을 여러 채 가지면, 땅과 집을 갖지 못하는 이웃이 발생함을 알 수가 있다. 집과 땅이 없는 국민은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기가 어렵다. 결혼도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평안한 삶을 절대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절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모세 오경의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의 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이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율법이 해이 해지고, 불의가 만연하면 반드시 정의롭게 사는 자의 탄식이 있고 이런 불의한 세상에서 더 이상 소망을 품지 못한 자들의 이상행동(자살, 흉악한 살인, 폭동, 반란 등)이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민족이나 국가 혹은 집단을 망하게 하시는 것이 진리이다. 이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법이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고치지 않고 방관하면 반드시 북한의 핵에 의해, 혹은 동쪽과 남쪽의 지진에 의해, 혹은 강대국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피해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상에서 불의한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율법을 배우고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조문 조문 잘 지키고 또 정의와 자비(사랑 혹은 긍휼), 신(믿음)에 관련된 더 중요한 내용도 잘 지키라고 하셨고, 율법을 등한시하는 자는 이 땅에서 비록 어떤 삶을 살았던지(큰 교회 목사, 큰 부자, 혹은 큰 장로, 큰 신자 등등) 천국에서는 결코 큰 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이니 그대로 될 것이다.
한국의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지키며 국민의 행복과 평안을 얻는 길이 모든 성도가 율법(모세의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는 일에 달려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국가나 집단이나 민족이 복을 받고 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모든 성도보다 한국의 성도가 앞서고 한국의 교회가 앞장을 서서,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나라,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믿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님의 인정을 받고, 또 보호를 받는 나라가 되길 소망한다. 이에 대해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분은 오천만의 로마서에 있는 로마서 공부 워밍업 부분의 하박국서 정리와 갈라디아서 정리를 참고하길 바란다.
이때까지의 논의를 요약한다.
믿음의 문제는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이해한다. 아브라함은 시간적으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의롭다 인정받았고, 하박국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하나님께서 불의한 동족 이스라엘을 바벨론을 사용해서 멸망시킨다는 믿음, 바벨론도 역시 심판을 받는 믿음, 정의롭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호한다는 믿음) 정의롭게 삶을 사는 믿음의 소유자를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설명함을 보았다. 이 둘 모두(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믿음과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를 지닌 사람의 믿음이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이다. 구약의 예
신약에 와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는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도 주시고 발걸음도 인도를 하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심으로 이렇게 하시는 것이다. 주와 동행이라는 표현도 맞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구약시대의 믿음을 현대 여기에 그대로 대입하면 신약의 성도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 생활을 시간이 가도 언제나 변치 않고 해야 할 것이다. 또 하박국서와 같은 고난이 온다 해도 변치 말고 하나님(하나님께서 불의를 척결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을 믿고 정의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에 대한 인도도 틀림없이 이렇게 인도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하루하루 믿음 생활을 하는 중에 율법을 무시하고 율법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늘 사랑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도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늘 주와 동행하게 되고 또 율법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우리의 선택이나 행위가 올바른 것인지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율법과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반드시 율법의 규정을 보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온 감동이 율법(모세 오경)적으로 올바른지 역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잘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어느 때 적절한 시간에 의롭다 인정을 하실 것이다.
이것이 신약의 로마서의 이신 칭의이다.
우리는 이신칭의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과 구원을 받은 후 혹은 성령 선물 혹은 성령의 인치심 후 혹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의 어느 적절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믿음(변치 않는 믿음 생활과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을 보시면서, 그를 의롭다 인정을 하시는 것" 으로 이해한다.
이런 이해는 언제 내가 의롭게 되지? 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바울과 같이 예수님 만남, 회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 죄 사함, 성령 선물, 성령의 인치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기에 시간적인 측면에도 별 문제가 없다.
아울러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세상은 갈수록 불의해지고 사랑은 식고 믿음은 찾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고 또 속히 오시길 기도한다. 주께서 오시면 모든 불의는 제거되고 심판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상과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말세에 하박국이 가졌던 그 믿음을 가지고 이 말세를 정의롭게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취하지도, 세상의 급변에 취하지도 말고 오직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복음을 전하며 선한 삶과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자리에서 모든 이렇게 살고자 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늘 위로하고 격려하실 것이다. 정의롭게 사는 기준은 언제나 구약의 율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정의롭게 사는 모든 성도여! 힘을 내자!!! 주님의 나라는 이렇게 사는 성도들이 서로 하나가 될 때 더욱 견고(강력)해질 것이 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나라는 확장이 될 것이다.
율법의 문제는 반드시 율법을 모든 성도가 잘 배우고 지키는 쪽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이다. 어떤 신학적인 주장이 있다 해도 성도들은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율법을 멀리하거나 혹은 등한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나라를 살리고 교회를 세우고 나와 내 자녀가 이 땅에서 정의롭게 평안하게 행복하게 사는 길은 오직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는 일에 달렸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그리고 성령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하셨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함께 율법의 일점 일획도 잘 지키게 하셨다. 사랑의 구제적인 실천이 율법에 있고 정의의 구체적인 실천도 역시 율법에 잘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성도가 세상에서 이렇게 살게 되면 이런 성도가 사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율법이 완성될 것이다.
정의와 공평이 있고 질서가 유지되며 모든 구성원이 서로 믿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부름을 받고 구원받고, 그리고 사역하고 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위의 내용과 함께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율법 완성의 내용을 무엇인지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동물과 식물의 피 흘리는 제사 없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바로 기도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때 늘 주님과 보혈과 대속의 은총을 먼저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는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이 행하던 하나님을 뵈옵기 위한 율법과 절차를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레위기를 통해서 볼 수가 있는데 여러 가지가 있고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키우던 흠 없는 짐승을 성전에 가져가서 죽여서 피를 흘리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쳤다. 그다음에 비로소 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 역할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셨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할 수가 있을까? 신자들이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이루셨다하고는 이제는 율법에 대한 관심도 공부도 지킴도 없다면, 어떻게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 할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으며 친히 피를 흘리시고 제물이 되셔서 이룬 부분에 대한 율법의 완성에 대해서 우선 깊이 이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율법을 지킬 필요를 너무나 큰 희생으로 줄여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더 힘을 내어서 헌신해야 한다. 남은 모든 율법이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고 선하게 살아야만 되는 의무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율법이 아니고 행위도 아니고 오직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율법은 폐지가 되었다고 가르쳐서 이 세상에 살면서 율법을 지킬 마음조차 갖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또 사랑도 실천하지 못하게 그 삶에서 구체적인 율법의 조건(조항)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만약에 현실이 이렇다면 성도가 세상에서 어찌 법(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모세 오경의 법)대로 사랑하며 정의롭게 살 수가 있겠는가?
또한 성령에 대한 왜곡으로 성령을 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오직 믿음만 외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믿음 하나로 모든 신앙적인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하면서 모든 성도를 세상의 법만 죽도록 배우고 또 추종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모든 율법(모세의 율법)을 지키게도, 완성하게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로 인해서 법도 사랑도 없이 자신의 소견대로 마음대로 세상에서 사는 크리스천이 가득하지는 않는가? 만약에 진실로 교회가 이렇게 성도를 가르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현실의 상황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지 때가 되면 틀림없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말씀을 사랑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율법을 사랑하고 배우고 지키는 것이다. 이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를 예수님께서 친히 어떤 부분에 대해선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이를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구약의 제사제도) 이제 짐이 너무나도 가벼워진 성도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또 선을 행함으로 남은 모든 율법을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통치는 법의 통치였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 통치의 근거는 무엇인가? 사랑하면 된다!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된다! 틀림없이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또 혹자는 주님과 동행하면 된다고 할 것이다. 이도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성도가 이렇게 살면 모든 율법이 자동으로 완성되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 틀림없는 답이다.
이제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혹은 성령의 인도가 맞는가? 혹은 주님의 동행이 확실한가를 살피려면, 우리는 먼저 나의 어두운 세상 길의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시는 말씀 즉 율법의 규정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올바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암을 진단받아 수술을 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의대에서 잘 배우고 의사로서 암 환자 수술의 경험이 있는 의사에게 수술받는 것과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일반인에게 암을 수술받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너무나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과 자기 가족이 암에 걸렸다. 이제 수술만이 사는 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수술 절차에 대해서 잘 아는 경험이 있는 의사에게 당신과 가족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수술만 하면 되니 수술의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는 일반인에게 수술을 맡길 것인가? 100% 모든 사람은 수술 경험과 지식이 있는 의사에게 자신과 가족을 맡길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면서 우리의 성도를 세상에 내어 보내는 우리 목사들은 어떤가? 그들이 사랑할 대상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율법을 우리 교회는 가르치고는 있는가? 심지어 우리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도록 ‘믿기만 하면 돼, 율법은 폐지가 된 것이야’ 라고 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성도들이 온 세상에서 사랑의 대상인 세상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대하게 가르치는 것이 정신이 올바른 목사들이 할 일인지 반드시 우리는 잘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 생명을 다룰 의과대학생에게 수술(자세한 절차, 방법, 교육과 실습)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서, 가서 수술만 잘하면 된다 하고서 세상에 내보내서 환자를 수술하게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의 육체의 생명은 겨우 100년만 살지만, 영혼의 문제는 영원한 시간의 삶의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목사와 교사는 성도가 세상에서 정말로 법(모세 율법)대로 사랑하고 법대로 믿고 법대로 행하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법이 바로 모세의 율법이며 예수님께서 반드시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한다고 하신 법이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가르치는 분들이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반드시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정의를 행해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가르쳐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성도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우리에게 물을 때 우리가 그들에게 ‘기도하고 하세요’라고 하면 부족하다. 그렇게만 하고서 성도를 세상에 내 보내서는 아니된다. 우리가 먼저 모세의 율법을 잘 배우고 이들을 잘 가르쳐야 할 줄로 굳게 믿는다. 우리는 모든 성도가 세상에서 하루 하루, 순간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쪽으로 행하도록 반드시 지도해야 될 것이다.
진실로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목자 한 분 한 분이 대형병원의 병원장보다 의과대학의 교수보다 비교가 할 수 없이 중하고 귀하다. 그리고 성도 한 분 한 분이,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고 전문의가 된 육체의 질병의 치료자 보다, 역시 더 중하고 귀하다. 이들 모두가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새 생명을 얻고 마음에 예수님을 품고 이 세상에 빛이며 소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 보이는 이들이라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에 불과한 속된 인간을, 구원할 복음의 일꾼이기 때문이다. 죽은 인간에게 예수님을 전해서 새 생명을 주며 영원한 삶을 선물하는 이들과 어찌 100년의 삶의 문제를 치유하는 의사들과 비교조차 할 수가 있겠는가? 영생을 얻고 누리는 자여! 세상에 속지도 말고 현혹되지도 말라. 그대는 온 천지 만물이 부러워하는 천국 백성이니라.
율법의 완성은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이루어진다. 신약의 성도는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잘 받으면, 역시 사랑이 완성되고 율법이 완성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인 복음을 전하게 한다. 그리고 성도를 선하게 살게 인도하신다. 그리고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과 성령의 인도에 대해 정확하게 분별하는 모세 오경의 율법이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가 율법을 잘 배우며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도가 율법을 잘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을 보내시고 모든 인류가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으니 성령께서 죄의 용서가 있는 사람에게 임하신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성령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부드럽게 하신다. 이렇게 율법의 완성이 신약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의 근간은 율법(모세의 법)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법치이다. 이 나라는 모든 성도가 율법을 잘 배우고 반드시 모든 행위에 있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 인도가 온전한지 반드시 성도가 율법에 비추어 보고 행동해야 되는 나라이다. 율법(모세의 법)이 온 세상에 잘 알려지고 모두가 율법을 잘 지켜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우리는 간절히 소망한다.
덧붙이는 간증
하나님께서 1986년경 김성수 장로님께서 주신 성경책을 통해서 나를 찾아오셨다. 불교에 심취해 법정 스님과 승철에 푹 빠져서 살던 나에게 갑자기 하나님께서 오셔서 성경을 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주시기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나에게 전도자가 준 성경책이 보였다. 이 책을 펼쳤는데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한 말씀이 나의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서 들어왔다. 스스로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굳게 믿던 나의 진정한 모습이 성경에 의해서 거울을 보듯이 낱낱이 드러났다. 어느 곳 하나 좋은 모습이 없는 완벽한 죄인으로 흉악한 인간인 나의 본 모습이 드러나자 나는 바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과거의 나의 모습대로 절대로 살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강하게 나의 잘못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다. 지금까지 마음대로 살다가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5년을 그렇게 하고 나는 1991년 5월 19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992년 어느 이른 겨울날 서울의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환상으로 오셨다.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내 가슴에 뿜어 주셨다. 작은 촛불과 같은 불꽃이 내 가슴에 몇 개가 보였다 흑백의 예수님의 모습이셨는데 불의 색은 틀림없이 빨간색의 칼라였다. 내 손에 땀이 나고 내가 아픈 믿는 분을 만지면 그가 나으리라는 믿음도 함께 왔다. 3일을 행정고시 공부도 잊고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이 보내고 또 일상의 생활로 돌아왔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기적들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다양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을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치셨다. 방언이 통변이 되고 쉬지 않고 전도가 일어나며, 성경의 이해가 쉽게 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일이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돌과 같은 내 마음이 역시 성령을 받을 때 녹아졌다.
1983년 은행에서 나온 지 40년 그리고 성령을 받은 후 약 30년 너무나 세상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 전처는 소리 없이 집을 나갔고 나는 4년을 불면과 우울의 체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재혼해서 아들을 낳고 회복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와 세상의 밑바닥에서의 삶은 험악했다. 대학원을 두 곳 졸업한 사람이 성령을 받고 정의롭게 살며 복음을 전하는데 세상은 참으로 불의하며 소망이 없이 보였다. 이때 성경의 율법을 보게 되고 너무나 반가웠고 비로소 안도하게 되었다. 이 불의한 세상을 고칠 유일하고 최고 최선의 법을 만났기에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큰 희망이 타올랐다. 성경의 정리와, 전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나의 성경의 이해를 크게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성경의 진리를 깨닫는 너무나 큰 기쁨을 쉬지 않고 주셨다. 그리고 쉬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시며 나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나는 때론 심각한 죄를 짓기도 하고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하고 나를 품어주셨다. 그리고 미군 부대에 2015년부터 김현철 전 대령의 배려로 근무하게 되어 영어를 공부하며 성경을 영어로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책을 약 10권 즉 전도, 교회 성장, 성경 전체 정리, 로마서의 이해, 깨달음의 글, 한국 교회의 성장과 미래 등으로 정리했다. 이를 영어로 번역해서 하바드, 예일, 옥스퍼드, 그리고 프린스턴의 신학교 교수에게 보내게 되었다(제목 서울 보고서). 이 내용을 오천만의 로마서란 제목으로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조금씩 2018년부터 올렸다. 그랬더니 100개국에서 30만 명 정도가 보았다. 이런 하나님께서 큰 죄인에게 베푸신 큰 은혜를 요약해서 온 세상에 위와 같이 전한다.
흉악한 소망 없는 나같은 죄인에게 일어난 일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일과 너무나 일치했다. 내가 전도를 하고 신학대학원 논문을 쓰면서(2010년 경)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성령을 받고서(1992년) 십 년이 훨씬 더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모두가 경험해야 되는 그 구절을 전한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에 기록된 일들을 지금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큰 소망을 발견하고 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역시 에스겔서의 말씀으로 위의 저의 모든 주장이 하나님의뜻과 완벽하게 일치함을 알게 해 주셨다. 모든 일이 시간이 가면서 순서에 따라 일어나고 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건설이 될 것이고 율법의 완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완성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의 나라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가이다. 에스겔의 내용을 보자.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이나 신약의 성도가 율법을 잘 지키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이 잘 지키지 않자 멸망했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세상의 모든 죄인의 죄를 용서받을 길을 십자가와 피 흘림과 죽으심을 통해서 열어놓으셨다. 이는 당신과 나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게 되면 성령께서 선물로 누구에게나 오신다. 이렇게 된 성도는 마음이 부드럽게 된다. 그래서 율법을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잘 지키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율법이 지켜지고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된다. 이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신다. 자신의 독생자를 당신을 위해서 내어 주실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 사랑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이 보장된다. 모두가 용기를 내자!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위로와 평안이 임하길 기도한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세세토록 영광을 받을지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