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업이 아니였다면 저는 오라리, 노근리, 빈호아, 미라이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적었냐면 "저는 당장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그런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우연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우연히 자계에 들어와서 이번 작품을 하게 됐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우연히 우리나라의 숨겨진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라고 써야하는게 좀 더 맞지 않나 싶은데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저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이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어떤 배우이고 어떠한 예술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사건인지 알게된 날은 레지던시 둘째날로 기억합니다.
그때 '악의 평범성' 이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평소에 제가 이따금 생각하던 내용이라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레지던시 주제작에 참여한다면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좀 더 깊게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일단 '악의 평범성' 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나왔으며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즉 자기 자신은 그냥 보통의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역사 속 악행을 저지른다 라는 말이네요.
저는 이런 상황을 자주 목격하고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직장 상사가 3만원짜리 목공페인트? 6통을 횡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저 사람이랑은 친하게 지내지 말자라는 포지션 뿐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방관도 악이라 하면 악이겠지요?
위 글에서는 보통의 사람은 '저'였고요 악을 저지른 행위도 접니다.
저는 그런 악행을 방관하는데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제 결정에는 답이 있었습니다.
저는 방관하기로 애초에 마음을 먹었었지요.
어쨌든 이러한 사소한것부터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까지.. 수많은 악행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라고 말하면 악에 대한 합리화지만-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나도 쉽게 다가오는데요.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그러한 '악'에 대해 깨우는 것 뿐만 아니라
깨어 있는대로 행해야 하는 것일텐데..
행하지 않고 깨어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깨어 있지 않은 사람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런데...더욱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이런 악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느냐 이거 아닐까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제 눈앞에 엄청난 이익이나 목숨을 걸고 악의 행위를 거부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 작품을 마칠 때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한 점 없는 삶을 살아갈 있는 그런 저를 희망합니다만
너무 불편하고 힘들 것 같아서.. 벌써부터 거부감이 드네요.
이 페이지는 글을 쓰면서 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답하면서 답을 찾아보는 시간이였습니다.
오늘 노근리, 오라리 사건에 대해 정리하기로 했는데요 정리를 못한 것 같습니다.
내일은 노근리 사건에만 집중해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순하다', '착하다' 이러한 말들을 많이 들으며 살았는데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거부감이 온몸으로 듭니다.
저는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 악해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물론 상황을 맞이해봐야겠지요.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