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진 시인의 사진 속에는 그리움이 있다
그리움의 집과 하늘과, 그리움의 나무와 사람이 있다
잃어버린 고향의 들길로 이끄는 그녀의 손은
누님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하고 보리밭 길을
걷는 맑은 소녀의 손 같기도 하다
사람은 고향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장 큰 선물은 서로의 고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옥진 시인의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걸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정호승 (시인)


새벽의 여정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새벽의 여명에 기대어
밤을 지새어야 한다는 것을
애초에 꿈은
기다림이란
허상이었다는 것을
새벽의 여명
그러나 아침은 새로운 시작이다


봄철에 뿌린 한 톨의 씨앗
바람이 그들에게 불어닥쳐도
이윽고 많은 씨앗들을 키운
한 톨의 쌀알이라도
[작가의 말]
세상의 모든 존재는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과도 같다
우주의 모든 사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해 가고 있고
우리는 각자의 우주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영원하고 지속성 있는 가치에 대한 애착
나는 카메라를 메고
삶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농촌을 찾아다녔다
영원한 그 무엇에 바쳐지던 꿈
영원의 심연 속에 흡수되지 않는 순간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키고
과거와 현재를 조용히 잇고 있다
영원이란, 변모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지금의 나로서는
내 순수의 시대를 다시 사랑해 본다
삼십 년 가까이 지난 사진을 보며
우리들이 머무를 수 없는 시간과
소중한 우리들의 지나간
시간 그리고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럽게 읽어 본다
먼 훗날에도 삶은 그러하리라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 2002, 눈빛)
이옥진의 포토 포엠. '그곳에 내 집이 있었네'는
시인 이옥진의 글과 사진으로 엮은 포토 포엠이다.
이옥진이 포토 포엠은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카메라 앵글과 맞닿아 있다.
그 앵글은 옛 풍경의 공간들을 숨김없이 넘나든다.
어머니와 아이가 뒷등을 보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들길 옆에
산문 2행은 이렇게 씌어 있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한가로웠고 등이 따뜻했네.
" 나무에 기대 서 있는 소년 모습은
"기다림이 이토록 평생 이어질 줄 몰랐었다"고
화자는 소년으로 변신한다.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와 말린 고추 앞에서
잠깬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숨바꼭질하는 담장 앞에 멍멍이가 정답다.
이옥진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이화여자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현대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새들은 풀잎색 빛소리를 듣는다 ( 1995년, 둥지)
절벽위의 붉은 흙 ( 2002년, 문학수첩)
포토포엠
그곳에 내집이 있었네 ( 2002, 눈빛)
불문율의 숲에 몸을 누이다 ( 2015, 눈빛)
따뜻한 고요( 2018, 눈빛)
첫댓글 흑백사진이 주는 편안함과 정겨움에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