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이 되어보니
칠십이 되면 새상 욕심
다 내려놓고 유유자적하며. 살줄 알았다
젊을 적에는 칠십이 되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살아갈 줄 알았다.
새벽마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 비위 맞추며 속 끓이지 않아도 되고,
한가롭게 책장을 넘기고 음악이나 들으며
남은 생을 잔잔히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생활은 더 팍팍하고,
경제는 늘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들고,
그동안 뭘 했나 싶기도하고
시간은 남아도는 듯 보이나
막상 마음은 하루 종일 쫓긴다.
친구들은 하나둘 병원 소식으로 들려오고,
어떤 이는 부고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다.
명절이면
시끌벅적하던 집안도
이제는 자식들 각자의 생계와 삶으로 흩어져
부모 곁은 점점 조용해진다.허전하기만 하다
괜히 내게 미안해진다.
“조금 더 해줄 걸.”
“조금 더 벌어둘 걸.”
“조금 더 건강했으면 좋았을 걸.”
젊을 때는 미래가 두려웠는데
늙어서는 지나온 시간이 자꾸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생은 참 이상하다.
가질 때는 모자라고,
지나고 나면 아쉽다.
그렇다면 이런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남과 비교하는 삶에서 조용히 내려오는 일’인지 모른다.
젊을 때는 비교가 생존이었다.
누가 더 잘사는지,
누가 더 성공했는지,
자식이 어디 다니는지,
집은 얼마나 넓은지.
하지만 칠십이 넘어가면
그 경쟁은 대부분 의미를 잃는다.
인생 끝자락에 와서 남는 것은
통장 잔액보다
오늘 밤 편히 잠드는 마음 하나이기 때문이다.
옛 현자들도 결국 같은 말을 남겼다.
중국의 노자는
“억지로 움켜쥐려 할수록 삶은 새어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늙음을 패배가 아니라
흐름에 몸을 맡기는 시기라고 보았다.
공자는 칠십에 이르러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고 했다.
젊을 때처럼 욕망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수많은 후회와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또 불가에서는
인생의 괴로움은 대부분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온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식은 내 마음처럼 안 되고,
몸도 내 뜻처럼 안 움직이고,
세상도 점점 낯설어진다.
그런데도 자꾸 예전의 기준으로
현재를 재단하려 하니 괴로운 것이다.
칠십 이후의 삶은
무언가를 더 이루는 시기가 아니라
덜어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사람도 덜어내고,
욕심도 덜어내고,
후회도 조금씩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가벼워진다.
젊을 때는
무엇을 더 채워야 행복할까 고민했지만,
늙어서는
무엇을 비워야 편안한가를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아침 햇살이 따뜻한 날,
커피 한 잔 천천히 마실 수 있는 여유,
몸은 불편해도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
전화 한 통 걸어올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와 밥 한 끼 나눌 수 있다는 것.
젊을 때는 이런 것들이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늙어보니
인생은 결국 그런 작은 것들로 버텨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너무 죄인처럼 여기지 않는 일이다.
자식들에게 완벽한 부모였던 사람은 없다.
부모도 처음 살아본 인생이었고
처음 맡아본 역할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 시절대로 최선을 다하며 버텨온 것이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무지하면 무지한 대로,
아픈 몸이면 아픈 몸으로.
지금 와서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평생 자신을 심판하며 살 필요는 없다.
칠십 이후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을 이기는 힘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힘이다.
“나는 참 애쓰며 살아왔구나.”
그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끝까지 완벽해지지 않는다.
준비가 다 끝난 뒤에 노년이 오는 것도 아니다.
다들 부족한 채로 늙어간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오늘 하루 밥 잘 먹고,
몸 조금 움직이고,
마음 상할 일 줄이며,
누군가 원망하는 마음 덜어내고,
해 지는 하늘 한번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또한 괜찮은 하루다.
칠십의 삶은
화려하진 않아도 된다.
다만 지나온 세월을 너무 미워하지 않고,
다가올 시간을 너무 겁내지 않으며,
조용히 자기 속도로 걸어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늙음을 통과한 옛 현자들이 끝내
도달했던
가장 담담한 지혜였는지도 모른다.
석양을빨갛게 달구며
넘어가는 봄의 저녘놀 을
바라보며 따듯한 차한잔 마시면서
엄벙덤벙
살아온 옛이야기 나눌
지기가 있다면 오늘은
잘 보낸 하루로 행복의
웃음을 웃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