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축은 관광객이 많은 곳이지만 인구 약 2만 5천의 작은도시다
고대 로마 유적지 에페스(에베소)는 셀축에 있지요.
지금은 기둥 하다만 덜렁 남아 있지만 고대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번영을 자랑한 고대도시 에페스,
아직도 완벽히 복구되진 않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도시의 장대함에 또한번 감탄합니다
터키에는 고대로마 유적지가 많지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2000년 이전의 화려했던 에페스의 숨결을 되집어 봅니다
출입구는 남쪽과 북쪽이 있는데 우리는 북쪽에서 들어가 남쪽으로 나옵니다.
남쪽매표소가 규모가 크고 북쪽은 작지만 전체적으로 도시가 남쪽방향으로 조금 내리막 경사이기에 북쪽에서 시작하는것이 걷기에 수월합니다.
멀리서 보는 셀수스 도서관 전경
바실리카전경
이곳(바실리카)은 로마황제때 화폐를 매매하는 곳이 있는 상업의 중심지 입니다
100년경 아우구스 황제 때 165m 길이로 건설되어진 건물이지요. 기둥이 화려하고 장대합니다.
바리우스 목욕탕 전경
에페스에서 가장큰 목욕탕의 하나..냉탕, 온탕, 탈의실, 열탕 사우나오 나누어져 있답니다. 일부만 발굴된 상태랍니다.
파란하늘 아래 웅장했던 옛 모습이 그려지네요
오데온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지요
오데온의 모습입니다
지붕이 있는 소극장으로 시 낭송이나 음악회가 개최되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천장은 없습니다.
한편으로 오데온은 시의회 의원들, 에세스의 부유층, 큐레트와 함께 회의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서기 200년경 만들어 졌으며 1,500명을 수용할 수 있지요.
여기는.. 공의회(피르타네이온)
길가엔 돌기둥들이 사열이라도 하듯 줄지어 있습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입니다. 왼손 에는 월계관을 오른 손에는 밀다발을 쥐고 있지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NIKE)의 로고는 니케 여신의 치맛자락 형상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찾으셨나요?
뫼비우스 기념비
쿠레트거리로 가는 길목 로타리에 위치하며 독재자 술라의 손자인 뫼비우스 가족의 이름으로 1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세금관계로 로마인들과 사이가 좋지 았던 에베소인들은 폰푸스 왕국(터키 북부 지역)의 왕이었던
미트리다테스 6세(BC132~BC63)를 지지하였습니다.
미트리다테스 대왕으로도 불리는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 공화정 말기 세명의 유명한 로마 장군(술라, 루쿨루스, 폼페이우스)과 차례로 대적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 지역 로마인 8만여명을 무차별 학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로마의 개혁가이며 집정관인 슐라(취임 : BC73~71년)는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승리하여 미트리다테스를 지지했던 에베소인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기념비는 슐라의 손자 메미우스가 무차별 학살 당한 로마인을 기념하고, 슐라의 공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도미티아누스 신전
서기 81_96년사이 도미티안 황제의 이름으로 지어진 신전입니다.
폴리오 우물(샘) 97년경 지어진 것으로 물저장소와 함께 기억할만한 유적
왼쪽의 양치는 목동인 듯한 조각은 헤르메스입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이 지역에서는 나그네의 수호신으로도 알려졌다고 합니다.
헤르메스의 표식인 날개달린 지팡이와 날개달린 샌들을 찾아보시길....^^
오른쪽 조각은 히포크라테스의 병원 분원이 있던 표시랍니다. 지금도 이 표시는 의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오른쪽 조각을 자세히 보시면 뱀의 형상이 있는데요. 뱀은 탈피를 함으로써 다시 젊어지거나 재생하고, 치유된다는 상징을 가지고 있어
의술의 신(아스클레피오스)을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BC460~BC375)는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장 서쪽의 큰 아치는 폴리오라고 하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 '폴리오의 샘'이라고 불립니다.
이 건물은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광장은 이 도시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전해집니다.
광장 가운데 뒷편의 아치형 구조물들은 모두 상가가 있던 곳이랍니다.
제자리를 찾은, 혹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조각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크레테스 거리
좌측은 주택가로 현재 발굴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정면에는 에페스의 상징처럼 돼있는 셀수스 도서관이 웅장히 자리잡고 우측엔 공중화장실이 있습니다.
트라야누스의 샘(트라이언 우물)
트라이언황제의 이름을 따 2세기 초 건축된 우물,
12m높이의 건축물로 갖가지 동상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동상들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에페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크레테스 거리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일하는 수도승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답니다.
양편으로 기둥들이 늘어 서 있고요. 그 기둥으로 이어진 회랑이 있고 회랑 뒤에는 가게와 주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길의 끝에는 에베소의 랜드마크인 건물이 보이는데 셀수스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하드리안 신전
200년경 로마황제 하드리안안의 위엄을 위해 만든 신전으로 앞에는 행운의 여신 폴투나의 약각이 뒤에는 메두사의 양각이 반원의 향태로 조각되어져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신전입니다.
앞쪽 아치 중앙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가 부조되어 있으며, 뒷쪽 아치 중앙에는 불행과 악귀를 쫓는다는 메두사가 부조되어 있습니다.
로마 공중화장실
U자 형태의 구멍이 나있는 대리석변기 밑으로 정화조 시스템과 상하수도 시스템이 연결되어 짧은 시간에 냄새가 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번에 5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칸막이는 별도로 없으며 잆고 있던 외투로 칸막이로 사용했지요.
발아래 홈으로 물이 흐르고 이물을 이용해 용변후 세척을 했답니다.
셀수스(켈수스) 도서관 전경
에페스에서 가장 복구가 잘 된 건물중의 하나입니다. 사진으로 봐도 멋지네요.
셀수스는 135년 아시아의 총독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학문을 사랑하고 책 수집을 즐겼답니다.
셀수스의 아들 줄리어스 아킬라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아래에 셀수스의 묘가 있으며, 앞문은 코린트식 기둥을 가진 화려한 구조로 정면 맞은 편에 왼쪽으로 부터
예지, 덕성, 사려, 학술을 나타내는 여성의 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2세기 중반 아시아주 총독이었던 셀수스를 기념하여 그의아들이 건축을 시작해 125년경 손자에 의해 완성되었답니다
이 당시 12,000개의 롤서적을 소유했지만 * 265년경 고트들에 의해 방화되어 무너졌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그녀가 아끼던 도서관이 불에 타서 없어지자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하며, 아쉬운데로 이곳 셀수스 도서관을 즐겨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 그 당시엔 서적의 형태가 지금처럼 책모양이 아닌 롤형식이었답니다.
마자에오스와 미트리드아테스문
셀수스도서관 바로 옆에 있으며 아고라로 통하는 문입니다
기원전 40년 아우구스투스 제왕, 그의 아내 리비아,그의 딸과 사위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입니다.
셀수스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이 문은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Gate of Mazeus and Mitridates)이라고 합니다.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해방 노예로 노예 신분에서 해방 시켜준 황제에게 감사의 뜻으로 세웠답니다.
이 문은 아고라(광장)로 직접 연결됩니다.
대극장 모습
앞에는 18M높이의 3층 무대가 있었고 관중석은 3층으로 나누어져 총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답니다. 규모가 굉장합니다.
고대 로마 제국시대의 연극 공연장으로 25,000석의 객석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BC 3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연극 공연장으로 처음 건축 되었으며, 로마 시대때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 되었다고 합니다.
육성으로 연극을 하던 시절이어서 극장에서 최우선 고려 조건은 음향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시대 후기에는 검투사(글래디에이터)들의 투기장을 겸하였다고 합니다.
고대도시 에페스 소개
고대도시 에베소는 현재 이즈미르 주의 셀축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전 BC 6,000년경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래에 연구 조사와 발굴 작업을 통해, 에베소의 현재
성이있는 아야슬룩 언덕 주변의 고분 지역이 청동기 시대와 히타이트 시대의 거주지 였음이
밝혀졌으며, 히타이트 시대에 이 도시는 "아파사스"로 불렸다고 한다.
BC 1,050년경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고대 항구 도시 에베소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BC 560년경 에베소의 중심지는 아르케미스 신전 주위로 옮겨졌다.
터키 이즈미르의 남서쪽 약 50km 지점으로, 양항(良港)을 끼고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BC 620년경 이곳에 세워진 아프테미스신전은 소아시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지역에서 많은 순례자를 끌어모았다.
이곳은 BC 7세기∼BC 6세기가 최성기(最盛期)로서, BC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
페르시아 전쟁으로 해방이 된 뒤에는 그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알랙산드로 대왕 원정 뒤 헬레니즘시대에 이르러 경이롭게 부흥하였다.
1세기 성 바울로는 이곳에 그리스도교를 전하였으며(54, 55∼57), 당시 교회가 바로 세계 7대 교회중 하나이다.
또한 로마에서 이 지방 신자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오늘날 이 도시의 폐허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굴된다.
에베소라는 곳은 BC 2~6교회 역사에서 에베소는 예수세기에 에게해의 대도시로 무역의 중심지 였으며
그리스 상인들로 활기를 띠던 도시 였다고 한다.
지금은 작고 폐허같이 보이지만 예수의 모친 성모마리아와 제자 사도 요한과 관련 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는 에베소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AD 53년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도시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AD 262 년 몰락하여 그 화려한 시대는 점차 막을 내렸다고 한다.
바울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으나 카이스트로스 강을 타고 토사가 유입되어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못하고
바다와 에베소 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겨 났다고 한다.
에베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해방되어 그가 죽은 후
히라브이 장군이 에베소의 원형 경기장, 체육관 원형극장을 세워 에베소를 크게 발전 시켰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된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수도가 되었고 상업과 교육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고, BC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항거하여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자 로마의 실라 장군은 에베소를 완전 초토화 시켰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때부터 다시 재건된 이 도시는 아시아 속의 정치,상업,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지금의 에베소는 오스트리아 고고 학자들의 진념어린 노력으로 발굴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