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저는 크리스천이지만 기적을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1년 전까지 매일 밤 6알의 알약을 먹었습니다.
행복했던 제게 갑자기 찾아온 불안장애와 불면증은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 의지 의미를 앗아갔습니다.
이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제 수다스러움마저 빼앗겼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작은 누나가 건넸던 말을 잊지 못합니다.
“내 인생을 포기해서라도 네 평생을 책임지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일을 꿈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때 꿈꾸지 못했던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기적이 이루어진 순간에 있습니다.
건강을 되찾고 의미를 되찾고 의지를 되찾고 희망을 되찾아 실습을 시작했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최고의 슈퍼바이저와 최고의 동료를 만났습니다.
코로나 19에도 굴하지 않고 실습했습니다.
제 능력 밖의 일을 당사자와 함께 이루었고 별들을 빛낸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젠 기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증인입니다.
실습 전
올해는 실습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실습지가 없었습니다.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의 실습 안내문을 읽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긴 실습 시간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찾던 실습지였습니다.
실습이 결정되고 막연한 걱정도 됐습니다.
실습을 마친 지금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습 중
처음엔 공항동팀은 다른 복지관에서 일하는 줄 알았습니다.
왜 면접을 따로 볼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과 달리 공항동에서 활동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연빈이와 공항동 주민센터에서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납니다.
생각해보면 첫 만남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실습 잘하려는 마음을 서로 느껴서였을까요? 그때부터 한 팀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저는 이번 실습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연빈이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근본을 세우지도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실습할 때 동료가 왜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사회사업할 때 동료가 어떤 의미인지 알았습니다.
실습을 시작하는 날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발령됐습니다.
거리 두기 4단계는 실습을 마치는 날까지 풀리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19와 함께 한 실습입니다.
신경 쓸 일과 제약이 두 배가 됐습니다. 그런데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모두의 희생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코로나 19 덕분에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많습니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연습을 했고 안전과 방역에 관해 더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아이들과 소규모로 모였다 보니 아이들 각자의 강점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위기를 얼마든지 기회로 만들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취업하고 처음 맞은 여름이 아니라 실습한 여름이라 다행입니다.
아이들에겐 동일하게 값진 시간이어야 하겠지만, 제게는 의미가 다릅니다.
실습은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배우는 시간입니다.
현장에 나가기 위해 정말 열심히 근본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근본이 필요합니다.
사회사업가의 것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사업가가 지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정해웅 선생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1주 차부터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사회사업 하려면 그래야 한다며 함께 복지요결을 공부하고 다양한 책으로 선행연구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복지요결이 곧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지요결을 공부해 자신의 근본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실습 내내 저희의 몸과 마음을 살피셨습니다. 괜찮냐고 물으시는 말씀에 안 괜찮았다가도 괜찮아졌습니다.
일터와 집에서 갖는 마음을 분리해서 일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집에 가져가지 말라고도 해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이 두 개가 제게 가장 필요한 슈퍼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걸으며 여행했습니다. 아이들이 준비한 여행입니다. 선생님들은 따라갔습니다.
길도 모르고 스케줄도 아이들이 알려줬습니다. 아이들의 투지와 열정에 놀랐습니다.
3시간 반을 걸으며 도착한 후에 지칠 법도 한데 쉬지 않고 뛰놀았습니다.
선행연구하며 아이들에게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바쁜 학업에 코로나 19까지 겹쳐 아이들이 놀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행 당일만이라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는 모습을 보니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놀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입니다. 놀아야 행복한 존재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들이 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개화산에서 내려오며 비 맞았던 추억, 행주산성으로 떠나던 날 아이들과 숲길을 걷던 추억, 1103동에 올라가 노을을 보며 지친 마음을 위로하던 추억까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다른 기억이 흑백으로 바뀌어도 실습하며 만든 추억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될 겁니다.
실습 후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실습을 마치면 지난 6주간의 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해도 괜찮을지 묻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 질문을 던질 때가 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선배와 동료가 있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뜨겁게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
실습하며 세운 근본을 잊지 않는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곧 학교로 돌아갑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학교에 가면 만날 친구들에게 실습하며 쌓은 추억을 하나하나 다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나 배웠고 성장했는지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번 실습을 나누고 자랑함과 동시에 다음 실습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근본을 세우기 위해 친구들과 토론하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실습을 마친 선배들을 많이 만났었습니다.
어떤 선배는 실습을 마치고 자신의 길을 더 명확히 했습니다.
또 다른 선배는 사회사업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저는 실습을 마치고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
사람다움 사회다움을 살리며 사회사업 잘하려다 보니 사회사업가의 것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보다 어렵습니다. 더 많이 배우고 발로 뛰어야 합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사회사업 여행 끝까지 지치지 않고 마칠 수 있을까요?
미래를 꿈꿀 때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벤처 사회사업가가 되어서 지역사회에서 아이들과 맘껏 뛰놀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습하면서 졸업한 뒤 찾아올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날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막막하고 무서워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곧 학교로 돌아갑니다. 21.5학점을 수강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공부해야 할까요?
어떤 미래를 꿈꾸며 배워야 할까요?
차분한 마음으로 사회사업 하려는 목적 의미 이유를 돌아봅니다.
3학년 2학기를 앞두고 실습을 끝마친 지금 잠시 멈춥니다.
사회사업 여행을 떠나며 챙겼던 가방과 지도를 봅니다.
가방이 너무 무겁다면 필요 없는 건 내려놓고 가겠습니다.
지도를 봐도 길을 모르겠으면 동료와 선배에게 물으며 가겠습니다.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한다는 마음도 버리겠습니다.
삶을 고민하는 청소년을 돕고 싶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답을 말해줘야 할지, 그저 함께 놀고 웃으면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 쳐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행길이 길었던 탓일까요? 어디서 출발했는지 기억이 흐릿한가 봅니다.
사회사업 여행 가방에 사랑을 챙기고 싶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기쁠 때 나도 기쁘고 상대방이 슬플 때 나도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면 공감되기 때문이겠죠.
이번 여름 아이들을 사랑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제 방식대로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껏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거창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돕고 싶었습니다.
한 아이를 믿어주는 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청소년 관련 봉사활동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즐거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청소년과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자신 있었습니다.
과업을 마치고 사회사업 계속해도 괜찮을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서로에게 안 하느니만 못할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불화를 두 눈으로 보면서 사회사업가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엔 쌓인 것이 터져서였을까요. 문제가 아닌 강점에 집중하고 주의를 돌려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문제 앞에 화가 났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 없는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활동을 마치고 서러움과 후회스러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걷겠습니다.
가슴 뛰는 사회사업 끝까지 하겠습니다.
맺는말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이번 여름을 돌아보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해서 행복했고 좋은 사람과 동고동락해서 행복했습니다.
고난 좌절에 배움이 있었고 배움에 감사 소망이 넘쳤습니다.
자기소개서에 부족하기에 배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상자를 열어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고 그래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공부하고 의논하고 도전했습니다.
방화11에서 실습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제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슈퍼바이저 선생님들과 동료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 실습했다면 지역사회에서 뜻있게 일하는 단기사회사업을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번 여름은 우연일까요? 운명일까요?
우연이라면 놀랍고 운명이라면 감사합니다.
권대익 선생님, 정해웅 선생님, 정한별 선생님, 박성빈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들께 사회사업 배웠다 자랑스럽게 말하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사회사업 여행하며 이런 일 저런 일 있을 때 잘된 일은 격려해주시고 힘든 일 마주하면 손잡아 주세요.
길을 잃고 주저앉으면 손을 잡고 이끌어 주세요.
현지 선우 민영 연빈 채훈 나영 한나 은주 재경 지은 주연 지우 모두 고맙습니다.
6주간 함께 일하며 우린 동료였습니다.
6주간 함께 밥 먹으며 우린 식구였습니다.
6주간 함께 놀며 우린 친구였습니다.
13명의 목소리로 함께 부른 노래가 이번 여름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살다가 지치면 우리 함께 쌓은 추억 꺼내 보겠습니다.
살다가 기쁘면 그 마음 함께 나누겠습니다.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밝은 별빛>
우리 이 자리에 빛나는 별빛 보러 모였습니다.
한낮엔 별빛을 볼 수 없습니다.
별빛은 어둠 속에 빛나는 까닭입니다.
가장 밝은 별빛은 가장 어두운 밤에 볼 수 있기에
별이 빛나는 때를 기다립니다.
별들의 은은한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별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면
눈부시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밝은 별빛인들 혼자 보면 무슨 의미일까요?
함께 빛나는 별빛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어둠 속에서 별들의 은은한 목소리에 귀기울인 동현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길 위의 학교 친구들이 빛났고, 함께 실습한 동료들이 빛났습니다.
제가 일전에 동현 선생님이 ‘불편하다’고 했었지요?
지금은 후회하는 말입니다만(ㅠㅠ) 배울게 많은 분이라서, 옆에 있으면 더 주의하게 되고 경청하게 만드는 사람이라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삶의 의미와 방향을 부단히 성찰하는 동현님과 함께 실습할 수 있어 좋았어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것을 배웠어요.
‘나도 동현이처럼 생각하고 고민해야겠다’하고 다짐한 날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은 놀기만 해도 행복한 존재, 놀아야 행복한 존재”라는 말씀 기억할게요.
3주간의 활동 끝에 다다른 깨달음이 힘찬 물소리처럼 다가옵니다.
우리 같이, 아이들이 신나게 놀아도 괜찮은 사회, 그렇게 놀 수 있는 사회 만들어요.
언젠가 이 길에서 우연히 마주칠 날을 기대합니다.
그땐 저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깨끗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할게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형과 함께 실습하면서 저도 좋았어요. 많이 배웠고 더 큰 꿈도 생겼어요.
각자 열심히 걷는다면 분명 마주칠 거에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해요!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동현의 수료사도, 채훈의 댓글도, 고맙고 고맙습니다.
두 사람의 사회사업 인생을 축복합니다.
이번 여름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행복합니다. 덕분에 저와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