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블로그 꺄르르♡인님의 '당신 덕분에 꽃이 핍니다' : (블로그 바로가기)
영화 <명왕성>은 매우 뛰어난 영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볼 수는 없습니다. ‘저예산 영화’라 홍보와 광고가 안되어 이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대다수 사람들은 모르는 데다 틀어주는 영화관이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화 <명왕성>은 한국 교육의 뒤틀림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그 끔찍한 뒤틀림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우리의 욕망을 위해 자식들을 지옥으로 집어넣는데, 그 지옥의 풍경을 신수원 감독은 펼쳐 보입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볼 수 없는 이유죠. 몹시 불편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이 영화를 ‘더’ 봐야 하는지 모릅니다. ‘지옥의 맛’을 덜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들이 ‘덜’ 죽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입시지옥’을 유지하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아이들을 내동댕이치니까요. 영화 <명왕성>은 십대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요즘 젊은이들의 정신상태가 왜 그리 메마르고 팍팍한지, 지금 한국사회의 꼴이 어떠하고 그 안에서 자라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나갈지를 생생하게 그려 보이는 ‘문화인류학 교육보고서’입니다.
영화제목 명왕성
영화 제목부터 꽤나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명왕성은 1930년에 발견된 뒤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라고 여겨졌으나, 2006년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고,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소행성 134340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태양계의 행성이 아니죠. 한국의 교육에서도 부모의 학력이 매우 짧고 충분한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루저’로 분류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기르기보다 사람을 가르는 한국교육은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3류’라는 낙인을 찍은 뒤 ‘1류의 태양계’ 밖으로 퇴출시키고 있죠.
한국교육은 또 다른 의미에서 ‘명왕성’입니다. 명왕성은 명왕(冥王), 곧 죽음의 신을 뜻하죠. 해마다 수백 명이 입시 때문에 죽음의 신에게 끌려가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이지요. 교육은 입시지옥이라는 걸, 교육을 받다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이 정도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 것들은 좀 안타깝지만 제거되어야 한다는 걸! 죽음의 신은 오늘도 지옥을 펼쳐내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아도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전쟁을 치릅니다.
그래서 신수원 감독은 보안사 시설이었던 건물이 학교가 되었다고 설정합니다. 으스스하게도 보안사와 학교는 느낌이 엇비슷합니다. 지난날 보안사가 사회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하며 죽였듯 지금 학교는 아이들을 교육하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하며 죽이죠. 보안사에 끌려갔다가 나온 사람들의 인생이 황폐해졌듯 학교를 거친 대다수 사람들도 정신이 멀쩡하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영화 <명왕성>이 청소년들을 다룬 영화이지만 처음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너무’ 많이 알기를 우리들은 원치 않으니까요.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해도 참길 바라지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걸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지옥을 만들고 아이들을 집어넣었다는 걸 아이들이 알지 못하도록 ‘우리’는 영화 <명왕성>을 청소년관람불가로 지정해야만 했습니다. 나중에 반발을 받아 15세 관람가로 조정했지만 말이죠.
제조되는 인간들
흥미롭게도 신수원 감독은 1등하는 학생의 이름을 ‘유진 테일러’라고 붙였습니다. 미국의 ‘테일러’가 떠오르죠.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인다면서 지침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분절하고 통제하는 ‘테일러 시스템’을 만든 그 ‘테일러’ 말이죠. 테일러 시스템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공장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하는 기쁨을 얻지 못한 채 더 많은 생산을 위한 하나의 기계가 되어갔듯, 한국의 학생들은 더 이상 배우는 기쁨을 얻지 못한 채 더 많은 암기를 위한 하나의 기계가 되어갑니다.
누구보다 더 기계처럼 체제의 명령을 따르는 유진 테일러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습니다. 서울대 들어가는 건 따논 당상이죠. 하지만 그는 입학만 하고 자퇴할 거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들어가고픈 게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압박하니 어쩔 수 없이 들어가지만 자퇴하면서 복수하려는 속셈이죠. 눈이 텅 비어있는 유진 테일러의 두 손목엔 셀 수 없이 많은 ‘자살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학교는 ‘좀비들의 공장’이 된지 오래입니다. 통통 튀고 생생하던 아이들은 학교를 거치면서 하나같이 퀭한 좀비들이 되죠. 그러나 암만 좀비들이 악을 쓰며 공부해도 ‘승패’는 거의 판가름 나 있습니다. 영화 주인공 김준은 성적을 올리고자 성적 상위의 아이들이 시험정보를 공유하는 비밀 스터디 ‘토끼사냥’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이 비밀 스터디의 대장 유진 테일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스터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어! 미친 놈들만 들어올 수 있어!”
이들의 모임 이름이 ‘토끼사냥’인 까닭도 우리의 교육 현실이 토끼몰이하듯 아이들을 몰아가기 때문이고, 몇몇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토끼사냥’하면서 입시스트레스를 풀고 있기 때문이죠. 유진 테일러는 김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 같은 건 없어. 영원히! 그런 건 인간일 때나 가능한 거잖아. 넌 안 그래?”
입시지옥을 폭파하라
다들 입시의 문제를 알지만 입시지옥의 불길은 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기름처럼 입시에 부어지니까요. 김준의 어머니는 보험을 팔면서 ‘상계동’에서 쪼들리며 살고 있는데도 대학간판을 따라고 김준을 ‘기숙사 학교’로 밀어 넣습니다. “너 잘 되라는 거”라는 부모들의 번지르르한 말 뒤엔 자신들의 시커먼 욕망이 숨어있죠. 마지막에 김준 어머니가 김준에게 “미안하다”면서 울부짖는 까닭도 ‘괴물로 변해가는 아이들’ 뒤엔 ‘우리 부모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에게만 핀잔할 수 없죠. 부모들의 욕망을 입시로만 쏟아붓도록 만드는 사회제도가 문제니까요. 부모의 사랑이 입시에 대한 뒷바라지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황당하고 참담한 분위기에서, 어느 대학을 들어갔느냐가 한 아이의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에서, 대다수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총알을 든든하게 비축한 뒤 아이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잘 싸우라고 자신의 아이를 응원할 수밖에 없지요. 부모들은 입시전쟁의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신수원 감독은 막판에 ‘폭파’를 선택합니다. 그냥 단순히 입시제도를 조금 손질하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아이들을 위로해봤자 ‘죽음의 신’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수백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교육체제엔 변화가 없으니, 우리의 굳어버린 감각과 마비된 세상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라도 학교 ‘폭파’라는 극단의 선택을 감행합니다. 그만큼 지금 교육상황은 절박하고, 약간의 ‘개선’이 아니라 커다란 ‘폭파’가 필요하다는 뜻이겠죠.
첫댓글 아...보고싶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좀비로 만든다는 것...
이 글을 읽어보니 하루빨리 학교에 나온 걸 잘한 거라고 생각해야 되겠어요...
학교는 정말 무서운 것인듯...ㄷㄷ;;
청소년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할려고 청소년 관람불가 했었는데
반발이 심해서 15세로 변경한거니까 반발 잘했네
홈스쿨링의 정치학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제목만 몇번 봤던 존 개토(맞나?)의 바보 만들기도 떠오르고요, 또 상처받지 않을 권리도 떠오르고요,,, 그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의 전쟁을 치르게 하고 그것을 결과로 논리적인 생각이 아닌 특정한 분야의 '교육받은 노동력'만을 쟁취하도록 한 우리나라의 학교는 정말 '개선'보다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시급합니다!!!
명왕성이라고 판명되면 그냥 밀려나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이런게 현실이라니 슬프기도하고 영화가 어떻게 담았을지 궁금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고싶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