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한남정맥 03차(하고개~양고개) 용인시.
산 행 일 : 2016. 01. 23.(토)
산행코스 : 하고개~부아산~42번 국도~멱조고개~석성산~작고개(마성IC)~할미성~구성사거리~아자치고개~양고개
(거리 18.5km, 9시간 예상)
산행참가 : 18명.
<산행코스> 

올해 첫 산행이었던 지난번 한남길 2차 산행 때도 매섭게 추운 날씨였는데, 오늘에 비하면 그냥 산행하기 좋은 날씨였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번 산행일의 일기 예보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보되었다. 보온병에 커피를 끊여 담고, 물은 따뜻하게 한 다음에 보온백에 넣고, 좀처럼 입지 않던 내의까지 입고서 집을 나섰다. 산행지가 서울에서 가까운 용인이어서, 그냥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하여도 한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평상시처럼 양재에서 전용버스에 올라 용인대학교로 향한다. 새벽 12시를 조금 넘겨 버스는 용인대학교 정문 옆 주차장에 도착하였고, 무려 4시간 가까이를 버스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가, 버스에 실내등이 켜지며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04:23 무섭게 추운 한겨울 날 첫새벽에 용인대 정문 옆 주차장을 나서며, 한남정맥 3차 산행을 시작하는데, 
돌아본 용인대 캠퍼스 위로 보름달쯤이 밝게 빛나고 있다.

용인대 정문 앞으로 나와, 
하고개 방향으로 45번 국도를 잠시 따라 오르면, 
하고개 터널이 나타나고, 
<하고개(鶴峴, 학고개, 220m)> 45번 국도가 지나는 하고개는 지도상에는 하고개로 나와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학고개로 부른다. 하고개 옆 역삼동 구성(九星) 마을은 아홉 개의 별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3군 사령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동면 어비리(魚肥里)는 고기가 살찌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어비리저수지가 생기게 되었다고 하며, 부아산(負兒山) 아래에 용인대학교가 자리잡게 된 이유도 뒷산의 형상이 어린애를 업고 어르는 모습이기 때문이라는 등, 용인시 처인구에는 지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04:32 하고개 터널 위 생태통로로 올라, 우측 절개지를 오르며 본격적인 한남정맥 잇기 산행을 시작한다.

04:50 하고개에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 탓인지, 아니면 매서운 추위 때문에 준비운동을 못한 탓인지, 정여사님이 도중에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버린다.

돌아본 용인시가지 야경. 
04:54 상덕저수지 갈림길 봉우리에서 잠시의 컨디션 회복 시간을 갖는다.

사방이 어둠으로 쌓여 있어 적막감마저 드는 와중에, 멀리서 빛나는 용인시가지 불빛만이 백두들을 응원하는 듯! 
용인시가지 야경. 
<용인시(龍仁市)> 용인시는 '땅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금구음수형(金龜飮水形, 거북이 물 마시는 모습),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거북이 뻘에 묻힌 모습), 영구하산형(靈龜下山形, 거북이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 부해금구형(浮海金龜形, 바다 위로 거북이 떠오르는 모습), 금구입해형(金龜入海形, 거북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 거북이 물로 들어가는 모습), 구갑주형(龜甲胄形, 거북 등 모양), 금구하전형(金龜下田形, 거북이 밭으로 내려오는 모습) 등등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수지리에서 얘기하는 명당보국의 길지로 알려진 곳이 많다. 풍수에서 거북은 부귀와 장수 그리고 번창을 상징한다. 또한 풍수에서 형상이 제일 많은 대표적인 동물이 거북이고, 하늘의 기(氣)을 먹고사는 영험하고 신성한 동물로 알려진 거북은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로 팔괘를 완성하는데 낙서를 제공한 동물이 거북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거북을 금구(金龜)라고 부른다. 수지구가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며, 용인시청이 있는 곳이 거북이 배에 위치하고 있다 한다. 용인지방의 지리적 특성 중의 하나는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대소 하천이 모두 용인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용인 지방이 분지를 형성 하면서 인접 시. 군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멸오'나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이미 삼국시대에 이와 같은 용인(龍仁)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가능하다. 용인시(龍仁市)라는 지명에 '용(龍)'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이런 설화가 내려온다. 용인시의 좌측으로는 투구봉이 있고 우측으로는 칼봉이 자리잡고 있는데, 봉우리의 형상이 투구와 칼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투구봉과 칼봉 사이에는 넓은 터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장군대지형의 땅'으로 믿고 있다.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에 꼭 알맞을 정도의 넓은 지형이다. 옛날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않아 그 문중 가운데 한 집에서 아기장수를 낳았다. 아기는 낳은 지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났으며, 힘 또한 장사여서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무렵은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때로, 자신의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 간에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여 다른 집안 자제 가운데 훌륭하게 될 소지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물론 그 집안 전체를 몰살하였다. 열세에 몰려 있던 남씨 문중에선 아기장수가 태어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불안해 했다. 남씨 문중에서는 전체 회의를 열어 숙고한 끝에 아기장수가 성장하기 전에 처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워낙 힘이 센지라 여럿이 커다란 바위로 눌러 죽였고, 아기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려고 땅을 파 보았더니, 거기에서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남씨 가문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장군대지형에서 마주 보이는 액교산에 있는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한다. 이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음을 슬퍼하며 성산(城山, 석성산)을 향해 달려나갔다. 현재 고림리의 액교산에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아직도 전하는데,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용인 지역에는 이런 설화가 많다.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 등의 내용이 비슷하다. 이것이 훗날에 조선시대의 남이장군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런 전설들이 전해져 삼국시대의 구성현(駒城縣)이 고려 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펌)
05:14 부아산 정상 도착.

<부아산(負兒山, 402.7m)> 조선시대에 이중환이 쓴『택리지』에 부아산에 관한 기록으로 '죽산의 칠장산(七長山)이 크게 끊어져 평지가 되었다가 다시 일어나 부아산(負兒山)을 일으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무네미고개(水踰峴)에서 끊어져 평지가 되었다가, 함박산과 하고개(鶴峴, 학고개)를 거쳐 부아산에서 높이 솟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부아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물론 정자와 벤치까지 설치되어 있다. 부아산의 유래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을 키우며 사는 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가난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친을 잘 봉양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손주를 끔찍이 아껴 항상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어느 해 남편이 관가에서 시키는 부역 때문에 여러 날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도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고, 시아버지는 아들 대신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하루는 웬일인지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시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업은 며느리는 조금더 조금더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헤매게 되었다. 얼마나 헤맸을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며느리는 혹시나 시아버지가 짐승에게 해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그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서는 시아버지와 호랑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다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며느리는 호랑이를 크게 꾸짖으며,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테니 우리 시아버님은 상하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린아이를 호랑이 앞에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자를 잃은 슬픔에 오열을 금하지 못했으나, 며느리의 간곡한 애원으로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시아버지가 낙담하며,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째서 어린아이를 죽게 했느냐?" 하였더니, 며느리는 "어린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마음 상하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였다.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까 봐 겉으로는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사람들은 '부인이 아이를 업고 헤맨 산’이라고 하여 '부아산(負兒山)'이라 부르고, '어린아이의 할아버지를 찾던 고개’라고 하여 '멱조현(覓祖峴, 멱조고개)'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05:39 부아산에서 지곡리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급경사를 내려서면, 용인시 처인구 지곡동에서 기흥구 지곡동으로 넘어가는 도로 절개지에서 우측으로 절개지를 따라 도로에 내려서고, 
도로를 건너 다시 절개지 보수용 철재 사다리를 타고 절개지를 오른다.

05:59 아직도 캄캄한 밤이 계속되며 별다른 특징 없는 능선길을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가노라면, 
06:14 멀리로 석성산의 윤곽이 드러나 보이는,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된다. 
06:39 좌측 용인정신병원 방향의 갈림길 여러 곳을 지나며 능선길을 고수해 가다 보면, 차량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주유소 불빛이 훤히 비치는 42번 국도 절개지 위에 서게 되고, 
06:45 우측 절개지를 따라 내려오다가 수로를 따라 도로에 내려선다.

3차선의 42번국도 신갈 방향. 
용인 방향. 
낮에는 통행량이 무척 많아 무단횡단이 쉽지 않겠지만, 지금은 신새벽이라 한산한 편이어서 어렵사리 중앙분리대를 넘어 건너편 주유로 앞으로 무단횡단한다.
06:49 주유소 앞을 지나 절개지에서 붉은색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야 하나, 경사가 무척 가파르고 덤불이 얽혀 있어서 주유소 뒤로 이어진 도로로 들어서고, 
주유소 뒤편으로 이어진 골목을 따라 진행을 하는데, 용인정신병원 방향으로 잘못 내려선 선두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와서 한남정맥 접속 방법을 가르쳐 주고는, 주유소 뒤쪽에서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 족적을 따라 한남정맥 능선에 오른다.
06:58 돌아본 주유소 방향. 
돌아본 부아산 방향. 
07:04 능선으로 올라 잠시 진행하니 벌목지대에 나무데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주변이 어슴프레 밝아오며 용인시가지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07:06 가야 할 석성산 방향.

07:10 용인시 방향으로 공사 중인 용인체육공원 건물도 내려다 보인다.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우측 화운사 방향으로 잠시 알바도 다녀왔으나, 이내 한남정맥 능선으로 돌아와 좌측의 희미한 족적을 찾아 한남길을 이어간다.
07:22 멱조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우측에 태양광발전단지 울타리 철망을 끼고 가파른 내림길로 이어진다.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오는 백두들.

철망을 잡지 않으면 서 있기조차 힘든 경사면이다. 돈 많은 태양광발전사업자가 등로를 없애가면서 이 정도의 울타리를 만들 정도면 배려심도 있어야 할 터인데, 입에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07:28 넓은 도로와 경전철이 지나는 멱조고개 건너편 절개지도 장난이 아니다.

<멱조고개(覓祖峴, 170m)>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고개로 용인정신병원에서 용인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는 고개로, 현지인들은 메주고개라고 부른다. 멱조고개라는 명칭은 부아산의 효부 이야기 전설과 관련된 ‘할아버지를 찾아 넘던 고개’라는 뜻이다. 그리고 메주고개는 동백지구 언남동에 있는 '아차지고개'와 관련된 이름이다. 최근에 고갯마루를 따라 용인경전철이 설치되어 있는 메주고개는 영남대로(嶺南大路)가 지나는 길목으로 천년 고갯길이다. 영남대로는 한양에서 동래(부산)를 연결하는 최단거리로, 메주고개는 고려시대부터 역로(驛路)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급경사를 내려와 잠시 태양광발전단지 울타리를 따르다가..

급경사의 절개지를 내려서고,

위험을 무릅쓰고 무단횡단을 감행하여 길을 건너고 나니, 잘못된 시정의 상징처럼 자주 매스컴을 오르내렸던 용인 경전철이 한남정맥길을 막아선다.

07:33 용인경전철 울타리 철망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서 통과가 불가능하여, 인도를 따라 좌측 동백지구로 내려가다 보면 우측에 경전철 지하통로가 있다.

07:34 지하통로를 나와 아파트형 공장을 끼고 우틀하면 오피스텔건물이 이어져 있고,

07:50 오피스텔 건물 화장실을 들렀다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편의점에서 아침식사까지 한다.

바깥 기온이 콧물조차 얼려 버릴 정도여서 편의점에서의 아침식사는 최상의 선택!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손님하나 없는 편의점을 독차지하려니 미안스러워서 우유랑 라면 등을 조금 구입한다.

08:14 식사를 마치고 편의점을 나와, 
08:14 우측 언덕으로 올라 멱조고개 절개지로 연결된 한남정맥 능선으로 복귀한다.

08:22 한남정맥 능선에서 본 용인 방향.

한남길로 복귀하는 백두들.

돌아본 멱조고개 방향으로 건너편 절개지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조림지 가장자리 능선을 따라 석성산으로 향하는데,

좌측으로는 동백지구 용인지역난방공사 굴뚝이 보인다.

08:36 완만하던 능선의 기울기가 가팔라지더니,

324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고,

08:47 324봉 정상을 지난다.

324봉에 올라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우측 용인시청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 좌측 방향으로 석성산을 향하는데, 
등로에는 용인시청에서 설치한 '영남길 이야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용인시 역삼동은 역북리와 삼가리가 합쳐진 지명이란다.

08:52 석상산을 향한 편안한 등로가 잠시 이어지더니,

08:57 동백지구 갈림길도 지난다.

09:01 구 '멱조고개'쯤으로 보이는 안부를 지나 오르면,

09:06 좌측 동백지구에서 통화사로 오르는 시멘트 도로에 올라서게 되고,

녹색 화살표 방향의 도로를 따라도 되고, 청색 화살표의 우측 통화사 입구로 들어가도 된다. 어느 쪽으로 가든 통화사에서 다시 만난다.

09:11 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등로로 들어서고,

09:15 다시 도로로 내려서면,

09:16 통화사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09:18 통화사 내부로 들어서서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을 지나면,

용인시 방향.

통화사 원통보전 앞에 서게 된다.

<통화사 원통보전> 통화사는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산 78번지 석성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은 없고 경내에 들어서니 요사체 겸 종무소 같은데 인기척이 없고, 원통보전 마당에는 흩어진 낙엽 위로 쌓인 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09:25 통화사 뒤편 삼성각으로 올라, 석성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로 복귀한다.

잠시 가파른 사면길을 따라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면,

석성산성 안내판이 있다.

<석성산성(石城山城)>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석성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약 1500년 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개로왕을 죽이고 쫓기는 백제군을 몰아 남하하다 이곳을 장악했을 당시 축성한 것으로 추측한다. 석성산성(石城山城), 성산성(城山城)이라 하며, 보개산성 이라고도 한다. 축성 연대는 475년 경이며 길이는 약 2km이다. 석성산성은 험악한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로 경사가 완만한 동쪽에만 반원형으로 남아 있다. 산 서쪽에는 관음사, 동쪽에는 통화사와 백령사가 있는 등, 산의 규모에 비하여 사찰이 많은데, 관음사는 큰 사찰이었지만 2001년 원주 쪽 고려사로 이전하여 빈 건물만 남았다.
석성산 안내판.

안내판이 있는 공터는 가파른 비탈면에 자리하고 있지만 꾀나 넓어서 쉼터로 이용되는 듯하다.

우측 아래로 마성터널을 빠져나와 강릉을 향하는 영동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당겨본 영동고속도로 용인IC 방향.

09:30 석성산 헬기장쯤을 지나고,

잠시 더 올라가면,

09:32 석성산 정상이 나온다.

석성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인 동백지구와 신갈 방향.

추운 날씨에도 석성산 정상에서 야영을 한 듯 보이는 몇몇 분들이 텐트를 걷고 있다.

<석성산(石城山, 471.5m)>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포곡읍면 마성리, 처인구 유림동 등 3개 지역에 연결되어 있는 산으로, 부아산, 광교산과 더불어 용인 지역의 3대 명산으로 불린다. 광교산이나 법화산, 향수산 등 이곳 산들의 조산(祖山)으로 용인의 진산(鎭山)으로도 불린다. 진산은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이다. 부아산에서 법화산으로 이어주는 석성산은 용인시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일명 '성산(城山)' 또는 '구성산(驅城山)'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보개산(寶蓋山, 349.7m)이라고 혼동하여 부르고도 있다.
석성산 정상부에 쌓은 석성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이 개로왕을 죽이고, 쫓기는 백제군을 몰아 남하하면서 이곳을 장악했을 당시인 475년에 축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서쪽 동백지구 방향.

우측 아래로 마성터널을 지나 신갈방향으로 이어진 영동고속도로도 내려다 보인다.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왔는데도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백두들이 얼마나 추웠으면 석성산 정상 증명만 남기고는, 용인 8경 중의 하나인 석성산 정상에서의 조망조차 서둘러 뒤로 한다.

정말 매서운 칼바람이다. 이제는 아침햇살을 받아 조금 따뜻해지려나 마음을 놓으며 석성산에 올랐는데, 정상의 공기는 가히 언젠가 소백산 겨울산행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카메라 베터리를 갈아도 두장도 찍지 못할 정도다. 조망이고 뭐고가 없다. 이런 곳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09:36 석성산 주위의 멋진 조망을 뒤로한 채, 우측의 내리막길을 따라 마성IC 방향으로 내려선다.

09:44 가야 할 할미성과 작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10:02 석성산을 내려서는 백두들.

10:07 작고개와 에버랜드로 들어가는 마성IC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작고개로 내려서는 백두들.

10:09 작고개 석성산 날머리에는 용인숲길 안내판과 '마가실 서낭'이라 새겨진 오석 비석이 있고, 고속도로 건너편으로는 에버랜드로 들어가는 마성IC가 보인다.

<마가실 서낭> 석성산 날머리에 할미성 원주대동굿 보존회가 세운 '마가실 서낭(魔姑仙人)' 표시석이 있다. 과거에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무사안녕을 빌던 곳이다. 대동굿이란 온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펼치는 굿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도당굿”과 같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용인 할미성대동굿은 일반적으로 도당굿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마을의 풍장패가 길놀이 풍물굿을 먼저 친 다음에 타동(他洞)에서 동참하기 위해서 오는 풍물을 맞아들이는 것이 색다른 모습인데, 그 규모가 크다고 해서 ‘대동굿’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에버랜드>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전대리.마성리.유운리.신원리 일대에 있는, 총면적 14.88㎢로 포곡면 전체면적의 1/3을 차지하며, 1977년 경기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고, 1996년 3월 용인자연농원에서 에버랜드로 개칭되었다. 동양 최대의 기업적인 인공 관광지다. 에버랜드 내에는 잣나무·오동나무 등을 심어 놓은 국내 최대 규모의 경제조림단지(6.61㎢)와, 밤·호두·살구·은행 등의 과수·유실수 단지(5.46㎢)를 비롯해, 양돈단지(0.99㎢)·종합묘포장(0.66㎢)·양어저수지(0.13㎢)·가족동산(0.33㎢), 그리고 민속관·미술관·연구원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는 종합문화센터(0.33㎢)가 있다. 삼성그룹은 전 국토의 약 70%가 산지인 한국의 현실에 맞춘 국토 이용 사업으로, 급경사의 고지대는 경제조림단지를 조성해 임야지대로 하고, 완경사 지역은 과수·유실수 단지를 조성했다. 양돈·양어·묘포장은 토질이 불량한 지역을 이용했고, 산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오락 시설을 곳곳에 건설했다. 자연동물원에는 세계 최초의 사자와 호랑이 혼합 방사장(放飼場)을 비롯해 200여 종(種) 4,500여 마리의 동물이 있다. 또한 식물원에는 세계에서 수집된 150여 종의 장미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는 베고니아를 비롯한 각종 희귀식물이 있다. 그밖에 대규모 물놀이 시설인 캐리비안 베이와, 얼마 전까지 국내 최대였던 자동차 경주시설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종합 캠프장인 로그캐빈, 호암미술관 등의 문화·체육시설도 갖추고 있다. 1978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군선도병을 비롯한 국보 28점, 평저주형토기를 포함한 보물 53점이 소장되어 있고, 각종 전통 석조물과 사군자를 포함한 자생화초를 배치하여 한국 전통의 멋을 재연한 전통정원인 희원(熙園)이 있다.
작고개(마성고개)로 내려서는 백두들.

<작고개/마성고개(210m)> 용인시 기흥구 동백리에 있는 고개로, 에버랜드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마성고개라고 많이들 알려져 있다. 원래의 이름은 잣고개로 잣나무로 만든 배가 지나갔다는 전설과 잣나무가 많았다는 고개로 백현(栢峴)으로 전대리에서 어정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가 백제와 연합해 대대적인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한강 중상류 일대는 신라가 차지하고. 백제는 그들의 옛 도읍지가 있던 한강하류 유역을 수복했다. 하지만 신라는 곧이어 진흥왕 14년(553) 한강 하류 유역마저 백제에게서 탈취한 후, 그곳에 신주라는 지방행정을 설치하면서 용인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때 할미산성도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신라시대에 쌓은 성터로 추정되는 할미성을 마고할미가 쌓았다고 해 '마고성(麻姑城)' 또는 마귀(魔鬼)할미가 쌓았다고 하여 '할미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산성을 넘는 이 고개를 작고개라 했다.
10:12 6,25 터키군 참전 기념탑과 석성산을 배경으로.

10:16 고속도로를 횡단하고, 높다란 시멘트 옹벽도 힘겹게 올라 절개지 수로를 따라 오르면,

10:27 할미산성 발굴 현장이 나온다.

할미산성으로 오르는 백두들.

할미산성 발굴현장.

<할미산성> 용인시 포곡면 영동고속도로 에버랜드 길목의 서쪽 산 정상에 자리 잡은 할미산성은 진천. 안성 지역 사람들이 서울로 갈 때 지름길이 됐던 옛길이었다. 용인지역에서 유일한 석성인 할미성은 석성산 정상에서 한눈에 조망된다. 테뫼식 산성으로 북쪽은 높고 남쪽은 경사가 완만하면서 남북이 동서보다 긴 형태다. 산성 둘레는 660m. 성안 북쪽 정상 아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180여m 석축이 늘어서 있어 내성의 느낌을 준다. 성벽 높이는 약 4m로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성벽 하단부는 원형으로 남아 있으며. 상부는 거의 붕괴돼 바깥쪽으로 흘려 내렸다. 남서쪽에는 치성 형태의 성벽이 무너져 있다. 성안은 넓은 평지가 있어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에서 출토된 토기와 기와조각은 대부분 삼국시대 초기의 유물이다. 우물자리는 현재 보이질 않는다. 동쪽의 지대가 낮은 곳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땅', '문지(門地)'로 추정되는 곳이 남아있다.
돌아본 석성산 방향.

동쪽 용인시 방향.

10:33 할미산성 발굴 현장에 있는 용인팔경 안내판.

<용인 8경> 제1경. 성산일출 - 육중한 산세, 성산(해발 471.5m)은 용인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매년 용인시민들의 새해 첫날 일출맞이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처인구 삼가동, 역북동과 기흥구 구성동에 걸쳐있으며 석성산, 구성산으로도 불린다. 제2경. 어비낙조로 유명한 어비저수지. 경기도 최대 규모의 저수지로, 석양의 감동에 잠긴다.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저수지에 여울진 석양의 낙조이다. 황홀한 감동을 자아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본래 어비리를 지나던 큰 내가 있었고 예전에 이를 장호천이라 했는데, 저수지가 되어 마을 명칭대로 어비리가 되었다. 제3경. 곱든고개와 용담조망 - 못에서 용이 승천한다. 칠봉산과 문수봉 사이의 곱든 고개(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황금들판 사이로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용담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고향마을 풍경이다. 용인 백옥쌀이 생산되는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용담저수지는 저수지에 용이 승천하여 예전부터 이곳을 용못 또는 용담이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제4경. 광교산 설경 - 설산(雪山)의 진수. 수지구 광교산(해발 582m)은 처인구 성산과 더불어 용인의 2대 명산이다. 광교산은 용인시와 수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용인시 관내에는 수지 신봉동, 고기동, 동천동에 걸쳐있다. 광교산의 주봉인 시루봉이 용인시에 속해 있으며. 시루봉 정상에서 보면 수지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있는 설경을 일컫는 ‘광교적설’은 이 산의 겨울 절경을 이르는 말로 내려온다. 제5경. 선유대사계 - 선비, 신선이 되어 시조와 풍류를 즐긴다. 처인구 양지면 제일2리에 위치한다.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 전하는 선유대는 조선 후기 풍류를 좋아하는 마을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정자와 연못 주변에서 아름다운 사계절의 자태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시조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제6경. 조비산 - 용인의 가장 아름다운 산.
용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조비산(해발 260m)을 꼽는다.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석천리, 장평리에 접해 있는 해발 295m의 높지 않은 돌산이다. 새가 나는 형상이라 해서 조비(鳥飛)로 명명됐다고 한다. 황금들판 가운데에 봉우리가 돌연히 우뚝 솟아 돌을 이고 있는 듯 특이한 형상을 지녔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그 모습의 아름다움과 멋이 다양한 곳이다. 조비산은 산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도 많다. 다른 산들은 서울로 향하고 있는데 조비산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있어 역적산이라고 했다는 속설도 있다. 제7경. 비파담 만풍 - 비파 소리와 단풍. 용인팔경의 제7경으로는 처인구 모현면 갈천1리 파담마을 일대 가을 풍광을 꼽는다. 비파담 만풍은 조선 현종, 숙종 때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 선생이 파담마을에 낙향해 이 일대 빼어난 풍광에 반해 정자를 짓고 비파를 연주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울창한 숲과 백로들의 나는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제8경. 가실벚꽃 - 호암미술관 가는 길.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위치한 호암미술관 가는 길이 가실벚꽃길이다. 미술관 향하는 왕벚꽃나무 터널은 용인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책로이다. 세속을 떠나 천상의 세계로 비상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봄철 벚꽃 풍광 뿐 아니라 사철 각양각색 비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호수에 잠시 멈추어 형형색색 금붕어와 물오리들과도 벗할 수 있는 볼거리 많은 곳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은 한국미술품 1천2백여 점을 소장(국보·보물 지정 문화재 100여 점 포함)한 곳으로, 전통한옥 형태 본관, 전통정원 희원, 부르델 정원들로 구성됐다.
할미산성(네이버지도에는 선장산(349.6m)으로 표시) 정상에서 돌아본 석성산.

용인시 양지 방향.

남서쪽 동백지구 방향.

할미산성 정상에는 '마고선녀'라는 한 노파가 축성했다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10:37 할미산성 정상에서 향수산 방향을 배경으로.

10:55 좌측은 향린동산으로 이어지고, 우측은 향수산 방향의 한북정맥길이다.

11:04 안부를 지나 조그만 언덕을 오르는데, 좌측으로 향린동산 철조망 울타리가 함께 한다.

11:12 전사자 유해 발굴 지역에서, 직진의 한남정맥과 좌측 붉은색 화살표 방향의 향수산 방향 우회길 갈림길을 지난다.

11:14 검단지맥 분기봉쯤에서 한남길은 좌틀하여 내림길로 이어진다.

<검단지맥 분기점> 향린동산(88CC 입구)에서 북동으로 분기하여 법화산(383m), 불곡산(335m), 영장산(414m), 검단산(542m), 청량산(438m), 용마산(596m), 검단산(657m)을 거처 하남시 창모루 마을 한강변에서 그 맥을 한강에 넘겨주는 도상거리 43km인 이 산줄기를 한남검단지맥(漢南黔丹枝脈)이라 부른다.
11:16 향린동산 외곽 도로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서쪽 88CC 방향으로 진행한다.

11:20 도로는 도로인데 폐쇄된 지 꽤나 오래된 도로를 따르면,

11:25 88CC 진입 도로와 만나는데, 역시나 철문으로 막혀있지만 좌측으로 울타리를 따라 조금 가면 도로로 나설 수 있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는 백두들.

11:27 우측으로 88CC 클럽하우스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우측으로 향린동산 전원주택 마을이 보인다.

<향린동산> 한국의 대표적인 전원주택 단지로 불리는 향린동산은, 1970년 향린교회 교인 30명을 포함한 100여 명이 각자 30만원씩을 내어 지금의 향린동산 자리 23만 평의 산과 전답을 매수하여 전원주택단지로 조성했다고 한다.
88CC 진입도로를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가면,

11:43 우측으로 용인시 기흥구의 물푸레마을 아파트가 보이고,

방음벽 도로를 지나간다.

방음벽 도로로 들어서는 백두들.

11:48 방음벽 도로를 벗어나면 구성교차로에서 물푸레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와 만나고,

아래 지도의 점선을 따라 동백지구를 통과하게 된다. 위 사진의 위치는 우측 상단부이다.

영동고속도로 구성IC(구성교차로)의 모습.

북쪽 물푸레마을 뒤쪽으로 법화산(383.1m)이 보인다.

11:51 구성교차로를 지나 구성구 청덕동으로 내려서서 조금 진행하면,

<물푸레 마을> 경기도 내에서 용인과 수원 지역에 있는 석성산(보개산)과 법화산, 광교산은 높은 지역에 속한다. 용인.수원 지역의 지리적 특성 중의 하나는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유천, 성복천, 갈천 등 대소 하천이 모두 용인.수원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용인.수원 지역이 분지를 형성하면서 인접 시.군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된다. 건너편의 법화산은 법화경에서 이름을 따온 구성동의 중심 산으로 마북동, 청덕동과 모현면 오산리에 걸쳐있다. 더구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으로 불리는 탄천(炭川)의 발원지 부근은 ‘옛날부터 물푸레나무가 많고 항상 푸른 물이 많이 흘러내린다’고 하여 청덕리 혹은 물푸레골이라 불리고 있다. 반면에 석성산에서 발원하는 오산천(烏山川)은 기흥읍 중앙을 가로질러 신갈저수지로 흘러든다. 영동고속도로의 마성터널이 뚫려 있으며, 산 북쪽 능선 끝에는 마성톨게이트가 있고, 그 뒤쪽으로 에버랜드가 펼쳐져 있다. 마성터널을 사이에 두고 석성산 쪽은 동백동, 법화산 쪽은 청덕동으로 나눠있는 지역이다.
'지인방'이라는 공예품 판매점을 끼고 좌틀하여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로 들어간다.

지하통로로 진입하기 위해 오는 백두들.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도로는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좌측방향으로도 도로가 얼마간 개설되어 있으므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산으로로 오르면,
11:59 구성교차로로 끊어진 한남정맥 능선 위에 다시 서게 된다.

12:06 우측에 광교와이드빌 아파트를 보면서 잠시 능선을 따르면,

능선은 아파트와 주택단지에 의해 끊어져 있고, 청색의 직진 길은 아래쪽에서 울타리로 막혀 있으므로, 녹색의 화살표를 따라 이곳에서 좌틀하여 중일초등학교 정문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잘 나있는 등로를 따라 직진했다가, 울타리가 너무 높아 넘지 못하고 되돌아 서야 했다.

되돌아오는 백두들.

12:12 방일초등학교 정문 옆으로 내려서서 우틀하여 진행한다.

도로를 따라 두 불럭쯤 진행하면 T자 삼거리를 만나고, 다시 우틀하여 아차지고개 방향으로 진행한다.

12:22 아차지 고개로 오르는 백두들.

12:24 아차지고개에서 좌측 절개지로 오른다.

<아차지고개> 옛길 영남대로 아차현이다. 지금의 삼가리 부근에서 열심히 일해 뙤기 밭을 갖게 된 부부가 콩을 심어 메주를 만드는데, 쉬파리 한 마리가 메주에 내려 않자 잡을 요량으로, 부인이 주걱으로 내려쳤으나 쉬파리가 피하고 부인은 메주가 엉망이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주걱을 계속 휘둘렀다. 쉬파리가 메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뒤따랐다. 지금의 역조현을 넘어서자 쉬파리도 지쳤는지 날지 않고 한발쯤 떨어진 곳에 앉았을 때에, 이제는 꼭 잡으리라는 생각으로 몸을 던졌으나, 이번에도 놓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차”하는 소리를 질렀다. 이 때문에 “아차지고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역조현을 메주고개라고 부르게 된 것은 바로 이 아내가 쉬파리를 쫒아 넘었던 고개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용인군지)
아차지고개로 오는 백두들.

북쪽 기흥구 창덕동 방향. 
12:30 철망울타리를 따르다가 울타리 모서리에서 함께 좌틀하여 계속 울타리를 따르다가,

철망 울타리를 벗어나는 백두들.

12:38 잠시 후 만골공원 등산로와 만나서 구갈동 방향으로 진행한다.

12:42 안부를 지나고,

12:51 양지바른 묘지에서 느긋한 쉼을 한다.

창녕김씨 가족묘지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양지바른 묘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음에도, 표정이 얼어있을 정도로 오늘이 추운 날씨다.

12:54 모처럼 기~인 쉼을 뒤로하니,

12:57 능선사거리에 올라서게 되고, 우틀하여 진행한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법화산이 보이고,

12:59 능선길은 편안하게 이어진다.

13:04 202봉인 이곳에 누군가 무년산(無年山)이란 표시를 해 놓았다.

좌측으로는 수원CC가 내려다 보이고,

한남길은 수원CC 울타리를 따라 이어진다.

13:15 좌측으로는 신갈JC에 접근하는 영동고속도로가 나란히 이어지더니,

13:20 수원CC울타리와 성원아파트 울타리가 양쪽에서 한남길을 인도한다.

13:25 Y자 갈림길에서 우측 길로 진행한다.

13:28 이곳에서 한남길은 녹원마을 5단지 방향으로 내려서서 언남초교 뒤쪽 언덕으로 이어지지만, 어차피 망가진 한남길 좀 더 쉽게 진행하기 위해 직진의 만골근린공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13:30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새천년 근린공원 능선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새천년근리공원 안내판이 있다. 
13:35 이제 우측으로 만골근린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13:40 오늘의 산행 종착지인 만골근린공원으로 내려서면서, 한남정맥 세번째 산행을 마무리한다.

만골근린공원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만골근린공원 전경.

13:45 만골근린공원 앞에 주차된 애마에 올라,

15:10 신갈에서 땀을 닦고는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하여,

매섭게 추운 어느 겨울날의 한남정맥 산행에 대한 기억을 추억으로 갈무리한다.

추워도 소맥은 들어가는가 보다.

16:31 추운데 기다리느라 고생한 애마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고집을 버리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도시락 싸 왔다고 야외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고집을 버리니 하루 산행이 편해진다. 혹여 쓸데없는 고집, 버려도 좋을 고집이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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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습니다. 이날 제 산핼기에도 날씨가 무척 추웠다는 언급이 있군요 얼굴이시려서 고생했다고 제가 썼네요. 일부 회원님들은 운좋게 편의점에서 따뜻한 물로 아침식사했었지만 그렇지 못한 저를 포함 일부 사람들은 묘지앞에서 떨면서 아침먹었다우 ㅜ ㅜ . 그런 기억도 새록새록납니다. 용인팔경등 마을 이름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 조사하여 기록하시게에 힘들었을텐데 . . . 이대장님의 열성에 다시한번 감탄과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까지 세가지 산행기를 지난 2월에 왕창 기록하셨군요. 그럼 8월에 올리신 옛 기록을 찾으러 갑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