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을 가꾸자
- 행복의 꽃향기를 바란다면 -
박영관 편집고문
봄바람이 살랑살랑 나부끼니 이곳저곳에서 새싹들이 봄노래에 맞춰 기지개를 켠다. 꽃샘추위 지나니 산뜻한 봄날이다. 쑥이 고개를 들자 시샘하듯 여린 미나리도 손바닥을 내민다. 서리를 맞으며 겨우내 이겨 낸 미나리는 해독작용이 뛰어나고 간 기능을 개선한다. 『한국시조선(韓國時調選)』에 작자 미상의 봄 미나리 예찬 시가 있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 계신 데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 님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내 못 잊어 하노라’.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파릇 윤기 나는 미나리를 보면서 임을 그리워하는 시다. 이 시에서 미나리는 사랑이다.
「심춘(尋春:봄을 찾다)」이란 작자 미상의 한시를 살펴보면,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朧頭雲(망혜편답롱두운)/ 歸來偶過梅花下(귀래우과매화하)/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 허탕 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매화 가지 위에 이미 한창이더라.’
남송의 유학자인 나대경(羅大經·1196∼1242)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1251년 간행) 제6권에 ‘이름 모를 비구니의 오도송[悟道頌:고승(高僧)들이 부처의 도(道)를 깨닫고 지은 시가(詩歌)]’으로 게재되었다. 작자가 불분명하지만 넓게 전해져 오는 수작(秀作)이다. 도(道)나 사랑도, 행복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조선 21대 영조(英祖, 1694∼1776) 때 평양 기생인 매화가 지은 시조를 감상하면 ‘매화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필만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자신의 이름과 매화를 동일시하여, 멀어진 연인의 마음을 얻고자 자신과 비유되는 고목에 매화가 다시 피기를 바라는 심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봄을 먼저 알리는 매화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눈 쌓인 들판에 나귀 타고 매화를 찾는 탐매(探梅)의 풍경을 담은 그림과 글들이 많이 전한다. 옛 선비들은 매화의 백옥 같은 자태와 맑고 고운 절개를 사랑했다. 얼어붙은 겨울, 엄동을 뚫고 피어난 매화를 선비들은 군자 같다고 해서 지극히 사랑한 꽃으로 유명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향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화는 조용히 피어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로서 제 역할을 이름대로 해낸다.
꽃샘추위로 찬바람이 매서워도 하늘은 이미 봄이고 남향 비탈은 벌써 냉이와 쑥이 새싹을 틔우고 손짓한다. 세월은 마냥 제 길을 알고 찾아오니 감사하다. 예부터 내려오는 입춘첩의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문구에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한 해의 행운과 경사스러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자연은 봄바람을 타고 온누리에 행복을 안기며 지상에 생명의 꽃판을 차린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흙 내음은 코끝을 간질인다. 나뭇가지에 맺힌 새순이 햇빛에 고개를 내민다. 종달새가 사랑을 속삭이고 시냇물도 드맑고 투명하게 노래 부른다. 봄의 교향악이 따스한 햇볕 받아 바람 연주로 울려 퍼진다. 물가의 마른 갈대는 바람의 지휘봉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정직하고 성실한 봄이 다시 찾아왔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지만 역시 바람은 상쾌하다. 봄바람 나부끼면 나무는 연둣빛 새순이 돋아날 것이다. 이미 땅속을 뚫고 올라온 새순도 기지개를 켠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축복의 계절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에 삶의 즐거움을 무엇으로 찾을까?
생명의 봄에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씨를 뿌리자. 따스한 마음 밭에 무엇을 심을까? 마음이 머무는 자리에 희망의 꽃씨를 뿌려보자. 희망의 꿈은 누구나 크게 키울 수 있다. 꿈, 희망, 미래에 행복의 씨앗과 꽃씨를 뿌리고 가꾸어 보자.
을씨년스런 세상에 꿈과 희망을 행복의 꽃밭에 뿌리고 살뜰히 가꾸어 가자. 값비싼 행복의 열매들이 알알이 맺도록 사랑하는 사람들과 꽃잎처럼 싱싱한 생각을 나누고, 꽃향기처럼 달콤한 감정을 돋우어 보자. 마음 밭은 다른 사람이 심을 수 없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밝은 삶은 나만이 가꿀 수 있고, 나만이 뿌릴 수 있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고, 후회해도 늦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행복의 씨로 희망, 꿈, 사랑의 꽃씨를 심자. 행복의 꽃향기를 원한다면 희망의 씨앗을 뿌리자. 행복을 심는 사람,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행복의 꽃단지를 품고 있다. 얼굴도 인생도 행복의 꽃을 닮아간다. 마음 밭에 어떤 씨를 뿌리고 가꾸겠는가? 마음 밭의 열매는 자신의 몫이다. 무엇이 절실한가? 간절히 원하고 준비하면 얻을 수 있다. 꽃씨 한 톨이 싹을 틔울 때까지는 삶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해남 문내면 출신의 법정 스님[박재철(朴在喆), 1932∼2010]은 ‘마음이 밝으면 그곳이 곧 밝은 세상이다’고 했다. 또한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라. 그것이 곧 너의 길이다’라고 했다. 마음 밭에 행복의 꽃향기를 바란다면 가슴의 문을 지금 활짝 열고, 뿌리고 가꾸어 보자.
박영관 칼럼 - 마음 밭을 가꾸자 - 예향진도신문
첫댓글 잘 읽고 공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