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픽션]
글 속의 나를 찾아서
강민은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언제나 조용한 구석에서 책장을 넘기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곤 했다. 책 속의 세상은 그에게 자유였고,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란 걸 어른들은 몰랐다. 그에겐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강민이 처음으로 글을 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있었던 독후감 대회였다. 그때까지 강민은 늘 책을 읽는 데만 몰두했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도 글을 써보고 싶어.’ 그는 노트를 꺼내들고 펜을 쥐었다. 아직 서툴렀고, 문장들은 엉성했다. 주인공은 자신처럼 평범한 아이였고, 내용은 교과서에서 본 이야기의 변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순간, 강민은 다른 차원의 세계를 발견했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세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에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치 자신이 신이 되어 이야기 속 인물들을 지휘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 글은 대회에서 낙선했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강민에게는 글을 쓰는 그 자체가 큰 성취였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그는 그날 결심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노트는 항상 그의 가방 속에 있었다.
강민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더 깊이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그것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책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강민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도 나를 찾아가야 해.’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부터 강민은 문학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야기의 흐름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과 철학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작가들이 어떻게 단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문장을 쌓아 올려 독자에게 감정을 전달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독서는 이제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공부가 되었다.
그는 헤세뿐만 아니라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김동리 등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는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문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깨달음이 그를 사로잡았다.
강민은 고등학생이 되자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했다. 방과 후에는 책상에 앉아 끊임없이 글을 썼다. 첫 장편 소설에 도전했을 때, 그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제대로 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금방 좌절로 바뀌었다. 수십 장의 원고를 썼지만, 그의 글은 어딘가 어색하고 조잡했다.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지?’
그는 자주 글을 고쳐 쓰고 또 버렸다. 다시 쓴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주변에서는 성공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들은 모두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강민은 그들과 다르다고 느꼈다. ‘내게도 재능이 있을까?’ 그는 종종 자신에게 묻곤 했다.
그가 느낀 것은 고독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었다. 혼자서 고뇌하고,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글을 쓰는 것이 그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었다.
강민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국어 선생님이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은 종종 강민이 수업 중 쓰는 글들을 보곤 칭찬을 해주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그를 불러 말했다.
"강민아, 네 글을 한번 책으로 묶어 볼 생각은 없니?"
그 말에 강민은 놀랐다. 아직도 자신이 쓴 글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격려는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글쓰기에 더욱 몰두했다. 선생님은 그에게 다양한 책들을 추천해주고,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작가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알아야 해. 그리고 그 시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지."
그 가르침을 통해 강민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시각을 담은 글을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깊이 있는 작업인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민이 필요한지 그는 점점 깨달았다.
강민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며 성장했다.
강민은 동아리에서 낸 첫 단편 소설로 교내 문학상을 받았다. 그것은 그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고, 그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글을 쓰는 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출간의 꿈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거절에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고쳐나갔다. 글을 쓰는 일은 그에게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었다.
몇 년의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그의 첫 번째 소설이 한 작은 출판사에서 채택되었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그 문장을 받은 날, 그는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글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 노력했던 어린 시절의 그는 이제 진정한 작가로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제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는 진정한 작가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끝.